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움이 넘쳐나는 북유럽 4국과 발트 3국

제2부 노르웨이에서는 자연이 스스로 말을 한다

자연이 밪어낸 절경 피요르드와 폭포

북유럽은 절제된 미학의 매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환상적인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로맨틱함에 심적 여유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여행지다.

 

그리움은 모두 북유럽에서 왔다.’ 라는 어느 여행 수필의 제목처럼 북유럽은 내게 어떤 그리움으로 다가올까? 삶이 지칠 때 떠올릴 그 그리움은 분명 즐거움으로 다가오리라. 그리움즐거움이 될 거라는 확신을 지닌 채 북유럽의 2번째 나라 노르웨이의 풍경 속으로 뛰어든다.

 

노르웨이의 조상은 북쪽에서 온노르드 인이다. ‘노르웨이(Norway)’라는 이름도 8~11세기 해상 활동이 왕성하던 바이킹 시대 때, 남쪽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항해하는 길을 북쪽으로 가는 길로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오슬로에서 골까지 가는 2시간은 그야말로 눈이 호강하는 시간이다. 골까지 가는 길은 숲길 사이로 루피너스라고 불리는 핑크색 야생화가 지천에 깔려있다. 한 구비 돌면 나오는 자작나무 숲, 폭포, 호수, 흰 눈을 머리에 인 설산, 잘 다듬어진 캠핑장 등... 숲의 나라 노르웨이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자연이다.

 

노르웨이의 숲과 호수에 오고 싶었다. 와서 보니 호수에 비친 숲의 반영이 더 아름다웠다.

 

골을 지나면 나오는 게일로는 노르웨이 최고의 스키장이 있는 곳이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들어앉은 집들 중에는 잔디로 지붕을 덮은 집들이 많이 보인다. 눈 때문에 지붕은 높은 삼각형이고, 진흙에다 송진을 섞어 칠한 전통 목재 가옥은 짙은 브라운 색깔이다.

 

게일로 길가 호텔 1층이 잔디로 덮여 있다. 단열 효과가 뛰어나 겨울이 긴 이곳에서는 최고의 보온 방법이다.

   

게일로를 출발하니 점차 고도를 높여가던 대지는 어느덧 1m를 넘긴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의 풍경은 확연히 변해있다. 푸름을 자랑하던 숲은 오간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드넓고 황량한 평원에는 빙하의 침식작용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호수와 강들이 널려있다. 초지와 작은 소()가 반반인 대지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멀리 빙하에 덮인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앞은 여름이건만 풍경은 여름의 문턱을 넘어섰다. 바로 하당에르비다 국립공원이다. 1200~1500m 해발에 위치한 이곳은 서울 면적의 10배다. 생전 처음 대해보는 낯선 풍경이다. 마치 외계에 온 듯 어떤 글이나 말로 이런 느낌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저 오감으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길 양옆에는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기는 긴 장대들이 쭉 꽂혀 있다. 겨울철 제설작업을 할 때, 이곳이 길임을 알려주는 표시라는데 장대 끝까지 눈에 묻히기도 한단다.

  

9월이 되면 이 길은 막힌다. 아마 다음 해 4월 이후나 되어야 다시 열리게 될 것이다. 그때는 아무도 없는 고원은 적막강산, 오롯이 하늘만 향하게 되는 얼음나라, 그야말로 겨울왕국이 된다. 바위에 낀 연초록의 이끼들. 존재의 가치는 아름다움이나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니거늘, 이날 빙하가 옮겨놓은 바위에 붙어서 억척같은 삶을 사는 꽃보다 고운 이끼의 노래를 들으니 눈물이 난다. 한낱 보잘 것 없는 이끼지만 순수한 자연의 진실 앞에서는 눈물이 절로 난다.

   

여름이 끝나는 9월이 되면 이 땅은 다시 깊은 동면에 빠지게 된다. 연초록 이끼는 단풍이 들어 광야를 붉게 물들인 후 눈에 묻힌 채 이듬해 6월까지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로 산다.


고원의 정점을 지나 깊은 협곡 아래로 내려서자 엄청난 굉음이 들려온다. 도로 건너편 거대한 바위 절벽에 하당에르비다 국립공원의 가장 빼어난 절경인 뵐링 폭포가 엄청난 물보라를 내 품고 있다. 2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쪽에서는 돌과 돌 사이를 구르다가 아래쪽에서는 수직으로 내려 곶이는 모양새다. 높이는 182m이고, 막힘없이 낙하하는 최대 높이는 163m나 된다고 한다. 폭포의 꼭대기에 건물 몇 동이 보인다.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포슬리 호텔이다. 여름 한 철에만 문을 여는데, 비싼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휴가 시즌 수개월 전에 예약이 마감되는 인기 있는 호텔로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그리그가 휴가 때마다 찾아와 휴양을 겸해 작곡 활동을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뵐링 폭포. 자신의 품에 안겨 기쁨과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페르귄트를 바라보며 그녀가 불러준 ‘솔베이지의 노래’ 가 우렁찬 폭포 소리 사이로 아스라이 들리는 듯하다.

  

플롬 산악 열차를 타기 위해 하당에르비다 국립공원에서 가까운 보스로 이동한다. 보스는 베르겐에서 뮈르달 가는 베르겐 철도가 지나가는데, 여기서 뮈르달을 가야 플롬 산악 열차를 탈 수 있다. 산악 지대인 보스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공습을 받아 거의 초토화 되었다가 다시 재건된 도시다.


고산도시 뮈르달은 베르겐 철도와 플롬 철도가 만나는 곳이다. 역에 도착하니 뮈르달과 플롬 사이를 운행하는 플롬 산악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해발 886m에서 출발한 기차는 1시간 동안 20의 철로를 휘감듯이 돌아 해발 2의 플롬역에 도착한다. 창밖으로 아찔한 협곡이 웅장하게 펼쳐지고, 11개의 역과 총길이 6에 이르는 20개의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유명 관광지를 통과할 때 마다 우리나라 여자 아나운서 멘트 수준의 우리말 안내 방송과 모니터에 한글 자막까지 나오니 반갑기 그지없다.

진녹색 플롬 산악 열차. 그림 같은 풍경 속을 달린다 해서 애칭이 ‘로맨틱 열차’다.

 

산등성이를 지날 때마다 까마득한 높이의 폭포들이 포효하듯 물줄기를 토해낸다. 그렇게 흘러내린 물은 시내가 되어 협곡 사이를 흐른다. 커다란 바위와 숲, 폭포가 한 몸으로 섞인 산골짜기에는 작고 예쁜 집들이 옹기종기 서 있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조금 전의 풍경을 압도하는 더 황홀한 장면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열차는 노르웨이 소박한 산골 마을의 속살을 보여주며 달린다.

  

2차 대전 때인 1923년 독일군이 군수 물자 수송을 위해 착공했는데 공사가 잠시 중지되었다가 20여 년 만에 완공된 단선 궤도로 철로 주변에는 아름다운 산악마을과 목장, 웅장한 뮈르달 폭포가 자리해 열차 안에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쉼 없이 멋진 풍경을 실어 나르던 산악열차는 굉음 앞에서 잠시 멈춘다. 90m가 넘는 키요스 폭포 옆에서 붉은 치마를 입은 훌드라라는 요정이 나타나 노래하면서 춤을 추다가 이내 사라진다. 훌드라는 숲에서 사람을 유혹하는 여자 요정이라는 뜻이다. 10분이 지나면 여행객 들은 모두 기차에 올라야 한다. 이나마도 성수기에만 볼 수 있는 이벤트다. 짧은 시간에 여자 요정을 본 탓이지 홀린 듯 정신이 몽롱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키요스 폭포. 무지개가 끝나는 바위 위에서 여자 요정 훌드라가 춤추고 있다.

 

산악 열차는 세계 최장 24.5km의 라르달 터널을 지나 인구 500명의 작은 마을 플롬에 도착한다. 송네피오르드 가장 안쪽 마을 래르달로 이동한다. 호텔 옆 송네 피오르드는 석양에 젖어든다. 단 며칠만이라도 모든 상념은 내려놓고 그냥 머물고 싶은 곳이다.

 

래르달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송네 피오르드에서 가장 많이 찾는 포트네스-만헬러 구간의 포트네스에 도착한다. 거대한 빙하가 노르웨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곳곳에 생채기를 낸 뚜렷한 흔적에 바닷물이 밀려들어온 것이 피오르드다. 송네 피오르드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204km이고, 수심도 1,300m에 달한다. 페리 유람선에 승선하면 20분 걸려 반대쪽 만헬러에 내려다 준다. 20분의 짧은 시간에 보여주는 한편의 파노라마는 카메라와 눈으로만 담기에는 역부족이어 가슴으로도 쓸어 담아야 한다. 바람이 차서 유람선 휴게실 차장에서 스쳐가는 풍경을 쫓다보니 양에 차지 않아 다시 갑판 위로 올라간다. 바닷물 위에 수직으로 우뚝 솟아올라 병풍처럼 늘어선 웅장한 산줄기를 보니 대자연의 장엄함에 절로 숙연해진다.


유람선 선상에서 보이는 해안가에는 싱그러운 초록으로 물든 그림 같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만헬러에 내린 뒤 송달을 지나 한참을 달린다. 주변에 자그만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게 보인다. 히테(hytter)라고 부르는 통나무집인데, 노르웨이 사람들은 집 사고 차 산 다음 사는 것이 히테다. 텐트가 없는 사람들이 묵어갈 수 있도록 시설을 대여해 주는데, 북유럽에서는 이런 시설이 캠핑장마다 갖추어져 있어 물가가 비싼 북유럽에서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시설은 없는 것 같다.

 

피얼란드 빙하 박물관에 도착한다. 박물관은 저명한 건축가 스베레 펜이 스칸디나비아의 자연 암석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콘크리트와 자연의 환상적인 조화를 보여주는 걸작품이다. 북유럽의 가장 큰 빙하인 요스테달 빙하 아래의 계곡에 세워졌으며, 그 형태 역시 근처의 빙하를 연상시킨다. 박물관 내부에서 방문객들은 눈과 얼음에 대한 실험을 경험하고, 요스테달 빙하에 대해 배운다. 둘러싸인 산지를 닮은 이 미술관은 마치 그 자리에서 자연적으로 생겨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창문은 크기도 모양도 다양하며, 외벽은 기울어지고 층이 졌고, 스키 슬로프처럼 생긴 길고 낮은 차양이 입구를 장식한다.


박물관 입구의 맘모스. 3만 년 전에는 여기에서도 살았으리라.

 

박물관 옥상에서 바라본 요스테달 국립공원과 요스테달 빙하

 

얼음인간 욋치. 1991년 알프스 빙하에서 발견된 5,300년 전 선사시대 사람이다.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발견된 미이라 조사 결과, 사인은 어깨에 맞은 화살로 인한 상처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근처에 있는 요스테달 뵈이야 빙하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빙원을 자랑하는 푸른 빙하라 불리는 요스테달 빙원의 한 자락이다. 1994년에는 빙하가 두 곳의 산 사이 능선을 거의 덮었고 그 밑의 강에는 얼음이 떠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매년 1.5m씩 녹아 점점 사라지고 있어 지구 온난화를 실감하게 해준다. 전망대 근처의 카페는 투명 유리로 되어있어 빙하를 감상하며 차를 즐길 수 있다.

 

뵈이야 빙하. 요스테달 국립공원의 끝자락에 있다. 산허리 아래의 빙하가 마치 잘려 나간 것 같아 안타깝다.

  

요스테달산을 관통하는 피얼랜드 터널을 지나 헬레쉴트로 달려간다. 헬레쉴트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V자형 게이랑헤르 피오르드 유람선을 탑승하는 작은 마을이다.

헬레쉴트 포센. 표효하듯 토해내는 폭포수는 마을 중앙을 흐르는 하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엄청난 크기의 유람선이 협곡까지 들어와 운행되고 있은데, 다양한 인종들로 갑판 위는 이미 초만원이다. 한글로 된 브로셔가 선실에 비치되어 있고, 우리말 안내 방송까지 나오니 갑판 위 좌석을 모두 선점한 유럽 관광객들을 쳐다보며 괜히 우쭐해한다. 선상에 오르면 마치 아이맥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압도적인 경관이 다가온다. 이런 마법 같은 풍경 때문에 노르웨이를 찾는 여행자 대부분이 버킷 리스트 1순위로 손꼽는 곳으로, 200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헬레쉴트와 게이랑에르 마을 사이를 운행하는 유람선. 1시간 동안 천국 여행을 시켜 준다.


협곡 양쪽에는 빙하가 녹아내려서 만든 수많은 폭포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피오르드 중간 즈음에서 만나는 7자매 폭포가 최고 명소다. 멀리서 폭포를 바라봤을 때 여인 7명의 머리카락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독특한 이름이다.

 

 

칠자매 폭포. 300m 높이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대단히 근사하다.

  

유람선 매점에서 우리네 컵라면을 닮은 미스터 리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사서 먹는다. 노르웨이에 귀화한 이철호씨가 창업한 브랜드다. 언젠가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라는 책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6.25전쟁 직후에 노르웨이로 이민을 온 그는 구두닦이와 조리사 등의 일을 하다가 라면 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린다.

 

유람선에서 먹은 미스터 리 라면. 이철호씨는 노르웨이 이민자 가운데 최초로 국민장과 기사 작위까지 받았으며, 노르웨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교과서에 그의 이야기가 실릴 정도란다.

   

1만 년 전 빙하가 빚어낸 절경인 피오르드 해안, 빙하를 품고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산군, 코발트색 하늘이 바닷물에 오버랩 된 지고지순한 물색. 지금껏 마주한 노르웨이의 대자연 중 어떤 풍경도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보다 경이롭지 못하다.

 

 

유람선 종착지 게이랑에르 마을. 험한 산에 둘러싸여 있어 산허리에 가는 실 같은 도로가 나있다.

 

게이랑에르 선착장에서 돌아보면 보이는 빙하가 흘러내리는 저 산 너머엔 어떤 풍경이 있을까. 마을 뒤로 난 꼬불꼬불한 좁은 도로를 따라 산허리를 감아 도는 U자형 길로 끝없이 오른다. 일명 요정의 길이다. 이 코스야말로 노르웨이 피오르드 풍경의 백미다. 협만은 산맥단층으로 둘러싸여 있고, 경사진 계곡과 평탄한 초원, 가파른 절벽이 수시로 모습을 바꾸며 나타나 장관을 창출한다. 이윽고 고개에 이르러 산정에 도달했나 싶은데 갑자기 넓디넓은 빙하 호수 듀프호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호수는 6월까지 얼음 위에 눈에 덮여 있다.

 

호수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면 요금소가 나온다. 요금을 지불하고 좁고 가파른 경사 길을 몇 차례 아찔한 스릴을 경험하면서 오르면 1500m 고지에 있는 달스니바 전망대에 이른다. 바람이 사락사락 구름을 쓸며 시야를 연다. 구름이 걷히자 대자연의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개만 돌리면 우주의 또 다른 행성에 온 듯 생경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전망대에 서면 게이랑에르에서 전망대로 오르는 가는 실 같은 요정의 길을 볼 수 있다. 이 길은 눈이 안 오는 6월부터 9월 사이에만 열린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게이랑에르 피오르드와 지나온 마을들이 보인다. 그리고 빙하호수, 폭포, 협곡, 절벽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달스니바 전망대의 대형 표지판에는 여기가 게이랑에르 하늘길이라 적혀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크고 허연 바위들. 그리고 그 바위에 붙어사는 연녹색 이끼 무리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흑백으로만 덧칠되어 있던 황량한 풍경화에 이끼가 내는 초록의 색깔만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하당에르비다 국립공원을 온통 녹색으로 물들인 바로 그 이끼들이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고산바위에 칼바람 견디고 핀 안타까운 이끼무리들 때문에 가슴이 저며 온다. 마치 외계에 온 듯 생전 처음 대해보는 낯선 풍경에 잠시 어리둥절하다. 어떤 글이나 말로 이런 느낌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달스니바 전망대의 스카이 워크 표지판. 매년 이곳에서는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데, 게이랑에르 마을에서 시작해 달스니바 전망대 정상에 이르는 21km 구간에서 하프 마라톤 대회, 자전거 대회, 경보 대회 등이 열린다고 한다.

  

빈 스트라로 가던 중 길목에 있는 롬 마을의 스타브 교회에 잠시 들린다. 12세경에 지어진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교회인데 루터교회가 모두 그러하듯이 작고 소박하다. 교회에 들어서면 예쁜 꽃들로 치장한 묘비가 앞마당에 가득하다. 이상하게도 이곳에서는 죽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그들은 묘지와 함께 산다. 화장터가 동네 한가운데 있고, 교회 마당에는 반드시 묘지가 있다. 아이들은 정원처럼 꾸민 묘지를 오가며 자전거를 타고 논다. 그들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뿐이다.

 

 

스타브 교회. 나폴레옹이 통째로 가지고 가고 싶어 했다고 한다.

 

빈 스트라는 해발 1,000m의 고원 지대에 있는 산속 마을이다. 이곳을 지나던 노르웨이의 대표적 극작가인 헨릭 입센은 페르퀸트전설을 듣고 희곡을 쓰게 된다.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며 놀기 좋아하는 페르퀸트라는 남자 주인공은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다가, 솔베이지와 결혼을 하면서 가정을 꾸리지만, 모험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솔베이지를 버려둔 채, 배를 타고 장사하러 떠나면서 여러 일들을 겪는다. 결국 큰돈을 벌어서 배를 타고 귀향하지만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병에 걸린 채 쓸쓸히 집에 돌아와 솔베이지의 무릎에 누워서 노래를 들으며 죽는다는 이야기다. 입센은 막역한 사이인 그리그에게 자기가 쓴 희곡에 곡을 붙여달라고 부탁하고 그리그는 페르퀸트 모음곡을 발표하게 된다. 빈 스트라는 매년 8월 페르퀸트 축제가 성황리에 열리면서 페르퀸트 마을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산 중턱에 있는 시골풍의 페르퀸트 호텔 창 너머로 솔베이지의 노래아니트라의 춤이 들려오는 듯하다.

 

오슬로로 가는 길에 강 너머 산자락에 예쁜 마을이 보인다. 1994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릴리함메르다. 강 건너 저편에 스키 점프대도 보인다. 메사 호숫가에 보이는 배가 뒤집혀 있는 것 같은 건물이 올림픽 때 사용되었던 조정 경기장 건물이다. 올림픽을 치렀지만 친환경적으로 진행하여 모든 것이 자연 상태 그대로라고 한다. 근처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메사호수가 있다. 올림픽 때 초대형 크루즈선을 정박시켜 숙소로 사용했다 한다. 실용성에 있어서는 단연 세계 최고다.

   


릴리함메르. 인구 2만 명이 사는 도시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무려 4천억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인구 50만 명의 오슬로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노르웨이 특유의 요란하지 않은 차분한 정서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다. 비겔란 조각공원은 조각가 비겔란이 13년에 걸쳐 청동, 화강암, 주철을 사용한 다양한 작품을 준비해서 만든 공원이다. 작품의 테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희로애락이다. 안타깝게도 비겔란은 자신이 온 힘을 기울인 공원이 완성되기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공원에 전시된 비겔란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높이 약 17m에 달하는 화강암 조각상 모놀리트(Monolith)’. 멀리서 보면 그저 커다란 기둥처럼 보이지만, 121명의 남녀가 엉켜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작품이다.

 

공원의 랜드마크이자 기념사진 촬영 포인트로 인기 있는 '심술쟁이 소년 상'. 왼손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하여 손을 대면 미끄러질 정도로 반질반질하다.

 

 

‘모놀리트’.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군상은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며, 실제 인체 크기로 조각되어 더욱 역동적인 느낌을 보여 준다.

    

오슬로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건축물 아케르스후스 성은 오슬로 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배를 지켜보고 있다. 13세기께 스웨덴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성은 9번 침략을 받았으나 단 한 번도 정복당하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이기도 하다. 80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견고한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아케르스후스 성은 ‘겨울왕국’의 아른델 왕국 모델이기도 하다.
성채에서 내려다보이는 오슬로항. 가운데 보이는 돛 모양의 현대적 디자인의 건축물은 이탈리아 건축가 렌즈 피어노가 설계한 아스트룹 피언라 현대 미술관이다.

  

시청사는 1950년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여 완공돼 지금까지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오슬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붉은 벽돌로 쌓은 좌우 대칭형 건물은 오슬로의 피오르드를 바라보고 있으며, 두 개의 탑을 가진 시청사의 내부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예술품들로 가득 장식되어있다. 소박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무척 화려하다. 1층 정면의 25m 대형 그림 행정부와 축제는 유럽에서 가장 큰 유화인데 3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아래는 1624년 오슬로 대화재, 가운데는 파티를 즐기는 모습, 제일 위는 노르웨이의 찬란한 미래를 상징한다. 1층 중앙 홀에서는 매년 12월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기도 한다. 2000년 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도 이곳에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뭉크의 작품 일생이 걸려 있는 2뭉크의 방은 이날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2층 대형 연회장에는 왕과 왕비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시청사 연회장 창밖으로 아케르스후스 요새 성벽 일부와 오슬로 피오르드 끝자락, 그리고 오슬로 항이 보인다.

 

 

시청사 입구에는 오슬로의 상징인 백조상이 있는 분수가 있다. 시청사 양쪽의 높은 2개의 큰 갈색 건물 때문에 염소젖으로 만든 노르웨이 ‘브라운 치즈’와 색깔이 비슷하다 하여 ‘브라운 치즈 두조각’이라고도 불린다.


 

시청사의 중앙 홀. 매년 12월 이곳에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유독 노벨 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선정하고 수상하는 이유는 노벨의 유언 때문이라고 한다.

 

오슬로 중앙역에서 왕궁까지 이어지는 약 1.5km의 카를요한 거리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쇼핑, 문화, 예술의 거리다. 이 부근에는 왕궁, 국립극장과 의회, 오슬로 대학 등 오슬로의 핵심적인 건물들이 모여 있다. 오슬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어 거리는 젊은이로 가득하다. 카페 거리의 고풍스런 pub에서 아문센 수제 맥주를 마시며 4일 간의 노르웨이 여행을 마무리 한다. 홉의 쓴맛이 짙게 배어 나오는 독특한 풍미가 노르웨이의 극지 탐험가로 인류 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아문센답게 화끈하다.

 

 

카를 요한 거리의 오슬로 대학 주위에는 재즈 페스티벌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다.

  

잠시 취기가 돌아 눈을 감으니 황홀했던 지난 사흘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목가적인 시골마을, 푸른 눈의 거대한 빙하, 파란 물감을 뿌린 아름다운 하늘, 그리고 코발트빛 맑은 바다. 더 이상의 풍경은 세상에 없으리라.

 

여행자는 집을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색깔이 드러나 선명해지는 법. 다소 지친 몸을 추슬러 거리의 카페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다음 나라는 스웨덴이다. 기다려라 스웨덴, 너만 그리운 것은 아니다.



여계봉 선임기자



 

 

 


정명 기자
작성 2018.08.29 21:10 수정 2018.08.30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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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1/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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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님 (2018.09.25 18:18) 
노르워이
노르웨이 말만 들어도 가슴떨리는 곳. 수필같은 글과 그림같은 사진으로 미리 다녀온듯 합니다.마치 노르웨이 여행책을 한권 읽은것 같네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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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봉님 (2018.08.31 13:20) 
노르웨이
장문의 글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북유럽 중 최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노르웨이를 대충 짚고 넘어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글이 꽤나 길어졌네요. 여행은 추억입니다. 좀 길더라도 온전한 추억을 남기고자 하는 의도가 독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끼쳤다면 너그러운 이해 바랍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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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님 (2018.08.30 13:34) 
여유로운 삶을 느끼며
다채로운 풍경과 함께 얻어보는 노르웨이의 여행은 정말 환상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긴 여행기는 나를 노르웨이로 오라고 유혹하는 것 같습니다. 잘보고 잘 읽었습니다. 기자님의 수고하심이 보이는 여행기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기대하며 다시 한번 노르웨이를 그려봅니다. 항상 건강챙기세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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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