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 칼럼] 관솔

 



관솔은 죽은 소나무가 많은 송진을 머금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송진은 특이하게도 소나무 과에서만 얻을 수 있다. 바람에 잘려나간 가지나 몸통이 통째로 부러져서 죽은 소나무 뿌리에 특히 많은 송진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관솔은 일반적인 소나무와는 좀 다른 면이 있는데 톱질이 잘 안 먹힐 정도로 매우 단단하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나고 자란 충북 단양 사람들은 강솔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소나무가 말라 죽는다고 해서 모두 관솔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이 땅에 닿으면 수년 내에 썩어 없어진다. 그러나 반드시 살아 있는 소나무의 부러진 가지나, 전체 밑동이 일시적으로 부러지고 베어진 소나무 뿌리에서만 관솔이 된다.

 

그건 아마도 소나무가 부러지거나 강제로 베어지게 되면 생명 유지를 위해 스스로 치유하려고 애를 쓰는 도중 뿌리에서 공급된 양분이 모여 송진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송진을 많이 머금고 있는 관솔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잘 썩질 않는다. 우선 양질의 관솔이 되려면 늙은 소나무가 강한 바람에 부러지거나 베어지고 난 뒤 최소 3~5년은 되어야 가능하다. 그만큼 관솔은 오랜 시간을 자연에서 보낸 뒤 나이테 중심까지 껍질서부터 썩어 들어가며 만들어진다. 좋은 관솔의 채취 시기는 언제가 적당할까. 땔나무를 많이 해본 나의 경험으로 봤을 때 관솔은 사람이 썩은 소나무 뿌리를 흔들어서 힘으로 뽑아낼 수 있을 때가 가장 좋은 적기라 생각한다.

 

물론 삽이나 곡괭이를 사용해서 미리 캐낼 수도 있지만, 그러게 되면 송진의 함량이 부족할뿐더러 가까운 산에도 꽤 많이 널려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 산을 오를 때마다 오래되어 썩은 소나무 뿌리를 보면 발로 몇 차례 밀어서 자주 땅을 흔들어 놓는 것이 좋다. 그러면 잔뿌리가 부분적으로 제거되고 그 사이로 공기가 유입되어 외부의 곤충과 미생물이 합세하여 더 빨리 썩는 것을 도와준다. 이렇게 채취한 관솔은 대체로 소나무가 죽기 전 절반 이하의 굵기로 가늘어진다. 관솔은 나뭇결이 진하게 드러나서 잘 다듬은 뿌리는 관상용으로도 훌륭하다. 관솔에 불을 붙이면 송진의 영향으로 바람에도 잘 꺼지지 않는다.

 

예전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밥을 하고 난방을 할 때 성냥 한 알로는 나무에 불을 붙이기란 쉽질 않았었다. 이때 준비해둔 작은 관솔 조각에 불을 붙여 아궁이 속 땔나무 아래에 놓아두면 잘 옮겨붙곤 했다. 내가 어렸을 땐 성냥이 떨어져서 불을 못 붙이는 일도 생기곤 했다. 가끔 아궁이 밖에서 역풍이 불어올 땐 잘 타던 나무도 불이 쉽게 꺼지곤 한다. 이럴 때 쪼개지 않은 못생긴 관솔을 통째로 아궁이 속에 넣어 두면 불도 잘 안 꺼지고 오랫동안 원하는 화력을 얻은 수가 있다. 관솔은 눈에는 잘 보이진 않지만 온통 기름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 관솔에 불이 붙으면 송진이 물처럼 녹아 나와서 지글거리며 끓기도 한다.

 

다만 관솔은 다른 나무에 비해 훨씬 많은 연기와 그을음이 생기는 단점도 있다. 그 당시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도 봄에 한두 차례 관솔을 써야 할 때가 있었다. 동네 어귀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쥐불놀이를 하였는데 불이 잘 꺼지지 않는 관솔을 주로 사용한다. 불이 붙여진 통의 쇠줄을 꼭 붙잡고서 공중으로 빙글빙글 돌리게 되면 환상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다. 이처럼 관솔은 예전부터 사람의 관상용 작품이나 불쏘시개로 유용하게 쓰였다. 이젠 굳이 관솔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없으나 1980년대 초반까지 아궁이를 사용하던 농촌 사람에겐 좋은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이경수 26ks@naver.com



서문강 기자
작성 2020.02.25 10:49 수정 2020.02.2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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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