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기생충’에서 ‘홍익만물’로

이태상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전 세계적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켰던 드라마가 있었다. 영국에서 만든 <어느 한 공주의 죽음>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와 그녀의 애인이 간통죄로 사형당한 실화를 소재로 만든 TV 영화가 1980년 영국에서 처음 방영된 후 일어난 국제적인 논란이 서양 사람들에게는 한낱 찻잔 속의 폭풍(storm in a teacup)’으로 대수롭지 않았을지 몰라도 아랍 사람들에게는 회교도를 심하게 모욕한 사건이었다.

 

어쩌면 이 사건이 아랍인들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억울함을 대변해줄 ‘러셀법정(The Russell Tribunal, also known as 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을 대신했는지도 모르겠다. 러셀법정은 영국의 노벨상 수상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미국이 월남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를 국제법에 따라 심판하기 위해 1966년 제창하여 발족한 법정으로, 그 후 각국의 법학자, 평화운동가 등이 모여 평화와 인권에 대해 침해 행위를 규탄해 오고 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 미샬 공주(Princess Mishaal bint Fahd al Saud 1958-1977)는 이슬람교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 안에서도 밖에서도 살 수 없었다. 한창 꽃다운 나이 방년(芳年) 19세에 사형당한 비극적인 공주의 운명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 충돌하는 그 소용돌이에 말려든 아랍인들의 운명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알라신을 부르면서 회교사원으로부터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죄인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다. 이들은 사형당하는 공주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라와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죽을 각오 외에는 다른 아무 표정도 없는 공주를 용감무쌍한 한 독립운동가로 상상했을 것이고, 광신적인 이슬람교도들은 죗값을 치르는 나를 보라고 행동으로 말하는 공주를 한 순교자로 보았을 것이다.

 

두 사람의 증언 진술이 똑같았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역시 아랍인이었던 오셀로(Orthello, 1603)’가 말한 것 같이 공주는 갈보였다. 따라서 마땅한 벌을 받는다고 신경질적으로 한 시녀가 궁중 생활을 얘기한다.

 

온종일 종들 말고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아요. 낮 열두 시 전에 아무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요. 그럼 뭣들 하느냐고요? 아무것도 안 하지요. 그럼 운동도 안 하느냐고요? 물론 하지요. 섹스 성교 행위를. 텔레비전을 줄곧 켜놓고,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65)’ 노래 카세트 곡을 열 번, 스무 번씩 듣고, 팝가요 인기곡을 런던서 비행기로 실어 오고. 미샬 공주가 즐겨 듣던 노래는 나를 위한 입맞춤(Save Your Kisses For Me, the winning song of the Eurovision Song Contest 1976)’이었어요. 이 노래는 수도 없이 들었어요.”

 

또 한 시녀가 말한다.

 

공주에게 어떤 특권과 자유가 있었느냐고요? 섹스였었지요.” 공주들은 복잡하고 위험한 성생활을 한단다. 이들의 경우 남자가 여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고 여자가 남자를 고른다. 남자가 여자를 고를 수 없는 것은 여자가 얼굴에 쓴 베일 때문이란다. 사막에 길이 나 있고 매력적인 남자를 발견하면 그 남자의 자동차 번호판 번호를 적어 두었다가 자기 운전기사를 시켜 접촉한단다. ‘가엾은 것,’ 다른 공주들 몫까지 대신해서 벌 받은 것이란다. 미샬 공주는 텔레비전에서 본 기타 치는 남자와 정을 통하다가 들켰단다. 재판도 받지 않고 나는 간통했습니다.” “나는 간통했습니다.”, “나는 간통했습니다.” 세 번의 자백으로 충분했다. 영화 화면으로 계속 반복되는 영상이 있었다. 언제나 운전기사가 모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안락한 뒷좌석에 앉아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인들, 눈 부신 불빛 속에 춤추는 남자들을 보면서 상대를 골라잡는 남자 사냥꾼들이었다.

 

내가 이 실화 극 영화를 본 기억으로는 너무도 운명적으로 또 희, 비극적으로 여자는 모래더미 앞에 세워진 채 총살당하고 그 여자의 먹이였던 남자는 공중 주차장에서 참수당한다. <어느 한 공주의 죽음>이 아랍산 기름의 아이러니였을까? 그렇지 않다면 인생의 허다한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한 방울의 기름을 신기루가 아니라면 하나의 거울로 삼아 우리 자신을 반성해 봄직하지 않을까?

 

보는 사람의 관점이 어떻든 간에 이 TV 영화가 빚은 물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인간사회에 만연한 온갖 위선과 독선에 찬 편견과 선입견을 잘 드러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세속화될 대로 세속화 되고 상업화된 기독교와 깊은 환멸에서 부흥을 꿈꾸는 회교 사이에서 말이다. 그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그토록 강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 영화가 사우디 왕실의 치부를 다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좀 더 깊이 관찰하면 그동안 오래도록 쌓여 온 분노가 터졌을 수도 있었으리라. 흔히 서양의 신문 잡지 특히 TV 화면에 조롱조로 우스꽝스럽게 비친 아랍 사람들의 모습이 그들에게 얼마나 모욕적이었을까? 이것은 비단 아랍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의 모든 유색인종들이 다 같이 느껴 온 수모일 것이다.

 

오늘날도 우월감에 사로잡힌 많은 백인들이 유색인들을 원숭이나 야만인으로 취급하는 오만방자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다반사 같이 일어나는 살인, 강도, 강간, 폭력, 마약으로 병들대로 병든 서구사회 백인들이 회교국 아라비아 사회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랍 사람들에게는 아마 그야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고 흉보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서양의 백인들이 정의를 운운할 때처럼 아랍 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몸부림치다 처참한 죽음을 당한 공주의 운명과 백인들의 농간에 맥없이 희생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운명이 비슷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 비유는 맞지 않는다고 많은 아랍인들은 말할 것이다.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은 공주는 이슬람교의 법률을 알면서 어겼다는 것이다. 간통하다 들키면 그 벌이 사형이란 것을 잘 알면서 그 법을 어긴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운명이 가혹하긴 했지만 이슬람교의 법률상으로는 엄격한 의미에서 사회정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무런 법도 어긴 것이 없는데 결코 자초하지 않은 벌을 받게 된 것이다. 공주의 운명은 극히 야만적인 비극으로 느끼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억울함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서구 사람들에 대해 아랍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는지 상상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들은 가슴으로 울부짖을 것이다. 공주는 이미 죽었지만 아직 살아 있는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제 나라 제 땅에서 사람답게 살 권리와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왜냐하면, 세계 제2차대전 이후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유대인들의 돈과 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이와 같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간통으로 처형 당한 공주의 죄와 벌에 대해 각자 어떻게 느꼈던 간에 모든 아랍 사람들이 볼 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취한 서구 백인들의 행동이야말로 더할 수 없이 야만적인 만행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서양의 백인 특히 유대인들이 자기네만 옳고 잘났다고, ‘혼자 잘났어, 정말,’ 자기네 주의 주장만 진리라고, 자기네가 믿는 종교만 참 종교라고 큰소리치는 것은 온당치 못하고 지혜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제넘고 위험천만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유치무쌍한 정신 상태야말로 서양문명의 천박성과 미숙함을 드러내고 모든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 뿐이다. 세계 도처에서 그동안 억압받고 착취당해 온 사람들이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백인들의 인종적, 종교적 독재와 횡포에 항거, 봉기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루속히 백인들도 인격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해서 치졸한 우월감을 졸업할 때 그리고 이들이 더이상 함부로 못된 짓 하지 못하게 또 버르장머리 없이 굴지 못하도록 모든 유색인종들이 서로 다투지 말고 단결해서 힘을 모아 본때를 보여줄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는 진정한 자유세계가 찾아올 것이다. 이런 뜻에서 <어느 한 공주의 죽음>이 우리 모든 평민 가운데 눈의 가시처럼 존재해 온 귀족과 왕족의 종말을 고하고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의 끝장을 보게 해주었더라면 그 얼마나 좋았으랴.

 

하지만 그동안 기생충(The Parasites)’이 창성해 온 세상을 급기야 우리 한민족이 우주의 주인(The Host)으로서 코스미안 시대를 열어 홍익인간, 홍익만물을 도모할 때가 도래하고 있음에 틀림없어라.

 

영국의 시인 겸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그의 지옥의 잠언(Proverbs of Hell)’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옥은 법률이란 돌로 지었고 유곽(遊廓)은 종교라는 벽돌로 만들었다. (Prisons are built with stones of Law, Brothels with bricks of Religion.)”

 

또 영국의 정치가 앤소니 애쉴리 쿠퍼(Anthony Ashley Cooper 1961-1683)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의 생각과 말은 다르지만 지각 있고 양식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은 다 같은 한 가지 종교를 신봉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종교가 뭐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Men of sense are really of one religion. But men of sense never tell what it is.)”

 

그 비근한 예로 바하이교를 들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이들은 그 어떤 독선 독단적인 교리로 무장, 빈말 갖고 그 어떤 신앙을 강요하거나 강매하지 않는다. 수백만 명의 바하이교 신도들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지만 모하메드가 신의 마지막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이론(異論)을 폄으로써 이슬람교도들의 분노를 사서 이들은 심한 박해를 받아왔다. 이들은 남녀평등을 주장, 남녀 유별하지 않고, 여자들이 베일로 얼굴을 가리지 않으며 여자도 바하이교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페르시아어로 신앙의 문(gate of the faith)’이란 뜻으로 (Bab ed-Din 1819-50)이라 불린 알리 무하마드가 바하이교(Ba’bism)를 세운 지 10년 안에 신도 2만여 명이 순교를 했고, 그 후로도 많은 박해를 받아왔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 박해가 극도에 달했다는 보도였다. 바하이교 신도는 직장도 박탈당하고 신도 간의 결혼은 반백 년 해로한 부부라도 이들의 결혼이 인정되지 않아 부인은 매음죄로 사형된 후 자식들은 사생아로 취급된다.

 

보도에 따르면 바하이교 신도들이 직면한 박해는 독일에서 1935년 히틀러의 반유태인 뉴렘버그 법률이 제정된 이후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이 받은 박해 못지않다는 것이다. 독재자 샤의 부패 정권을 몰아내고 들어선 이란의 이슬람 혁명정부가 제정한 새 헌법에서는 이란의 국교인 이슬람교 외에 3개의 군소 종교들, 다시 말해 이슬람교가 생기기 전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의 종교인 조로아스타교(Zoroastrianism Religion) 와 기독교 및 유대교는 인정하면서도 바하이교만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란 국민이라면 국가가 인정하는 이상의 4개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바하이교 신도들은 바하이교를 버리고 개종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교육열이 높은 바하이교 신도들은 다른 이란 사람들보다 유식하고 생각이 진보적이며 혁신적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세계정부가 생길 때까지 전 인류의 통합을 위해 노력할 뿐, 국내 정치에는 초연해 왔다. 그 까닭에 다른 이란 사람들부터 반혁명적 반도로 몰리게 되었으리라. 바하이교 지도자들이 몽땅 잡혀가 종무소식이고 이란 전국에 걸쳐 바하이교 교도들은 이슬람 사원에 끌려가 이슬람교로 개종을 강요당하고, 만일 거부하면 죽임을 당한다. 몸에다 기름을 부어 태워 죽인다. 이슬람교의 성직자들인 물라들은 사원 강단이나 정치 집회 연단에서 바하이교 교도들은 불결하고 부도덕한 이단자로 외국 세력의 앞잡이며 진짜 종교인 이슬람교의 적이라고 이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킨다. 새로 임명된 이란의 검찰총장은 코란경이 인정하는 신자 말고는 다 이교도요, 이교도는 다 없애 버려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평소에 각 지방에서 신임과 존경을 받던 사람들까지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그 한 예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 남쪽 교외 카산이란 마을에 사는 의사 솔레이만 베르지스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벗이었는데 어느 날 밤 위독한 환자가 있다는 전갈을 받고 급히 달려가자 여덟 명이 그를 에워쌌다. 환자가 어디 있느냐고 그가 묻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환자는 바로 너다. 네가 환자다. 네 병은 네 종교다라고 하면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뿌리치고 발코니에서 밑으로 뛰어내렸으나 발이 부러져 그는 더 이상 도망갈 수조차 없었다. 그러자 여덟 명이 좇아 내려와 그를 칼로 여든 한 번이나 찔러 죽였다. 한 명이 열 번씩 찌르고 그중 우두머리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찌른 것이다. 또 셈난이란 곳에서는 바하이교 신도들인 세 간호사가 나뭇가지 자르는 큰 가위로 찔려 죽자 사람들이 신의 축복을 받겠다고 살인자의 손을 잡고 그 피 묻은 손에 입맞춤을 했다. 한편 겁에 질려 바하이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선물과 환영파티까지 열어주고, 이들이 깨끗해졌다고 물라가 선고한다. 그렇지만 개종했다가 옛 신앙으로 되돌아가는 기미가 보이면 즉시 사정없이 처형한다.

 

이러한 보도에 우리가 아직도 중세 암흑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저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1726)>를 쓴 아일랜드의 작가 조나탄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가 그의 여러가지에 대한 생각들(Thoughts on Various Subjects, Moral and Diverting)’이란 글에서 통탄했듯이.

 

우리는 서로 미워할 만큼의 종교만 갖고 있을 뿐. 서로 사랑할 만큼의 종교를 갖고 있지 못하다.(We have just enough religion to make us hate, but not enough to make us love one another.)”

 

, 그러니 어서 이 계속되는 암흑시대를 빨리 벗어나 새로운 개명천지(開明天地) ‘코스미안 시대를 열어보리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14 10:59 수정 2020.04.1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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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