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대원군

청나라 땅 찬바람에 눈물의 귀양살이

장덕조·박춘석·이미자

 


대원군은 임금의 아버지를 호칭하는 말, 장인(丈人)은 부원군(府院君)이라고 칭했다. 조선왕조 27519년을 통틀어 대원군으로 통칭되는 대표적인 사람은 조선 26대 임금 고종(1852~1919)의 친아버지이다. 그의 일생을 유행가로 얽은 노래가 <대원군>이다. 이 노래는 1972MBC드라마 <대원군>의 주제가다. 이 드라마는 1972.10.30.~1973.3.31.까지 방영한 일일연속극. 유주현 원작·표재순 연출로, 전운(대원군김민정(민부인김민아(민비최불암(김병기태현실(추선) 등이 열연하였다. 이 노래는 1978년 서울음반 SLP-7822, B5번 트랙으로 리메이커하였고, 원곡은 1972년 지구레코드음반 JLS-120518이었다.

 

운현궁 솟을 추녀 은은한 풍경소리/ 사나이 가슴에는 풍운의 먹구름/ ~ 높은 자리는 외로운 자리/ 누구를 믿었던가 대원군/ ~ 흥선 대원군// 청국 땅 찬바람에 눈물의 귀양살이/ 건청궁 연못가를 물들인 핏자국/ ~ 세도 인심은 허무도 한데/ 사랑만 남았구나 대원군/ ~ 흥선 대원군.(이미자의 대원군, 가사편집)

 

구름 재라는 이름의 운현궁(雲峴宮)은 우리나라 사적 257호이다. 이곳은 흥선 대원군의 사저(私邸)로 아들 고종이 출생하여 12세까지 성장한 곳. 운현이란 조선시대 서운관(후에 관상감으로 개칭) 앞 고개를 가리키는 이름에서 비롯된 것, 고종이 즉위하면서 임금의 잠저(潛邸, 임금이 왕이 되기 전에 살던 집)로 운현궁이라 불린다. 이 무렵에는 아재당(我在堂)과 할아버지 은신군과 아버지 남연군을 모시는 사당을 포괄하며, 건물을 두르는 담장 둘레가 몇 리에 이르는 규모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창덕궁과 운현궁의 편리한 왕래를 위해 임금 전용의 경근문과 흥선대원군 전용의 공근문이 세워지기도 했으니, 당시 흥선대원군의 위세와 저택의 규모는 가히 왕과 궁궐에 비길 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선대원군은 이하응(李昰應), 1820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89879세로 타계한다. 자는 시백, 호는 석파, 시호는 헌의다.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12세에 어머니를, 17세에 아버지를 여읜 뒤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청년기를 보냈다. 21세가 된 1841(헌종7) 흥선정이 되었고, 1843년에 흥선군에 봉해졌다. 1846년 수릉천장도감(조대비 릉 이장 부서)의 대존관이 된 뒤 오위도총부의 도총관 등 한직을 거친다. 철종(1831~1864) 때에는 안동 김씨가 세도를 잡고 왕실과 종친에 갖가지 통제와 위협을 가하였다. 이 때문에 호신책으로 <···>이라 불리는 시정의 무뢰한 천희연·하정일·장순규·안필주와 어울려 파락호(破落戶, 재산·세력이 있는 집안 자손으로서 집안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 생활을 하였다. 이때 안동 김씨 가문을 찾아다니며 구걸도 서슴지 않아서 궁도령(宮道令)이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하였고, 상갓집 개라는 소리도 듣는다. 하지만 궁중 안의 조대비와 연결 끈을 유지하면서 천하를 도모할 속내를 품고 살았다.

 

186312월 철종이 승하하자, 조대비(신정왕후. 익종의 왕비, 24대 헌종 어머니)12세이던 고종(이재황, 李載晃 이희, 李㷩)을 왕위에 오르게 하고 자신이 수렴청정(垂簾聽政)하였다. 조대비는 18662월 철렴(撤簾, 수렴청정을 거둠)을 선언하고, 고종이 친정을 수행한다. 흥선군은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으로 봉해졌다. 이러한 흥선대원군은 1882712일 한양에 입성한 청나라 장수 오장경·마건충에게 나포(외국 세력의 간섭에 의한 정치적인 압박)되어 강제로 화성군 남양만으로 압송된다. 이후 배를 타고 톈진에 도착, 4년간 톈진의 보정부에 억류된다. 보정부는 톈진시 변두리에 위치한 관청,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150km 지점에 있었다. 그는 1883, 톈진 보정부에서 청나라 장수 이홍장 등과 국제정세에 대하여 격론을 벌였고, 납치 주동자 마건충에게는 되놈! 이라고 호령하면서 기백을 굽히지 않았다.

 

대원군은 그곳에서 난초를 그리며 분노와 한을 삭인다. 그의 난초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대단하였다. 그러던 중 1885년 민씨(민비) 정권이 친러·친일 등 성향을 보이며 청나라를 견제하려 하자,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청나라 정부 위안스카이의 정치적 계산으로 4년여 만에 귀국한다. 18858월 배를 타고 이재면의 시종을 받고 인천항에 도착하였다. 그 당시 고종은 아버지를 영접하려 인천항까지 나왔으나, 그는 아들 고종의 얼굴을 외면하였다. 그러나 기생 출신 첩() 추선의 죽음 소식을 접하자 노상에서 대성통곡하였다. 이러한 흥선대원군의 삶을 얽은 드라마의 주제곡이 바로 <대원군>이다.

 

우리나라 유행가는 1960년대를 거치면서 영화 주제가 유행시대를 열었고, 이러한 주제가를 부르는 가수가 대중들의 인기를 끓었다. 드라마 주제가도 비슷한 경우다. 우리나라 라디오는 1927년 경성방송국의 개국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흑백 TV1956년에 칼라 TV 시대는 1980년에 열렸다. <대원군> 노래는 칼라 TV가 방영되기 2년 전의 드라마 주제가, 이러한 사극물이 흑백 TV 속에서도 민족혼과 영혼을 부추기는 기능을 했으리라.

 

노래(유행가)는 세상과 통한다. 공자 말씀이다. 치세락(治世樂난세분(亂世憤망국탄(亡國嘆). 평화로운 시대에는 즐거운, 어지러운 시대에는 분통 터지는, 나라가 망한 때는 한탄의 노래가 불려진다. BC 551~479년 시기를 72세로 살아 낸 공자는 행인(行人)이라고 명명한 민중노래 수집가들을 방방곡곡에 보내서 시가(詩歌) 3천여 수를 수집한다. 다시 이것을 풍·····흥 육의(六義)를 기준으로 305편으로 분류하여 시경(詩經)을 묶는다. 이때 노래는 세상과 통함을 설파한다. 그래서 대중가요를 통속적인 시대이념과 대중적인 감성을 아우른 역사의 산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2019년 내일은 미스트롯,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광분(狂奔)하는 대한민국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유차영]

문화예술교육사

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12 12:56 수정 2020.09.13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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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