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덩실덩실 춤출 뿐이리오

이태상

 


2007년에 전자책으로 나오고 2014년 개정판으로 다시 발간된 플라멩코 이야기가 있다. 고향인 마산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카페 소사이어티의 작가 김준형씨가 영어로 플라멩코와 판소리의 만남을 자전적 소설형식으로 쓴 플라멩코 여정(Flamenco Journey)’의 한국어판이다. ‘역자의 변에서 저자 김준형 씨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플리멩코 이야기는 글 속의 ’, jh라는 이니셜의 한 여행자가 미국인 플라멩코 댄서 로레나(Laurena)에게 보낸 편지들의 번역문이다. 그가 스페인 여행 중에 그녀에게 보낸 이메일을 필자가 우리말로 번역하여 이에 살을 적당히 붙여 편집하였던 것이다. 이 글은 jh의 편지 모음이므로 엄격히 말해 그의 창작물이란 뜻이다. 필자는 단지 그의 편지들을 우리말로 충실하게 옮긴 역자일 뿐이다.”

 

스페인의 한 애송시 어느 사랑의 이야기(Hisoria de un Amor)’의 일부다.

 

모든 아름다운 것과 모든 어두움을 일깨워 준,

세상 그 어디에서도 다시는 있을 수 없는,

어느 사랑 이야기.

 

그 밝은 빛으로 나의 삶을 뒤흔들고,

이렇게 다시 그걸 거두어 가버리다니

, 삶은 이토록 어둡기만 할까!

나 이제 살 수가 없어, 너의 사랑 없이.

 

이 같은 스페인 플라멩코의 노래 속에, 그 춤꾼 로레나의 매력적인 손놀림과 발놀림에 폭 빠진 여행자는 죽는 그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우물보다, 그리고 바다보다 더 깊은 플라멩코와 로레나를 끝내 잊지 못하리라. 한마디로, 열정의 플리멩코와 우리나라 남도의 신명나는 설장고와의 혼()적 만남의 과정을 그린 러브스토리다.

 

유럽 서남단의 이베리아반도,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집시의 한(), 그 떨리는 소리, 아이! 아이! Ay! 깊은 노래가 우리 판소리와 너무 닮아서일까. 플라멩코를 추는 여성 댄서와 한국인 남성 여행객이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만나 서로 상대의 문화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소설에는 주인공인 한국 남성이 플라멩코의 마력에 사로잡혀 스페인 그라나다와 세비야 등을 여행하면서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번역한 곡에 맞춰 댄서가 플라멩코를 추는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플라멩코로 춰달라는 부탁까지 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 생각 좀 해보자.

 

집시의 한()을 관능적인 춤으로 발산하는 것이 플라멩코라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아픔을 노래한 넋두리가 흑인영가(Negro Spiritual) 일 테고 같은 나라 백성이면서도 반상적서(班常嫡庶) 계급으로 나뉘어 종노릇 해온 민초(民草)들의 슬픔을 승화시킨 것이 판소리가 아니었던가.

 

어디 그뿐 일까. 몇 년 전 스페인의 사회주의 정부 때 에스트레마두라(Extremadura) 지방에선 한바탕 미디어 소동이 났었다. 공립학교 성교육 교과과정에 13세 이상의 소년 소녀들을 위한 자위행위 워크숍(Masturbation Workshop)을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즐거운 쾌감은 네 손 안에 있다 (Pleasure is in your hands)’라고 불렸다. 항의가 빗발치자 이 지방 당국은 미성년 아동들의 임신과 더 큰 불행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性敎育)의 일환으로 자위행위 수업(Masturbation Class)’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안달루시아 지방정부도 같은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친대중당(Popular Party) 단체에서 법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폐기시키려고 했으나 이 지방검찰청에서 항의를 접수조차 해주지 않아 실패했다. 흥미롭게도 이 법적 도전은 깨끗한 손(Clean Hands)’이라고 명명되었었다.

 

이에 대해 페루의 2010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1936 - )는 미국의 지성 월간지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 July 2015)에 실린 성애예술(性愛藝術 ARS EROTICA-The Art of Sexual Love)’이란 에세이에서 아래와 같이 술회(述懷)하고 있다.

 

옛날 가톨릭 학교를 다닐 때 성기(性器)를 잘못 만지면 눈멀고 폐병 걸리며 미치게 된다는 신부님들 말씀에 잔뜩 겁먹었었던 내 어린 시절로부터 60여 년이 지나 학교에서 용두질 수업시간이 생기다니 이것이 진보다. (How things have changed since my childhood, when the Salesian fathers and La Salle brothers who ran the schools scared us with the idea that ‘improper touching’ caused blindness, tuberculosis, and insanity. Six decades later schools have jerking off classes. Now that is progress.)”

 

그는 이어서 이렇게 묻는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좋은 의도와 원치 않는 임신사례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섹스(Sex)에 관한 미신(迷信)과 거짓말 그리고 잘못된 편견으로부터 어린애들을 해방시켜주는 대신 이런 마스터베이션 워크숍(Masturbation Workshop)은 그러지 않아도 성행위(性行爲)가 별 것 아닌 것으로 취급되는 현대사회에서 그 더욱 하찮은 짓으로 치부(置簿)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워준 쾌락의 원천을 미래세대로부터 박탈해 성행위를 아무런 신비감도 정열도 없이 단순한 신체적 운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말이다.

 

(But is it really? I acknowledge the good intentions behind the program and I concede that campaigns of this sort might well lead to a reduction in unwanted pregnancies. My criticism is of a sensual nature. Instead of liberating children from the superstitions, lies, and prejudices that have traditionally surrounded sex, might these masturbation workshops trivialize the act even more than it has already been trivialized in today’s society? Might they continue the process of turning sex into an exercise without mystery, disassociating it from feeling and passion, and thus depriving future generations of a source of pleasure that has long nurtured imagination and creativity?)”

 

, 이쯤 해서 우리 국경과 이념, 종교와 신앙, 인종과 성 정체성 등 모든 인위적(人爲的)인 경계를 허물고 전 인간가족을 아우르는 플라멩코 여정(旅程)에 올라보리라.

 

아시안 최초로 나 홀로마라톤으로 201521일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을 출발, 114일만인 525일 미()대륙횡단 3,150마일(5040km) 거리를 완주, 워싱톤 DC 백악관 앞에 도착한 강명구(당시 57) 씨는 그동안 뉴욕 중앙일보에 연재해온 칼럼 삶의 뜨락에서: 대륙횡단 마라톤 일기백악관에서 통일을 생각함이란 글을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다.

 

통일의 경비는 대륙횡단 마라톤을 하는데 지불한 경비보다 더 엄청난 경비가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휴전선이 무대의 막이 걷히듯 열리는 순간 우리의 새로운 역사의 무대가 펼쳐질 것이다. 한반도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이라는 공연이 펼쳐지는 커다란 극장이 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조각보를 만들었다. 통일은 비슷한 사람끼리 뭉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공들여 마르고 꿰매어 무지갯빛 조각보를 만드는 것이다.”

 

몇 년 전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1984 - )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of Facebook)가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미래 커뮤니케이션 유형으로 텔레파시(telepathy)를 꼽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조만간 기술을 이용해 내 생각 모두를 상대방에게 직접 보낼 수 있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여러분이 뭔가 생각하면 여러분의 친구들이 즉각 이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 20156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 타운홀 미팅(Online Town Hall Meeting)’을 열고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문답 형식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마크 저커버그는 밝혔다.

 

201411월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온라인 타운홀 미팅을 열어왔는데 이날 행사에는 영국의 세계적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과 할리우드 배우 출신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 1947 - ), 허핑톤 포스트(Huffington Post) 창립자인 애리애나 허핑톤 (Arianna Huffington 1950 - ) 등 유명인사 다수가 참여했다.

 

중력과 다른 힘들을 통합하는 이론을 알고 싶다는 호킹은 저커버그에게 당신도 과학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있는가. 있다면 뭔가라고 묻자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지금보다 100만 배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할 수 있을까등이 궁금하다고 저커버그는 대답했다.

 

그러면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최근 시작한, 모바일 웹(the mobile web)보다 10배나 빠른 뉴스 서비스 인스턴트 아티클스(Instant Articles)’가 앞으로 뉴스 구독자들의 주요 소비 경로가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최근 발표된 퓨 리서치(Pew Research) 조사에 따르면 미국 50대 미만 세대는 뉴스를 구독할 때 TV나 신문, 뉴스 사이트, 인터넷 포털보다 페이스북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컴퓨터 과학자들은 머지않아 그동안 사람이 하던 다른 언어들 사이의 통역이나 번역 서비스를 기계가 더 신속 정확하게 수행하게 되고, 더 나아가 언어 자체가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런 날이 오면 저커버그가 언급한 텔레파시로 모든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되면 인류 유사 이래 지금껏 있어 온 말 다르고 맘 다른온갖 속임수가 없어지게 되지 않겠는가. 연애하는 남녀 간은 물론 특히 거짓말을 밥 먹듯 해온 정치인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직업인들의 입지가 아주 곤란해지리라. 어디 그뿐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뿐 아니고 인간과 다른 동식물 심지어 광물과도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전부 자기가 혼자 힘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이 우리는 10분도 숨 쉴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생명이지 내 생명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모든 것은 투쟁보다는 상생(相生)으로 갑니다. 그것이 중도연기 (中道緣起).”

 

한국 간화선의 대표 선승인 혜국 스님(금봉선 원장)201572일 충북 충주 석종사(釋宗寺) 조실채에서 하안거 중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스님이 쓴 책 신심명(信心銘)’ 출간을 기념한 것이었는데 신심명1,400년 전 선종 시대 조사 승찬 대사가 불교철학의 원리를 74구절 짧은 글로 담아낸 선어록이라고 한다. ‘신심명을 통해 오늘날 되새길 정신이 무엇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혜국 스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결국 상생입니다. 떠다니는 구름이 만든 비와 대지에서 나오는 음식이 내 몸 만든 것인 줄을 알 때 남을 어떻게 내 몸처럼 대접할까를 고민하게 되니, 지구와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원리가 되죠. 그걸 깨치고 나면 구절마다 덩실덩실 춤이 나옵니다"

 

실로 피아일체(彼我一體)

물아일체(物我一體)라면

나와 나의 분신들 사이에,

소우주(小宇宙)로서의

소아(小我)인 나와

대우주(大宇宙)로서의

대아(大我)인 나 사이에

무슨 말과 글이 필요하리오.

 

애오라지 깨달음의 느낌이면 족하리오.

이를 우리말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니

심심상인(心心相印)이라 하고

영어로는 텔레파시(telepathy)라 하는 것이리오.

따라서 저커버그의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100만 배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할 수 있을까란 궁금증과 의문도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리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모두

우주인 나그네 코스미안으로서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과 더불어

덩실덩실 춤출 뿐이리오.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01 11:29 수정 2020.04.0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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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