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씨앗은 바람을 타고, 우린 매일 죽는다

이태상

 

 

한국에선 58일이 어버이날이지만 미국에서는 어머니날은 5, 아버지날은 6월 한 주 일요일에 지켜진다. 지난 2015아버지날선물로 딸들로부터 받은 티셔츠가 아주 내 맘에 꼭 드는 특이한 것이었다. 초록색 바탕에 새겨진 앞가슴 문구가 ‘KEEP CALM AND COSMOS ON’이었다. 수많은 표어가 새겨진 티셔츠 중에서 어떻게 이처럼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코스미안의 준말로 붙여진 내 에세이집 제목 무지코’ (2014년 자연과인문 출간) 딱 걸맞은 것이 있었는지 놀랍기 짝이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올해에는 ‘KEEP CALM AND WE CAN SURVIVE THIS PANDEMIC CORNONA VIRUS’란 티셔츠가 곧 출시될 법도 하지만, ‘KEEP CALM AND GANGNAM STYLE,’ ‘KEEP CALM AND BTS,’ ‘KEEP CALM AND PARASITE,’ ‘KEEP CALM AND HARRY POTTER,’ ‘KEEP CALM AND IMAGINE,’ ‘KEEP CALM AND EAT A BANANA,’ ‘KEEP CALM AND TOKYO OLYMPICS,’ 등등 수도 없이 많이 있을 ‘keep calm and’ 시리즈의 효시(嚆矢)193991일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진 이후 영국 런던이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쑥대밭이 되면서 영국 국민의 사기(士氣)를 북돋기 위한 대표적인 국민 표어 지금 우리가 많이 힘들지만 평정심(平靜心)을 되찾아 이겨내자란 뜻의 ‘KEEP CALM AND CARRY ON’이라고 한다.

 

캐나다 태생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빗 브룩스(David Brooks 1961 - )가 그의 칼럼 애독자들에게 그들 각자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찾았는지를 에세이로 응모해달라고 공개 요청하자 수천 명의 독자로부터 보내온 글 내용의 일부와 그 공통점을 2015529일자와 619일자 칼럼에 기술했다.

 

놀랍게도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 삶의 목적은 야심을 갖고 큰 꿈을 꾼다거나 세상을 개혁해 바꾼다는 식의 학교 졸업식 축사 같은 내용이 아니고, 그 정반대로 극히 작고 소박한 것들이란다. 그 공통된 메시지는 우리 모두 찬란히 빛날 필요는 없다. (We do not have to shine.)’는 것이고, 난 언제나 이웃에게 자연스럽게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기를 원했고 내 아이들도 그렇게 되도록 애썼다 (I have always wanted to be effortlessly kind. I wanted to raise children who were kind, to be generous and kind.)는 것이다.

 

테런스 제이 톨락슨(Terence J. Tollaksen)이라는 독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본주의원리에 입각해 소기업을 40년째 해오고 있단다. 또 다른 독자 한스 핏쉬(Hans Pitsch)는 그의 에세이에서 나이 85세에 이르러 내 삶의 의미란 문제는 절실하다. 아직 살아있다는 데 감사한다. 나 자신과 내 주위 사람들에 대한 내 책임이 하루하루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나의 가족과 점점 숫자가 줄어드는 옛 친구들을 더 할 수 없이 소중히 여긴다. 한 가지 내가 집중하는 게 있다면 그 건 내 정원을 정성껏 가꾸는 것이다. (I am thankful to be alive. I have a responsibility to myself and those around me to give meaning to my life from day to day. I enjoy my family and the shrinking number of old friends. If there is one thing that keeps me focused, it’s the garden.)”

 

또 한 독자 스콧 애딩튼(Scott Addington)은 그의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흔히 그렇듯이 찾기를 멈추게 되자 내 삶의 목적이 분명해졌다. 19951011일 내 딸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삶의 목적과 의미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추호의 의문도 갖지 않게 되었다.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야말로 한 남자로서 경혐해볼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보람찬 일이다. (As is often the case, my purpose became clearly evident after I had stopped looking for it. On October 11, 1995, my daughter was born. Beginning with that moment, there has never been the slightest doubt regarding the purpose and source of meaning in my life. Being a father is the most meaningful and rewarding pursuit a man could ever hope to experience.)”

 

이와 같은 경험은 비단 부모의 역할뿐만 아니라 학교 교사 선생님의 경우에서도 공유되고 있음이 여러 독자의 반응에서 밝혀지고 있다. 한편 삶의 목적은 자주 상실감에서 생기고 있음이 관찰된다. 그 한 예로 뇌종양으로 21년을 같이 살아온 부인을 상처한 호주 브리스번시()에 사는 그렉 산터(Greg Sunter)는 미국의 교육자 파커 파며(Parker Palmer 1939 - )의 저서 숨겨진 일체감 (A Hidden Wholeness: The Journey Toward An Undivided Life, 2004)’에 언급된 두 가지 가슴의 상처를 이렇게 적고 있다.

 

그의 저서 숨겨진 일체감에서 (저자) 파커 파머는 두 가지 가슴의 상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하나는 우리 가슴이 산산이 깨져 부서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가슴이 찢어져 열리면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고통과 기쁨, 절망과 희망을 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슴이 찢어져 열림으로써 내 처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온 우주를 품는 것이 내 샮의 목적이 되었다.(In his book ‘A Hidden Wholeness,’ Parker Palmer writes about the two ways in which our hearts can be broken: the first imagining the heart shattered and scattered; the second imagining the heart broken open into new capacity, holding more of both our own and the world’s suffering and joy, despair and hope. The image of the heart broken open has become the driving force of my life in the years since my wife’s death. It has become the purpose to my life.)”

 

이렇게 수많은 독자들의 반응에서 도출되는 사실은 싦의 목적은 단순히 삶을 충만하게 살아본다는 것이다. 굳이 신()을 향한 것이거나 잡다한 삶의 목표들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을 되도록 많이 도우면서 삶을 만끽해본다는 것이다. (But, for many people, the purpose of life is simply to live it fully. Many people don’t necessarily see their lives as pointing toward God or as defined by some mission statement. They seek to drink in life at full volume, to experience and help others richly.)

 

내가 이를 간단히 줄이자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삶의 목적이 더 좀 충만하게 살아본다는 것이다. 내세(來世)라든가 종교적인 신조(信條)나 정치적인 이념(理念)에 복종하고 추종하든 과거와는 판이하게 우리의 마음을 활짝 개방하고 우리 고향인 우주와 혼연일체(渾然一體), 혼연천성(渾然天成)이 되는 것이리라. 문화평론가 김봉석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처럼 결국은 태도가 결정한다. 인생도, 가치도말이어라.

 

이것이 바로 2015620일자 한국일보에 흑백사진과 함께 실린 배우한 기자의 씨앗은 바람을 타고가 너무도 시적(詩的)으로 상징하는 메시지였으리라.

 

숲속의 요정 같은 민들레 씨앗이 바람에 몸을 실어 멀리 떠나고 있다. 또 다른 삶을 향한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민들레는 생태적으로 잎이 땅에 붙어 있어 앉은뱅이란 별명을 가졌다. 가녀린 씨앗이 바람에 날려 새 삶을 찾는 모습이 어쩌면 자유를 꿈꾸는 사람과 닮았다.”

 

라틴어로 ‘cotidie morimur’는 영어로는 ‘We die everyday (All men must die, I miss you everyday)’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하면 우린 매일 죽는다가 되리라.

 

로마의 네로황제 (Roman Emperor Nero AD37-AD68) 시대에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c. 4BC-AD65)가 했다는 말이다. 세네카는 또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황제가 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최고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The greatest empire is to be emperor of oneself.)”

 

이는 하루를 더 살면 우리가 살 날이 하루 줄어들어 하루 더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으니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이고, 각자는 제 삶이라는 제국의 황제로 살라는 뜻이리라.

 

은하계에는 약 1,000억 개의 빛을 발하는 항성이 존재하는데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은 고작 6,000개뿐이고, 수명이 다한 별들은 별똥으로 마지막 빛을 발하면서 소멸해 지구상으로도 떨어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들리는 멜로디가 감미로우나 들리지 않는 멜로디는 그 더욱 감미롭다 . (Heard melodies are sweet, but those unheard are sweeter) 라고 했다.

 

강소천(1915-63)이 스물한 살에 발표한 동요시로 탄생 100년을 맞아 2015년 복간된 시집 호박꽃 초롱에 수록되어 있는 이 있다.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 번

쳐다보고

 

이 동요시를 본 떠 우리 이렇게 읊어보리라.

 

모두

순간순간

죽어가고 있지만

 

우리도

한 모금 한 모금

우주의 생명수 입에 물고

하늘도 한 번 쳐다 보고

별도 한 번 쳐다보며 살리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06 12:30 수정 2020.04.0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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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