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시를 걷다] 낙산사

다시 새로워지는 낙산사



처음부터 낙산사는 풍경만으로도

하나의 거대한 경전이었다.

사소한 사물들은 아무런 애착도 없이

그저 천년을 견디며 살아왔는데

보이는 것의 풍경만을 편애한 나는

기억과 추억사이의 고통을 묶어 놓고

몽매하게 홀로 풍경 속으로 걸어갔다.



어느 해

불타버린 낙산사 언덕위로

아지랑이 아른거려 봄은 왔건만

난데없는 화마에 생명을 저당 잡힌

나무들의 검은 밑동은 아직도 생명의 소리를

틔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

바람이 불어오고 구름이 몰려와

한 짐 희망을 부려놓고 있었다.

 


저렇게 바다와 산은 의연하여

여전히 복사꽃 향기 흩날리고

아라한도 아수라도 풍경이 되어버린

의상대 햇살만이 눈부시고 눈부시다.

뼈만 남은 가지를 치켜들고

마침내 새로워질 삶을 기다리는

저 소나무의 자태는 차라리 경건하다.

 

봄날

나는 역사의 전리를 무장해제 시킨

순결한 평화의 오후를 보았다.

그네들의 기원이 가 닿을 곳의 피안이

천년의 시간을 이고 앉은 의상대 앞에서

소소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데

난해한 내 글의 펜 끝만 무뎌지고 있었다.

어찌 설명하랴 저 무애한 풍경과 사람을…….



폐허 위에 스스로 아름다운

운명이 피어난다.

낙산사를 휩쓸고 지나간

화마는 혼곤한 역사위에

스스로 희망을 싹틔우고

사람들은 희망의 이름을 적어

폐허의 역사를 일으켜 세운다.

 

낙산사의 담은

저 고운 문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없이 붙잡아 두었을까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 속에

저 고운 문양을 새기기 위해

미학을 분간할 사유에 혼돈했을 터인데

봄바람만 저 홀로 담을

허허롭게 훑고 지나간다.



한 때

숲으로 찬란했던 낙산사 오솔길로

낡은 시간이 일 없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이유 없는 사랑이다.

시간은 과거와 미래의 운명이며

소멸과 생성을 거듭하는 자연의 용서이다.

 

 


아득한 무심이여

절벽 끝에 걸려 있는 홍련암에서

바다는 말 없는 부처였지만

나는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였다

내 불안정한 이성은 진화를 멈추고

절대시간 앞에 고개를 숙이고 만다.


 

햇살 알갱이들 산산이 부서지는

바닷가의 봄은 찬연한고 천진한데

마침내 삶은 봄 안에서 새로워지고

봄은 삶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다.

나약한 인간의 마을에 생명을 안고

진격해 오는 봄이여

   

아이야

너는 생명이며 너는 희망이다

너는 세상이며 너는 낙원이다

저 푸른 사랑의 힘이여

거침없이 솟아나는 사랑의 힘이여

속수무책 아름다운 아이야



다시 양양에서

말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

쓸모없는 시비를 접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여전히 대책 없이 푸르게 빛나고

낙산사를 넘어가는 해는 오늘도 찬란한데

이제는 희망을 이야기해도 좋으리라

희망은 바다처럼 늘 푸른 사랑이므로.

 


 

 





편집부 기자
작성 2018.08.28 11:32 수정 2018.08.2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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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