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완 칼럼] 고인돌 문화는 인류문명의 시작이었다

최용완

입력시간 : 2020-03-20 12:33:06 , 최종수정 : 2020-03-20 12:50:20, 편집부 기자


한국, 만주, 동중국, 몽골, 일본, 이들 나라의 뿌리는 한반도에서 자라났으며 12세기까지 세계의 문화와 문명을 주도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가까운 미래에 세계 평화를 위한 중축의 역할에 이바지할 듯하다.

 

한반도의 고인돌문화는 지난 200012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반도 지역이 세계적인 분포권에서 가장 밀집된 곳으로 그 중심지역이다. 한반도 안에 3만여 유적이 있고 한반도와 만주지역 주위에는 약 1만여 개의 고인돌이 모여 있다. 나머지 5만여 개는 한반도에서 해안선 따라 동남아세아와 서남아세아를 지나서 서유럽까지 분포되어 온 세상에 9만여 개의 고인돌 유적이 분포되었다. 런던 외곽에 스톤헨지는 2500년 전쯤에 세워진 고인돌 유적이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은 형식의 다양성으로 보아 고인돌의 발생과 성장 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2008년에 사람 혈액 유전자를 연구한 보고서가 사이엔티픽 아메리칸 과학책에 발표되었다. 현대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서 동남아세아를 지나 5만 년 전에 한반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프리카와 한반도 사이에 길이 열렸다. 동남아세아 기후와는 달리 한반도에서는 겨울이 오기 전에 농사를 짓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한반도에서 처음 사계절을 맞아 겨울을 지낼 곡식을 준비하는 농사짓기를 시작하였다. 농사짓는 능력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개척하여 생존할 수 있는 현대 인류의 성장 과정이었다. 한반도에서 구석기인들이 농사지으며 신석기시대가 시작되었다.

 

농사짓는 생활하며 소, , 돼지, 오리, 거위 같은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불을 피워 질그릇을 만들어 대나무 그릇과 함께 사용하고 김치와 된장을 만들어 항아리에 담아서 땅에 묻으면 겨울 동안 음식을 저장할 수 있었다. 마른 곡식과 짐승 살코기와 생선을 말린 음식으로 겨울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통나무나 옹기에 시신을 넣고 동그랗게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며 조상신을 섬겼다. 마을을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죽으면 시신을 땅에 묻고 온 마을 사람들이 크고 무거운 납작 바위를 멀리서 끌어와 덮어서 시신을 보호하였다. 납작한 바위에는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바위에 새기기도 하며 마을의 지도자를 하늘에 별처럼 여겼다.

 

세월이 지나며 납작 바위를 바위 두 개로 받쳐 올려 탁자 모습 고인돌이 한반도에서 처음 나타났다. 고인돌은 무덤 위에 지은 신전이며 지구 위에 제일 먼저 사람이 세운 석조건축이다. 서양사람들은 돌맨(Dolmen)이라고 부르고 탁자 모습의 바위로만 인식한다. 돌맨의 돌 발음이 우리말의 돌(바위)에서 시작하여 우리 선조의 후손들이 고인돌 신전과 함께 세상에 남겨놓은 이름이다.

 

농사짓는 마을은 짚으로 초가집을 짓고 짚으로 배를 만들어 물 위에 떠서 살며 온 세상에 옮겨 다녔다. 짚배는 한반도의 제주도 박물관에서 시작하여 동남아시아와 남미 페루지역이나 세계 각 해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농사짓는 고인돌 마을은 이미 열린 바닷길 따라 유럽까지 옮겨 갈 수 있었다. 2만 년 전쯤 유럽이 빙하기에서 풀려나는 무렵에 농사짓는 마을은 이미 스페인, 프랑스 바닷가에 옮겨 들어가서 고인돌 유적을 남겼다. 바닷가 동굴에 소와 말의 그림을 그려놓은 유적을 찾아볼 수 있다. 소는 고인돌 마을의 농가에서 말은 만주 들판의 유목마을의 가축들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음식을 구하지 못하는 마을은 굶주림에 사라졌지만 호남지역에서 시작한 우리 선조의 농사 마을은 북위 44도 겨울을 지나서 압록강을 지나 요동반도의 요하지역에 이르렀다. 만주 벌판의 초원에서 4계절을 살 수 있게 되면서 개, , 염소, 양을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하여 유목생활에 익숙해졌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의 석탄은 흙처럼 흔하였기에 겨울 동안 석탄불에서 금속도구와 금속 무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인류문명의 석기시대에서 금속 시대로 변화하는 과정이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시작하였다. 손칼을 만들어 바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기에 몽골 벌판에 수천 곳에 바위그림을 남겨놓았다. 세월이 지나며 그림은 문자로 발달하여 문자의 발달이 세계에서 가장 일찍 요하지역에서 나타난다. 옥돌을 다듬기 시작하였다. 세계에서 옥돌유물이 가장 많이 발굴되는 곳이다. 옥돌유물 중에 용의 모양이 처음 나타났기에 중국의 용에 관한 문화가 우리 선조의 요하문명에서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금속 무기와 도구는 인류의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였다. 나무집을 짓고 나무배를 띄워 항해하였다. 금속 무기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더 많은 인구를 지배하여 마을들을 통합하는 부족국가 체제가 나타났다. 멀리서 바위를 끌어와서 연장으로 다듬어 적석총 피라미드를 처음 짓기 시작하였다. 고인돌 문화는 피라미드 문화로 성장하였다. 만주 지린성과 서안시 주위에 남겨진 수천 개의 피라미드 유적은 피라미드의 고향이 동아세아임을 보여준다.

 

유럽의 자존심은 아프리카 가까운 서남아세아에서 인류문명이 시작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유럽의 빙하기와 아프리카 열대기후 사이에서 사하라 사막과 아랍지역 사막이 보여주듯 현대 인류가 정착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중국은 만주와 요하문명이 자기네 국토 내부의 역사이기에 동북공정을 발표하고 중국 역사로 설명한다. 한반도에서 시작한 인류문명의 시원은 한반도에서 우리가 밝혀야 한다. 2008년에 인류의 혈연이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일원론으로 정리되듯 2020년 이제부터는 인류의 문명이 한반도에서 시작한 일원론으로 정리하는 노력이 시작하기 바란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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