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코스미안시대가 도래하고 있어라

이태상

 



"어느 것인가 : 신이 빚은 실수 중의 하나가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이 저지른 실수 중의 하나가 신인가?"

 

"Which is it: Is man one of God's blunders, or is God one of man's blunders?"

 

- Friedrich Nietzsche

 

우리말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느니 양반은 얼어 죽어도 짚불은 안 쬔다.’지만 개살구도 맛 들일 맛이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 뱃속 정신부터 차려야 하지 않을까. 어떤 나라, 어떤 인종, 어떤 계층, 어떤 직업의 사람이건, 사람이면 누구나 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하고 인간다운 인격을 갖춰야 하겠지만 그러려면 우선 사람모양새부터 갖춰야 하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온갖 독선과 위선, 기만과 착취, 폭력과 무지, 맹종과 맹신, 부정과 부패, 권력 만능주의, 무력만능주의, 금력만능주의에서 해방되어야 하리라.

 

근년에 와서 서구식 인권사상이 종교처럼 세계 각처에 파급되고 있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유색인종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격이다. '세계의 반 이상의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 속에 살고 있다'고 제33대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1949년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국가와 인종을 가릴 것 없이 1%의 극소수 부자들이 세계의 99% 거의 모든 자산을 소유해 빈부 격차는 날로 심해지기에 우리나라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기생충(Parasite)’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게 아니랴.

 

어디 그뿐인가. 기독교의 아담과 이브 신화로 오랫동안 길들여진 서양에서 1879년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1828-1906)에 의해 발표된 희곡 인형의 집(A Doll's House)’을 뛰쳐나온 노라(Nora)가 새로운 시대의 여성상을 세상에 보였듯이, 홍상수 감독이 최근 제 70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성을 가축으로 취급해온 우리 동양의 유교라는 족쇄를 풀고 도망친 여자(The Woman Who Ran)’로 감독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8억 이상의 우리 인간 가족이 굶어 죽는 세상에서 가난한 빈민국들은 여전히 부유한 강대국들로부터 착취당하고 있다. 먹을 것도 모자라는 제3세계에 선진 서방국가들은 엄청나게 비싼 무기를 강매하고 심지어는 이 무지하고 무력한 사람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화학무기와 살충제 및 새로 개발되는 약품과 화장품 등을 실험하는가 하면 각종 공해 산업과 그 유독성 폐기물 쓰레기를 이들 약소국들에게 수출, 덤핑하고 있다.

 

서양사회에선 소위 동물애호가들이 동물들의 권리를 인간의 권리보다 더 중요시하기도 하지만 동물 내지는 식물의 권리는 제쳐 놓고라도 인간의 생존과 복리를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도모하는 것이 급선무이겠으나 공리공론(空理空論)의 이념적 정치적 법적 자유나 평등은 실질적 경제적 일상적 자유와 평등 없이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pie in the sky)’에 지나지 않는다.

 

백인들은 수족관 속의 금붕어처럼 공중누각에 높이 앉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데 유색인들은 흙탕물 속 미꾸라지같이 살고 있다. 이들은 숙명의 포로가 된 채 인과응보()으로 전생에 진 빚을 이승에서 갚는다고 모든 것을 팔자소관운명으로 돌리고 만다. 물론 이러한 만병통치식 신앙과 체념 때문에 수많은 인간들이 고해(苦海)와 같다고 비유되는, 고달픈 삶을 묵묵히 견디어 왔는지 몰라도 이들이 이처럼 숙명론적 사고방식과 정신적인 노예근성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인권다운 인권을 말할 자격조차 없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기독교나 공산주의 또는 자본주의 사상으로 세뇌시킨다고 이들에게 인간다운 인격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한국인의 경우가 그 좋은 예가 되리라.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최근 100여 년 역사만 돌이켜 보더라도 한 민족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를 침해당해 왔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 이어 1910년에 이루어진 한일합방이 그 한 예라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한 우리나라 국토의 분단이 또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두 동강 난 우리 민족의 비극은 필연적으로 미, 소 양 진영 사이에 뜨겁게 달궈진 냉전의 열기 속에서 그 더욱 참혹한 비극인 한국전을 불러 일으켰고 1953년 휴전이 되었으나 긴장이 완화되지 않은 채 우리의 분단체제는 초강대국들의 국익을 위해 굳어져 왔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일본의 압제에 시달리다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을 맞았으나 이것은 진정한 해방이 될 수 없었다. 우리 힘으로 쟁취한 해방이 아니고 승전국인 미-소에 의존한 것이었던 만큼 이 두 새 지배세력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국가, 민족 간에 각자 제힘을 길러 자존, 자립할 때 참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하늘도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도 먼저 종교, 문화, 예술에 있어 부화뇌동하는 사대주의 사상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각자 대로 제 줏대와 배짱부터 키울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때는 바야흐로 인종과 국적, 남녀 성별, 사회 계층, 빈부 차이, 모든 분파적 이념과 사상, 그리고 신앙적 노예근성을 탈피, 우리 모두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으로서의 자의식과 정체성을 깨달아 우리의 우주적 인격 아니 우격(宇格)’을 지닐 대명천지 코스미안 시대가 도래하고 있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더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10 11:31 수정 2020.09.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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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