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지상의 삶은 우리 모두의 갭 이어(gap year)

이태상

 



린든 존슨 대통령 같은 사람이 그랬을지 모를 정도로 이 백악관 자리를 탐내지 않은 나로서 결코 잃지 않은 것은 내가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 난 국민건강보험 법안에 서명한 것이나 유엔에서 연설한 것이 아니고 내 딸들과 보낸 순간을 기억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The one thing I never lost, in a way somebody like L.B.J. might have who was hungry for this office in a way I wasn’t is my confidence that, with my last breath, what I will remember will be some moment with my girls, not signing the health care law or giving a speech at the U.N.”

 

20165월 초에 백악관에서 영화와 브로드웨이 쇼에서 미국 제36대 대통령(1963-1969)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으로 분한 배우 브라이언 클랜스턴(Bryan Cranston, 1956 - )과 가진 대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 말에 청소년 시절 읽은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의 단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The Death of Ivan Ilyich, 1886) 이 떠올랐다.

 

모범생으로 법대를 나와 판사가 되고 러시아의 상류사회로 진입, 출세가도를 달리던 40대 이반 일리치가 새로 장만한 저택 커튼을 달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면서 마지막 순간에 그가 기억하고 위안받는 건 다름 아닌 그의 어린 시절 벗들과 과수원에 몰래 들어가 서리해온 설익은 자두를 입에 물었을 때 그 시고 떫은 맛을 감미롭게 떠올리는 것이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나는 뭘 생각하게 될까. 얼핏 떠오는 건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진 않았어도 2008925일 조산아로 태어나면서부터 내 외손자 일라이자(Elijah)와 지난 12년 가까이 같이 보낸 순간순간들일 것 같다. 천국이 따로 없었음을 너무도 절실히 절감하게 되리라.

 

최근 3, 4년 전부터 갭 이어(gap year)’란 단어가 미국에서 매스컴의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큰 딸 말리아가 하버드대 진학을 1년 미루고 갭 이어를 갖는다는 뉴스때문 이었다.

 

갭 이어란 고교 졸업생이 대학 진학을 늦추고 한 학기 또는 1년간 여행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회경험을 통해 진로를 모색하는 기간을 말한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선 일반화된 제도이지만 미국에는 2000년대 들어 하버드대, 예일대 등 아이비리그를 중심으로 도입되어 실시되어 오고 있다.

 

1978년 여름, 나의 세 딸들이 여섯, 일곱, 아홉 살 때 영국을 떠나 우리 가족이 하와이로 이주, 한국과 미국 각지로 6개월 동안 여행하고 애들 음악교육 때문에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한 학기 학교 수업을 몽땅 빼먹었는데도 애들 학업성적이 뜻밖에도 전보다 뒤지기는커녕 더 좋아져서 놀란 적이 있다.

 

어떻든 우리 달리 좀 생각해 보자. 이 지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얼마 동안 이 지구별에 머물게 되든,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으로서 우리 모두의 삶이 갭 이어라 할 수 있지 않으랴. 이 지구촌에서 수도(修道)의 세상 경험을 쌓으며 각자의 우주적 진로를 탐색해 보라고 주어진 기회가 아닌가.

 

최근 역사에서 극히 대조적인 삶을 살다 간 한두 사례를 생각해보자. 같은 서유럽이라는 공간(영국과 오스트리아)과 엇비슷한 시간(1889416일과 20)에 출생한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1977)과 아돌프 히틀러(1889-1945), 그리고 일제 강점기인 식민지 치하 조선 인으로1917년 태어난 윤동주와 박정희 말이다.

 

천국은 네 안에 있다고 예수도 말했듯이, 우리가 이 지상에서 천국을 보지 못한다면 지구 밖 우주 어디에서도 천국을 찾을 수 없으리라.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여기에 있다고 하고 저기에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지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누가복음 1721절에 쓰여있다.

 

조물주 하느님이 지구를 포함해 우주의 모든 별들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지구란 별 자체가 하느님 나라이고 인간은 물론 만물이 다 하느님의 분신(分身/分神)들이 아니면 무엇이랴!

 

흥미롭게도 이 하느님의 분신이었을 히틀러를 소년 크기의 조형물로 표현해 뒤에서 보면 무릎을 꿇고 있는 어린이 형상이지만, 앞에서 보면 두 손을 맞잡고 콧수염을 기른 우울한 모습의 이탈리아 행위예술가이자 조각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Maurizio Cattelan, 1960 - )의 작품이 지난 201658일 뉴욕 경매에서 1,719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008,500만 원에 낙찰됐다.

 

인간을 포함해 만물이 하느님의 분신이라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히틀러나 김정은 같은 폭군이 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이 모두가 착하게만 살도록 미리 프로그램이 되어 있었다면, 그건 결코 하느님의 분신이 아닌, 너무도 재미없는 로봇에 불과할 것이다.

 

다른 모든 우주 만물과 달리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전과 특혜가 있다면 우리 각자가 각자의 삶에서 성군도 폭군도 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 아닐까. 인간 이상의 신격으로 승화될 수도 있는, 다시 말해 각자의 삶을 천국으로도 아니면 지옥으로도 만들 수 있는 자유 말이어라.

 

그럼 어떤 삶이 천국이고 어떤 삶이 지옥일까? 모름지기 후회 없는 삶이 천국이라면 후회스런 삶은 지옥이 되리라. 깊은 이해와 용서와 사랑의 삶이 후회 없는 것이라면, 오해와 분노와 증오의 삶은 후회만 남기는 것이리라.

 

친구가 보내준 순간의 분노가 평생 후회를이란 글을 통해 그 한 예를 들어보리라.

 

중국을 통일하고 유럽까지 정복한 칭기즈칸은 사냥을 위해 매를 한 마리 데리고 다녔다. 그는 매를 사랑하여 마치 친구처럼 먹이를 주며 길렀다. 하루는 사냥을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매를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자신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았다. 가뭄으로 개울물은 말랐으나 바위틈에서 똑똑 떨어지는 샘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잔에 받아 마시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바람소리와 함께 자신의 매가 그의 손을 쳐서 잔을 땅에 떨어뜨렸다. 물을 마시려고 할 때마다 매가 방해하자 칭기즈칸은 몹시 화가 났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주인의 은혜를 모르고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한쪽 손에 칼을 빼 들고 다른 손으로 잔을 들어 물을 다시 받았다. 잔에 물이 차서 입에 대자 또 다시 바람 소리와 함께 매가 잔을 들고 있는 손을 치려고 내려왔다. 칭기즈칸은 칼로 매를 내리쳤다. 그가 죽은 매를 비키면서 바위 위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죽은 독사의 시체가 샘물 안에 썩어 있었다.”

 

우주의 축소판이 모래 한 알이고, 물 한 방울이며, 영원의 축소판이 한순간이라면, 우린 모두 순간에서 영원을 살고, 그 누구든 그 무엇이든 자신이 사랑하는 그 대상을 통해 온 우주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지상의 갭 이어를 잘 활용해 그 더욱 경이로운 우주 여정에 오르게 되는 것이리.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26 10:07 수정 2020.05.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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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