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청춘별곡

이태상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까지 살아있는 신화(神話 아니 神化)가 된 예를 하나 들어보리라.

 

현대 무용의 어머니로 불린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1894-1991)1990191번째 창작무용 단풍나무잎 랙 리듬(Maple Leaf Rag)’을 발표, 1991년 순회공연을 다녀오다가 96(한국 나이로는 97)의 나이로 폐렴에 걸려 사망할 때까지 그녀는 영원한 현역임을 고집했다.

 

1932년대 후반, 350년간 이어져 내려온 고전(古典) 발레의 꽉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생생한 무용언어를 구사하여 세계 무용계에 현대 무용 바람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 바로 마사 그레이엄이다. 그녀의 혁명적 표현 양식의 그레이엄 기술 (Graham technique)’로 현대 무용가들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움직임이란 사람이 감추려고 하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서를 표현하는 거죠. 나는 내 무용이 이해되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그저 관객이 뭔가 느끼면 됩니다. (Movement never lies. It is a barometer telling the state of the soul’s weather to all who can read it)” 다시 말해 춤이란 몸의 노래, 기쁨이나 아픔을 몸으로 노래하는 거죠. (Dance is a song of the body. Either of joy or pain.)”이라 했다.

 

189451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나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그녀의 예술을 지배할 원리를 배웠다.

 

아버지는 현미경으로 물을 보여주셨어요. 깨끗한 물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꿈틀거리는 게 보였죠. 아버지는 내게 표면 밑에 있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춤이란 표면 밑의 다양한 의미를 환기시켜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그녀는 196975세까지 직접 무대에 섰고, 1920년 창단한 무용단을 이끌면서 2백 작품이 넘는 무용을 안무했다. 그녀의 춤은 관능적이고 신비하며 현대 예술과 원시 문화 간의 유사성이 항상 내재하는 것이 특징인데 현대무용에 있어 낭만주의의 절정을 이룩했다.

 

또 음악가들은 장수를 누리기로 잘 알려져 있다. 런던의 위그모 홀(Wigmore Hall)에서 만 98세가 된 (정확히는 이틀 모자라는) 폴란드계 미국인 피아니스트 미치슬라브 호르조브스키 (Mieczyslaw Horszowski 1892-1993)가 피아노 독주회를 가져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그의 친구며 연주 파트너였던 스페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Pablo Casals 1876-1973)는 그의 나이 95세 때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에서 첼로를 연주했다.

 

유태계 독일의 지휘자 오토 클렘퍼러(Otto Klemperer 1885-1973)88세로 그의 삶을 마칠 때까지 지휘를 했고, 프랑스 출신 미국의 지휘자 삐에르 몽뙤(Pierre Monteux 1875-1964)는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 그의 나이 89세 때 런던 교향악단과 20년 계약을 맺는 계약서에 사인 서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있는 실제 인물로 호로조프스키의 기록을 능가한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지만 픽션(fiction)에는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에 지난 2017100주년을 맞아 백 년 이상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칼럼을 몇 사람의 필자가 계속해서 써 온 필명인 비치코우머 (Beachcomber)’가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로 터키의 한 바이올리니스트 바다트(Badat)가 있다. 그는 나이 백 살 때 런던에서 두 번의 연주회를 갖는다. 천천히 연주를 시작하면서 그는 반쯤 졸고 있다. 따라서 청중석에서 또한 반쯤 졸고 있는 음악 평론가들에게는 그의 연주평을 쓰는 것이 난감한 일이 된다.

 

그의 마지막 연주회에서는 자신이 작곡한 짧은 두 곡을 연주하는데 첫 곡은 그의 활 움직임이 미약한데다 졸음 섞인 멈춤과 머뭇거림으로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이고, 둘째 곡 연주 중에는 그가 몇 분 동안 잠이 드는 바람에 청중석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 두 안내원이 그를 곱게 들어다 분장실에 눕힌다.

 

예술가 외에도 장수(長壽)하는 사람들은 유순하고 평온한 성격, 타인과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진지한 흥미와 호기심, 그리고 낙관적인 생활 태도를 평소 가지고 있다는 연구 조사 발표는 부지기수이다.

 

어디 그뿐인가. 2008년 출간된 이후 50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3천만 권 이상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시크릿(The Secret)’ 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끼리끼리인데 영어로는 ‘Like attracts like’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온 우주로부터 끌어낸다는 뜻이다.

 

호주 오스트레일리아의 방송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이 책의 저자 론다 번(Rhonda Byrne, 1945 - )50대 갱년기에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그녀는 약물치료 대신 독서를 통해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온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비롯해 동서고금 여러 작가와 위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바로 ‘88세 소년피천득(1910-2007)이 그의 시 이 순간에서 감탄의 탄성을 지르게 된 것이 아니었으랴.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패닉상태이다. 마치 당장 말세라도 올 것처럼 야단들이다. 몇 년 전 달관세대란 말이 유행했었는데 일본의 사토리(깨달음) 세대를 따라 붙인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이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었을까. 젊은이들을 등치는 스펙 산업에 사회 경험 쌓기 명분으로 젊은 노동력을 착취하는 열정페이,’ 자소서가 아닌 자소설쓰기를 강요당하고, 토익은 영어가 아닌 기술이라며 본질보다 요령을 사회가 가르쳐 왔다. 실력이나 신화를 창조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현실은 암담한 달관세대를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영어로 If that’s what it takes (to do or to achieve something), so be it. 내가 19612월 군에 입대해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 교관은 물론 단 일 분이라도 나보다 먼저 입소한 선임 훈련병들의 지상명령에 무조건 절대복종해야 했다. 연령이나 학력이나 사회경력 같은 것은 일체 불문하고 ‘좃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했다. 이 말은 앞에 쓴 영어문장의 뜻을 더 좀 원색적으로 비속하게 표현한 것이리라.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 6.25가 터졌고 1.4 후퇴와 9.28 수복 후 고등학교에 진학해 독일어를 배우면서 접하게 된 두 단어가 내 평생의 화두가 되었다. 다름 아닌 자인졸렌이라 발음하는 ‘sein’‘sollen’이다. 영어로 하자면 ‘to be’‘ought to be’가 되겠다. 전자가 본질적인 실존성이라면 후자는 책임감 내지 사명감의 당위성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성(異性)과 자식 사랑이 실존성이라면 부모에 대한 효심이나 친구에 대한 의리, 또는 애국심은 당위성이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물론 두 가지가 때때로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말이다. 그 한 예를 들어보자.

 

201532일자 뉴욕 데일리 뉴스 등 미국 언론은 매일 35마일의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하는 당시 61세의 노인 스티브 시모프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수요일을 제외하고 매주 6일을 아이오와주에 있는 한 카지노에서 오후 11시부터 안전요원으로 밤샘 근무한다. 그러나 출근하기 위해 그가 집을 나서는 시간은 오후 330, 무려 7시간 전부터 출근을 서두르는 이유는 35마일이나 떨어진 직장까지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시간당 9.7달러를 벌기 위해 오랜 시간을 이렇게 걸어 다녔다. 14년 된 자동차가 있지만 타지 못하는 것은 기름값 때문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번 돈을 그는 뇌졸증으로 쓰러진 부인의 치료비와 직장을 구하지 못해 놀고 있는 입양한 손자(22)의 생활비로 쓴다. 이야말로 인생을 달관한 경지가 아닐까.


조숙했던 탓인지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달관 비슷한 것을 좀 했었나 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볼 때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갖은 풍파 다 겪으면서 이제까지 언제나 신나게 살아올 수 있었으랴.

 

어쩌면 그 비결은 어떻든 다 좋아하는 식으로 미리 체념이라 해야 할지 달관이라 해야 할 지를 해온 까닭인지 모르겠다. 영어로는 'Anything is better than nothing'이라 할 수 있으리라. 성공이든 실패든 다 남는 장사라는 계산에서다. 어떤 경험이나 결과라도 무경험이나 무결과보다 낫지 않겠는가에서였다.

 

영어로 'Hope for the best and prepare for the worst' 란 말이 있듯이 무슨 일을 하든 나는 최선을 기대하기보단 처음부터 최악에 대비해 밑져 봤자 본전 이상이란 생각을 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안 태어난 것보다 그 얼마나 더 큰 축복인가란 생각에서 매사에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고 총체적으로 봐서 최악 중에 최악이라도 죽는 일밖에 더 있겠나. 게다가 설령 내세가 있고 천당과 지옥이 있다 하더라도 지옥, 그것도 지옥의 맨 밑바닥에라도 갈 각오만 되어 있다면 두려울 게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였을까. 나는 일찌감치 내가 자살하는 방법까지 생각해 두었을 뿐만 아니라 실행에 옮겨 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위인전 같은 책을 탐독하면서 소영웅심에 불타 젊은 날 돈키호테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한답시고 엉뚱한 일을 시도했다가 좌절하고 엎친 데 덮친다고 첫사랑에 실연당해 동해바다에 투신까지 했었다.

 

그 방법이란 보트라도 하나 구할 수 있으면 망망대해로 노를 저어 가는 데까지 가보리라. 그렇지 않으면 헤엄쳐서 가는 데까지 가보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죽는 방법인 동시에 사는 방법이었다. 아마 그래서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는 것이리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11 10:25 수정 2020.04.1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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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