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꽃과 무지개를 비춰주는 게 이슬방울인데

이태상

 


이슬로 와서 이슬로 사라지는 몸이여, 오사카의 화려했던 일도 꿈속의 꿈이런가!”

 

이 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가 죽으면서 남긴 시라고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이나 같은 말로 악은 결코 악을 제거할 수 없다. 누군가가 그대에게 악을 행하거든 그에게 선을 행하여 선으로 악을 제거하자는 어느 수도자의 말을 상기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일상에서 당면하는 과제가 아닌가.

 

몇 년 전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당한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의 어머니인 이시도 준코는 자신의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2015219일 자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페이지에 기고한 글에서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신경학과 교수이며 깨우침(Awakenings, 1973)’ 등 여러 권의 저서 저자인 영국 출생의 신경과학자요 자연주의자며 과학사학자였던 올리버 삭스(Oliver Sacks 1933-2015)는 한 달 전만 해도 건강한 몸이었었는데 지금은 (이 글을 쓸 당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라며 그가 81세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는 행운이라고 했다.

 

이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것이 그가 직면한 과제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65세 때 그 또한 시한부 선고를 받고 19764월 어느 날 단 하루 사이에 쓴 그의 짧은 자서전 나 자신의 삶(My Own Life)’에서 큰 영감과 용기를 얻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흄보다 15년이나 더 인생을 살 수 있었다고 다행스러워하면서 흄의 말을 되새겼다.

 

나는 여전히 내 연구심과 열정 그리고 사람들과의 유쾌한 친분을 유지한다. (I possess the same ardour as ever in study, and the gaiety in company.)” 그리고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사람들과 경쾌한 유머를 나누면서 애착심과 애정을 느끼지만 그 아무에게도 적개심을 품지 않는다. (I was, I say, a man of mild disposition, of command of temper, of an open, social, and cheerful humor, capable of attachment, but, little susceptible of enmity, and of great moderation in all my passions.)”

 

이상과 같은 흄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나는 내 열정이 지나치지 않도록 내 성질을 통제하는 온화한 성정의 사람이었다. (I was... a man of mild disposition, of command of temper, and of great moderation in all my passions.)” 이렇게 자신도 흄처럼 말할 수 없노라고 삭스 교수는 말한다. 자신도 사랑과 우정을 나눴고 그 아무도 진짜 원수로 대하지는 않았어도 자신을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 정반대로 자신은 극도로 무절제하고 광적인 정열이 치열하기 때문에 지금 죽음을 직면하고 있다 해서 자신의 삶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했다. 아무리 현재보다 삶을 더 초탈하기 어렵다 (It is difficult to be more detached from life than I am at present.)”는 흄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리고 그는 아래와 같이 그의 글을 끝맺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현재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감정은 감사한 마음뿐이다. 사랑을 했고, 사랑을 받았으며 많은 것을 받아 누렸고 뭔가를 되돌려 주었으며 많이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그간 나는 세상과 관계하고 특히 작가들과 독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 왔다. 나는 감성이 있는 존재로서, 그리고 생각하는 동물로서, 이 아름다운 지구라는 별에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로서.” 


이를 내가 코스미안(Cosmian)’ 이라고 말을 좀 바꿔 표현해도 무방하리라. 잠시나마 머물 수 있었다는 이 엄청난 특혜와 모험이라는 축복에 감사할 뿐이다고.

 

“I cannot pretend I am without fear. But my predominant feeling is one of gratitude. I have loved and been loved; I have been given much and I have given something in return; I have read and traveled and thought and written. I have had an intercourse with the world, the special intercourse of writers and readers. Above all, I have been a sentient being, a thinking animal, on this beautiful planet, and in itself has been an enormous privilege and adventure.”

 

, 진정코 우리 모두 하나같이 잠시 맺혔다가 스러지는 이슬 같은 존재라면, 진실로 꿈속에서 꿈꾸듯 하는 일장춘몽이 인생이라면, 우리 각자 대로 지상에 피는 모든 꽃들과 하늘에 서는 무지개를 반사해 비춰보리라.

 

정녕,

있을 이

이슬 맺혀

이슬이던가?

삶과 사랑의

이슬이리.

 

아니,

기쁨과 슬픔의

저슬이리.

이승의 이슬이

저승의 저슬로

숨넘어가는

 

Was the grass wet

with early morning dew

to pay your dues of life and love?

 

Were they dewdrops of

life-giving and love-making,

or rather teardrops of joy and sorrow?

 

Was that for breathing in

this magic world to the full,

and breathing it out to the last,

before transforming back

into the mystical essence

of the Cosmos?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08 10:04 수정 2020.09.14 14:28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