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봄의 전령, 산수유 찾아서 떠난 양평 추읍산

여계봉



코로나19는 결국 팬데믹(pandemic)으로 확산되어 이에 대한 공포는 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괴질로 공포감이 커지고 있는 와중에도 코로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타인과 직접적인 접촉 피하기, 햇볕 많이 쬐기, 맑은 공기 마시기, 운동하기 등인데, 이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나 홀로 산행이다.

 

경기도 양평의 추읍산(趨揖山, 582m)은 용문면과 개군면의 경계를 이룬다. 이 산은 인근 용문산의 유명세에 밀려 양평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산이었으나, 경의중앙선 원덕역이 생기면서 이제는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유명 산이 되었다.


추읍산이란 이름은 북쪽 흑천 건너 용문산을 향해 인사()하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그리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이 지역 사람들은 칠읍산(七邑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산 정상에서 서면 양평, 개군, 옥천, 강상, 지제, 용문, 청운 총 일곱 고을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읍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이는데, 북쪽의 양평과 용문 방면에서 보면 지붕 용마루처럼 보이고, 남쪽의 내리나 주읍리 방면에 보면 둥근 밥공기를 엎어 놓은 듯 둥글게 솟아오른 모양이다.


개금면 내리에서 바라본 추읍산. 둥그런 돔 형태가 마치 임산부의 배처럼 보인다.



추읍산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산행 대상지지만 봄철 산수유와 어우러지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산 남쪽의 내리와 남동쪽 주읍리 일원은 산수유(山茱萸) 나무 약 15,000주가 자생하고 있는 산수유마을로 유명하다. 매년 4월 초 양평 산수유·한우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데 유감스럽게도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취소되었다.

 

추읍산 산행은 대개 원덕역을 기점으로 한다. 역에서 흑천을 건너 두레마을을 들머리로 북서릉을 오르는 1코스(3.5km, 2시간 20)와 산 북쪽인 용문면 삼성1리 경로당을 들머리로 북릉으로 오르는 2코스(4.5km, 2시간 20), 남쪽 개군면 주읍리에서 남동릉이나 남릉을 오르는 3코스(2.5km, 1시간 30), 남서쪽 내리에서 삼림욕장을 거쳐 남서릉으로 오르는 4코스(2.9km, 2시간)가 있다. 산수유가 많이 피는 3월말과 4월초에는 원덕역에서 출발하여 흑천을 지나 1코스로 정상에 오른 후 내리마을로 하산하는 4코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원덕역에서 바라본 양평의 주산 추읍산

 

어느 코스를 택하든 4개 코스 모두 가파르긴 매한가지다.


 

원덕역 1번 출구에서 오른쪽 차도를 따라가면 비닐하우스가 좌우로 펼쳐진 너른 벌판 사이로 난 길로 들어선다. 코로나19로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상쾌한 봄내음을 맞으면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녘을 걷는다. 논두렁에는 초록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경운기와 트랙터는 들판을 질주한다. 서두름 없이 흘러가는 들녘의 봄 풍경들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논밭이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길을 따라 양평 물소리길 이정표를 따라 가면 흑천이 나온다. 강변길 왼쪽으로 용문산 줄기, 오른쪽으로는 추읍산이 보이고 그 사이로 흑천이 유유히 흐른다.


흑천 강변의 수상레저센터. 카누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흑천은 천변 바닥의 검은 돌 때문에 물빛이 검게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흑천을 거무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추읍산 가는 길은 수더분하고 풋풋한 시골길과 따스한 강바람이 얼굴을 매만져 주는 강변길로 이어져 있는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산객을 따듯하게 반기고 있다. 이 강변길은 송강 정철 선생도 걸었다. 선생은 <관동별곡>에서 말을 갈아타고 흑수로 들어가니 섬강이 어디더냐. 치악이 여기로다라고 썼는데, 흑수(黑水)는 양평군의 흑천을 의미한다.


흑천에 놓인 이 다리를 건너야 추읍산 1코스 입구가 나온다.

 


 

흑천을 건너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데 초입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전날 내린 비로는 부족했는지 산길은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급경사의 오름길에 숨은 턱턱 막힌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오르면 전망 좋은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백운봉과 용문산이 나란히 조망된다. 쉼터 오른쪽 갈림길은 내리마을 방향 삼림욕장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쉼터에서 계속 된비알인 지능선을 오르면 밧줄이 설치된 급경사가 나오고 더 올라가면 주능선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한 번 더 치고 올라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어서 추읍산 정상에 도착한다.


소나무 옆 진달래는 살랑살랑 흔들거리며 소녀처럼 수줍음을 타고 있다.
열흘 전 산불이 난 정상 부근은 검게 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한강기맥이 두물머리까지 긴 산줄기를 이어오면서 양평의 중앙에는 용문산이 크게 자리를 잡았고 주변으로 크고 작은 산들이 첩첩산중을 이룬다. 추읍산 정상은 사방 막힘없는 조망이 일품이다. 동쪽부터 남쪽까지는 남한강이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는 용문산이 마주 보인다. 남동쪽으로는 고래산이 마주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원적산, 천덕봉, 앵자봉 등이 조망된다. 멀리 이천이나 광주 쪽에서도 추읍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360도 파노라마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정상에서 올라왔던 길로 도로 내려가면 올라올 때 만난 주능선의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산수유가 한창인 내리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가파른 산길을 30분 정도 내려오면 산림욕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편안한 숲길을 따라 계속 내려오면 임도를 만나고 이어서 산신각이 나온다. 산수유는 이곳 산신각부터 내리마을 입구까지 약 2km 가량 이어진다.


산신각에서 내리마을까지는 캔버스 위를 산수유로 가득 채운 한 폭의 수채화다.

 

 

허리를 낮추고 가까이 다가가야 알알이 맺힌 꽃망울을 볼 수 있다.

 


추읍산 자락 아직도 시골냄새 나는 내리마을에는 수령이 20년에서 200여 년 이상 된 산수유나무가 구불구불한 논두렁 밭두렁 사이로 7,000여 그루가 심겨져 있어 산수유 꽃이 마치 노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장관을 이룬다. 시골냄새 진한 이곳은 따뜻한 봄볕에 자녀들과 추억 쌓기에 좋다.


마을로 내려가는 산수유 꽃길을 따라 걸으며 봄마중을 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낮은 돌담길 너머 노란 꽃물결이 나그네를 유혹한다.

 

 

산수유 마을 내리 길가 양옆에는 본격적인 봄의 성찬 앞에서 조금은 가슴이 설레는 듯 노랗디노란 산수유나무들이 부끄러운 듯 모습을 드러낸다. 온 동네를 가득채운 노란 셔츠 입은 화사한 나무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산수유나무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자면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가슴속에 쌓였던 우울함이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진다. 꽃이 내뿜는 진한 노란색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 되어 다가온다.



내리마을 입구에서 추읍산을 바라보며 내년에는 ‘양평 산수유·한우축제’가 꼭 열리기를 기원해본다.



마을로 내려서니 활짝 핀 산수유 사이로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경쟁하듯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누구라도 꽃을 보면 닫혔던 마음이 꽃잎처럼 저절로 열린다. 꽃 이름을 모르면 어떠리. 태초에 무슨 이름이 있었더냐. 이름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의 그림자일 뿐. 작은 꽃을 보고도 연애 감정처럼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

 

요즘처럼 하수상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당황하고 번민하는 모습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오늘 발로 혹은 눈으로 봄의 여정을 쉬엄쉬엄 따라가다 보니 스스로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봄 속에 있어도 봄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로 봄은 내내 오지 않는 계절일 뿐이다.

어떤가? 당신도 치유의 봄을 찾아 떠나지 않겠는가?

 

 

 

 

 











여계봉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28 11:43 수정 2020.03.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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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