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영어를 배우면서 ‘사랑에 빠지다’는 의미로 ‘falling in love’란 말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사랑’이 좋은 일이라면 긍정적인 ‘오르다(arising)’ 대신에 왜 ‘빠지다(falling)’라고 하는 것일까, 혼자 궁리에 궁리를 해봤다. 사랑의 상징적인 글자 ‘구멍(ㅇ)’에 빠져 황홀하게 몸부림치며 춤추다 보면 온몸이 충만해져 화산이 폭발하듯 하늘로 솟아올라 이슬방울이 우주가 되듯 하늘과 땅이 하나 되어 그야말로 ‘hole’이 ‘whole’이 되나 본다고 내 나름의 풀이를 했었다. 히브리어로 ‘타-하-’하면 갓 태어난 어린애가 처음으로 눈을 뜨고 세상의 모든 것에 놀라워하는 경이로움이란 뜻이란다. 그러니 ‘오르기’ (오르가슴 느끼기) 전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으리라.
술 취한 취객들 앞에서 악기로 흘러간 옛 노래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발견하듯 예술가의 진짜 고향은 창조물 창작품을 포기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고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그의 작품 농담(The Joke 1967)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노래들 속에서 행복했다. 슬픔이란 것이 가볍지도, 웃음이란 것이 구겨진 얼굴도, 사랑이란 것이 우습지도, 그리고 미움이란 것이 겁먹은 것도 아닌,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곳이다. 이 노래들이 내 고향이었다. 그리고 이 고향을 내가 버리고 떠났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이곳이, 이 노래들이 그 더욱 애틋하고 애절하게 잊힐 수 없는 노래, 돌아가야 할 내 고향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들은 오직 기억과 회상일 뿐, 더 이상이 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으로 보존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자 이 내 고향 집이 서 있는 땅이 내 발밑에서 꺼져버리는 것 같았다. 따라서 나도 함께 세월이란 깊은 강물 아니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사랑은 사랑이었고 아픔은 아픔이었던 곳, 깊고 더 깊은 못 심연 속으로.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의 고향 집은 바로 이 하강(下降), 이 추억과 추구의 열망 가득 찬 추락이라고. 이 향수에 젖은 낙향의 감미로운 혼미상태로 빠져들어 갔다.”
아, 이것이 참으로 정말 역설의 진리였구나. 떠나와야 돌아가게 되고 떨어져야 떨어질 수 없지.
아, 그래서, 그리하여서
잃는 것이 얻는 것 되고
주는 일이 받는 일 되며
가는 길이 오는 길 되고
내리막이 오르막 되며
비워야 채워지게 되고
낮춰야 높아지게 되며
낙엽이 져야 새잎 돋고
해와 달도 져야 또 뜨며
내리는 비구름 되어 오르고
마음에 담아야 꿈도 꾸게 되지.
아, 그렇군, 참으로 그렇군.
기쁨이 슬픔의 씨앗이 되고
아픔 끝에 즐거움이 있으며
태어남이 죽음의 시작이고
죽음 너머 새 삶이 있겠지.
적어도 영원한 기억으로.
아, 정말 정말로 그래서
떨어져 떨어져 봐야 임이고
떠나와 떠나와 봐야 고향이지.
아, 참말 참말로 그래서
임도 고향도 다름 아니고
못내 사무치는 그리움이지.
임도 고향도 너와 나
우리 그리움 뿜어내는
사랑의 길고 긴 숨이지.
[이태상]
서울대학교
전)코리아타임즈 기자
코스미안뉴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