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순간순간의 숨이 시가 되어라

이태상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우울증이나 불안증 증상을 보이는 미국인이 급증해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집콕하면서 술만 많이 마시다 보니 가정폭력이다 살인이다 자살이다 이혼 사례도 폭증하고 있다는 보도다.

 

몇 년 전 내 직장 동료인 러시아어 법정통역관으로부터 들은 조크를 옮겨본다.

 

두 남자가 술 파는 가게 앞으로 늘어선 줄에 서있다. 보드카를 사기 위해서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제 자리를 좀 지켜달란다. 이게 다 고르바초프의 반() 알코올 정책 때문이라며, 크렘린으로 달려가서 고르바초프 얼굴에 한 방 먹이고 오겠노라고 했다. 몇 시간이 지나 돌아온 그에게 그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남자가 정말 고르바초프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리고 왔냐고 묻자, 아니라고 낙담한 표정으로 하는 그의 말이 크렘린에 늘어서 있는 줄은 여기보다도 더 길더라. (The line at the Kremlin was even longer.”라고 말한다.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1719)’의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Daniel Defoe 1660-1731)의 다른 작품 잭 대령(Colonel Jack, 1722)에 술의 마력을 잘 나타낸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악마가 한 젊은이를 보고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라고 꾀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그건 못 할 짓이라고 말을 안 들었다. 그러면 어머니와 동침하라고 꼬드겼다. 그것은 절대로 못 할 짓이라고 완강히 거부했다. 그렇다면 집에 가서 술이나 퍼마시라고 꼬셨다. 그러자 , 그야 할 수 있지대답하고 정말 진탕만탕 술을 마신 후 이 젊은이는 곤드레만드레 되어 술기운으로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의 어머니를 겁탈했다.

 

디포가 남긴 말 중에 이런 것들이 있다.

 

신이 어디든 기도의 집을 세울 때마다 거기에 악마는 언제나 예배당을 짓는다. 그런데 잘 좀 살펴보면 후자에 신도들이 가장 많다.”

 

“Whenever God erects a house of prayer, the devil always builds a chapel there; and it’ll be found, upon examination, the latter has the largest congregation.”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한 모든 불만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데서 생기는 것 같다.”

 

“All our discontents about what we want appeared to spring from the want of thankfulness for what we have.”

 

문제 중의 문제로 삼아야 할 일은 문제를 배가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다.”

 

“In trouble to be troubled, is to have your trouble doubled.”

 

다이아몬드 원석같이 영혼은 육체 속에 담겨있다. 갈고 다듬지 않으면 그 광채를 영원토록 발하지 못하리라.”

 

“The soul is placed in the body like a rough diamond, and must be polished, or the lustre of it will never appear.”

 

술이 그 좋은 예가 되리라. 그리고 어원학적으로 술의 성분 알코올과 영혼이란 뜻의 영어 단어가 같은 spirit이란 사실이 매우 신기하고 흥미롭다. 오늘날 미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자살률의 그 주된 이유가 알코올과 마약 중독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 사정이 나쁘고 앞날이 캄캄해 희망이 없어서, 사회적인 거리두기로 촉발된 심리적인 거리감 까닭에 너무 외로워서, 삶의 스트레스가 너무 크고 사는 재미가 너무 없어서, 등을 구실 삼아 많은 경우 현실 도피책으로 술이나 마약에 의존하게 되는가 보다.

 

내가 직접 겪었고 내 주위에서 일어난 예를 좀 들어보리라.

 

나도 젊었을 때 술을 너무 좋아하다 못해 주점 해심(海心)’이란 이색 대폿집까지 차렸었고, 만취 상태에서 제대로 데이트 한 번 안 해본 아가씨와 사고 치는 바람에 서로 맞지 않는 가정불화의 결혼 생활을 하느라 20년 동안 우리 두 사람은 다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다.

 

내 현재 아내는 서독 간호사로 갔다가 만난 미군병사와 결혼해 딸 둘을 낳고 이혼한 여인으로, 나와 재혼해 30여 년째 살고 있는데, 큰딸은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아빠 같은 알코올이나 마약중독자를 치료해 보겠다고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다.

 

그러다 20여 년 전 별세한 자기 아빠와 많이 닮은 남자 변호사를 만나 결혼했으나 남편이 자신은 결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며 치료받기를 계속 거부해 십 년 가까이 갖은 설득과 노력을 다해본 끝에 결국 이혼한 후 전 남편은 몇 년 전 타계하고 말았다.

 

술이나 섹스나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든 또는 어떤 종교나 이념이나 사상이든, 거품이나 구름 같은 이 신기루에 홀리고 취한 사람 치고 자신이 중독자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극히 드믄 것 같다. 무엇에 흥분 도취 열중 중독되게 하는 마취제 같은 걸 영어로 intoxicate라고 하는데 toxic은 독성(毒性)이 있다는 뜻이고, toxin이란 독소(毒素)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현재 온 지구촌에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 독성 바이러스를 비롯해 독약 같은 음식이거나 물귀신 같은 사람이고 간에 독성이 있는 건 무조건 피하고 멀리하는 게 상책이리라.

 

그뿐만 아니라 현실과 삶 자체에서 모든 자극과 흥분, 슬픔과 기쁨, 희망과 실망, 환상과 환멸, 쓰고 단 맛을 다 볼 수 있고, 변화무쌍한 날씨와 사정을 다 겪으며, 하늘과 땅과 사람 천지인(天地人)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자연적 삶의 축복을 누리기만도 너무너무 벅찬 일인데, 원석을 보석으로 깎아 빛낼 일 만도 시간이 너무너무 부족하기만 한데, 그 어찌 우리가 한순간인들 가공의 허깨비에 홀려 허송할 수 있으랴.

 

술 마시지 말자 하니, 술이 절로 잔에 따라진다.

먹는 내가 잘못인가. 따라지는 술이 잘못인가.

잔 잡고 달에게 묻노니, 누가 그른가 하노라.

 

이와 같은 작자를 알 수 없는 시조가 있듯이 초반에는 사람이 술을 먹다가 조금 지나면 술이 술을 먹게 되고 종국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주당들의 격언이 있지 않은가.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리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백오십 원 훔쳐 아침 해장으로 간다.

막걸리 한 잔에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랴!

 

근대사에 마지막 기인으로 불렸던 천상병의 비 오는 날이란 시다. 시집 요놈요놈 요 이쁜놈에 실려 있는 이 시 귀천(歸天)’을 나도 무척 좋아한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란 책에서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마음과 눈이라고 천상병은 소개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경애하는 시인이지만, 나는 천상병 시인을 무책임하고 무능한 인간실격자요 인생낙오자의 표본으로 보고 싶다.

 

물론 우리는 동백림 사건 때 모진 고문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천상병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이 너무도 어처구니없이 비통하고 비참한, 군사정권 아니 동서 냉전의 강요 된 남북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대표적인 제물임을 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시인은 우주자연만물을 극진히 사랑하면서 삶에 미치도록 몰입해 순간순간에서 영원을 사는 사람이다. 황홀하도록 사랑에 취해 살다 코스모스바다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그 한 예를 들어보리라.

 

지난 2016531일 세계 서핑 리그 피지 여자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3위를 차지한 베타니 해밀톤(Bethany Hamilton)은 몸으로, 그것도 팔이 하나 없는 몸으로 더할 수 없도록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썼다. 하와이 출신 베타니는 서핑 좋아하는 부모 따라 걷기 전부터 바다에서 살면서 13살 때인 200310월 이른 아침 서핑을 나갔다가 상어의 공격을 받아 왼쪽 팔을 잃었다.

 

또 한 예를 들어보자.

 

201663일 세상을 떠난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1 942-2016)도 팔이 아니라 백인이라는 백상어에게 물려 두 날개를 잃고도 나비처럼 떠서 벌처럼 쏘는밤하늘에 반짝이는 시를 썼다.

 

흑인이란 이유로 레스토랑 입장을 거절당하자 알리는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버리고, 백인들이 노예에게 지어 준 성을 쓰지 않겠다며 자신의 캐시어스 클레이(Cassius Clay)란 이름도 버리고 개시어스 엑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가 이슬람 지도자 엘리야 무하마드(Elijah Muhammad1897-1975)의 이름을 따 아예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그는 나는 알라를 믿고 평화를 믿는다. 백인 동네로 이사할 생각도 없고 백인 여자와 결혼할 생각도 없다. 나는 당신들 백인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옛날 로마 시대 노예들을 검투사로 죽기 살기로 싸움을 붙여 즐겨 관람하던 잔인한 경기의 잔재인 복싱이란 링에서보다 링 밖의 세계란 무대에서 알리는 약자들의 인권 챔피언이었다. 1942년 흑인 노예의 손자로 태어난 알리는 스스로를 민중의 챔피언 (people’s champion)’이라고 불렀고, 1967년 베트남전 징집 대상이 되었지만, “이봐, 난 베트콩과 아무런 다툴 일도 없다. 어떤 베트콩도 나를 깜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Man, I ain’t got no quarrel with them Viet Cong. No Viet Cong called me nigger.”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해 선수 자격을 박탈당하고 징역 5년 실형을 선고받았었다.

 

알리가 남긴 수많은 시적인 말 중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15마디만 인용해보리라.

 

1. 내가 얼마나 지독한지 약조차 병이 나 앓게 된다.

 

2. 너를 지치게 하는 건 네가 오를 산들이 아니고 네 신발 속에 들어간 돌 조각이다.

 

3.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면 내 가슴이 믿게 되고 그러면 내가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4. 하루하루 매일이 네가 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그런 날이 꼭 올 테니까.

 

5.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날개가 없는 거다.

 

6. 불가능이란 말은 단지 그들에게 주어진 바꿔야 할 세상을 그들이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대신 그 현실에 안주하려는 소인배들이 둘러대는 거창한 단어일 뿐이다. 불가능이란 사실이 아니고 의견이며 결코 선언이 아니다. 도전에 맞서는 대담성이다. 따라서 불가능이란 가능성이고 한시적이며 아무것도 아니다.

 

7.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은 네가 지불할 이 지상에서의 네 숙박료다.


8. 날짜를 세지 말고 매일이 보람되게 하라.

 

9. 위험을 무릅쓸 만큼 용감하지 못한 자는 인생에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리라

 

10. 나는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11. 나이는 네 생각대로다.

 

12. 나는 얼마나 빠른지 어젯밤 호텔방 전기 스위치를 끄고 불이 나가기도 전에 침대에 들어갔다.

 

13. 내가 하는 조크는 진실을 말하는 거다. 그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농담이다.

 

14. 강들, 연못들, 호수들, 시내들 모두가 다른 이름이지만 다 물이듯이 종교들도 다른 이름들이지만 모두가 진리들이다.

 

15. 노년은 한 사람 일생의 기록이다.

 

, 우리 각자의 삶, 아니 순간순간의 숨이 시가 되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03 10:52 수정 2020.09.1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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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