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시인은 종로에 산다

전승선




시인은 종로에 산다

 

  

어스름이 밀려오는 종로를 걸었다.

퇴근한 직장인들은 저녁 술집을 기웃거리고

고기냄새 술냄새 진동하는 골목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에 또 하루가 저문다.

검은색 바바리코트 깃을 소심하게 세우고

낙원동에서 인사동을 지나 견지동 조계사에 들러

건성으로 합장을 하며 염치없는 세속적 소원을 빌면

말없는 부처의 미소만 앞마당에 가득 쌓인다.

조계사 처마 끝에 걸려 있던 하현달이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돌아서 가는

잿빛 노승의 뒷모습처럼 냉정하다.

일없는 발걸음이 교보문고 사거리를 지나

청계천 초입에 다다르면 사방팔방 몰려드는

인파의 숲을 헤치고 교만한 도시의 이방인 된 나는

찬란한 문명의 수혜를 즐기는 하이에나다.

내 고독한 직업인 시인이여

내 불합리한 일생은 서울에서 기승을 부리면서

삶의 변두리를 맴돌다가 보도블록처럼

이름도 갖지 못한 채 뜯기고 말지 모른다.

소주 한 병과 컵라면 하나를 사서

낙원동 오피스텔로 오르는 엘리베이터에 서면

비로소 세상은 한없이 착하고 귀여운 나의 애인이다.

얌전한 야경의 서울 남산이 보이고

잘 정리된 서재의 친한 책들이 즐비한

나의 즐거운 종로오피스텔 육백오호의 세상이여

나는 사람이로소이다. 나는 시인이로소이다

비단위에 똥 싼 황홀한 세상의 주인이로다.


이해산 기자

 

 


 

 

 







이해산 기자
작성 2020.03.06 10:38 수정 2020.09.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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