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완 칼럼] 홍산문화는 현대인류 모든 문화의 시작이었다

최용완

입력시간 : 2020-03-25 11:22:58 , 최종수정 : 2020-03-25 12:34:36, 편집부 기자


1906년 일본의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蔵)에 의해 발견되었다가, 1935년 하마다 코사쿠(濱田耕作)나 미즈노 세이치(水野清一) 등에 의해 대규모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채도와 세석기의 특징을 가진 이 문화는 1954년 홍산 문화라고 명명되었다. 20036월부터의 2012년까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개발되었다.

 

한반도에서 시작한 고인돌 문명은 요하지역의 석탄불에서 흐르는 청동기와 함께 황금기의 꽃을 피웠다. 요하지역에 농사짓는 마을이 일만 년 전부터 나타나 성장해 오다가 6, 500년 전부터 5,000년 전 사이에 현대인류의 모든 문화로 연결되는 홍산문화가 나타났다. 동쪽으로 고조선, 고구려로 이어지고 서쪽으로 흉노 문화, 남쪽으로 하나라, 상나라가 이어졌다. 2008년에 출판된 책, "고대문명 CHINA”에서 “The world’s oldest living civilization revealed.”(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살아있는 문명이 나타나다)가 출판되었다. 이것은 요하문명이 세계에서 가장 일찍 시작된 사실을 역사학계와 고고학계의 저명한 학자들이 공동저작한 책이다. 이제는 홍산문화의 존재를 세계가 인정한다.

 

고인돌 석기시대의 석탄불에서 인류문명은 청동과 철기 금속시대로 진화했다. 땅 위에 나무집 짓고 물 위에 나무배를 띄워 산업이 발달하고 교통이 발달하여 제후국을 통합한 국가적 체제가 나타난다. 넉넉한 음식은 훌륭한 토기문명과 그림 그리는 예술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금속도구로 바위에 그림을 그린 유적은 드넓은 몽골 벌판의 수천 곳에 유적을 남기었다. 그림은 곧 문자의 형태로 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문자가 발달하였다. 갑골문자로 발달하며 종교와 과학, 천문학이 발달하였다.

 

금속도구로 옥돌 조각이 성행하여 이곳에 가장 많은 유물을 남기었고 후에 세계 각 대륙문화로 전파되었다. 홍산문화의 옥돌 조각 유물들 중에 룡()의 모양이 처음 나타나서 중국문화가 중화족 룡의 문화라면 동이족 요하문명이 중국 황하문화의 조상임을 보여준다. 흙무덤은 돌무덤이 되고 고인돌이 되었다가 자연석을 금속도구로 다듬어 층단식 적석총(Pyramid)이 나타난다. 후에 지린성과 서안시 외곽에 수천 개의 적석총으로 유물을 남기며 세계 각 대륙의 피라미드 문화로 전파된다.

 

한반도에서 5만 년 전부터 성장하여 6천 년 전의 홍산문화에 이르는 동안 중화민족은 1만 년 전부터 지도에 나타남을 혈연학 유전자 연구 지도에서 보여준다. 동남아세아에서 이주해 들어와 황하유역에서 동이족과 융합하기 시작한다. 인구가 증가하며 황하유역 산서성 지역에서 동이족과 분쟁이 시작되었다. 동아세아 지배력은 동이족(東夷族)과 중화족(中華族) 사이에 번복되는 역사로 만리장성은 양면성을 지녔다. 한족(漢族)은 동이족(東夷族)에서 시작하였다가 중화족과 혼합한 한()나라 때 주류가 되었다. 한나라 역사학자 사마천은 중화족의 주나라가 동이족의 상나라를 점령할 무렵에 25만 명의 인구가 해외로 도피했다고 기록했다. 동아세아의 역사는 만리장성 역사이다.

 

홍산문화는 한반도와 연결된 동이족의 문화로 5천 년 전에 서남아세아에 사마리안(Sumer)민족으로 나타난다. 검은 머리에 상투 매고 수염 기르며 치마 입은 민족이다. 대영제국 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문화의 유산, 자개 상자에 서머민족의 풍습을 그려놓았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일하며 여자는 머리에 짐을 얹었다. 소를 몰아 쟁기를 끌어 밭을 갈아 농사짓는 모습이다. 그들이 남긴 토기와 토기에 남긴 문자를 보면 우리말의 단어와 유사하고 문장의 구성이 유사하다. 유럽학자들은 유럽문명의 발생지라고 설명한다.

 

고인돌문화가 지중해에 전해질 무렵부터 나일강 유역에도 농사짓기 시작하고 홍산문화가 고구려로 전해질 무렵에 나일강 하구에 이집트 피라미드 문화가 나타난다. 4500년 전 쿠푸(우리말 고부)왕은 건축가 임호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를 지었다. 쿠푸왕의 조각상을 보면 동아세아 사람처럼 보인다. 이집트의 왕조 파라오들 중에 동아세아 사람의 얼굴과 동아세아의 을지문덕’, ‘연개소문처럼 네자 발음 이름이 자주 보인다. 18왕조 아멘호텝의 아들 아케나텐은 이집트에 태양신을 들여온 동아세아 사람이다. 그의 아들 투탄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영국의 고고학자 하와드카터는 이들이 아프리카에 없는 닭을 먹는 민족이라고 했다.

 

투탄카멘 무덤의 양식이 황해남도 안악군에 고구려 고분 3호의 양식과 유사하다. 전실은 생시의 모습과 유물을 보관하였고 후실은 사후의 유물을 보관했다. 투탄카멘의 거마(車馬Chariot)는 청동에 우리나라 실문양을 금으로 장식하였고 고구려 왕의 거마는 왕의 생시에 행렬도의 부분에 나타나며 부엌 옆에 사냥한 살코기와 함께 그려졌다. 투탄카멘은 생시에 거마를 타고 아프리카 흑인과 아랍인을 정복하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후실에 시신을 보관하는 앞에 소와 개가 주인을 지키는 모습은 우리나라 아이들 이름에 개똥이와 소똥이가 함께 있는 듯하다.

 

거마(車馬Chariot)는 한반도에서 농사지으며 나무로 만든 외바퀴 수레에서 시작하였다. 사람을 나르는 인력거가 되고 소가 끄는 달구지였다가 만주벌판에 말을 가축으로 기르며 처음으로 거마가 나타난다. 이러한 바퀴의 발명과 진화는 우리 문화에서만 볼 수 있다. 거마의 완성된 모습은 진시황제 병마용갱에서 볼 수 있다. 인도 간지스강에 전해진 한반도 음양오행은 불교로 성장하고 바퀴문화는 불교의 윤회사상으로 발전했다. 바퀴문화는 격자형 도시계획에 적용되어 한국 경주시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인도에서 전형적인 고대 도시형태를 이루었다. 주나라 때부터 사용된 주례 동관 고공기는 거마단위의 격자형 도시계획으로 4세기와 6세기 사이에 훈족이 동로마를 세우는 동안 유럽에 전해져서 격자형 도시계획은 전 세계에 분포되었다.

 

한반도에서 농사지으며 저수지를 판 흙을 쌓아 올려 제단을 만들었다. 흙산과 흙무덤이 북미 미시시피강 유역에 3천 개 농사짓는 마을 유적으로 분포되었다. 강 하구는 중미의 마야문화와 아스텍 문화로 동아세아 문화지역이다. 마야문명은 사람을 희생물로 신에게 바치는 상나라 종교와 유사하고 옥돌 조각문화는 상나라 옥돌조각과 일치한다. 마야문자의 모양은 한자가 완성되기 이전의 모습이다. 멕시코 아스텍문화에 달과 해 피라미드는 음과 양을 상징하며 룡머리 조각과 꿈틀거리는 모습이 우리나라 룡의 모습과 같다. 멕시코 휴양지 캉쿤에 365 층계를 가진 룡의 피라미드는 아침에 층층계 난간의 그림자가 룡이 꿈틀거리는 모습으로 변하는 광경을 보여주어 중미문화의 뿌리는 동아세아임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에서 현대인류가 바닷길 따라 5만 년 전에 한반도에 이르는 길이 열린 때부터 한반도의 농사짓는 고인돌 문화가 2만 년 전부터 세계 각 대륙에 전해졌다. 만주지역 석타불의 금속문화가 홍산문화의 토기, 옥돌, 문자, 청동, 피라미드 문화로 6천 년 전부터 세계 각 대륙으로 전해진 역사의 진실을 본다. 동아세아의 문화와 문명은 12세기까지 세계를 지배해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세계역사는 유럽의 편견이었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뿌리부터 찾아 정치적 걸림돌을 치워버리자.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되찾아 다시 동아세아 시대를 준비할 때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