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새벽에 쓰는 편지

김도훈




창문으로 바람이 우우 몰아친다. 시간은 여섯 시를 지나고 있었고 창밖으론 점점 새벽 여명이 짙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내가 부지런하여 꼭두새벽부터 자리에서 일찍 일어난 것은 아쉽게도 아니다. 나는 잠을 적어도 7시간은 자야 하는 사람이기에 웬만하면 취침과 기상을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것은 내가 원하는 수면 습관을 준수하기 위한 기특한 노력인 셈이다. 근데 또 그렇다고 한번 침상에 머리를 눕힌 나를 깨운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도 없이 흔들고, 이불을 걷어차 줘야 겨우 일어나는 건 그래도 아니니까. 그럴 필요 없이 적정 알람 소리에 금방 깨는 나니까.


하여간 이런 말을 하는 건 바로 내가 간밤을 꼬박 새웠기에 가능한 언급이다. 그래서 영롱한 새벽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열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나를 잠 못 들게 한 건가. 그건 바로 책이다. 독서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불현듯 지나온 긴 새벽의 세월을 회상하고 있다. 그러면서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이고, 삶과 죽음이란 어떠한 것이며, 책을 읽는 행위는 여기서 과연 어떤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 그런 사색에 빠져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해가 중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섭리는, 다시금 거리엔 소란스러운 인적이 시작된다는 것과 같다. 버스 굴러가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난잡한 거리의 어수선한 분위기, 하루의 일과를 어김없이 부지런하게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인기척 소리들. 이 모든 도약의 흔적이 매번 나에겐 새삼스럽게 다가오곤 한다. 그렇게 자취방의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온갖 생각이 내 정신을 어지럽히곤 한다. 그 시공의 찰나와 유구한 체감은 아직까진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정으로 남아 있을 확률이 무엇보다도 확실했으니까.


결국, 내겐 감정이 정리되기도 전에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고 만다. 나에게 이런 하루는 젊고 건강한 걸 떠나서 지치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는 하루의 일과지만 이것이 마냥 즐겁지는 않으니까 그게 큰 문제였다. 어제가 오늘처럼 시작되었다가 희미해지듯, 오늘도 어제처럼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면서 없어질 것이다. 다만 다름이 있다면, 보다 어린 생명이 자리바꿈을 위해 한 발자국 더 다가서는 것. 그리고 나와 우리 모두 성장하고 나아간다는 기쁨일 테지.


이런 삶 안에서 뜬금없지만 소중한 걸 말하라고 하면 나는 어김없이 책을 꼽고 싶다. 책을 통해 내가 알던 세계가 다르게 보이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접하기도 하니까. 이 모든 꿈같은 현실을 나 혼자만 만끽하고 싶지 않아서 이번 기회에 이렇게 글을 쓴다. 막상 글을 쓰려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절실히 느끼는 그러면서 책을 사랑하는 용기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때의 경험이 내게는 쉽사리 떨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어서 그랬다. 근데 웃긴 건 제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자주 접해도 책 읽기에 관한 내 마음가짐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지금도 수준이 높거나 까다로운 글은 정독할 마음이 쉽사리 가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책을 사랑하는 용기가 수도 없이 내게서 들어왔다는 점일 테지. 그런 이유에서 말끔히 독파할 수 있었겠지.


그렇다, 책은 항상 힘들다. 고된 책 읽기는 언제나 나에게 시련이었으며 큰 고난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다고 독서 활동을 저지할 만한 수준의 압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과거의 나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을 무사히 마쳤으며, 현재의 나도 여전히 책을 읽고 있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새벽에 한창 책 읽기에 빠져 있다가, 무심코 글을 썼던 것이니까.


앞서 말한 과정이 있었기에 앞으로 꾸준히 책을 읽어나가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 이제 나와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정립하고야 말았으니. 새벽마다 내면의 깊은 곳에 감흥이 일었던 그 날이 언제든지 날 불러일으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 못지않게 가치 있는 행위가 책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그 덕분에 왕성한 독서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를 돌아보면서 묻고 싶다.


책을 통해 타인이 나라는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삶을 살아왔으니까. 오직 그런 방식으로 내 소소한 일상을 가꾸며 살아온 존재가 나니까. 물론, 책을 사랑하는 용기를 그대로 가질 순 없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굳게 믿고 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책과 신뢰의 도약을 함께 하고 있음을 여러분께 환히 웃으며 밝히는 바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25 10:48 수정 2020.04.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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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