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드림의 싫존주의] 제대로 된 어른을 찾기 어려워진 세상

강드림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29 12:28 수정 2020.03.29 12:31


노인이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그 나이에 걸맞는 의식과 겸양을 지닌 멋진 어른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지하철 임산부석 같은 것을 굳이 만들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권하며 미소와 함께 "많이 힘들죠?"를 넌지시 말하는 대신, 이나라의 꽤 많은 노인들은 ‘힘든 건 나지’라는 마음으로 먼저 나서서 자신이 자리에 앉는다. 심한 경우는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횡포를 부리기까지 한다. 한국의 노인들은 존경 대신 동정과 연민과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라는 비판적 교훈의 대상으로 침몰 중에 있다.


과거 농사를 짓던 시절 노인의 경험은 분명히 요긴한 삶의 정보가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노인들은 나름의 지위와 존경을 받으며 말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노인의 경험은 대부분 폐기처분해야 할 경우가 많다. 전쟁 이후 오로지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고,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던 그들에게 정의와 공정은 늘 나중의 문제였다. 당시엔 ‘어쩔 수 없었음’을 우리 역시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어쩔 수 없음을 지금에 와서도 우려먹으면 안된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지금은 살아남기 위한 시대가 아니라 잘 살아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었다면 올해로 53세가 되는 신해철이 바로 이 나라에 가장 유의미한 어른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한다. 죽도록 공부하고 일하고 경쟁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가히 종교적 교리처럼 학습되고 있는 이 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라디오 진행자 중에 가장 타인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늦은밤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를 자처하며 수없는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그의 견해는 언제나 기성의 어른들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성의 제시인 경우가 많았다. 기본적으로 그는 학생의 본분을 ‘공부’가 아닌 ‘가능성 탐색’에 두었다. 그 방송이 20년 가까이 지났고, 우린 여전히 아니면 그때보다 더 많고 복잡한 고민을 안고 살지만 정작 신해철은 없다. 비슷한 역할을 해줄 동네 오빠 형들은 이미 늙은이가 되어 어디다 아파트를 사야 오를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많다.


모두가 잘 사는 멋진 세계를 외쳤던 이른바 진보의 형들은 전향을 했거나, 아직도 후줄근한 남방을 입고 머리띠를 두른 채 도로에 앉아 있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 우리 자식은 학원 대신에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게 키우자던 내 친구는 혁신학교가 생기면 애들 성적 떨어진다고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한다. 인심 좋던 마을 통장님은 대학교 기숙사가 생기면 자기집 원룸 안나간다고 대학교 앞에서 마찬가지로 시위를 한다.


마왕이 유독 그리운 요즘이다.
멋진 어른을 보고 싶다.

 


[강드림]

다르게살기운동본부 본부장

대한돌싱권익위원회 위원장

비운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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