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어느 봄날, 청솔 숲길 따라 지리산문 절집에 들다

제1부 수류화개(水流花開) 절집 구례 천은사

여계봉 선임기자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전 세계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올 4월은 더욱 잔인하다.

 

구례로 가는 승용차 안, 직사각형 차창으로 스치는 바깥 풍경에 눈이 시릴 지경이다. 산과 들에 뿌리박은 수목들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익어가는 잎사귀들로 치장한 채 득의양양하다. 차창 밖 세상은 온통 초록 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이런 자연을 팽개치고 사회적 격리라는 울타리 속에서 갇혀 살아야하는 4월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나날이다.

 

산다는 일은 여전히 갑갑한 운무 속. 저자의 홍진(紅塵)에 머문 내 몸과 내가 머물던 도시는 수렁처럼 어지럽다. 산란해진 마음을 씻고자 운무의 바깥, 하늘 한구석을 슬쩍 열고 봄이 한창 깃든 지리산 자락의 청정도량으로 출행한다. CNN이 선정한 전남 구례군의 사찰 화엄사, 천은사, 사성암, 연곡사와 하동의 쌍계사를 둘러볼 요량이다.


구례 천은사 소나무 숲. 이 길을 걸으면 자연의 형제들이 내는 교향악을 경청할 수 있다.




불교 경전 야함경(阿含經)에는 산 정상을 올라가 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높은 곳에 오르면 더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산 아래처럼 좁은 소견으로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례 화엄사 IC를 빠져나온 차는 성삼재를 향해 지리산 일주도로 고갯길을 오른다. 구례에서 멀고 높은 곳을 보려면 노고단이 제격이다. 노고단을 오르려면 성삼재로 가야한다. 평일 한낮의 성삼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노고단 가는 길은 좌우로 펼쳐진 싱그러운 초록의 신록 때문에 눈은 즐겁지만, 노고단 대피소까지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는 발을 늘 피곤하게 만든다.

 

노고단을 오르는 산길의 임자는 나무들이다. 여기 나무들은 인간들이 벌인 처절한 이념 대립으로 가파르고 험한 생의 먼 길을 걷고 걸은 뒤 마침내 좌정의 뿌리를 얻은 생명체들이다. 그저 조용히 우듬지에 쏟아지는 햇살과 희롱하며 만사가 덧없음을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다.

 

인적 끊긴 노고단 대피소. 산불방지기간에도 문을 열지만 코로나 때문에 결국 문을 닫았다.

 


노고단(1,507m)은 지리산 정상 천왕봉(1,915m)과 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 3대봉의 하나다. 노고단(老姑壇)이란 도교(道敎)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며, ‘할미는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를 일컫는 말이다.


산정 가까운 1,1001,200m 높이의 광활한 고원은 항상 서늘하여 일제 강점기부터 풍토병에 약한 서양 선교사들의 별장지로 사용되어 왔다. 노고단은 운해나 일출이 유명하지만 사방으로 펼쳐진 멋진 풍광도 백미다. 높고 외진 산상에 서면 남으로 화엄사, 구례읍내와 섬진강, 북으로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끝없이 이어진다. 세상의 악다구니와 냉혈한 기계시스템이 침범 못 할 정결과 고요가 느껴지고, 풍경 그 자체가 선경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 사방이 부처라 풍경의 변주에 아랑곳없이 절하듯 낮은 자세로 만물을 관조하다보니 몸과 마음은 가벼워져 잠시 극락조 되어 하늘을 난다.


5월이 되면 노고단은 선홍빛 진달래가 산정을 온통 물들인다.

 

 

노고단 정상에 서면 반야봉, 삼도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일망무제 마루금을 조망할 수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살기 좋은 길지로 손꼽히는 구례군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데, 풍수 좋은 이곳에는 명찰들도 많다. 그 중에서 성삼재 아래 구례 쪽 절집 천은사부터 들린다. 천은사는 구례읍 북쪽, 지리산 일주도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흥덕왕 때 인도 덕운조사가 터를 닦고 지은 절이다. 화천양사(華泉兩寺)라 하여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의 3대 절집으로 꼽힌다.

 

성삼재로 가는 일주도로는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욕이 난무하던 길이었다. 도로가 천은사 부지라 하여 절을 가지 않고 반대편 남원이나 성삼재를 가는 차량에게도 통행료를 부과하여 숱한 원성을 사던 길이었다. 불자인 기자는 이 일로 불교가 비난받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다행히 작년부터 통행료를 폐지하는 바람에 마음의 짐을 벗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산은 진정 순수한 지혜의 도량이고 숲은 실로 이상적인 공간이다. 천은사는 소나무 숲으로 호젓하게 둘러싸여 있다. 주차장에서 절집으로 곧장 가지 말고 일주문 오른쪽 소나무 군락지 쪽으로 올라가면 단아한 소나무 숲길 700800m를 걸을 수 있다. 300살 된 소나무도 만나고 키가 10m를 훨씬 넘는 키다리 소나무들도 만난다. 사철 푸르고 수피 붉은 소나무들은 정제미, 균형미, 함축미가 골고루 섞인 한편의 단아한 선시를 보는 듯하다.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소나무 뿌리의 인욕(忍辱) 때문에 금이 간 바위를 보니 소나무가 바로 살아 있는 법문이다. 소나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동안 숲 사이로 절집 계곡을 가로지르는 피안교가 보인다.

 

천은사 일주문. 원교 이광사가 수체로 쓴 현판이다.

 


 

절집 이름과 일주문에는 사연이 있다. 절집 샘터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서 사람들이 무서워했다. 어떤 스님이 용기를 내서 구렁이를 잡아 죽였더니 그 이후로 샘에서 물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고 절 이름을 천은사(泉隱寺)라 했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꾼 뒤부터 불이 자주 났다. 사람들은 절의 수맥을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절집을 찾은 원교 이광사가 이 말을 전해 들었다. 이광사는 동국진체를 완성한 명필가다. 이광사는 그 자리에서 물이 흐르는 듯한 필체, 즉 수체(水體)'지리산 천은사'를 써서 일주문에 현판으로 내걸었더니 그 후로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수홍루 정자 주변은 그야말로 수류(水流) 화개(花開)다.

 


하얀 벚꽃잎이 바람결에 난분분 난분분 계곡물로 떨어지니 나그네의 헛된 욕심도 바람결에 씻겨 사라진다. 계곡 물소리는 더 커지고, 버들강아지는 활짝 펴 봄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다. 계곡물은 흘러가 구례 들녘을 적신 후 섬진강으로 들어가 몸을 섞을 것이다. 계곡물의 소임은 맑은 물을 하류로 내려 보내는 일이다. 그래야 하류의 물이 정화된다. 중생들을 위해 기도나 염불을 하여 복을 골짜기 물처럼 저잣거리로 내려 보내는 것이 스님들의 일상이다.



피안교 아래 어리는 수홍루 물그림자 위에 하얀 꽃비가 수를 놓는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만난 매화, 산수유, 동백, 벚나무는 꽃망울을 일찍 터뜨린 탓으로 색이 바래지고 있다. 그 사이로 싱그러운 연둣빛 신록의 잎새들이 고개를 내밀고 절집을 화사하게 밝힌다. 그리고 보니 산사의 봄이 절정이다. 유려한 곡선의 기와지붕과 화려한 색채의 단청이 돋보이는 천은사의 주불전 극락보전과 안에 계신 아미타불도, 부처가 대중에게 설법하는 모습이 담긴 후불탱화에도 모두 봄기운이 가득하다.



 

천은사 극락보전 현판도 원교 이광사 글씨다.



극락보전 뒤쪽으로 대숲이 있다. 시원하고 어둑한 대숲은 길게 이어진다. 법당 뒤에 서있는 대나무는 비울 것 다 비웠는데 무슨 티끌이 있으며 무슨 동요가 있을까. 번뇌도 어리석음도 훌쩍 건넌 무심의 경지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무욕의 세계를 노래한다. 그 높고 걸림 없는 마음자리가 미묘하고 아찔하다. 미물인 대나무에게서 간섭에 초연하여 한 점 흔들림 없는 티끌의 경지를 보는 것 같다.

 

기척 없이 불어온 봄바람이 범종을 건드려 잠든 숲의 미물들을 깨운다.

 


 

절은 왜 산에 숨는가. 수행이란 죽을 힘을 다해 매달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고독한 여행이다.몸뚱이가 갈기갈기 찢어지더라도 집착의 화살을 뽑아내지 못하는 한,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것이 선가의 결의다. 그래서 승냥이 우는 후미진 산방에 홀로 머물러서 도()를 구한다. 이렇게 구한 도로 중생을 구하는데, 이를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고 한다.


천은사의 전각들에서 향이 난다. 그 속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 곧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다.

 

 

절집을 나와 물가에 앉아 물소리에 귀를 헹군다. 물소리는 경전을 암송하는 것 같이 청명하고 정중하게 들리기도 한다. 물소리는 저절로 내는 소리가 아니다. 큰 바위나 작은 돌부리의 몸을 비벼 내는 소리이니, 어쩌면 물이 바위를 연주하는 셈이다. 이 세상에 저 홀로 빼어나고 장한 게 어디 있으라. 노자가 말하길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거늘 다툼 없이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이 어찌 가 아니며 이 아닐 수 있을까.

 


절집 돌담 너머로 금이 가듯 잎들 사이로 햇살이 들이쳐 물위로 떨어진다.



 

풀 속에 나앉은 작고 여린 꽃이 눈물 젖은 속눈썹처럼 애잔하다. 봄바람처럼 훈훈한 하심(下心)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살면 살수록 욕심과 이기심으로 작아지기 십상인 우리의 생(). 습관적인 후회와 반성으로 가득한 나날들. 우리네 삶은 언저리에 걸려있는 쪽배일지도 모른다. 내 어리석음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부처께서 말씀하셨건만 그러나 돌아서서 하산하면 그뿐, 마음은 다시 새장에 갇히고 만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11 11:43 수정 2020.04.1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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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