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죄수번호 1901

김가빈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누가 보면 쫓거나 쫓기는 모습이었으리라.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내 눈에는 폭우가 내려 옷을 적시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선 따위는 느낄 수도 없었다.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삐죽 나온 탱크 속의 물이 음의 공기와 만나 미끄러운 판이 된 지금 날씨에 잠옷 위에 코트를 대충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나는 발가락이 추위에 떨며 서로 옹기종기 달라붙어 있음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살딱지가 괴로움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내 가슴이 아픔을 호소했고 두려움과 분노 등 세상에 있는 부정이란 부정적인 단어는 다 내 앞에, 내 곁에, 내 안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나는 탈옥했다. 나를 가둬 두었던 그 지긋지긋하고 숨이 막히도록 나의 목을 졸랐으며 일방적인 대화 말고는 발자국 소리 조차 낼 수 없었던 그 철장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나는 분명 죄수였다. 나는 죄인이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죄목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도 하늘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라고만 말했다. 과연 그게 다일까? 물음표에서 시작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자 나는 나에게 나아가 점점 화살을 바깥으로 향하도록 서있었다. 세상에 있는 보편적인 눈들과 소리에 저항하고 싶었다. 사실 탈옥은 어렵지 않았다. 왜 이제껏 시도해보지 않았냐고 나 스스로에게 문책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무척이나 가슴 저리게 아파했던 나였는데 더 이상 아파할 수 없게 된 것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다. 어릴 적 햄스터를 철장에다가 가둬서 키웠던 내가 대조되어 나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판단에 탄식을 하며 터덜터덜 언덕을 내려갔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후회를 잘 하지 않는다. 덧붙여 할 말은 인간은 모순덩어리고 나는 그 인간들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나와서 살아보니 나는 은색 쿠킹 호일에 덮여 있던 집고양이만큼이나 세상을 알지 못했고 편하게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는 차갑고 무관심하고 냉랭한 공간이었다. 때는 20191월이었다. 그는 본인에 대한 화를 본인에게 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푸는 게 학교의 조례시간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상처주고 돌이키지 못하는 말을 물 쏟듯 부어버리는 것이 취미인양 매일 같이 그래왔다. 그래서 나도 익숙해지고 태연해지고 괜찮아진 줄 착각하고 있었지만 그와 함께 하는 날이 쌓여갈수록 나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갔다.

나의 칼날에 내 주변 사람들을 베어버릴 듯 차가운 말들을 그의 눈빛 속에서 그의 화를 통해 배워왔고 내재시켰던 것 같다. 그의 앞에서 내뱉기에는 무서우니 꾹 누르고 있다가 여기서 저기서 폭죽처럼 터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름이 돋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의 성격과 행동을 자녀들 중 제일 빼닮았다고 스스로도 인정한다. 그래서 내 자신이 끔찍하게 싫고 나를 볼 때마다 그가 떠올라서 성형을 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영업이나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단지 그 사람이 싫어서 무기력하고 나 답지 않은 행동을 하려는 시도도 몇 번 해봤다. 하지만 사람 성향이라는 게 성격이라는 게 타고 나는 건데 이렇게 태어난 것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그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다. 장점도 많고 배울 점도 많은 그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이유는 탯줄부터 박혀 있는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여자를 하대하는 유교 문화를 강요하는 것 때문이 8할이었다.

여자가”, “감히” “어디서 네가 나에게”, “뒤지고 싶어?” “나는 되고 너는 안 돼.” “나는 집의 왕이야.”, “내가 하라면 무조건 해”, “넌 나에게 복종해”, “여자는 조신해야지”, “말을 하지 말아야해라며 생각의 방에 떠돌던 나의 단어들을 침묵의 방으로 보내버렸다. 하나같이 옛스러운 말들이다. 더불어 현대 여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싫어요누를 말들이다. 이보다 더한 말들은 수 없이 많지만 위의 단어들은 순화시킨 것일 뿐이고 차마 내 입으로 굳이 내 글로 한글을 헛되이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그와 살던 순간부터 수도 없이 심장을 난도질당했고 24층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단순히 내가 불쌍해서 참아왔다. 중학교 때는 중졸은 하면 안 되지....

고등학교 때는 고등학교는 졸업해야지.. 이러면서 말이다. 몇 번이고 대화다운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이렇게 씨알도 안 먹히고 답답한 컴퓨터 에러 화면 같고 먹통이 된 전화기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나에게 군대에 가면, 회사에 가면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어.”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말했지만 내가 4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 이상 아니 그에 범하는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누구나 알겠지만 나는 그를 비판하고 있는 것보다 사실 그대로를 글로써 객관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 여자는 집에서 밥이나 해라, 여자는 소리를 내면 안 된다, 무조건 남자의 말에 따라야 한다,

조신한 여자여야 한다. 양이나 소나 돼지가 되어 그들이 만든 틀 안에서만 뛰어 놀고 원하는 대로 주는 대로 받고 먹으며 자라고 그 후 잡아먹히는 그런 뻔한 래퍼토리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건 마치 나는 노란 색인데 계속 초록색을 강요하고 초록색 옷을 입혀서 광대를 시키려는 것과 흡사했다. 우린 서로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허공에 단어를 휘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이야기는 단어로 분해되어 공기 중에 떠다니고 절대 귀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건 물 위에 떠있는 나무통에 뛰어 올랐는데 물이 흘러 또 다음 통으로 뛰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그래도 멀어져 있는 거리와도 같은 것이다.

나는 세상을 빨리 배웠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증권회사에서 마음 사기를 보았으며 무역회사에서 서류 사기를 배웠고 부동산에서 말의 사기를 느꼈다. 서로를 속고 속이고 간보고 거짓말하고 이간질하고 능멸하고 증오하며 혐오하고 미워하는 갖가지 상황들과 사람들의 감정을 겪으며 인간의 참혹한 면을 보았다. 물론 다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하늘에 천사가 있다면 이 사람이 바로 천사가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필요한 상황에 적재적소로 나타나 힘이 되어주는 사람도 있었으며 나는 배우고 공부해야할 것이 많은 사람인데 도리어 나에게 배움을 구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보고 나니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가 되고 싶었다. 허상이 아닌 본질을 알고 싶었으며 진심을 소통하고 싶었다. 진심을 호소하고 진정성이 있는 깊은 대화를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았다. 본인들은 행복하다, 즐겁다며 스스로에게 속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벌거벗은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나의 속은 20년 가까이 문드러지고 복숭아 멍들 듯 서서히 곪아져 있었다. 누군가 내 상처를 치유해주길 기다리면 누군가 다가와줄 줄 알았지만 내가 나에 맞는 치료제를 찾아서 자주 발라야 한다. 오늘로서 누군가에게 늘 기대야 하는 허리가 약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탈옥한 사람으로서 자유로움을 한껏 뽐내고 표출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방에는 적막함이 흐르고 있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과도 위에 있는 지금, 자유와 동시에 느껴지고 있는 외로움과 공포심과 불안감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23살의 나는 너무나도 철부지였던 것이다. 내가 맞는데 그들이 잘못했는데 하면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만 잘잘못을 따졌다. 하지만 나의 탈옥은 단순히 나 혼자의 일이 아니었고 우리 모두의 옷을 벗고서 서로의 벌거벗은 모습을 마주하게 된 부끄럽지만 얼어있던 마음이 녹아들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 나는 나의 감정에 더욱 솔직해졌고 대범해졌고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 시점에서 가족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그들 본인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해에 근접하게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죄수로 살면서 늘 죄스럽게 살았다.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다. 여자라서? 딸이라서? 왜 그렇게 미워하고 화만 냈을까. 아무리 가계가 기울어지면 마음도 적막해진다지만 나는 그 집안에 하늘의 축복이 아닌 악을 가득 담아 내려진 비와 같았다. 하지만 나의 탈옥으로 인하여 어느 샌가 그들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봄이 지나 여름도 지나 가을도 찾아왔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봄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변화가 일렁거렸다. 그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고 처음으로 그의 눈망울에서 떨어진 눈물의 무게를 주어 들었다.


탈옥을 후회하지 않는다. 더하여 다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은연중에 한 선택이라도 그것은 나의 생각이 담겨 있을 것이며 내가 가고자 꺾은 방향성이다. 내가 한 선택 중 가장 잘했다. 몇 날 며칠 동안 계획한 범죄가 아니었기에 준비는 없었어도 방법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다신 없었을 기회니까. 후회는 하지 않지만 내가 탈옥을 할 때와 한 달 후, 중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생각은 꽤나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를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노라고 개명을 하고 호적을 파고 연을 끊고 평생을 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심지어 복수를 하겠다고 분노에 찬 나머지 일파만파 내 마음에 나를 아프게 하는 에너지들을 내뿜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안 되서는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그리고 평생 쏟을 눈물을 그 때 다 쏟아 비워버리고 지금은 눈물샘에 가뭄이 찾아온 듯하다.


가족에 대한 나의 마음, 그들의 마음, 우리의 재정 상황, 나보다 그 때문에 힘들었을 엄마, 끔찍하게 싫지만 나를 보호하고 감싸주고 자라게 도와주셨던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매여 왔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짓다라는 표현을 본 적 있었는데 가슴으로 이해되기는 처음이었다. 이래서 모진 경험들을 많이 한 사람들의 글들은 다채롭고 표현력이 다분하고 감성이 짙은 것 같다. 그리고 3개월 후에는 무감각에 끌려왔달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고 평온했다. 내 마음에 평안의 멜로디가 찾아왔다. 잔디밭을 뛰노는 아이처럼 가볍고 마냥 즐거운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더 이야기 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잘못한 부분은 반복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과거에 치중된 생각은 더 발전적인 행동과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나의 소리에 더 집중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사실 인생에 맞는 게 어디 있고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어떻게 하더라도 완벽하게 100% 마음에 드는 인생 답안지라는 것은 태초부터 있을 수가 없다.

나를 죄수로 만든 건 나 자신이고, 그들이고, 사회이다. 탈옥을 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어디에 있든 나의 마음가짐과 나의 태도에 달린 문제이다. 그리고 나만 상처 받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받는 동시에 우리는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나를 죄수로 만든 그들만 탓할 게 아니라 내가 죄수로 만든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고 가슴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명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08 09:20 수정 2020.09.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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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