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코스미안의 역정은 우곡(宇曲) ‘코스모스 칸타타’이리 [3]

이태상

 



야망에 부푼 가슴을 온갖 꿈으로 채울 수도 있겠지만 그 꿈이 하나둘 현실이 되는 순간 허망스러워 허전해지지 않던가. 꿈이 실현되는 순간 그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기에 또 다른 꿈을 꾸어야 한다. 그러자면 그 가슴은 영원토록 채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가슴을 사랑으로 채울 땐 다른 아무것도 들어올 자리가 없고, 사랑은 욕심처럼 썩거나 꿈처럼 깨질 가능성도 없으며, 늘 가슴 저리도록 절절하게 새롭고 향기로울 뿐만 아니라 가슴 미어지게 한없이 슬프도록 모든 게 아름다워지지 않는가.

 

2010년 미국에서 출간된 나르시즘 역병: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시대를 살기(The Narcissism Epidemic: Living in the Age of Entitlement)’란 책이 있다. 이 저서의 공동저자인 두 심리학자 장 미쉘 퉹게와 더블유 키스 캠벨(Jean M. Twenge and W. Keith Campbell)1980년대부터 신체적인 비만처럼 사람들의 심리적인 비만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자애주의 나르시시즘이 급속 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며 특히 수많은 미국인들이 이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주장을 이 책에서 펴고 있다.

 

이 자아도취적인 자애주의는 비만으로 생기는 당뇨 같은 증상이기보다는 알코올 중독과 유사하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어쩜 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는지 모르겠다.

이게 어디 트럼프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전 세계 온 인류가 현재 겪고 있는 코로나19 역병이 총체적으로 자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종(Human Species)으로서의 인종주의(Human Racism) 특권의식(Entitlement)에서 자행해온 자연의 질서 파괴로 자초한 응분의 대가가 아니겠는가. 우리 인류도 그 일부분일 뿐인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고 온갖 패악질을 해온 결과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면한 아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은 어서 인본주의(人本主義) 물질문명의 자본주의를 탈피하고 자연의 자본주의(自本主義)’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얼마 전부터 인터넷에선 자신의 나르시시즘 지수를 측정해볼 수 있는 퀴즈도 있다고 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검사와 코로나 백신 개발과 병행해서 인본 나르시시즘 지수(Human-centered Narcissism Quotient)’ 측정기가 발명되어야 하겠다.

 

마치 옛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수스(Narcissus)(물질문명이란 인조人造 독성毒性) 연못에 비친 제 모습에 반해 익사하듯 오늘날엔 인스타그램이니, 페이스북이니, 트웟이니 하는 인터넷 바다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빠져 허우적대고 있지 않는가. 나르시수스가 사랑한 건 자기 자신이 아니고 제 그림자였듯이 세상에 비친 우리 인간의 모습도 실체가 없는 허깨비에 불과하지 않은가.

 

18세기 스위스 제네바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기준한 자에(self-love)를 프랑스어로 ‘amour-propre’라 했고, 그보다 더 건전한 자존심에 입각한 자애심을 ‘amour de soi’라고 일컬었다. 전자가 다른 사람의 인정과 호감을 사려는 얄팍하고 불안한 심리라면, 후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인) 자아를 발견하고 충족시켜 얻게 되는 자존감을 뜻하는 것이리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인) 자아(de soi)’는 다름 아닌 우주 자연 만물의 분신(分身)과 분신(分神)코스미안으로서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서 나를 포함한 우주만물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중자애(自重自愛)의 진정한 자애심(amour de soi)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몇 년 전 영국 BBC에서 교황 바오르 2(1920-2005)가 생전에 폴란드의 철학자 안나 테레사 티미에니에츠카(Anna Teresa Tymieniecka 1923-2014)라는 폴란드계 미국 유부녀 여성 철학자와 1973년부터 30년 넘게 서신 교환과 방문을 통해 맺은 서로 애정 어린(mutually affectionate)” 특별한 관계를 전했다.

 

1969년에 발간한 교황의 저서 행동하는 사람(Acting Person)’의 영역자로 만나 32년간 교류하면서 난 당신의 것이라는 안나의 고백에, “당신이 가까이 있을 때나 멀리 떨어져 있을 때나 언제나 나는 당신을 느낀다고 화답할 정도로 우정 이상의 친밀한 관계였음이 추측된다는 보도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영어로는 Plato, 428/427bce-348/347)의 대화편 총 36편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향연(Le Banquet, The Symposium)’에서 유래한 플라토닉 사랑 (Platonic Love)’은 순수하고 비성적(非性的)인 사랑을 의미하지만 비육체적이고 순전히 전적으로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사랑이 가능한 것일까?

 

달리 표현하자면 육체와 정신이, 몸과 맘이 분리될 수 있겠는가? 분리될 수 있다면 이를 정신분열증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육신분열증이라고 해야 하나.

 

미국의 월드북 백과사전(World Book Encyclopedia, 1979 Ed.)은 정신분열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정신분열증은 때때로 예고 없이 사고기능의 혼란을 가져오는 심각한 정신질환의 한 종류이다. 정신분열(schizophrenia) 이라는 말은 생각(phrenos, mind)’이란 말과 분열(schezein, split)’이란 말의 합성어로 사고(思考)가 현실에서 이탈하여 혼란되고 비논리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지,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생각(마음)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망상(妄想 delusion)을 하며 현실과 유리된 환상의 세계(fantasy world)에서 살고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음성을 듣기도 하는데 그런 음성이 신()으로부터 오는 계시라고 믿기도 한다. 어떤 환자는 정서(기분, 감정)와 행동(behavior)의 혼란을 일으킨다.

 

어떤 환자는 전혀 감정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가 하면 어떤 환자는 상황에 맞지 않는 감정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슬퍼해야 할 경우에 웃는 따위이다. 어떤 환자는 스스로 자신을 주변 사람들과 격리시키고 주로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음성과 대화를 한다.

 

정신분열증의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이 질병이 뇌세포 기능에 관련된 특정 뇌 화학물질의 유전적 결함에서 오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뇌화학물질이란 신경 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을 말하는데 이 물질은 뇌신경 세포 간의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특정 뇌세포로 하여금 과다한 양의 도파민(dopamine)인 신경 전달물질의 일종을 분비하도록 하는 기능 결함이 이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월드북 백과사전에는 정신분열증과 종교와의 관게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한국의 김정일 박사(서울정신병원 정신과 의사)1991년 여성동아 11월호에 기고한 장문의 글 광신도, 종교와 정신병의 합작품이다에서 정신분열증은 광신적 종교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한국의 전통문화에서는 무당(여자)과 박수(남자)가 있듯이 서양에서는 남자 마법사(wizard)와 마녀(witch)가 있고, 이들이 하는 일을 우리는 푸닥거리나 굿이라고 하는가 하면 서양에선 마법, 마술(sorcery)이라 한다.

 

무당이나 마법사 또는 점쟁이나 선지자 혹은 예언자가 되려면 신내림 또는 신의 계시를 받는다고 하고 아니면 직업적인 가업으로 물려받는다는데,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이다 신부다 수녀다 목사다 하는 것도 모두 다 일종의 신과 인간의 중보자(仲保者) 역할을 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흔히 수녀들은 자신들의 남편이 예수라고 믿고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무당의 신비스런 체험에 등장하는 천상계(天上界) 신처(神妻)와 무당 사이에 성적 감정이 개입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고 한다. 접신체험에서 신비적인 사랑과 육체적 사랑 사이의 밀접한 관계는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다. 따라서 무속(巫俗)의 제의(祭儀)에 나타나는 에로틱한 요소는 무당과 천상계 신처와의 단순한 관계를 넘어선 것이란다.

 

마찬가지로 플라토닉 사랑이란 것도 일종의 정신과 육신이 분열된 상태에서 사랑이란 느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육체적으로 성적(性的) 접촉 없이도 성관계하는 것 못지않게 어쩜 그 이상으로 친밀감 내지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면 시간과 공간은 물론 육신과 정신 그리고 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경계까지 초월하는 경지일 수도 있으리라.

 

어떻든 지난 수천 년 동안 서양의 근시안적이고 독선독단적인 신본주의(神本主義)와 인본주의(人本主義)의 물질문명으로 온 인류를 우리 동양 옛날 선인들의 상식(常識 Common Sense)’ 이었던 피아일체(彼我一體)’물아일체(物我一體)’ 그리고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천도교(天道敎)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부터 분리, 분열시켜오지 않았는가.

 

, 그래서 앞에 언급한 장 자크 루소도 자연으로 돌아가라(Back to Nature)”고 했으리라.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세상에 두 번 태어난다. 첫 번째는 존재하기 위해, 두 번째는 살아가기 위해.”

 

“We are born, so to speak, twice over; born into existence, and born into life.”

 

그런데 그동안 우리 인류는 어찌 살아왔는가.

 

세상에 근본적인 원리를 찾기 어렵지만 과학적인 몇 가지 근본 원리는 자연현상을 설명해주고 있다. 예를 들자면 만유인력이다 상대성 원리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다, 그리고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하는 엔트로피(entropy)’가 있다. 어원학적으로 변화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 엔트로피란 단어는 열역학 (thermodynamics)에서 자연현상 중에 발생하는 에너지의 압력, 온도, 밀도 등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이 원리가 오늘날 정보통신의 근간을 이룬다고 한다. 말하자면 물은 아래로 흐르고 산은 낮아지며 골짜기는 높아지는가 하면 우주는 팽창한다는 식으로 모든 자연현상 세상만사가 다 연결되고 차이가 없어져 평형을 이루게 한다는 원리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새뮤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의 시 한 어린아이의 물음에 답하다 (Answer to a Child’s Question)’가 있다.

 

한 어린아이의 물음에 답하다

 

새들이 뭐라고 하는지 묻는거냐?

참새, 비둘기, 홍방울새

그리고 개똥지빠귀는 말하지.

난 사랑해 또 사랑해!”라고

겨울엔 새들이 조용해,

왜냐하면 바람이 너무 세거든;

바람이 뭐라 하는지 나는 몰라.

그러나 바람은 큰소리로 노래 부르지

그래도 겨울은 지나고 햇볕이 따뜻해지면

초록잎이 나고 꽃들이 피어나며

새들이 노래하고 사랑하는 일들

이 모두가 다 함께 돌아오지.

종달새는 기쁨과 사랑에

가슴 벅차 노래 부르고

또 부르고 끝없이 영원토록 부르는 거야

난 내 사랑을 사랑해, 그리고

내 사랑이 날 사랑해라고

 

Answer to a Child’s Question

 

Do you ask what the birds say?

The sparrow, the Dove,

The Linnet and Thrush say,

“I love and love!”

In the winter they’re are silent the wind is so strong;

What it says, I don’t know, but it sings a loud song.

But green leaves, and blossoms, and sunny warm weather,

And singing and loving all come back together.

But the Lark is so brimful of gladness and love,

That he sings, and he sings; and for ever sings he

“I love my Love, and my Love loves me!”

 

, 그래서 우리 동양에서는 예부터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이라고 했으리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이 자연을 더 이상 파괴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해지리라.

 

어째서 음악이 우리를 깊이 감동시키는지, 그 이유는 우리 청각의 울림이 원래 우주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The reason why music has the ability to move us so deeply is that it is an auditory allusion to our basic connection to the universe.)”

 

2016년 출간된 물리학의 재즈(The Jazz of Physics: The Secret Link Between Music and the Structure of the Universe)’에서 트리니대드(Trinidad) 태생의 미국 우주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 스티븐 알렉산더(Stephon Alexander,1971 - ) 박사가 하는 말이다.

 

음악가이면서 미국 브라운 대학(Brown University)의 물리학과 천문학 교수인 저자는 묻는다.

 

만일 우주의 구조가 진동 패턴의 결과라면 (뭣이 진동을 일으키는 것일까)? 그리고 그 진동이란 게 우주가 마치 악기처럼 작동한다는 뜻인가?”

 

“If the structure of the universe is a result of a pattern of vibration? And does that vibration mean that the universe is behaving like an instrument?”

 

우리가 주위에서 발견하는 가장 미세한 분자로부터 가장 큰 은하계 성군(星群)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리적인 구조의 핵심이 진동과 울림이라는 게 알렉산더 박사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는 재즈와 우주의 유사성을 천착하면서 이 유사성을 음악이라고 한다. 우주의 노래가 재즈와 유사하다는 말이다.

 

서양의 양자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유사성을 탐구한 베스트셀러 과학 서적으로 1975년에 나온 물리학의 도(The Tao of Physics)’에서 그 저자인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 현대 생물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1939 - )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은 신비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고, 신비주의는 과학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인간은 둘 다 필요하다.”

 

“Science does not need mysticism and mysticism does not need science, but man needs both.”

 

카프라는 서양에서 동양사상과 현대물리학을 접목시키는 신과학 운동(New Science Movement/New Age Science)을 본격적으로 활성화시킨 물리학자로 이 물리학의 도()’는 기존 서양 과학의 근간이 된 서양철학에선 입자와 우주는 기계부품처럼 기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인 반면 동양철학에선 입자 와 우주, 곧 부분과 전체는 기계적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 된 물아일체(物我一體)로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음()과 양()의 상보성(相補性)을 깨닫는 일이라고 그 차이점을 명쾌하게 지적한다.

 

도교와 유교에서 말하는 도()는 주역(周易)에서 음()과 양()의 순환을 뜻하고 음에서 양으로 또 양에서 음으로의 순환을 도()라고 하는데, 도를 통해 우주의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하늘과 땅이, 음과 양이, 합일해서 춤을 추는 과정이 우주 만물 천지창조의 음악, 곧 코스미안의 역정(歷程) 우곡(宇曲)코스모스 칸타타(Cosmos Cantata)’가 되는 것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02 10:40 수정 2020.09.14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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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