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유문무답(有問無答)이냐 불문가지(不問可知)냐

이태상

 



최근 코스미안뉴스 국제뉴스에 실린 엘론 머스크의 미래 예측 ‘5년 이내에 인간의 언어 쓸모없게 될 것이란 아래와 같은 단신이 있었다.

 

엘론 머스크는 인간의 언어가 5년 안에 쓸모없는 구식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고 보도했다. The Joe Rogan Experience 팟캐스트에 출연한 테슬라 회장 머스크는 그의 신경기술 회사인 Neuralink에 대한 토론에서 이러한 예측을 했다. 그는 이 회사가 뉴러링크 (Neuralink) 장치를 내년 안에 처음으로 인간의 뇌에 연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어에 임기응변의 정신력을 ‘presence of mind’라고 한다면, 말이나 어떤 형식적인 표현에도 구애되지 않는 사랑은 존재심(presence of heart)’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 어떤 말이나 행동 양식보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모든 걸 말해준다는 뜻으로 존재감(presence)’이란 말이 있지 않나.

 

미국의 철학자 에세이스트 랠프 월도 에메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네가 무슨 언어로 무슨 소리를 하든 너 이상의 말을 할 수 없으리라. Use what language you will, you can never say anything but what you are.”라고 말했다.

 

청소년 시절 내가 읽은 미국 단편 소설이 하나 있다. 저자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시골에 사는 농부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말수가 적은 진중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이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데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름시름 앓게 되자 남편이 아내를 데리고 의사를 찾아갔다. 아무리 진찰을 해봐도 아무 이상이 없자 무슨 고민이라도 있느냐고 부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남편이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왜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안 했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것이었다. 결혼해서 같이 살고 있는 것 이상의 다른 표현이 어디 있겠냐고 말했다. 의사가 남편에게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을 좀 해줄 수 없겠냐고 조언했다. 남편은 자기는 그런 말같지 않은 말은 할 수 없노라고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임기응변에 능한 이 의사는 부인이 수혈이 필요하다고 꾀를 냈다. 그리고는 부부를 나란히 침대에 눕힌 채 남편의 피를 뽑아 부인에게 수혈하는 시늉을 했다. 그제서야 부인이 안심하고 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얘기였다.

 

예부터 빈 수레가 요란하고 깊은 물은 조용히 흐른다고 했던가. 뭣이고 입 밖에 내뱉는 순간 김이 새듯 그 내용이 사라진다는 말도 있지 않나. 한도 끝도 없이 무궁무진한 사랑이란 새를 언어라는 새장에 가둘 수가 있겠는가. 태양의 빛과 열처럼 감출 수 없는 게 사랑이 아니던가.

 

20세기의 대 석학이며 영국의 철학자, 수학자, 역사가, 사회 비평가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생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만일 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당신이 사후 심판 날에 신을 만나게 된다면 신에게 뭐라고 말하겠냐

 

반전운동가로 양심의 자유를 대표하는 다양하고 중요한 저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셀의 대답은 이러했다. Bertrand Russell was once asked what he would say to God if it turned out there was one and he met himRussell’s reply:

 

당신은 우리에게 (당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충분히 주지 않았다.”

“You gave us insufficient evidence.”

 

신의 존재에 대해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유신론, 무신론 그리고 불가지론이 있었지만, 러셀의 말처럼 신은 아무에게도 신이 존재한다는 충분한 증거를 오늘날까지도 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유신론자들조차 확실한 증거 없이 무조건 믿는 맹신자들이거나, 반신반의하는 회의론자들인 것 같다. 특히 같은 뿌리에서 생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주장하는 유일신은 인간의 편만 들어주는 인종주의자이거나 신자의 편만 들어주는 편애주의자, 저 혼자만 복 많이 받고 잘 먹고 잘살다가 죽어서도 천당 가겠다고 아부 아첨하는 기복신앙인들의 이기적인 기도만 들어주는 편애주의자 말이다.

 

신이 정말 참으로 존재한다면, 또 신이 인격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신격의 소유자라면, 이토록 편파적으로 속 좁은 존재는 절대로 결코 아니리라.

 

그렇다면 소아병적으로 독선독단과 위선에 찬 서양종교의 부자연스러운 억지 교리에 비한다면 우리 동양 전래의 피아일체, 물아일체, 홍익인간의 인내천 사상이 그 얼마나 더 평화로운 상생의 생존법인가.

 

진정코 대자연 대우주가 신적인 존재라면 소천지 소우주인 우리 각자가 또한 신적인 존재가 아니겠는가. 우리 마음과 정신과 혼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몸만 보더라도 너무너무 신비롭기 그지없지 않은가.

 

현재 영혼의 세계는 전생퇴행 등의 과학적 최면요법을 통해 확인되고 있으며 또 전생에 살았다가 현생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현상도 초심리 과학을 통해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란다.

 

이것 또한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이 아니던가. 기독교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절을 매년 지키지만, 산천초목 만물이 봄철이면 다시 소생해서 부활하지 않는가. 모든 곤충, 동물, 인간도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듯 생명의 순환 사이클이 이어지는 기적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세상에 사랑 이상의 복()과 신성(神性)이 있을 수 없다면 이 복덩어리인 신성의 사랑으로 우리 가슴 채울 때, 우리 스스로 신격(神格)이 되는 것이리라. ()과 육(), 예수와 부처라는 신()이 따로 없이, 우리 모든 코스미안이 바로 신의 분신(分身) 이요 동시에 분신(分神)이라는 말이어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16 11:20 수정 2020.05.1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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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