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춤을 출 자유

김다희




파키라를 새로 사왔다. 외국에서는 Money Tree라고 불리는 실내에서 키우는 관엽식물이다. 미국 사무실에서는 작은 Money tree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30cm 정도로 크는 작은 파키라를 가져다 놓는데 잎이 풍성하게 자랄수록 돈을 불러온다는 미신 때문이다. 이 나무를 자기 책상에 두고 목숨 걸고 키우는 미국인들을 볼 수 있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라는데 생긴 것은 굉장히 동양적이게 생겼다. 4-5개정도 되는 줄기가 서로 꼬아가며 얽혀서 자라난다. 꼭 높이 올라가려고 서로 의지하고 지탱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두꺼운 줄기가 자라다 멈추는 곳이 이 식물의 키를 결정한다.

 

새로 사온 파키라는 키가 그렇게 크지 않다. 내심 전에 열심히 키우던 파키라가 그리워진다. 텍사스 햇살을 머금고 무럭무럭 자라던 나무와 때늦은 성장통을 겪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삼십대에 접어드니 인생이란 굴레가 본격적으로 목을 매어 왔다. 우연처럼 운명처럼 남편을 만나 친숙하면서도 생소한 미국이라는 나라로 태평양을 건너온 지도 4년이 넘어간다. 결혼, 이민, 이직이라는 인생의 큰 변화를 한 해에 겪은 나는 삶과 나 자신을 지키려 아둥바둥하는 사이 겨울날 잎이 쳐지고 말라가는 파키라처럼 기세가 쇠하여 갔다.


겨울 사이 점점 더 어깨가 쳐지던 파키라는 내가 잠시 한국에 다녀오는 사이 큰 고비를 겪었다. 아직도 나무의 윗부분에서는 여린 새싹이 나고 있었지만 뿌리부분은 몽땅 썩어 있는 걸 발견했다. 남편이 물을 너무 많이 준 것이다. 뿌리가 썩은 파키라를 살리려 분갈이도 하고 약을 치는 등 부단히 노력했지만 마지막 남은 줄기마저 텅 비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서야 나의 정든 사랑하는 나무를 보내줘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식물이 완전히 죽는 때는 언제일까. 뿌리가 다 썩어 죽어가면서도 어떻게 새로운 싹을 피울 수 있는 것일까.

 

여행이나 공부를 하며 외국인친구들을 만나는 것과 그 나라에 가서 밥벌이를 하며 사는 것은 달랐다. 회사에서 좀 더 좋은 평판을 받기 위해서 또 미국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여들기 위한 노력으로 내가 아닌 모습을 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늘 피곤했다. 조용하고 진지한 나를 그대로 세상에 내놓지 못하는 고통은 속으로 곪아서 파키라의 뿌리처럼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불안과 우울증으로 점점 삶의 의미를 잃어가던 내게 매일매일 쉬지 않고 새싹을 피워내는 파키라는 작은 위안이었다. 삐죽 솟아나온 새싹이 여린 잎을 틔우고 잎맥이 투명하게 비치는 이파리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데에는 정적인 생동감이 있었다. 여리고 생생한 잎을 보는 것이 왜 나를 위로했을까. 사람들은 젊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데서 느끼는 생동감, 무한한 잠재력, 그리고 희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래된 것, 나이 들어가는 것에는 필연적인 슬픔이 풍겨져 나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생의 탄생과 동시에 소멸의 길을 걷는다. 거스를 수도 없는 거대한 자연의 이치다. 노력이 허용되는 경지가 아니기에 쇠퇴의 길을 걷는 것을 보는 데에는 애수와 아쉬움이 섞여있다. 그러나 갈변한 잎이 떨어지고 흰머리가 나온다고 삶이 끝은 아니다. 죽어가면서도 새 잎을 피우는 식물들처럼 죽는 날까지 우리의 인생은 끝이 아니다. 사람을 돕고 싶어서 서른 살에 의대에 간 슈바이처, 평생 주부로 살다가 마흔 살에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 작가처럼 뒤늦게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힘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우리는 계속 새로운 잎을 피어 내야 한다.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우리에게는 꿈꿀 자유가 있다. 자유는 말한다. 너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너의 꿈을 속박할 수 없다고.


엄마의 일기를 훔쳐본 적이 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세 모녀가 가장이 떠난 횅댕그렁한 집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던 때였다. 한 집에 사는 엄마지만 무슨 엄청난 비밀이라도 발견할 것 마냥 두근거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글씨를 잘 써서 대학교 때 조교까지 했다던 엄마의 노트는 멋진 글씨로 적힌 가계부일 뿐이었다. 실망한 마음으로 대충 페이지를 넘기는 데 마지막 페이지에서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발견했다. 엄마가 직접 지은 듯한 시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구절이 있다. ‘설거지를 하면 그릇은 깨끗해지지만 아무리 문질러도 나의 마음은 그릇처럼 깨끗해지지 않는다.’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몇 년간 아픈 남편 병수발을 했지만 허무하게 그를 떠나보낸 그 날 밤뒤로 엄마의 마음에는 진득한 슬픔과 체념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말라있었을 것이다.


파키라는 겨울에는 동면에 들어가는 곰처럼 성장을 멈춘다.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두터운 뿌리에 물을 머금고 몸을 숙이며 겨울을 버텨난다. 그러니 겨우내 남편이 아무리 사랑으로 보살피고 물을 준다한들 파키라는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꿈꿀 시간은커녕 마음이 겨울철일 때도 어서 성장해야 한다고 닦달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승진해서 연봉을 높이려 나를 휘몰아치면서 미래의 여유를 담보로 현재의 행복을 체납해온 것이다.


3년 동안 힘들게 버티던 회사를 나왔다.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20대 내내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독신 커리어우먼을 꿈꿨다. 30대에 접어들고 나서야 나를 아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막 첫 걸음을 떼는 것 마냥 서툴게 나에 대해 알아가고 나의 마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가 쫓아온 가치가 사실은 사회와 사람들의 의해 강제로 주입되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나의 행복을 이정표로 인생의 길을 걷기보다 남들이 좋다고 입소문이 난 곳을 찾아 헤매었다.

 

직장생활이 힘들어 죽고 싶을 때에는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버텼다. 한국에 두고 온 엄마와 동생도 생각이 났다. 젊은 남편이 하늘로 떠나고 어린 여자애 둘을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쳤던 엄마의 삶을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부정하고 또 부정하며 관망했다. 엄마의 잘못은 어디에도 없었다. 삶의 풍파를 어떻게든 버텨보려던 초라하지만 굳센 여자만 있었다. 엄마가 식물이라면 추위에도 더위에도 병충해에도 강한 품종이리라.

 

인생이란 길 위에서 방황하지 않는 이는 없다. 방황의 목적은 늘 행복이다. 답을 찾았다 생각하고 가지 않은 길을 용기 내 가보기도 하고 그 길에서 막다른 골목을 만나 다시 길을 찾아야 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헛된 시간은 없다. 살아서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고 있는 이상 모든 것이 모험이고 경험이다.

 

엄마에게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늘 쓰고 싶었던 글을 쓸 거라고 말했다. 지레짐작 작가로는 돈 벌어서 먹고 살기 힘들 다라든지 미국에서 직장도 보험도 없이 병원진료를 어떻게 받을 거냐는 말이 나오기 전에 한 수를 뒀다. 이미 그만뒀고 작가에 도전할 생각은 바꿀 마음이 없다고. 어릴 때부터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니는 애로 유명했고 국어선생님 추천으로 백일장을 나갔던 기억, 국문학과에 진학해 잠시 기자생활을 했던 것 까지 엄마에게 설명하다보니 내 인생은 쭉 나에게 대놓고 힌트를 주어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돌아왔나 싶었다.


나는 이제 귀를 닫고 내 안에서 나오는 소리에만 집중하며 걸어갈 것이다. 내가 행복하다면 남들이 아무리 험한 길이라고 만류해도 고집스럽게 걸어갈 것이다. 설령 당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한들 누가 그 길을 잘못되었다고 재단할 수 있을까?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속속들이 아는 자신 말고는 아무에게도 그 길을 평가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이 나를 구원하고 행복을 선물할 수 있다.

 

평생을 힘들게 일하며 버텨오던 엄마에게도 새로운 날이 찾아왔다. 엄마를 우주라 부르며 아껴주는 멋진 분을 만나 처음처럼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 인생에도 역전의 기회는 여전히 문을 두드린다.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새로운 잎을 피어 낸다면. 나도 엄마도 멈추지 않고 싹을 피우며 더듬더듬 인생을 살아낸다. 잎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새로운 잎이 나리라는 희망에 마음을 맡긴 채.


청량한 바람이 부는 여름 나도 파키라도 새로운 공기가 필요할 것 같아 창문을 연다. 흔들흔들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파키라가 수줍게 춤을 춘다. 자유로운 나도 춤을 춘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14 11:32 수정 2020.04.1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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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