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나는 제주도에 산다

권영아




나는 제주도에 산다. 제주도에서 5년째 살고 있다. 아무거리낌 없이 연고도 없는 곳에 내려와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내려왔고, 이곳에는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외지인 혹은 이방인들이 많았다. 눈앞에는 넓은 바다가 보이고, 그것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비릿한 바다 냄새도 좋았다. 그것은 내 앞에 바다가 있음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내 모습을 방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왜 나의 삶은 방황인걸까? 그 이유는 어렴풋 알 것도 같다. 많은 사람들의 보통 평범한 삶에서 나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돈과 명예, 안정을 찾아서 그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나의 모습이 충분히 궁핍하고, 불안정해 보일 거라는 것은 진즉에 알게 되었다. 사실 나의 삶과 그들의 삶을 비교한다고 하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그런 비교의 삶을 살아가지 않으려 한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일 뿐,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형태는 그들이나 나나 다르지 않다. 매일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매달 돈을 벌고 매년 이사 걱정을 하지만 가끔은 집 근처 해변에 나가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거기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소리를 듣는다. 가끔은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나가 몇 시간씩 운전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유명 관광지로 가기도 한다. 나는 그 어떤 것을, 그 무엇을 하든 자유롭다.

 

간혹 거기서 왜 그러고 사느냐?’는 말을 듣는다. 내가 좋아서 이러고 산다고 말을 하고 싶어도 이해도 납득도 하지 못할 것 같아 포기해 버린다. 살아가는데 답이 어디 있다고 나는 틀렸고 그들은 맞다는 결론을 내리는 걸까? 이제는 무시라는 방법으로 대응하는데 익숙해 져서 더 이상은 그런 말들이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사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보니 지칠 때도 분명 있다.

 

덕분에 내가 이곳으로 온 이후 많은 관계들이 정리가 되고 또 많은 관계들이 재정립되었다. 처음엔 내가 너무 멀리 온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기까지 왔기에 나의 관계들을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이곳까지 오게 만든 가장 큰 계기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기도 했기에 이곳에서 나는 나와 그들의 다른 점들을 더 명확하게 보게 되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끊어졌고, 또 어떤 관계는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의 과정 중에 있기도 하다. 내가 나를 믿고 이곳에서 버텨나가는 만큼 그들도 나를 그렇게 믿고 봐주길 바라기도 하지만 그 조차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나는 그저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계는 빠른 속도로 좁아졌고, 나는 관계라는 개념에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것조차도 나에게는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을 겪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 널브러뜨려 놓았던 헤픈 마음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는 일을 지금은 해주어야하는 때인가 보다. 그들과는 상관없이 오직 나를 위해서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작이 혼자만의 관계정리인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 관계정리가 그다지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다는 점이다. 내가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의 부담이 그만큼 많이도 큰 것 같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나는 긍정한다.” 임경선 작가 태도에 관하여중에서 나온 말이다.

관계의 생로병사.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가장 적당한 말을 찾으라고 하면 이 말이 될 것이다. 나를 떠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깨우치고서도 나를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에게 혹은 내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미련스럽게 붙잡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관리하지 않고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인간관계를 제외하고는 부디 놔 줄 있었으면 좋겠다 말하는 임경선 작가의 그 말을 나는 100% 공감하고 있는 중이다.

 

여유롭고 자유로우면서도 조금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제주도에 살고 있다. 오늘 제주도의 날씨는 약간은 흐리지만 충분히 화창하고, 제주도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동네 어르신들을 정겹게 삼춘이라고 부른다. 제주바다는 해녀들이 물질을 할 수 있을 만큼 잔잔하기만 하다. 바다가 넉넉하게 보이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한껏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왜인지 알 수 없는 기분 좋은 마음의 울렁임을 느끼며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이곳에서 충분히 잘 지내고 있으니, ‘방황이니 왜 그러고 사느냐?’와 같은 걱정보다는 당신들의 응원이 필요하다고. 아니 굳이 응원도 필요치 않다고. 그냥 나의 선택을 믿고,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나중에 언젠가는 당신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돌아갈 수 있으니 그때까지 그저 지켜봐달라고 말이다. 이것조차 강요라고 한다면 더 이상 아무 할 말도 없지만 구구절절 말로 할 용기가 없어 글로 쓰여지는 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바다가 좋고, 바다의 비릿함이 좋고, 드라이브가 좋고, 제주도 여행이 여전히도 좋다. 제주도에서의 생활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이런 나의 일상이 좋고, 내가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머물지 않는 이곳이 나는 너무 좋다. 그래서 제주도를 원했고, 그 결과 나는 이곳에서 살고 있다.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05 10:59 수정 2020.09.1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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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