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안면도 안면암





안면도 안면암

 

 

그날, 우리는 안면도를 향해 자동차의 폐달을 열심히 밟았다. 무술년이 시작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은 겨울 한가운데 선 우리들은 부지런히 올라온 시간의 계단을 세워보며 아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을 떠나자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운 것은 겨울한파보다 세월한파가 우리를 덮친 것 같다고 느낀 육십 일년생들의 작은 반란이었다. 한 해 한 해 늘어가는 나이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생은 욕망이라는 위험한 탐닉과 버무려진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된 것이다.

 

겨울과 겨울 사이에서 우리는 이제 어눌한 말더듬이가 되어 머뭇거리곤 했다. 육신은 영혼보다 일찍 늙어 가고 마음은 여전히 꿈에 젖어 있었다. 장자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은 호접지몽이라는데 내가 꿈속에 있는 것인지 꿈이 내속에 있는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안면도를 향해 떠났다.

 

오래된 친구들과의 여행이란 늘 그렇듯이 웃고 떠들다가 여행 온 목적도 잊어 먹고 마는 법이다. 바로 그거다. 목적도 잊어버려야 진짜 여행이다. 춘하추동이라는 예스럽고 촌발 날리는 이름을 붙여 우정으로 묶은 우리들은 일 년에 한두 번 서울 밖을 벗어나 여행을 하곤 했다. 우정이라는 이름의 시간은 명량하다. 오십여 년의 시간이 증명한다. 문득 떠날 수 있는 것만큼 명량하고 단단한 추억으로 쌓아올린 계단이다. 그만큼 견고하다. 우리들 중 누군가 바다를 외쳤을 것이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다를 향해 달렸을 것이다.

 

인연 없는 인연이

가장 큰 인연이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에서 인연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놓았지만 진정한 인연은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바다와 파도처럼 말이다. 친구라는 인연도 마찬가지다.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래서 인생의 반려가 되는 것이 진정한 인연일 것이다. 오래된 친구들과 우정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감상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생각 속을 들락거리며 명량한 우정의 당위성을 찾기에 바빴다.

 

배꼽시계가 바삐 울릴 때쯤 안면도에 도착했다. 우리는 티브이 맛집 프로그램에도 나왔다는 근사한 집을 찾아 들어갔다. 다소 비싼 해물요리를 시켜서 부지런히 뱃속을 채웠다. 금액에 비해 맛은 별 특징이 없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허겁지겁 먹고 나니 뱃속이 든든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은 맞는 말이라고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깔깔거렸다.

 

배는 부르고 마음은 홀가분했다. 우리는 안면도를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안면암을 발견했다. 아니다 정확히는 섬과 섬 사이 바다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탑을 발견한 것이다. 여우섬이라고 부르는 두 개의 무인도 사이에 부상탑이 서 있었다. 부상탑으로 가기 위해선 백여 미터 가량의 부교를 걸어가야 한다. 서해의 잔잔한 바다와 무인도 그리고 부상탑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침 썰물이었다. 사진기를 그대로 대기만 해도 액자 속의 사진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는 섬으로 걸어갔다.

 

바다 갯벌에 다리를 박고 흔들흔들 서 있는 부교를 걸어서 여우섬에 닿았다. 우리들은 아무 이유 없이 까르르 웃으며 소녀가 되었다. 걷는 것이 재밌어서 웃고 괜히 바다를 보고 웃고 아름다운 천수만의 풍경에 취해 웃었다. 나는 여우섬과 여우섬 사이에 있는 부상탑 앞에서 합장을 했다. 바다와 부상탑, 부상탑과 무인도 그리고 그 앞에 서서 합장한 나..... 생경한 풍경이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나는 목탑 앞에서 친구들의 안녕을 기원했고 바다의 안녕도 기원했다.

 

우리는 바다를 걸어 나와 안면암을 둘러보았다. 유서가 깊지 않은 절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천수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지은 안면암은 금산사의 말사다. 1998년에 지명스님이 신도들과 함께 힘을 모아 안면읍 정당리에 현대식 건물로 지었다. 천년이 지난 절이나 십 년이 지난 절이나 시간의 무게만 다를 뿐 어디에나 불법은 골고루 있는 법이지 않던가. 그렇기에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 이곳에 아름다운 절을 만들었을 것이다. 저 바다처럼 그냥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법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천천히 경내를 돌면서 여행과 바다와 안면암과 우정에 대해 말없는 대화를 했다. 눈빛만 봐도 정다운 우리들은 떠나오길 잘했다고 마음이 마음에게 말했다. 우리도 언젠가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겠지만 저 바다처럼 잔잔한 마음으로 고요하게 살다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 있을 이기심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완전하게 보내는 것이 진정한 삶일 것이다. 이 우주에 있는 것은 영원한 지금뿐이기 때문이다.

 

어둑해지는 겨울해를 바다에 두고 우리는 서울로 부지런히 폐달을 밟았다. 쌓였던 육신의 고달픔이 사라졌는지 아니면 잊었는지 모르지만 안면도에서의 하루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도 어느 날은 바다가 되고 어느 날은 별이 되고 또 어느 날은 비도 되는 법이지 않는가. 또 언젠가 오늘이 그리워질지 모른다. 가슴에 생각을 품으면 그 생각은 이미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나는 믿는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20.02.24 10:42 수정 2020.02.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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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