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모든 건 다 마음 짓이다

이태상

 



코로나(CORONA)의 코(CO), 바이러스 (VIRUS)의 비(VI), 디지스(DISEASE)의 드(D) 그리고 2019년 발생했다고 해서 코비드-19(COVID-19)’로 줄인 약자의 이 전 세계적인 역병이 지구촌을 엄습하기 몇 년 전부터 그 낌새라 할까 조짐이 보였던 것 같다.

 

창작의 열기나 양적인 면에서 이 땅은 여전히 시의 나라라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숙한 자본주의하에서도 그와 무관한 시의 생산이 전혀 위축되지 않는 것을 보면 기현상으로 보일 정도예요. 젊어서부터 시는 꼼꼼하게 읽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시가 시대의 반영이란 생각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시인들이 미쳐 인식하고 쓰지 못했더라도 그 안에 담긴 시대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지금 비평가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2016지상의 천사로 제27회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한 이혜원(당시 50)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비단 시에서뿐만 아니라 최근 정치에서도 아웃사이더 전성시대라며 시대정신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어왔다.

 

바야흐로 종교에서도 탈종교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니 일어나야 할 것 같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가톨릭과 개신교 할 것 없이 신자 수가 급속도로 줄어 많은 성당이나 교회가 문을 닫는가 하면, 화석화되어 가던 이슬람의 과격파 극단주의가 중동 지역을 위시해 아프리카와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시대착오적인 일시적 현상이리라.

 

그럼 최근에 와서 서양에도 많이 전파된 불교 쪽을 좀 살펴보자. 얼마 전 탤런트 신세경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특별 홍보대사 자격으로 소외 여성들을 만나기 위해 인도로 떠났다는 기사 를 봤다. 낮은 임금과 노동력 착취 등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힘든 여성들은 카스트 제도와 종교적 차별, 가부장적 문화 등으로 지위가 낮고 성차별과 조혼 등의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대부분 박탈당하고 있다.

 

신세경은 단순히 빵이나 생필품만으로 빈곤의 악순환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지구촌 교육 지원 현장을 방문해 배움으로 새 희망을 품고 사는 여성들을 만나게 돼 기쁘고 특별대사로서 책임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네팔 왕국에서 왕자로 태어난 부처는 인간의 생로병사란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29세 때 왕궁을 떠나 인도로 가서 6년 고행 끝에 연기법이란 도를 깨쳤다고 하는데 이 연기법이란 뭘 말하는 것일까.

 

()’은 인연(因緣), ‘()’는 생긴다는 뜻으로 부처는 모든 것은 무상(無常)이라며 모든 것은 인연 따라 항상 변해가고, 일체가 무상이기에 일체가 ()’ 곧 고통이며 일체가 무상이기에 또한 일체가 무아(無我)라고 했다는데, 이는 라고 하는 실체가 없다는 말일 테다.

 

그런데 다른 종교에서는 가 있고, 기독교에서는 가 죽으면 천당 아니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지만, 불교에서는 라는 주체가 없어 무아라 한다면, 어떻게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불교에서는 다시 태어나는 것을 고통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다시 태어나면 또 늙어서 병들고 죽어야 하니까. 그래서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과 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解脫)이라고 하나 보다.

 

독실하게 믿는 신자들에게는 몹시 모욕적이고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교리가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비롯해 하나같이 독선 독단적인 억지 주장이라면, 불교사상은 너무도 수동적이고도 부정적으로 허무주의적 구름잡이 같은 소리로밖에 안 들린다. 인생무상이니, 모두 다 인과응보의 자업자득이니, 인생은 고해와 같으니, 차라리 앓느니 죽지하는 식으로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남이 축복이 아닌 저주처럼 무아지경의 ()’ 사상을 뇌까리는 공염불(空念佛)이 말이다.

 

네덜란드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그의 1938년 저서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Playing Man)’에서 놀이가 인류문화의 기원이고 원동력이며 놀이의 본질은 재미라고 했듯이, 우리 삶은 원초적으로 더할 수 없는 축복이요 즐거움이지, 그 어찌 저주스러운 고통이라 할 수 있으랴.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대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내 생각으로는 그동안 온갖 비극과 불행만 초래한 공산주의, 자본주의, 선민, 이방인, 또는 남자다 여자다, 선이다 악이다. 백이다 흑이다, 나 아니면 남이라는 2분법으로 배타적이고 치졸한 각종 이념과 사상 및 종교를 어서 한시바삐 졸업하고, 새장 속의 새나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우린 모두 하나같이 우주적 존재로서 코스미안(Cosmian)’이란 자의식을 갖는, 우주 만물이 다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리라.

 

발라드의 황제 이승철이 얼마 전 MBC 예능 프로 복면가왕판정단과 함께 출연해 출연자인 슬램덩크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제 경험상 가수로서 목소리는 지문 같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존재감이 반가웠다.”

 

이게 어디 목소리뿐이랴. 우리가 하는 말, 쓰는 글, 짓는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다 우리 각자 마음의 지문 아니겠는가.

 

인도의 산스크리스어로 바퀴(wheels)나 원반(disk)을 뜻하는 차크라(chakra/camera)’는 우리말로는 마음에 해당한다. 모든 건 마음에서 생기는 마음 짓이란 말일 게다. 산에 있는 모든 바위와 나무와 동물이 산심(山心)의 발현(發現/發顯)이고, 바다에 있는 모든 물고기와 해초와 산호가 해심(海心)의 발로이며,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이 천심의 발산이요 발광(發光/發狂)이라면, 우리가 느끼는 사랑은 이 모든 마음의 발정(發情/發精)이 아니랴.

 

또 산스크리스트어로 아바타(avatar)’는 신()의 화신(化身)으로 신이 천상계에서 지상계로 내려와 육체적 형상을 입는 것을 뜻하는데, 그럼 우주 만물이 다 우주의 마음(宇心)의 아바타로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니 내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고 우심(宇心)’이고, 우심이란 다름 아닌 사랑임에 틀림없어라. 따라서 만물은 이 사랑의 세포요 분자(分子)이어라. 꽃이 피는 것이 그렇고, 별이 반짝이는 것이 그러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 그러하리라.

 

 

BE STILL, MY HEART

 

Arise, my heart.

Arise and move with the dawn.

 

For night is passed

and the fears of night have vanished

with their black dreams.

 

Arise, my heart,

and lift your voice in a song;

 

For he who joins not the dawn

with his singing is but a child of darkness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27 09:46 수정 2020.05.2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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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