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노인이 말을 걸었다

김소희



1.

어느 한 노인이 말을 걸었다. 그 말은 굉장히 의문이 가득했고 마치 오래된 동화나 설화에 나오는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이었다. 어린 마음에 아무 예의도 갖추지 않은 말을 내뱉어 버렸다.

할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이 말은 무례한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의 나는 예의나 웃어른에게 갖추어야할 예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궁금하면 물어본다. 그게 다였다. 노인은 침묵을 지켰다. 나의 질문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것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누구 기다려요?”


이번에는 침묵 사이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은 분명 웃었다. 하지만 웃기만 할 뿐 내가 했던 질문에 답 해주는 일은 여간 없어보였다. 매미 우는 소리가 여름이라는 것을 일깨워주 듯 우렁찼고 자전거는 삐걱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노인은 서성거리기라도 하듯 슈퍼마켓 주위를 안절부절 못하며 돌아다녔고 나는 방금 뜯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은 입안의 온도를 낮춰줬고 열로 인해 잘 돌아가지 않았던 사고를 회전 시켰다. 노인은 물을 들고 있었고 잠깐 씩 페트병 주둥이를 입가에 대면서 목을 축이곤 했다. 어린 나는 노인이 나의 말을 무시했다고 여기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분명 아무 것도 안하면서 놀기만 할게 분명 해. 내 말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일지도 몰라. 나의 머릿속은 온통 옆에 있는 노인 생각뿐이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알기는 하는지 노인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아스팔트가 열기로 일렁이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슈퍼마켓 앞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고 아이들은 얼마 없는 놀이터를 자주 애용하는 듯 했다.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는 어찌 생각하면 소음이 되기도 했고 듣기 좋은 마을의 정경에 한 풍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나의 또래 친구들의 소리 지르는 소리를 소음이라고 여겼다. 듣기 싫었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할 만큼 치를 떨었다. 옆에 있는 노인은 그 광경을 그저 허허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런 노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강해지기만 했다. 그 웃음에는 따뜻하다는 감정이 녹아들어있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쓸쓸했고 눈에는 물기가 맺혀 보였다. 나는 그의 쓸쓸함의 연유를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그러기에는 그의 쓸쓸함이 가득 찬 눈은 이유를 묻는 것만으로 금방이라도 눈에서 눈물을 쏟아낼 듯 했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부모님의 마중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갈 때 즈음. 갑자기 노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는 혼자니?”

그 말의 의미는 아직까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 때의 나에게는 중복되는 의미로 들려왔고 그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나의 부모님은 항상 내 눈치를 보셨다. 나는 동생이 있었다. 친동생은 아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입양 된 여자아이였고 나와는 다르게 눈이 크고 똘망똘망한 눈을 가지며 그 눈동자에 비춰지는 모습이 뚜렷이 보일 정도였고 코는 어린아이라고 보기에는 오뚝하게 쏟아있었다. 나는 그런 동생이 좋았고 동생 없이 지금까지 혼자 자라 온 나에게는 반가운 가족이었다. 나에게는 잠깐의 상의만으로 이루어진 절차이기 때문에 동생을 본 나의 태도를 보고는 무척이나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이름은 부모님이 정해주었다. 나의 이름을 따서 유희라고 했다. 유희는 나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였고 어린 내가 느껴오던 알 수 없는 고독함과 외로움을 채워줬다. 유희는 예의 바르고 눈치가 빨라서 부모님의 기분을 때때로 살폈고 부모님은 그런 유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좀 더 보살펴주기를 강요하셨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나와 유희를 함께 케어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부모님의 강요가 나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오는 걱정이라 여겨, 언니로써 당연한 역할이니까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며 당당하게 말했다.


유희에게는 어떠한 것도 주고 싶어 했고 그런 나를 유희는 좋아 해줬다. 언니라고 부르며 달려오기도 하고 의지도 해줬다. 나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서 유희는 부모님과도 서슴없이 지낼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둘만의 시간이 긴 만큼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자매가 되어갔고 그 관계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커질 시기에 유희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유희는 선천적으로 질병이 있었고 부모님은 그 사실을 나에게 숨겼다. 내가 유희의 질병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죽은 지 3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부모님을 원망했고 아무 것도 몰랐던 자신을 탓했다. 그녀와 가장 오래 보냈던 나는 유희 아픔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자신을 원망했다. 그 뒤로 부모님은 나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고 집안에서 유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금기라고 약속 한 것처럼 모두가 꺼내지 않았다.


노인이 나를 향해 한 질문은 묻어뒀던 유희에 대한 기억을 일깨웠다.

 

2.

사계절이라는 것은 사람의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마법을 부린다고 문뜩 생각이 든다. 봄이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꽃을 감상하며 연애 감정을 갖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여름이면 더운 여름을 극복할 피서지를 찾기 바쁘다고는 하지만 어딘가 물놀이를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일렁이기도 한다. 가을은 다들 이별의 계절이라고 한다. 가을을 싫어하진 않는다. 가을이 되면 여름의 더운 공기가 점점 수그러들기 시작하면서 선선한 바람이 몸을 차분하게 식혀준다. 그리고 그 일은 단풍잎과 은행잎이 자신들의 역할을 다 하였다 듯 원색을 잃어버려, 진한 갈색의 형상을 하여 힘없이 떨어질 시기였다.


어머니는 그날따라 분주하셨고 아버지는 바쁘게 움직이는 어머니를 위해 아침밥을 만들고 계셨다. 그 속에서 부스스하게 일어나 걸어 나와서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 스스로가 게으르다고 여길 만큼 거실과 부엌의 풍경은 요란스러웠다. 어머니는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지 소파 위에는 옷가지를 늘어놓고 있었고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계시는 아버지는 샌드위치를 만들고 계셨다. 샌드위치라는 음식을 선택한 것은 식탁에 앉을 여유도 없는 어머니를 위함이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식탁에는 그릇 위에 놓여 진 샌드위치와 계란 프라이가 놓여 있었고 계란 프라이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음식을 준비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일어났니?”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손은 분주하셨다. 그리고는 지금쯤 일어날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하신 듯 미소를 지으셨다. 어머니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다니셨고 드디어 준비를 끝마침과 동시에 내 쪽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오늘 엄마 늦을 거야. 아빠는 오늘 일 없다니까 집에서 아빠랑 같이 있어. 어디 나가지 말고.”


그러고서는 아버지가 준비한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 드시고는 재빠르게 문을 열고 나가셨다. 나는 그 모습을 끝까지 배웅 하고나서야 식탁 앞에 앉아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아버지도 어질러져 있던 식기 도구를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마치시고 내 앞에 앉으셨다. 아침은 조촐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샌드위치만으로는 배가 차지 않을 것을 배려하여 그 옆에 놓여 있는 계란 프라이는 더 이상 김이 나지 않았다. 그 프라이를 집어 들고 흰자부터 천천히 먹으면서 노른자가 홀로 있기까지 뜯어서 먹었고 노른자만이 남았을 때는 숟가락을 들어서 한 입에 넣었다. 나만의 계란 프라이를 즐기는 방법이었다. 언제는 이 모습을 보던 친구는 왜 그렇게 힘들게 방식을 정해서 먹는 거야? 라고 물어왔다. 딱히 힘이 드는 작업은 아니었지만 아무렇게나 먹어도 좋다는 친구에 눈에는 그리 보였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저 나만의 계란 프라이 즐기기라고 말했다. 친구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갸우뚱 하는가 싶더니 아 그러셔? 라고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가족 내력이라는 허무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의 그런 버릇을 발견하셨을 때는 친구와 같이 물어 오진 않으셨다. 아버지는 계란 프라이를 그렇게 먹으면 맛있냐고 물으셨고 그 뒤에는 혼잣말인 듯 작게 나도 한 번 그래 볼까 하셨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으셨고 나는 웃기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어디라도 갈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나가기 전에 어머니가 당부하셨던 말이 떠올라 생각을 금방 접었다. 나간다는 행위는 나에게는 생각지도 않은 것이었지만 어머니가 당부한 말로 인해 조금의 반항 끼가 생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맞벌이를 하시는 우리나라에서 지극히 평범한 부부이셨고 그 부부 사이에서 하나 밖에 없는 딸로 자란 만큼 혼자만의 시간 동안 외로움을 느꼈다. 외동은 형제 있는 집안만큼 흔했다. 그런데도 나는 외동들의 특성이라고 자부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의젓하지 못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하기 일쑤였고 감정은 금방이라도 깎여 나갈 듯이 연약했다. 주변 사람은 나보고 위태로워 보인다고 말했고 실제로 절벽에 서있는 것과 같이 위태로웠던 나는 그 말을 흘겨 듣기 위해 숨기를 반복하여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타인과도 동 떨어진 사람이었다.


하나 씩 품고 있는 소원이라는 유치해 보이는 명목이라도 나에게는 형제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형식이 가슴 속에 존재했다. 하지만 그러한 소원을 입 밖으로 표현하는 일은 없었다. 특히나 집 안에서 말하는 것은 가족의 잠시나마의 화목한 분위기를 파괴하려는 의도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집에 있는 시간도 밖에 나가있는 시간도 나에게는 허무한 시간 낭비로 느껴졌고 의미 없이 반복되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일상이라고 여겼다. 어디에 있어도 외로운 감정이라는 것은 진정되지 않아, 스스로를 감정으로 도려내기를 반복하면서 생긴 틈을 매워줄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여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나를 지켜보면서 애써 모르는 척 웃어보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 싹 터 있는 불안은 표정에서부터 감춰지지 않는 다는 것을 모르시는 듯하다. 학교가 여름 방학이라는 일정에 접어들었을 무렵, 딱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던 나는 집에만 틀어박힌 채 더운 여름을 에어컨의 선선함으로 보냈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을 무시 할 수만은 없었다.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게 된 이 후 부터는 집 안은 더 이상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나에게는 익숙한 느껴졌다. 내가 바라보는 우리 가족은 나를 제외하고는 화목 해 보였다. 혼자인 만큼 부모님의 관심은 모두 나에게로 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못해 생활의 극히 일부가 되어 있었고 그 관심은 금방 불안으로도 변했다. 동전 뒤집히듯 바뀌어버리는 나로 향한 부모님의 감정은 동전의 무게만큼 가볍지 못했고 양면이 하나의 면이 되어 떨어질 때 마다 그 면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뒤집는 다면 그만큼의 무게를 견딜 노력이 필요했다.


아버지와 나는 조용한 집안을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채웠고 그 정적을 깨며 어머니가 저녁 늦게 볼 일을 보고 돌아오신 소리만이 집안을 요란스럽게 울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인 도어락이 경쾌하게 울리자마자 반사적으로 방을 나와 어머니의 마중을 나갔다. 어머니는 나의 얼굴을 보시고는 표정 없던 얼굴에 살짝 웃음이 번지면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단순한 겉치레로는 보이지 않아 내심 안심했다.


다녀왔어.”

어디 갔다 왔어?”

나는 어머니가 어디에 갔다 오셨는지는 어머니가 돌아오시기 전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침부터 여간 대화를 나누지 않으셨고 하지 않는 대화가 나에게 오는 일도 없었다. 어머니는 조금 뜸들이시다가 말씀하셨다.

“...진로진학설명회 갔다 왔어.”


진로라는 것은 분명 나의 진로에 관한 것이 였을 테고 그 설명회는 나의 진로를 내심 걱정하시던 어머니가 고른 선택지였다. 물론 나에게 달가운 말은 아니었다. 그만큼 어머니는 나에게 불안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아버지 또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을 증명해주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전혀 무자각인 채 보내지는 않았었다. 부모님의 그런 불안이 슬슬 일렁이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그 고민을 결코 안 해봤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분 언저리가 언짢다고 느껴졌고 그런 불안의 원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집에만 있는 나에게서 비롯됐다는 현실이 꿈이 없다는 나의 상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너도 이대로는 불안하잖아. 그래서 엄마가 네가 참고할만한 정보 얻으려고 갔던 거야.”

그래. 너도 이제는 네 장래를 생각 해야지. 이제 고등학생인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의 머리와 귀는 자신들의 불안한 마음을 떨쳐 내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들려 올 뿐이었다. 그것은 결국 나에게 장래에 대한 압박이 되어서 몰아붙였다.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중압감에 고개를 아래로 떨궜고 그런 나를 본 부모님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무 말하지 않으셨다. 고등학생이라는 나이가 되면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장래에 관해 물어보았고 그럴 때 마다 마땅히 정해놓은 것이 없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직업과 발전할만한 가치를 가진 취미를 발견하지 못 했을 뿐. 그 문제는 중학생이었던 열여섯 살 즈음부터 장래라는 이름으로 꽤나 성가시게 마음을 들쑤시곤 하였다. 다시 들었다고 해서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진 않는다.


고등학생이라는 명목을 대면서 더욱 무거워진 채로 다가오기만 할 뿐이다. 어느 날은 나의 외로움은 나 자신의 사교성의 결여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순간만은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울컥은 분노라는 감정과 함께 죄악감으로 다가와서 눈물이 나왔다. 이 눈물 속에 섞인 분노는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을 단순히 나의 단점으로만 판단하여 보는 것에서부터 느껴지는 분통함이었다. 그들은 나의 성격을 인정 해 주지 않았고 나의 성향을 존중 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은 어느 말 보다 날카로웠고 아픈 곳을 정확하게 관통해버렸다. 존중 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 말이 결코 틀렸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직접 말로 다가와 부딪히는 때의 상처는 벼랑 끝에 매 몰린 정신을, 마음을 온 힘을 다 해서 미는 행위와 유사했다. 그리고 실로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끝이 보이지 않는 벼랑의 끝을 상상하며 무기력해졌다. 어머니는 무덤덤하셨고 그와 같이 나에게 장래를 고민 해 보라며 주는 부모님의 어감의 중압감은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과하고도 느껴지는 무게는 같게 느껴졌다.

 

3.

노인과의 여름이 떠올랐던 것은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대개의 사람들이 장롱에서 두꺼운 옷을 꺼내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그 기억의 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노인의 질문으로 인해 돋아났던 동생의 기억은 노인을 떠올리는 것과 비교적 동시에 떠올랐다. 그 노인이 나에게 특별했냐는 여부를 물으면 난 아니었다고 대담히 답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노인은 어린 나의 무지하던 머릿속을 채워줬고 그의 질문은 생각보다 무게감 있었다. 어린 마음에 들었던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쓸쓸한 표정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지금에 와도 똑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다. 노인을 만나고 나서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의문점은 있다. 그가 한 질문 안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그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이어져 오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숨어져 있는 건 아닐까. 노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뒤로 그 동네에서 아무리 찾아도 노인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의 수업이 끝나면 그 즉시 노인을 만났던 장소로 가서 기다리기를 반복했고 그 끝내 노인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부모님의 직장 사정으로 인해 노인을 만난 기점으로 1년 뒤 우리 가족은 이사 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그 동네에 다시 오는 일 따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사 온 뒤에도 노인이 머릿속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이대로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편지 한 통이 나에 앞으로 보내져왔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현대 시대에 맞게 보통의 연락은 휴대 전화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휴대 전화라는 단순 정보 통신 기기를 쓰지 않고 편지라는 형식의 속히 구식적인 방식을 통해 연락을 취했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지나면 바로 눈에 보이는 우체통에 고이 들어있던 편지는 보통의 단아한 색의 편지 봉투였고 겉으로 봤을 때는 발신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편지에 부착되어 있는 스티커에는 우체국 상표가 박혀 있었고 그 위 검은색으로 잉크가 살짝 삐져나와있는 작은 글씨에는 주소가 적혀있었다. 주소는 전에 이사 오기 전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다. 이는 컴퓨터로 인쇄되어 있었지만 비를 맞은 탓인지 발신자가 적혀있는 부분만 잉크가 번져서 본래의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었다. 방에서 조용히 뜯어보니 편지지는 생각보다 정갈하게 접혀 있어서 편지 봉투 속의 공간을 정확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그 것을 손으로 살짝 꺼내보니 용지는 대충 A4용지 정도의 크기로 가늠할 수 있었다. 그 편지에는 컴퓨터로 글자 하나하나 타자를 쳤던 인쇄 된 듯 해 보였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귀하는 이 편지를 받을 시기에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이 편지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모릅니다. 그럼에도 저의 오지랖이 부디 당신의 고민을 덜어냈으면 하고자 이렇게 보냅니다. 저는 귀하가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 모릅니다. 당신도 저의 삶에 대해서 알 길이 없겠죠. 당신을 만나고 싶었지만 그건 앞서 말했듯이 이뤄질 수 없는 만남입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없기에 편지로 단편적이었던 작은 기억 꾸러미를 꺼내기로 했습니다.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세월 동안 당신이라는 하나의 인간은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인연이 되었고 저는 그 인연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다고 하시면 저의 이런 말은 당신에게는 수상한 사람에게서 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읽는 순간 버려버릴게 분명하겠군요. 하지만 저의 이 마지막이 되는 글을 아직 남은 시간이 많은 젊은이에게 바침으로써 조금은 투자해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의 사상이나 그들이 말하는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근데도 당신은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더군요. 저는 지금의 젊은이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말하는 것들에 지쳤을 뿐입니다. 당신도 그러한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을 처음 본 건 그날의 여름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저를 처음 봤던 날이 그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까봐서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해서 당신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조그마한 세상에는 당신이라는 존재는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저를 이끌어주기에는 충분한 빛이 되 주었습니다. 당신이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럴만한 용기도 의지도 없었나 봅니다. 무서웠고 두려웠습니다.


그대가 생각하는 저는 단아한 삶의 이방인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근데 저는 뜻밖이었습니다. 멀리서만 바라보기로 한 저의 몸은 머리의 지시를 무시하고 당신에게 가까이 가버리고 말았던 거죠. 그리고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물론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용기가 없었다기보다는 저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서 차마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근데도 저는 빨간 실이 인연의 증표라 불린다면 하얀 실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당신에게 말을 건넬 구실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대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질문을 건넸습니다. 그 질문이 품고 있는 의미는 딱히 없었으나 그건 아니었나 봅니다. 당신도 결국 그 질문에 대답 해 주지 않았습니다. 분명 제가 그 안의 어느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겠죠.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기분이 상했었다면 이 편지로 사죄를 전합니다. 저는 당신에 관한 소식을 한 해가 지나갈 때 쯤 편지 한 통으로 전해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점점 이 늙은 몸을 이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니 삶에 갖는 미련이 많게 느껴졌습니다. 그 중 가장 미련이 남는 인물은 당신이었습니다.


아내는 저보다 일찍이 삶에서 떠나갔습니다. 아내는 마지막으로 가기 전날에 이런 말을 하더군요. “당신은 끝까지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것이 흥미로워 결혼에 응했고 그 끝내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에게는 당신이 전부가 되었고 이 마음을 고스라니 남기고 간다면 고통스러울지는 모르겠네요. 그 고통을 견뎌서 나를 만나러 와준다는 약속을 해줬으면 합니다.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은 당신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될지는 모르나 나는 이제 흙이 될 운명이니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하나 뿐인 약속입니다.” 아내는 매우 단호한 말투였습니다. 저는 이 약속에 다짐을 했고 죽기 전까지 고통을 견디며 살아갔습니다. 아내가 말한 라는 사람은 저로써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태어납니다. 그 존재성을 부여 해 주는 인물이 부모님이라는 것 뿐 입니다.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는 행위를 통해 이 세상에 라는 존재를 알려줍니다.


저는 이름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는 인간에게 주어진 겉껍데기일 뿐 그 안에 들어있는 저는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타인은 저를 모릅니다. 애초에 물어볼 생각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수많은 우문(愚問)을 들어도 저는 그에 맞게 우답(愚答)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저라는 사람이 궁금했습니다. 그걸 유일하게 물어봐준 사람이 당신이었습니다. 저는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어린아이였던 당신은 제 안의 본질을 바라봐 주었고 그걸 입 밖으로 꺼내주는 용기를 내어주었다는 것에는 하루하루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답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답할 수 없다는 현실이 부끄러웠고 어린 당신의 삶보다 저의 삶이 더욱 보잘 것 없이 느껴졌습니다. 그 대신 웃었습니다. 그 작고 고결한 당신을 보고 따뜻한 마음이 들었고 이내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웃음은 비웃는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따뜻한 숨을 내뱉었고 그것은 웃음이 되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는 무례한 발언일지는 모르나 당신은 저에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존재만으로 가슴 속에 얼어있던 냉기를 따뜻한 온기로 바꾸어 주었고 존재의 여부를 물어봐 준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부질없고 나쁘다고 한다면 나쁜 노인이었고 할아버지였습니다. 당신에게는 밝히고 싶었습니다. ‘라는 존재를. 당신에게 존재하는 하나의 가족임을.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일은 없을 줄만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더 이상 들을 길이 없다면 제가 나서서 저 자신을 그대의 할아버지였다고 지칭하고 싶습니다.

-손녀에게

 

4.

편지는 나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편지를 쓴 인물이 누구인지는 내용의 서두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노인이라고 불렀던 그는 내가 모르던 나의 가족이었다. 그 여름의 기억은 하나의 퍼즐 조각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 퍼즐 조각은 영원히 맞출 수 없는 조각이라고 여겼지만 조각의 실체는 생각보다 컸다. 그 조각을 이렇게도 가까운 사람이 채워줄 것이라고는 생각 하지 못하였다. 어머니,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관해 일절 말을 하지 않으셨고 나도 그저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 이름뿐인 빈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보다는 할머니의 소식은 잠깐 씩 들었던 기억은 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어머니와 대화를 했고 나는 잠결에 들었던 대화 중 하나였다. 할머니는 그 뒤로 몇 개월 후 돌아가셨고 그 날 부모님은 여행을 다녀온다며 집을 비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이 아니라 장례식에 다녀왔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편지를 받고 나서 일주일 동안은 아무 말 없이 지냈다. 편지에 대한 말을 부모님에게 한다는 여유는 내 머릿속에 들어올 수 없었다. 매 시간 마다 편지에 대해 생각했고 할아버지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했고 그 여름에 만난 노인을 떠올렸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부모님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일을 말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마치 괴한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기 일보직전인 표정을 하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 둘이 왜 감췄는지는 몰랐다. 그건 그 둘만의 사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내가 편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이상 말을 얼버무릴 수는 없을 것이다.


부모님이 나를 낳고 키우기 이전, 그러니까 막 결혼을 약속 한 사이가 되어 결혼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부모님의 약혼 소식에 치를 떠시며 극히 반대하는 입장 이셨고 할머니 또한 같은 입장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떨어트려 놓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표현 하였고 할아버지는 끝내 의절하라 소리치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말리셨고 할아버지는 그 뒤 방으로 가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할머니는 그 둘에게 사과하셨다. 부모님은 결국 결혼을 통해 나를 낳으셨고 간간히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고 한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나를 데리고 찾아간 적이 많았지만 그 때 마다 만나길 거부 했다고 했다. 내가 중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 할머니는 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고 아버지는 할머니를 찾아가 할아버지 몰래 만났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주로 산책을 나가시는 시간 때가 있어, 아버지는 그 시간에 맞춰 찾아간 것이다. 할머니는 여전히 사과하셨고 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부모님은 나에게 그 사실은 숨기고 생각한 대로 여행이 아닌 장례식을 다녀오셨다. 처음부터 숨기려고 한 의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나에게 말을 할까 몇 번이나 둘이서 상의를 했지만 언제나의 결론은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뒤에 얘기하자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이 이야기를 마치고 나에게 편지 내용을 보여 줄 수 있냐며 물어보셨고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혼이 나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편지를 보여주기 전에 그 여름에 있었던 일을 먼저 얘기 하고 나서야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 편지를 보는 부모님의 표정은 내가 봐왔던 감정들로는 가히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해보였고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는 편지를 다 읽었는지 시선이 편지가 아닌 나를 향해 있었고 결국 눈에 고여 있던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더니 나를 안아주셨다. 그 행동에는 분명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함께 나에게로 향한 감정도 섞여있는 듯 했다. 할아버지의 편지는 생각보다 우리 가족의 삶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부모님은 더 이상 나를 추궁하듯이 말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를 다독여 주시는 일이 많아졌고 그 어색함 속에서 어떻게든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부모님의 달라진 태도가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계절은 우리의 삶에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줬고 나는 그 여름의 일을 단지 여름이었다는 배경하나로 퉁 쳐서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과의 인연을 맺고 끊고, 사건이 일어날 때에는 그에 맞게 기억나는 날씨가 있고 계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절은 내가 기억하는 인연에 맞게 이미지가 부여되기도 한다. 그 더웠던 여름을 이제는 따뜻한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하듯 내 기억 속에 있는 유희라는 인물도 더 이상 비운의 일이 아니었다. 하나의 슬픈 인연이 되었고 그 인연으로 인해 성장하는 점도 있을 것이다. 모든 관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깊은 사정이 있고 얇으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실. 붉은 실로 이어져 있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건 타인이 아닌 가족이라면 더욱 끈끈한 실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단지 보지 않으려 했을 뿐.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04 11:04 수정 2020.09.14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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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