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이름만으로 가슴 뛰는 곳, 캐나디언 로키(Canadian Rockies)

1부 탐험가의 도시 밴쿠버에서 로키의 속살 레벨스톡까지



겨울을 제대로 즐기려면 캐나다 여행이 답이다. 겨울이 더욱 매력적인 캐나다 특유의 겨울 감성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캐나디언 로키'이기 때문이다. 안데스 산맥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로키 산맥에서 캐나다에 해당되는 부분을 일컬어 캐나디언 로키라고 부른다. 총연장 1,600, 너비 40~80로 최고봉인 롭슨(Robson, 3,954m)을 비롯하여 해발 3,000m 안팎의 산봉우리들이 수없이 솟아 있으며, 산자락마다 우거진 숲과 골짜기마다 청명하고 아름다운 호수들이 눈에 덮여 있다. 그야말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설원의 풍경이 펼쳐지는 순수 자연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해 온 이 여행을 몇 번이나 취소하려고 망설였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가장 순수한 상태의 야생이 눈에 아른거려 결국 캐나다 로키로 떠난다.

 

캐나디언 로키의 로하스 패스에서 만난 크로스컨트리를 즐기는 스키어들

 


캐나다 1번 고속도로(The Tance-Canada Highway)는 캐나다 서쪽 끝 밴쿠버의 빅토리아에서 동쪽 끝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스까지 무려 7821km 길이다. 그 중 캐나디언 겨울 로키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밴쿠버에서 캘거리까지 1번 고속도로 약 1,000km를 달리면 거대한 설산의 파노라마와 눈에 덮인 삼림과 호수들과 야생동물까지 만날 수 있다. 살아 있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로키의 심장부에서 무채색 로키의 풍광을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로키 가는 길. 밴쿠버-랭리-호프-메릿-캠룹스-살먼암-레벨스톡-골든-밴프-카나나스키스-캘거리


캐나다 1번 고속도로의 서쪽 출발지는 밴쿠버(Vancouver). 도시 이름은 1792년 태평양 연안을 탐험한 조지 밴쿠버 선장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캐나다 제3의 대도시인 밴쿠버는 조지아 해협의 버라드만과 프레이저강의 삼각주 사이에 위치하며, 밴쿠버섬과 마주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밴쿠버라고 할 때는 밴쿠버 도심지, 노스 밴쿠버, 웨스트 밴쿠버, 버내비, 리치먼드 등 15개 위성도시를 포함해 일컫는다. 1885년 대륙횡단 철도의 태평양쪽 종점이 되면서 캐나다 동부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발전하여, 지금은 BC(British Columbia) 주도(州都)인 빅토리아를 능가하는 주 제1의 대도시다.

 

밴쿠버는 서부 캐나다 최대의 상공업 도시이자, 태평양으로 통하는 주요 무역항이기도 하다.

 


밴쿠버의 다운타운인 개스타운(Gastown)은 유럽풍의 건물들과 낭만적인 분위기 거리로 밴쿠버 시민들의 산책로로 사랑 받고 있다. 개스타운에는 인기 있는 캐나다 토산품을 파는 카우칭 센터나 인디언 크래프트 상점들이 많이 모여 있으며 올드 패션 스타일 상점 등이 줄지어 있고, 개스타운을 만든 주인공인 개시 잭, 존데이튼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날 수 있다.

 

개스타운의 랜드마크 증기시계(Steam Clock). 15분마다 한 번씩 피식거리며 증기를 내뿜는다.

 


 

바닷가에 있는 캐나다 플레이스(Canada Place)1986년 밴쿠버에서 열린 '86 엑스포'를 위해 지어진 캐나다관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현재는 세계무역센터, 밴쿠버 컨벤션 센터, 고급호텔로 쓰이고 있다. 공공시설이 밀집해 있는 바다 쪽 끄트머리까지는 산책로가 있어 멋진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다.

 

다운타운의 북서쪽으로 이어진 스탠리 공원은 마치 섬처럼 느껴진다. 과거 해군기지였던 이곳은 도심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오래된 향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맑고 깨끗한 공기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곳곳에 다양한 시설과 원주민들의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마치 자연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놀이공원 같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자전거를 빌려 스탠리 공원을 산책하는데 반드시 시계 반대방행으로 움직여야 한다.


 

스탠리 공원에서 바라보면 밴쿠버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 트럼프 타워가 가장 높다.

 

 

1964년 도쿄올림픽 남자 육상 100m에서 동메달을 딴 해리제롬의 동상

 


 

공원 바로 앞 바다는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 들어와 바닷물 염도가 낮아 연중 날씨가 습하지 않다. 이 도시에는 깨끗한 바다와 높은 설산이 시내에 인접해 있어 요트, 스키, 골프 등 액티비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밴쿠버는 아름다운 경관뿐만 아니라 여행객을 환영하는 다문화 도시다. 대도시의 세련됨, 신나는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세계 수준의 시설과 느긋한 삶의 태도가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밴쿠버의 브릿지 인근 도시 랭리(Langley)에서 1박한 후 웅장한 대자연이 펼쳐지는 신이 만든 작품 캐나디언 로키를 향해 출발한다. 호프(Hope) 한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근처에 있는 오델로 터널 들린다.

 

랭리를 벗어나면 연이어 나오는 블루베리 농장. 블루베리는 BC주 대표작물이다.



 

오델로 터널(othello tunnels)은 온천 도시 호프(Hope) 근처에 있는 코퀴할라 캐년공원에 있다. 호프에서 오델로 터널로 가는 길은 캐나다 골드러쉬 시대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곰 한 마리 툭 튀어나와서 길을 막고 서 있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을 지나치면 이윽고 공원 주차장에 들어선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맑은 물, 아름드리 소나무와 삼나무,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그림 같은 이끼 숲, 높낮이가 별로 없는 산책길이 편안하고 아늑한 힐링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이곳에서는 속도를 내면 풍경을 잃고, 속도를 줄이면 평화를 얻는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주위 수목은 온통 이끼가 만든 초록색 옷을 입고 있다.


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있을 무렵, 캐나다 철도회사는 쿠트니 지역과 BC 해안을 연결하기 위해 거대한 산허리에 구멍을 내고 다리를 놓는 일부터 시작하게 되고 터널은 1914년에 완공된다. 하지만 터널은 안전상의 이유로 1961년에 폐쇄되는데 터널은 은퇴 후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다. 영화 람보가 이곳에서 촬영된 이후부터 터널은 호프시가 자랑하는 관광지로 살고 있다.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가 랜턴을 벽 쪽으로 돌리면 반짝반짝 빛나는 암석을 보게 된다. 캐나다 골드러쉬 시대의 그 느낌을 재현할 수 있다.

 


 

겨울철에는 터널 내 붕괴를 우려하여 양쪽 입구 모두 출입 금지다.


캐나다를 동서로 잇는 캐나디언 퍼시픽 레일웨이(CPR)는 그 길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180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골드러시 시대에 캐나다 서부지역에서 채굴된 각종 광물들을 옮기기 위해 설치된 이 기찻길은 아직까지도 캐나다의 주요 화물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철로의 마지막 못이 박힌 장소는 라스트 스파이크(Last Spike)’라는 이름의 명소가 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화물열차가 지나는 기찻길 옆에서 마지막 못을 박는 기념사진을 찍고, 기찻길이 지나는 모든 캐나다 주의 이름이 적힌 기념비도 구경한다. 100년이 지나도록 수많은 이야기를 대륙을 가로질러 운반했을 기찻길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도로와 함께 달리는 대륙횡단 철도는 주로 알버타 주에서 생산되는 밀, 샌드오일, 목재, 광물 등을 밴쿠버로 실어 나른다.

BC주 남동부 중심을 가로지르는 해발 1,200~1,400m의 고지대를 지나는 5번 도로 코키할라 하이웨이를 따라 준 사막지역이며 컨츄리 음악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락 페스티발로 유명한 메릿을 지나 사우스 탐슨 강을 따라 달리면 목재의 도시이자 내륙 교통의 중심지인 캠룹스(Kamloops)를 만난다. 이곳은 라스베가스와 모하비사막, 아리조나로 이어지는 북미 사막의 북쪽 끝이다.


캠룹스는 인디안 말로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 즉 양수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길도 갈라져 밴프로 가는 1번 도로와 재스퍼로 가는 5번 도로로 나뉘는 아름다운 강변도시다. 1번 도로에는 사박사박 쌓인 눈 위로 자꾸 눈이 내린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으로 산의 적막이 깊어진다. 나무도 숲도 계곡도 하늘도 일체가 묵언에 들어 있다. 눈 외투를 두른 하얀 산의 스키장 슬로프에도 눈꽃이 난무한다.

 

캠룹스에서 살로암 가는 길은 눈발이 굵어지니 절묘한 여백의 미가 시선을 끈다.

 


 

캠룹스에서 1번 고속도로로 갈아타니 도로를 따라 물줄기가 계속 따라 오는데, 강이 아니라 4개의 큰 호수가 이어진 것이다. 설산이 장엄하게 드러나자 용들이 햇살에 젖은 몸을 말리는 모습 같다. 풍경이 생사를 초탈하게 만드는 비경이다.


약 두 시간을 더 달려 이름 그대로 연어의 도시인 살몬암(Salmon Arm)에 도착하여 휑한 벌판에 자리한 대형 마트에서 신선한 과일과 간식을 구입하고 근처 호텔로 들어가 하루를 지낸다.



살몬암 호수. 10월이면 태평양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 떼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연어 축제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른 아침, 1번 고속도로로 올라서자 사위는 설국이다. 웅장한 설산들 사이 눈발 너머로 아득한 백지 한 장이 놓여 있다. 빙하 품은 설산을 수면에 드리웠던 에메랄드빛 호수도, 키다리 전나무 숲도 눈 내리는 소리에 지워져 적막하다. 눈발이 잦아들자 백지장 위로 말줄임표 같은 점들이 몇 개씩 모습을 드러낸다. 눈앞에 펼쳐지는 순정한 순백색 도화지가 펼쳐지자 여행의 노곤함은 일순간에 사라진다.

 

눈보라가 치는 설국을 지나자 콜롬비아 강이 철교 아래로 지나가는 로키산맥 지역의 철도 교통 중심지 레벨스톡에 도착한다. 레벨스톡은 1880년대 CPR이 개통되면서 형성된 도시로, 도시 이름 역시 선로를 개통시킨 영국의 귀족, 레벨스톡경의 이름에서 따왔다. 인간이 만들어낸 열차와 광산업으로 도시가 성장했지만 레벨스톡의 자연환경은 이곳 사람들에게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겨울에는 1m를 훌쩍 넘게 쏟아지는 눈 때문에 눈을 털어내기 쉬운 양철지붕을 고집해야만 했고, 높은 산에서 일어나는 눈사태에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하지만 눈이 많은 자연환경을 적극 활용해 겨울 스포츠의 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인간과 자연이 만나 함께해 온 이 도시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콜롬비아 강이 도심 가운데를 지나는 눈의 도시 레벨스톡

 


 

1번 하이웨이를 따라 계속 가면 글라시아 국립공원에 속하는 로저스 패스(Rogers Pass)를 지나게 된다. 대륙 철도와 1번 고속도로 구간 중 중 가장 험난한 구간인 이 지역을 로저스라는 사람이 측량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개는 깎아지른 절벽과 협곡으로 인해 겨울에는 눈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재해지역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유난히 꼬불꼬불하고 가장 험준한 로키의 문턱, 로키산맥의 장엄한 침엽수림을 지나면서 눈발 휘날리는 설경을 차창 너머로 감상한다. 코로나 19로 유별나게 굴곡도 많고 피폐도 많은 세사. 비는 내려 세상의 티끌을 씻어주지만 눈을 그것을 감싸준다. 내리는 눈의 숨결이 따뜻하다.

 

레벨스톡을 출발해 골든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워낙 산세가 험해 많은 운전자들이 항상 긴장하는 구간이다.



특히 겨울에는 연평균 강설량이 10m가 넘기 때문에 캐나다 정부와 포병부대가 합세해 눈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도로 곳곳에 105mm 곡사포를 설치하고 눈사태가 예상되는 산으로 대포를 쏘게 된다. 이때는 어김없이 도로가 몇 시간씩 통제되기도 한다. 철로는 이미 오래 전에 이 고개 밑에 건설된 터널로 이동하기 때문에 눈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차량들은 예외다. 그러나 눈사태가 빈번히 발생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눈사태 방지용 터널(Snow Sheds)이 만들어져 있어 차량들이 도로를 이동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로저스 고개에 오르니 눈에 갇힌 대형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BC 주와 알버타 주의 시간 변경선이 지나는 이 고개에서 시계를 1시간 과거로 돌린다.


 

로키 가는 길목에 있는 해발 1,330m의 고개에는 방금 내린 폭설로 대형 화물차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다.
크로스 컨츄리를 즐기는 스키어들이 이 고개에서 출발하는데, 고개에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오두막이 있다.

 


 

고개에 서서 흑과 백만이 존재하는 로키의 무채색 산경의 운치를 훔친다. 키 재기라도 하듯 눈을 덮어쓴 채 병풍처럼 서 있는 장대한 침엽수들, 만년설에 덮여 있는 3000m급의 웅장한 설산, 숲에서 풍겨 나오는 신선한 향긋함, 삼나무 숲을 헤집고 들어오는 햇살들의 짜릿함. 이 모두가 창조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대자연의 가슴 뭉클한 비경이다. 잠시 순백의 설원에서 어린아이 마냥 겨울 왕국을 맘껏 즐긴다.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번거롭고, 마음이 밝으면 세상이 밝은 법이다.

 

아랫마을 골든을 향해 내려가는 골짜기는 깊고 어둑하다. 빛깔도, 움직임도, 소리도 모두 지운 채 적멸처럼 잠잠하다.

눌려진 생각들, 감겨진 꿈들이 슬금슬금 풀린다. 한 올 바람처럼 머리가 가벼워진다.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07 12:33 수정 2020.03.0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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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