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

이태상

 


2015년 출간된 도서 풍자, 자유의 언어 웃음의 정치가 있다. 2015316일자 중앙일보 BOOK 페이지에 게재된 종교개혁-산업혁명-과학혁명, 그 바탕에는 풍자문화가 있었다는 제목의 서평에서 김환영 기자는 번역해서 해외로 수출해 도서 한류를 몰고 올 수도 있는 역작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저자인 전경옥 숙명여대 정치학 교수는 풍자를 이렇게 정의한다며 인용했다.

 

편견-악덕-모순-부조리-어리석음 등을 비난하거나 이를 개선하려는 기대감을 갖는 빈정거림이며,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것을 경계하는 대안으로, 대중 담론을 형성하는 방법이며 대중민주주의의 장치이다.”

 

이 정의는 쉽게 한 마디로 웃을 일이라는 소리가 아닐까. 안데르센 동화 황제의 새 옷에 나오는 어린애처럼 세상은 웃을 일 친지 아닌가. 우리가 입는 옷의 패션이나 쓰는 모자 또는 감투(거리)를 비롯해서 벗은 몸에 새기는 문신이며 치장하는 화장과 장신구 등 그리고 각종 의식과 행사가 모두 다 웃기는 일들 아니던가.

 

나가 보기에는 어린애도 울지 않고 빵긋 빵긋 웃으며 태어난다. 우주 만물이 다 웃고 있다. 해와 달과 별들이 그렇고, 구름과 바람이 그러하며, 나무나 풀이, 풀꽃과 눈꽃이, 빗방울과 이슬방울이 그러하다. 내가 웃을 때 거울 속의 내가 웃고 있듯이 모두가 웃고 있지 않나. 우리는 기뻐도 웃고 슬퍼도 웃는다. 그래서 웃기다슬프다의 합성어로 웃프다는 말도 생겼으리라.

 

영어에 Have the last laugh라고 최후에 웃는 자가 참으로 웃는 자란 말이 있지만, 우리가 고고(呱呱)의 소리를 내는 순간부터 숨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이란, 아니, 사랑이란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실컷 놀다가 죽음이란 무지개를 타고 우리의 고향 우주의 다른 별나라로 갈 때까지 웃을 일뿐이리. 너무너무 다행스럽고 신비로워 감사할 뿐이어라.

 

지난 2015316인부터 닷새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TED(기술 Technology, 오락 Entertainment, 구상 Design의 약자) 2015년 회의의 주제는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 이었다. 이것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 겸 배우 마돈나(Madonna Louise Ciccone 1958 - )1991년 출연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제목으로 90년대 전 세계적인 섹시 아이콘 마돈나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도발적인 표현과 선정적인 묘사로 크게 화제가 되었었다.

 

그해(2015) TED 대회는 세계인의 지식 축제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가졌던 통념을 깨보자는 대담한 시도였다. 성역화됐던 진실에 도전함으로써 전 세계인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새장 같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었다. 따라서 뜻밖의 연사도 있었다. 1997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고 갔던 장본인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Samille Lewinsky 1973 - )와 한국계 강연자도 두 명 있었다. 북한에서 6개월간 영어 강사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Without You, There is No Us: My Time with the Sons of North Korea’s Elite, 2014)’는 책을 쓴 재미 작가 수키 김(Suki Kim)과 프리랜서 음악가 미나 최(Mina Choi)였다. 흥미롭게도 르윈스키의 강연주제는 수치라는 대가(The Price of Shame)’라는 타이틀의 부적절한 저널리즘이었다.

 

젊은 날 내가 신문 기자가 되어 받은 저널리즘의 첫 지침이 둘인데 하나는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삿거리가 못 되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기사가 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인간미(人間美 또는 人間味)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보리라. 르윈스키 스캔들 와중에 뉴욕타임스의 인기 칼럼니스트인 모린 다우드(Maureen Dowd 1952 - )는 그 당시 그녀의 한 칼럼에 제목을 제발 나도 좀(Please Take Me)’이라 달고 자신을 포함해 만점 매력남 클린턴에게 홀딱 반해 르윈스키의 처지를 선망하는 여성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부지기수일 것이라고 썼다. 클린턴에게는 엄청 진지한 흡인력이 있다고 하는데 이 흡인력 (gravitas)’은 라틴어로 불알에 있는 고환(睾丸)이라던가.

 

그 후로 한 기자가 왜 그런 불장난을 했냐고 묻자 클린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할 수 있었기 때문에(Because I could)”라는 대답이었다. 당시의 르윈스키처럼 육체적으로 탐스럽고 매력적인 젊은 아가씨가 추파를 던지면서 유혹하는데 고자가 아니라면 안 넘어갈 남자가 어디 있을까. 학창 시절 교회 찬송가나 부르면서 제 구두 닦는 게 유일한 취미였었다는 케네스 스타 (Kenneth W. Starr 1946 - ) 특별검사같이 덜떨어진 쪼다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 더욱 흥미진진했던 것은 그 당시 가장 큰 목소리로 클린턴을 맹렬히 비난하며 탄핵을 주도했던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 1943- ), 밥 리빙스턴(Robert Linlithgow Livingston 1943 - ), 헨리 하이드(Henry Hyde 1924-2007), 에이사 하친슨(William Asa Hutchinson 1950 - ) 등 공화당의 지도자들이 클린턴보다 더 심한 외도를 한 사실이 폭로돼 만천하에 공개 되었었다. 성인 잡지 허슬러(HUSTLER Magazine) 발행인 래리 플린트(Larry Flynt 1942 - )가 공화당 정치인들이 외도한 물증을 제시하는 여성에게는 백만 불씩 주겠다고 하자 줄줄이 여자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양념 삼아 한때 미국에서 유행하든 우스갯소리 하나 소개해 보리라. 여성으로부터 구강성교 (Oral Sex) 서비스를 받기만 좋아하고 주기를 꺼리면서 거부하면 공화당원이고 주기를 좋아하면 민주당원이란 말이다.

 

그 당시 나는 혼자 추리를 좀 해봤었다. 어쩌면 힐러리의 방조로 클린턴의 일탈행위가 가능했었을런지 모를 일이라고. 클린턴 못지않게 똑똑하고 자존심 강한 힐러리가 클린턴의 요청을 거절하다 못해 딴 여자한테서라도 받아보라고 허락했을지 모를 일 아닌가.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사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문정희 시인의 치마라는 시를 읽어보면 남자들의 심리묘사가 잘 나와 있다. 남자라는 인간은 영원히 치마 속을 궁금해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아마 본능이리라. 어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서도 벗어나 무엇이 진실인가 우리 냉철히 생각 좀 해보리라.

 

영어에 ‘Perception is reality’란 표현이 있다. 직역하자면 느낌이 현실이다쯤 되겠지만 우리 식으로 의역한다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뜻이리라. 다시 말해 인간사에 있어 어떤 경우에라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실이란 있을 수 없지 않을까.

 

비근한 예로 안중근 의사나 오사마 빈 라덴이 한국인이나 아랍인들에게는 애국자독립투사영웅이지만, 일본인이나 미국인들에게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승자독식(勝者獨食 Winner Takes All) 하는 자연계와 인간세계에선 적자생존(適者生存)과 약육강식(弱肉强食)이란 법칙만 통하고 그 이외의 자비심이나 인류애는 패자의 비명에 불과하지 않은가. 동물 내지 식물 애호가들에게는 동식물의 생명과 안위도 인간의 것 못지 않다.

 

어려서부터 마음의 샘터같은 책에 나오는 세계명언들을 딸딸 외우는 것을 보고 나보다 두 살 위의 작은 누이가 한 말이 있다. ‘그런 명언들을 남긴 위인들은 그들이 살아생전에는 비참했을 것이며 생존경쟁에서 패배한 약자요 낙오자들로서 자가변명의 자위를 하기 위해 독백하듯 한 소리에 너무 심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초등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아 나라가 남북으로 갈리고 온 사회가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며 혼란할 때 당시 교편을 잡고 있든 나보다 7살 위의 큰 누이에게 공산주의가 뭐고 자본주의가 뭐냐고 물어봤다. 벌써 8년 전에 세상 떠나신 누님의 그 옛날 설명은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더할 수 없이 명쾌한 것이었다.

 

태상아, 넌 어떤 게 더 좋다고 생각하니?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으로 우등생이 되거나 게으름 피워 공부를 못하면 낙제생이 되는 것과, 네가 잘하든 못 하든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다 똑같은 점수를 받는 것, 이 둘 중에 어느 쪽이 좋겠니?”

 

그때 내 즉각적인 대답은 전자가 후자보다 더 공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우리 모두 서로 서로 도와 다 같이 잘살아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앞에서 언급한 수키 김의 책 제목 그대로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깨달아 인정하고 이를 실천궁행(實踐躬行) 해야 하는 것이 진실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18 12:17 수정 2020.09.1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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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