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코스미안은 사랑의 화신이어라

이태상

 



큰 그림이 숙명이라면 작은 그림은 운명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 가운데 지구라는 별에, 수많은 생물 중에 인간으로, 어떤 나라와 사회 그리고 지역에, 어느 시대와 시기에, 어떤 부모와 가정환경에, 어떤 신분과 여건에, 어느 성별로 태어나느냐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는가가 운명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숙명(宿命)(宿)’은 머무를 숙 자()이고 운명(運命)()’은 흐를 운 자()인 것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고정된 게 숙명이고 변하는 게 운명이란 뜻이 아닌가. 영어로는 destiny, doom, fate, fortune, lot 등의 단어가 사용된다. 영어 노래 제목에도 있듯이 넌 나의 운명(You Are My Destiny)’이라고 할 때는 넌 나의 종착지란 의미에서 넌 나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캐나다 가수 폴 엥카(Paul Albert Anka, 1941- )가 부른 노래 가사 첫 구절을 우리 한 번 함께 음미해보리라.

 

넌 나의 숙명

You are my destiny

그게 바로 너야 나에게는

That’s what you are to me

넌 나의 행복

You are my happiness

그게 바로 너야

That’s what you are

 

영어로 ‘It was my fate to be or to do’라 할 때 내가 어떻게 되거나 뭘 하게 될 운명 또는 숙명이었다고 하는가 하면, ‘운명의 총아라 할 때는 ‘a child of fortune’이라고 행운아란 뜻이고, ‘누구와 운명을 같이 한다할 때는 ‘cast one’s lot with some- one’이라고 내 몫(my lot)을 누구에게 건다고 한다. 그리고 ‘He met his doom bravely.’라 할 때처럼 ‘doom’은 불행한 종말을 가리킨다.

 

최근 영국에 사는 친구가 영국 여왕(Queen Elizabeth II, 1926 - )의 어렸을 때부터 찍힌 사진들을 동영상으로 보내온 것을 보고 나는 이렇게 한마디 코멘트를 답신으로 보냈다.

 

왕관의 노예로 90여 평생을 살고 있는 모습 보기 정말 딱하다

 

물론 세상에는 이 영국 여왕의 신세를 부러워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사랑을 위해 대영제국의 왕위를 버린 윈저공(Duke of Windsor, Edward VIII, Former King of the United Kingdom 1894-1972)을 떠올렸다.

 

조지 5(George V1865-1936)의 아들로서 19364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미국의 이혼녀 심슨부인(Wallis Simson1896-1986)과의 사랑 때문에 퇴위한 에드워드8세 얘기다. 당시 라디오를 통해 퇴위를 발표한 그의 퇴위사를 옮겨본다.

 

오래 고심 끝에 몇 마디 내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난 언제나 아무것도 숨기려 하지 않았으나 지금까진 헌법상 밝힐 수가 없었다. 몇 시간 전에 왕이자 황제로서 내 마지막 임무를 마쳤고 이젠 내 아우 요크공이 왕위를 계승했음으로 내가 할 첫 마디는 그에 대한 내 충성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를 나는 충심으로 하는 바이다.

 

백성 모두가 내가 퇴위하게 된 이유를 잘 알고 있겠지만 내가 결심하는 데 있어 지난 25년 동안 웨일즈 왕자 그리고 최근에는 왕으로서 섬기려고 노력해온 이 나라와 제국을 잠시도 잊지 않았음을 알아주기 바라노라.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뒷받침 없이는 왕으로서의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내 말을 백성들이 믿어주기를 바라노라. 또한 이 결정은 나 혼자 한 것임을 알아주기를 바라노라. 전적으로 나 스스로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었음을. 내 곁에서 가장 걱정해준 사람은 마지막까지 내 결심을 바꿔보려고 애썼다는 사실도. 무엇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최선이겠는가. 이 단 한 가지 생각으로 내 인생의 가장 심각한 이 결심을 나는 하였노라.

 

이렇게 결심하기가 좀 더 쉬웠던 것은 오랫동안 이 나라의 공적인 업무수행 교육을 잘 받아왔고 훌륭한 자질을 겸비한 내 아우가 즉시 내 뒤를 이어 제국의 발전과 복지에 아무런 차질이나 손실 없이 국사를 잘 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는 많은 백성들도 누리지만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축복, 처자식과 행복한 가정을 내 아우는 가졌다는 사실이었노라.

 

이 어려운 시기에 나의 어머님 국모님과 가족들로부터 난 위안을 받았고, 내각 특히 볼드윈 수상이 항상 나를 극진히 대해 주었으며, 각료들과 나 그리고 나와 국회, 우리 사이에 헌법상 어떤 이견도 없었노라. 내 선친에게서 헌법에 기준한 전통을 이어받은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었노라. 내가 웨일즈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 그리고 왕위에 오른 뒤 대영 제국 어디에 거주했든 간에 가는 곳곳마다 각계각층 사람들로부터 받은 극진한 사랑과 친절에 깊이 감사하노라.

 

이제 내가 모든 공직에서 떠나 내 짐을 벗었으니 외국에 나가 살다가 고국에 돌아오려면 세월이 좀 지나겠지만 언제나 대영 제국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언제라도 황제 폐하께 공인이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섬길 일이 있다면 주저치 않을 것임을 천명하노라.

 

, 이제, 우리 모두 새 왕을 맞았으니 그와 그의 백성 모두에게 행복과 번영이 있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노라. 백성 모두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왕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At long last I am able to say a few words of my own. I have never wanted to withhold anything, but until now it has not been constitutionally possible for me to speak. A few hours ago I discharged my last duty as King and Emperor, and now that I have been succeeded by my brother, the Duke of York, my first words must be to declare my allegiance to him. This I do with all my heart.

 

You all know the reasons which have impelled me to renounce the throne. But I want you to understand that in making up my mind I did not forget the country or the empire, which, as Prince of Wales and lately as King, I have for twenty-five years tried to serve.

 

But you must believe me when I tell you that I have found it impossible to carry the heavy burden of responsibility and to discharge my duties as King as I would wish to do with- out the help and support of the woman I love. And I want you to know that the decision I have made has been mine and mine alone. This was a thing I had to judge entirely for myself. The other person most nearly concerned has tried up to the last to persuade me to take a different course. I have made this, the most serious decision of my life, only upon the single thought of what would, in the end, be best for all.

 

This decision has been made less difficult to me by the sure knowledge that my brother, with his long training in the public affairs of this country and with his fine qualities, will be able to take my place forthwith without interruption or injury to the life and progress of the empire. And he has one matchless blessing, enjoyed by so many of you, and not bestowed on me, a happy home with his wife and children.

 

During these hard days I have been comforted by her majesty my mother and by my family. The ministers of the crown, and in particular, Mr. Baldwin. the Prime Minister, have always treated me with full consideration. There has never been any constitutional difference between me and them, and between me and Parliament. Bred in the constitutional tradition by my father, I should never have allowed any such issue to arise.

 

Ever since I was Prince of Wales, and later on when I occupied the throne, I have been treated with the greatest kindness by all the classes of the people wherever I have lived or journeyed throughout the empire. For that I am very grateful.

 

I now quit altogether public affairs and I lay down my burden. It may be some time before I return to my native land, but I shall always follow the fortunes of the British race and empire with profound interest, and if at any time in the future I can be found of service to his majesty in a private station, I shall not fail.

 

And now, we all have a new King. I wish him and you, his people, happiness and prosperity with all my heart. God bless you all! God save the King!”

 

-에드워드 8(Edward VIII) 11 December, 1936

 

그럼 (만으로) 나이 94세인데도 자식이나 손주에게 물려주지 않고 백발에 왕관을 쓰고 있는 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달리 윈저공의 경우는 왕관의 노예가 아닌 사랑의 노예였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권력이나 명예나 재산의 노예가 되기보다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게 비교도 할 수 없이 그 얼마나 더 행복한 일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왕위까지 버릴 수 있었을까. 그런데 사랑보다 더 무서운 건 생각하기에 따른 사상과 믿기에 따른 신앙이란 허깨비들이 아닐까.

 

지난 20165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칼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됐었는데 범인은 정신 병력을 가진 30대 남성으로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고 밝혔단다. 따라서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사회 운동이 일어났었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혐오의 근본 원인을 좀 찾아보자.

 

영어로 여성혐오는 misogyny라 하는데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 말고도 성차별을 비롯해서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의 성적 도구화까지 다양하다.

 

서양에서는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둥, 아담에게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게 해서 낙원에서 쫓겨나도록 한 것도 여성인 이브라는 둥, 구약성서 창세기 설화가 있는가 하면, 봉인 된 판도라의 항아리를 열어 세상에 죽음과 질병, 질투와 증오 같은 재앙을 불러온 것도 최초의 여자 판도라라는 그리스 신화가 있지 않은가.

 

동양에서도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어 우리 한국에서는 여성은 알게 할 것이 없고 다만 좇게 할 것이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그 근본이었다. 그래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까지 있어 오지 않았나.

 

중국에는 전족(纏足)이라고 계집아이의 발을 어려서부터 피륙으로 감아 작게 하던 풍속이 있었으며 일본에서는 공식 석상에서 아내는 남편과 나란히 걷지 못하고 세 걸음 뒤에서 따라가야 하는 등 온갖 폐습이 있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중동에선 여성들만 히잡을 착용, 마치 닌자처럼 복면을 하고 다녀야 하고, 아프리카에선 여성에게만 하는 검열 삭제라고 여성 생식기를 못 쓰게 만드는 미개한 짓거리가 아직도 자행되고 있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노래 “My my my Delilah Why why why Delilah”라는 팝송의 후렴구 ‘Delilah’는 웨일즈 출신 가수 톰 죤스(Tom Jones, 1940- )의 노래로 웨일즈인들에게는 국가에 해당하고,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0주년 행사에선 떼창을 했었는데 그 노랫말은 한마디로 하자면 데이트 살해. 사랑한 여인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걸 알고 칼을 휘두르는 내용이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마녀사냥의 사냥개나 숙명이든 운명이든 모든 신화와 전설과 인습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모든 걸 초월할 수 있는 사랑의 노예가 되어보리. 남녀 불문하고 우리 어서 남신(男神)은 그 씨를 말려버리든가 흔적도 없이 화장해 버리고 여신(女神) 시대로 천지개벽하자는 뜻에서 정현경의 여신의 십계명을 받아 우리 모두 지켜보리라.

 

여신은 자신을 믿고 사랑한다.

여신은 가장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한다.

여신은 기, , 깡이 넘친다.

여신은 한과 살을 푼다.

여신은 금기를 깬다.

여신은 신나게 논다.

여신은 제멋대로 산다.

여신은 과감하게 살려내고, 정의롭게 살림한다.

여신은 기도하고 명상한다.

여신은 지구, 그리고 우주와 연애한다.

정녕코, 코스미안은 사랑의 화신(化神/化身)이어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29 10:48 수정 2020.05.29 11:09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