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멍때리기’의 진화

이태상

 



우리는 수수께끼가 필요하다. 우린 아직 답이 없는 문제가 필요하다. 세상을 우리가 설명할 수 있다는 우리의 자신감에 바람을 빼고 소금을 뿌리는 존재가 뱀장어들이다.”

 

“We need enigmas. We need questions that aren’t answered yet. Eels argue with our confidence that the world is explained.”

 

스웨덴의 언론인 패트릭 스벤슨(Patrick Svensson, 1972 - )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다. 스웨덴에서는 이미 베스트셀러로 스웨덴의 가장 명예로운 문학상인 오거스트 상(the August Prize)’을 수상한 그의 저서 뱀장어 책(The Book of Eels: Our Enduring Fascination with the Most Mysterious Creature in the Natural World)’은 자연사(自然史natural history)와 개인사(個人史personal history, memoir)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사유를 잘 합성한 책으로 202055일 영문판으로도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억압과 약탈과 자포자기에 맞선 우리의 대답은 삶이라며 이런 삶을 사실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고 따라서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창의성을 문학 장르로 규정한 기자 출신 콜롬비아의 노벨문학상(1982)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1927-2014abriel Garcia Marquez)의 글이 아닌 말의 기록 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I’m Not Here to Give a Speech)’2016년 나왔다.

 

저는 한 줄 한 줄 글을 쓸 때마다 항상, 그 성과가 크든 작든, 시라는 포착하기 힘든 정신을 불러 일으키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에 제 애정의 증거를 남기려고 노력합니다. 시가 지닌 예언적인 힘, 그리고 죽음이라는 숨죽인 힘에 맞서 거둔 영원한 승리이기 때문입니다.”(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에서 발췌)

 

이 땅에 가시적인 생명체가 출현한 이후 3억 만 년이 더 흐르고 나서야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 장미가 생겼습니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원생대를 지나서야 비로소 인간은 증조부인 자바 원인과 달리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에 삶이 존재했고, 그 삶 속에 고통이 만연하고 부정부패가 판을 쳤지만, 우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행복을 꿈꾸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가브리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이 말을 내가 한 구절로 줄인다면 산문 같은 삶이 시적으로 승화된 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럴 때 우리 삶은 숨 하나하나가 꽃이 되고 별이 되며 무지개를 올라타게 되지 않으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삶이 시가 될 수 있을까?

 

어쩜 멍때리기가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원래는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는 뜻으로 쓰였으나 2013년 정신과 전문의 신동원의 멍때리기란 제목의 에세이가 나온 후 휴대폰과 인터넷에 혹사당하는 뇌를 쉬게 하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불교 용어인 무념무상(無念無想)이니, 고요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선정(禪定), 그리고 선정에 이르는 수양법인 참선(參禪)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이후로 이 멍때리기가 유행처럼 2014년에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처음으로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고, 2015년 중국 베이징 대회를 거쳐, 201657일엔 경기도 수원에서 제3회 국제 멍때리기 대회, 그리고 522일엔 서울시가 이촌 한강공원 청보리밭 일대에서 ‘2016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이 같은 멍때리기가 모바일과 인터넷 스트레스라는 공해에서 벗어나려는 현상이었다면, 2019년말부터 지구촌을 엄습한 코비드19로 상상도 못했던 인류의 실존적인 멍때리기초현상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어떻든 돌이켜 보자면, 얼마 전에 있었던 다음과 같은 외신 기사 두 개는 다르다면 좀 다르겠지만 그래도 일종의 멍때리기가 아니었을까. 대조적으로 하나는 형이하학적이고, 또 하나는 형이상학적으로 사랑의 샘을 파는, 아니면 사랑의 숨을 쉬는 멍때리기 말이다. 하나는 서양사회를 대표하는 영국, 또 하나는 동양사회를 대표하는 중국에서의 일이다.

 

최근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해외에서 방송 예정인 포르노 배우 오디션이 화제였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미러(The Daily Mirror)’를 포함한 각종 외신 매체들은 2016517일 영국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 팩터(The X Factor)’를 패러디한 섹스 팩터(The Sex Factor)’가 인터넷 방송 형식으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그 당시 보도에 따르면 제작사 측은 남녀 각각 8명의 참가자를 선정했으며 최종 우승자는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거머쥐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총 10회로 제작된다. ‘섹스 팩터는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과 진행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점은 출연자들이 춤이나 노래를 뽐내는 대신, 최고의 포르노 배우가 되기 위한 경쟁을 펼친다는 점이다.

 

심사위원은 현지 최고 포르노 스타들이 맡을 예정이다. 이들은 포르노 선배로서 후배들을 지도한다.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방송에 합류하게 된 키란 리는 영국의 포르노 스타로, 1,000편이 넘는 포르노에 출연했다고 한다. 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포르노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차세대 스타를 발굴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제작 관계자는 포르노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참가자들의 이야기와 개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새로운 성인 포르노 프로그램 시장을 개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중국에서 한 여성이 병든 남편과 함께 10년간 화장실에서 생활하며 두 아들을 명문대에 보낸 사연이다. 코비드19 바이러스 발생지로 악명이 높아진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A대학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이 학교의 체육센터 2층 구석에는 10m2가 채 안 되는 화장실이 있다. 바로 왕슈메 씨가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병든 남편과 함께 10년째 기거해온 공간 이다.

 

왕 씨는 이런 처지에서도 남편의 약값과 두 아들의 학비를 벌어야 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노래방, 학교, 찻집, 식당 등 청소와 음식점 서빙도 병행했다. 심지어 점심시간에도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된 하루는 밤 11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수면 시간은 4~5시간에 불과했다. 왕 씨의 이런 치열한 삶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두 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큰아들 샤오광은 2007년 재수 끝에 전국 명문대 중 한 곳인 우한대학에 입학했다. 샤오광은 졸업 뒤 최고의 명문 베이징대 대학원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시험에서 떨어진 뒤 저장성에 있는 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나 그는 꿈을 접지 않았고, 2014년 마침내 모친에게 베이징대 대학원 합격이라는 낭보를 전할 수 있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세 차례 도전 끝에 이룬 쾌거였다.

 

둘째 샤오쥔은 2015년 부모가 생활하는 A대학교를 졸업한 뒤 이 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A대학교 역시 중국정부의 고등교육 기관 집중 육성 프로젝트인 ‘211공정에 포함된 지방의 주요 명문대다.

 

현지 신문인 형초망은 2016523일 샤오광, 샤오쥔의 성공은 학업에 대한 모친의 전폭적인 지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왕 씨는 형초망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예전에 고향에서 임시교사로 일해본 적이 있다며 배우는 것이야말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어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미 연어는 알을 낳은 후 그 곁을 지키고 있는데, 이는 갓 부화되어 나온 새끼들이 아직 먹이를 찾을 줄 몰라 어미의 살코기에 의존해 성장할 수밖에 없기때문 이란다. 어미 연어는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며, 새끼들이 자신의 살을 마음껏 뜯어 먹게 내버려 둔다. 새끼들은 그렇게 성장한다. 어미는 결국 뼈만 남아 죽어가면서 세상의 가장 위대한 모성애를 보여준다는 얘기 말이다.

 

어느 부부의 이야기하나 소개해보리라.

 

결혼 20주년이 되는 어느 날 아내는 저에게 놀라운 제안 하나를 합니다.

 

당신에게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여자와 데이트할 기회를 드릴게요. , 저와 지켜야 할 약속 몇 가지가 있어요.”

 

아내의 뜻밖의 제안에 놀란 나에게 아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습니다.

 

첫째 : 어떤 일이 있어도 밤 10시 이전에 데이트를 끝내면 안 됩니다.

둘째 : 식사할 때 그녀의 이야기를 단 한 마디도 놓쳐선 안 됩니다.

셋째 : 극장에서 그녀의 손을 꼭 잡아줘야 합니다.

 

그렇게 아내로부터 몇 가지 당부를 들은 나는 설레는 기대감을 안고 데이트 장소로 갔습니다. 어떤 데이트일까. 누가 나올까. 내 아내가 꽃단장을 하고 나오는 건 아닐까. 아니면 우리 딸이 나올까. 그도 아니면 미모의 다른 여성일까. 넥타이를 고쳐 매며 기다리던 중 저만치서 우아한 검정 원피스를 입고 곱게 화장한 여인이 다가왔습니다.

 

아니, 네가 웬일이냐?”

어머니는 여기 어쩐 일이세요?”

 

당황하면서 어리둥절했던 우리 모자는 금세 아내의 마음을 알아채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되신지 10년이 된 어머니를 위해 아내가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던 것입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내와의 약속을 성실히 지켰습니다. 식사 시간 내내 어머니는 즐겁게 이야기하셨고 영화를 보는 내내 어머니의 손을 잡아 드렸습니다. 그렇게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 어머니를 집 앞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서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애비야! 오늘밤은 내 결혼식 날 빼고 칠십 평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서 꼭 전해줘라.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고.”

 

내 부모님과 남편의 부모님, 내 부모님과 아내의 부모님, 가끔은 그 경계를 과감히 허물어 봐야 하리라. 그 순간, 그분들의 겉모습이 아닌 마음이 보이게 될 테니까. 이 이야기에 덧붙여 내 젊은 날 에피소드 하나 적어보리라.

 

1960년대 내 첫 직장에서 34일의 연가로 첫 휴가를 얻어 나는 비행기로 어머니를 모시고 동해안 속초로 갔었다. 가서 보니 내 또래 젊은이들은 모두 애인이나 친구들이랑 왔지 홀어머니랑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일제때 서울의 승동소학교를 나와 정신여고 8회 졸업생인 모친께선 처녀 때 학부형 자격으로 남동생이 다니던 학교의 담임선생님으로 상처한 홀아비의 후처가 되었다. 전처의 전실 자식 셋에다 자식 열둘을 낳아 여섯은 어려서 잃고 나이 사십 대에 과부가 되셨다. 내가 현재 유일하게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자식일 뿐이다.

 

문득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몇 마디가 떠오른다. 그의 경구집(警句集) ‘모래와 커품(Sand and Foam, 1926)에 기록된 글이다.

 

영원토록 나는 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지.

모래와 물거품 사이를

만조의 밀물은 내 발자국을 지우고

바람은 물거품을 날려버리지.

그러나 바다와 바닷가는 영원토록 남아 있지.

 

I am forever walking upon these shores,

Betwixt the sand and the foam.

The high tide will erase my foot-prints,

And the wind will blow away the foam.

But the sea and the shore will remain

Forever.

 

한 번 내 손 안에 물안개를 채웠지.

쥐었던 손을 펴 보니, 보라

손안에 있던 물안개가 벌레가 되었어.

손을 쥐었다가 다시 펴 보니, 보라

한 마리 새가 되었어.

그리고 다시 한번 손을 쥐었다 펴 보니,

슬픈 얼굴을 한 사람이 위를 바라보고 있었어.

그래서 다시 한번 손을 쥐었다 펴 보니

아무것도 없는 물안개뿐이었어.

하지만 엄청나게 달콤한 노랫소리가 들렸지.

 

Once I filled my hand with mist.

Then I opened it and

lo, the mist was a worm.

And I closed and opened my hand again,

and behold there was a bird.

And again I closed and opened my hand,

and in its hollow stood a man with a sad face,

turned upward.

And again I closed my hand,

and when I opened it

there was naught but mist.

But I heard a song of

exceeding sweetness.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30 10:44 수정 2020.05.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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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