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느림의 미학

김기홍




느림의 미학

 

 

석양이 질 무렵 한강고수부지를 비추는 붉은 햇살은 한강수면 위를 붉게 물들이는 한 폭의 유채화 같다. 국회 출입문을 지나, 여의서로를 총총걸음으로 걷다 보면 주변의 많은 꽃들과 나무들이 푸른 자태를 과시하며 도심에 지친 많은 시민들을 가슴으로 안으며 반겨주고 있다.


하루 일상에 지쳐 심신을 달래기 위해 한강변의 유람선, 수상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간접적으로 삶이 풍요로워지는 듯한 느낌은 물론 행복한 마음이 저절로 들 때가 많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무미건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평범한 삶을 살면서 하루의 일과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가볍게 산책을 하며 묵상에 잠기는 것이.


한강 주변에서 다정한 연인들이 자리를 펴놓고 간단한 음식을 먹는다든지, 둔치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제법 그 광경은 생기가 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은 빨리빨리로 익숙해져 있고 하루하루 초스피드로 살아가는 시대에 있다. 그러다보니 진작 나의 삶도 그런 초스피드의 시대에 던져져 세월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처럼 잠시 몇 초라도 좋으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하고 싶다. 꼭 그것이 산책 등이 아니더라도 기도, 묵상, 상념의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의 삶을 반성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고민하고 계획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희망한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한강고수부지를 걷고 있다. 연령층도 다양하다. 생각하는 것도 다양할 것이다. 처한 상황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것은 똑같다. 그렇기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길 바란다. 그 행복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가까운 가족 또는 지인들과 알콩달콩 알토란같은 시간을 가지며 즐겁게 보낸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약속을 하거나 이동 , 대중교통인 지하철을 많이 이용한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플랫폼에 서 있다 보면 간간히 더듬더듬 지팡이를 두드리며 전동차 안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혹은 신체가 부자유스러워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건강한 신체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낀 적이 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일수 없고, 남의 불행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산다는 생각으로 도울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산이 많다고 행복하지 않고, 명예가 높다고 결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다.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비울수록 좋은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강조하는 것 역시 소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소유에 대한 집착과 탐욕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이러한 세속적인 것들에서 해방되어야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갖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하여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돈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한 시대에 살고 있다. 돈은 생계가 보장되는 단계만 지나면 사실 행복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돈에 집착할수록 더 이기적이 되며 경쟁심과 비교심리로 우울해진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있다. 많은 돈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 행복감과 성취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그 집착을 내려놓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지나침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물질이 행복을 위한 충분조건은 될 수 있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자기만족이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을 때 비로소 오는 기쁨이다.


우리는 이미 부자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족하는 자의 몫이다. 다만, 자꾸 주변의 남과 비교함으로써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는 인생을 즐겁고 아름답게 가꾸어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시간은 짧다. 그렇기에 누군가 죽음에 다다르면 살아왔던 한평생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한다. 한 편의 영화처럼 말이다. 지금 건강하게 살고 있다 해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건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하루살이에겐 주어진 시간은 하루뿐이다. 아침에 태어나 저녁이면 죽음을 맞이한다. 삶이 시작됨과 동시에 삶의 종말이 다가온다. 삶과 죽음은 동질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종착지이다. 그래서 인생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잘 사느냐, 즉 어떻게 살다가 죽어야 하느냐는 문제만이 남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죽음을 회피한다 해도 결국 100살 언저리에서 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나 건강하게 살았다 해도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노쇠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무병장수하면서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사는 동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보람되게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만일, 하루살이의 인생이라고 하면, 하루밖에 살지 못할 터인데 원망만 하고 신세타령만 하고 있기엔 너무도 짧은 시간이 아니겠는가?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 그 고통을 느끼며 삶을 부정하기엔 너무도 짧은 인생이다. 하루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겠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자주 해주었던 말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있다. 현재에 만족하고 지금에 충실 하라는 라틴어이다. 결코 행복을 미루지 마라.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07 10:57 수정 2020.04.0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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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