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완 칼럼] 동아시아의 말(馬)과 쇠(金)

최용완


동아시아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로 요(), (), (), (), () 등의 역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금속도구로 나무집을 짓고 돌과 바위의 모양을 바꾸고 나무바퀴를 쇠바퀴로 만들면서 인류문명이 이곳 요하에서 시작한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치우(청구)가 탁록 전쟁에서 헌원(황제) 와 싸워 이겼다고 한다. 치우환웅(蚩尤桓雄)은 만고의 무신(武神)으로 요하평원과 중원을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황하지역 중화족에게 우리 문화를 심어주었다.

 

싸울 때는 칼()로 이겨야 하지만 이긴 후에는 말에서 내려와 항복하는 적을 어루만져야 한다고 하며 중국문화를 만들어주었다. 야만인을 문명화시키는 이화(理化)라는 뜻으로 홍익인간의 이화세계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 중국은 탁록에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을 지어 치우를 황제, 염제와 함께 중화문화의 공동시조로 받들고 있다.

 

석기시대에 농사짓고 흙 그릇을 만들던 마을에서 고인돌을 짓기 시작하였다. 요하지역에 이르러 석탄이 풍부하여 돌가루에서 금속을 녹여내면서 고인돌 유물 중에 청동 칼과 장식물들이 출현한다.

 

역사기록에서 전차(車馬 chariot)에 대한 기록은 하() 나라때(기원전 21~16세기) 부터 발견되는데, 한나라 때 사마천의 사기에 하나라 우왕의 본기에는 고대의 전투가 전차(車馬 Chariot)로 싸웠으며 전차에는 3인의 전사가 탔다고 했다. 전차는 말 두 마리나 네 마리가 끄는 수레이다. 동아시아 기마민족은 일찍부터 말을 타고 세계를 누볐다. 말 중에 프레스왈스키 종류 (Prezwalski's Horses)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주지역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생존해온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사강목 북사 고구려전에 주몽이 타던 말종자는 과하마(果下馬)라고 했다. 키가 낮아서 3척마라고도 한다. 동아시아인이 찾아낸 일꾼 말이다. 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는 세상 짐승 중에 힘이 세기로 소문난 말이다. 만주 고조선 땅에서 세계에 다른 민족보다 일찍부터 시작하여 문화와 문명이 앞서는 원동력이 되었다. 훈족의 유목 생활에서 말과 함께 자라며 뛰어난 기마술을 조성했다. 발거리같은 마구와 전쟁무기가 제일 먼저 발달했다. 훈족의 강철무기와 미늘 갑옷 철갑과 투구는 6세기 중반에 로마군과 게르만족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속문화의 혁명은 고조선의 전쟁과 농업에서 시작하였다. 도끼와 칼에서 망치와 끌과 대패, 톱의 예리한 철제 공구의 제작은 인류의 생활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석탄불 1130C to 950C. 온도로 쉽게 강철(iron)을 생산하여 칼과 농사에 쟁기를 만들었지만 쉽게 녹슬어 오래 보존되지 못했다. 고구려의 고분에 그려진 장수와 병사들이 사용한 여러 가지 무기들, 칼과 창, 활과 화살촉, 갑옷과 투구, 그리고 철제 거마(車馬 chariot)는 철기 생산과 기술을 보여준다. 특히 철을 단련하는 기술자의 그림과 수레바퀴를 제작하는 기술자의 그림은 첨단기술의 창조적 과학을 증거한다.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음양오행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사방신은 닭과 주작(朱雀)이기에 우리 문화에는 봉황을 비롯한 새와 연관이 크다. 혁거세(赫居世)는 봉황의 알에서 낳았다는 전설과 함께 새와 연결된다. 오행에 북쪽의 상징은 현무(玄武)이며 쇠()를 뜻하기에 동아시아의 금속문화는 건국신화 때부터 나타난다.

 

신라 김씨의 조상이 되는 김일제(金日磾)는 흉노족 휴도왕(休屠王)의 태자였다. 가야와 신라 시조는 동성(同姓)으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손이라고 한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가야 시조 김수로왕은 다 같이 소호금천씨의 후예들이다. 기마민족의 자손들이다. 금으로 만든 가야의 금관은, 청동의 장신구들과 함께 신라의 조형미와 높은 기술의 조화를 이루었다. 여러 금관들은 대부분 순금으로 만들었다. 일본 섬에 백제문화가 들어오기 전에 신라의 기마민족이 먼저 들어왔다.

 

일본 에가미 교수의 가야 기마민족설에 가야의 월지국(月支國)에 진()왕이 지배권을 잃게 되자 무리를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진왕은 지금의 북규슈지역인 쓰쿠시(筑紫)에 도착하고 지금의 나라지역인 기나이까지 진출하여 야마토조정을 세웠다. 이들이 일본건국의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후기고분에 속하는 당시의 전방후원 고분형태와 고분부장품 면에서도 기마민족설을 증명하게 된다. 이는 규슈 후쿠오카현의 옛 쓰쿠시일대의 석개고분에서도 옛 가야의 석개묘 (石蓋墓)에서 출토된 철제 갑주, 마구, 금동관, 철제도검, 화살 등 무기류와 농기구, 공구, 청동장식품, 금동제 복식품과 동일한 부장품이 대량으로 나온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일본 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백제의 근초고왕이 일본 사신에게 철정(鐵鋌) 40매를 주었다고 한다. 한반도 남단에 가야국의 덩이쇠는 일본에 철기의 원료 철재로 대량 수출되어 일본의 철기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발달해온 백제 강철문화의 칠지도는 75길이의 철검으로 뛰어난 철의 단조기술과 61자의 금상감을 새겨 넣은 명문이 있다. 7가지를 뻗어낸 사슴뿔을 형상화한 듯한 특이한 디자인으로 4세기 초의 백제 금속기술의 우수함을 잘 보여준다. 고탄소강(高炭素鋼) 쇠붙이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쇠도끼, 화살촉, 칼과 같은 재질이다. 칠지도는 그 당시 국가들의 대표작이며 백제가 일본을 다스린 상징이 되었다.

 

백제인들이 왜()로 갈 때 이용하던 주요 해상통로로 쓰시마(對馬) 이키(壹岐) 가카라시마(加唐島)를 표지(標識) 섬으로 삼고 왕래하였다고 한다. 1971년 무령왕릉 발굴과 함께 출토된 지석 석판에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나이 62세 되는 계묘년(523) 57일에 돌아가셨다고 적혀 있었다. 김원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단장으로 문화재관리국 학예사들이 공주에서 발굴하였다.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백제 무령왕(武寧王 461452)이었다.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백제 성왕의 아버지이면서 일본서기에도 이름이 나오는 백제의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라고 판명됐다.

 

백제의 금속 주조기술과 도금기술은 7세기의 백제 불상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78)의 제작기술이 대표적이다. 일본 나라시의 동대사에 거대한 청동불상은 백제의 기술자들이 전해준 기술로 그 후손에 의하여 주조된 것이다. 그것은 밀랍 거푸집으로 약 490톤의 청동을 써서 주조된 것으로, 수은 아말감을 이용한 금도금법을 써서 완성한 8세기 최고의 금속기술이 결집된 최대의 불상이다.

 

고조선에서 시작한 강철은 BC 300년 진시황제 때부터 강철무기 생산이 일반화되었다. 세계역사의 첫 제국은 말을 타고 강철무기를 휘두른 동이족 진시황제의 나라였다. 고구려는 당나라와 수나라가 그들 선조의 고향인 요하 지역을 찾고 싶어 전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략했지만, 고구려는 말()과 쇠()의 세계적 강국이었다. 훈족이 4세기에 유럽에서 로마제국을 세울 수 있었다. 5세기에 동아시아인 핀란드 민족이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이주해 강철무기가 생산되며 유럽에 막강한 바이킹 문화가 시작하였다.

 

고구려와 로마처럼 기마(騎馬)와 강철(鋼鐵) 기술을 얻은 국가와 민족은 역사 속에 막강한 기록을 남겼다. 동아시아에서 시작한 금속문화는 인간사회와 자연을 정복하는 과학과 문명의 첨단 기반을 이루었다. 요하지역 고인돌 마을의 금속문화는 동아시아와 전 세계에 전파되어 현대인류 생활에 혁명을 가져왔다.

 

 

<동아시어는 인류 문화문명의 어머니> 최근에 새로 출판된 책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전 문교부 문화제 전문위원 역임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08 10:49 수정 2020.06.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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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