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반항의 정신 (II) : 무덤들의 외침(The Cry of the Graves)

이태상

 


1.

아라비아의 왕족 아미르(Ameer)가 법정에 입장해서 재판장 자리에 앉았다. 그의 좌우로 법관들이 자리에 앉았다. 칼과 창으로 무장한 병졸들이 차려자세를 했고, 공판(公判)을 보러 온 사람들은 허리를 굽혀 절하였다. 아미르의 눈에서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무서운 힘이 뻗쳤다. 개정(開廷)이 선포(宣布)되고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자, 아미르가 손을 들고 큰 소리로 호령했다.

 

죄인들을 하나씩 끌어내, 지은 죄를 내게 말하라.”

 

그러자 야수(野獸)가 하품하듯 옥문이 열리고, 어두운 감옥 속에서 쇠고랑 끌리는 소리와 함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잠시 후, 두 팔이 뒤로 묶인 한 젊은이가 두 병졸에게 끌려 나왔다. 젊은이의 의연(毅然)한 얼굴 표정에서 당찬 그의 담력(膽力)과 씩씩한 그의 기상(氣像)을 엿볼 수 있었다. 젊은이를 법정 한가운데 세우고, 두 병졸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이 내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이 젊은이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아미르가 물었다.

 

그자는 살인범이옵니다. 그는 어제 근교(近郊)에 있는 한 마을에서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던 각하의 관리를 살해했나이다. 체포될 때까지도, 피 묻은 칼을 그대로 손에 쥐고 있었나이다.”

 

검찰관이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아미르는 크게 노해서 이렇게 언도(言渡)했다.

 

저놈을 옥에 다시 처넣고, 쇠줄로 묶어 두었다가, 새벽이 되거든, 다른 칼이 아닌 바로 저놈의 칼로 목을 잘라 숲속에 던져서, 들짐승들이 그의 살을 뜯어 먹고, 가족과 친지들이 그의 찢긴 살 냄새를 맡게 하라.”

 

사람들이 동정에 찬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젊은이는 다시 감옥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다음에는 아름답고 연약해 보이는 한 젊은 여인이 끌려 나왔다. 얼굴은 창백하고 절망의 빛을 띠고 있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에, 고개는 슬픔과 부끄러움으로 숙여 있었다. 여인을 찬찬히 훑어본 아미르는 소리쳐 물었다.

 

시체의 그림자처럼 내 앞에 서 있는 이 여인은 무슨 죄를 지었는가?”

 

검찰관이 대답했다.

 

간음한 여인입니다. 어젯밤 딴 남자의 품속에 있는 것을 남편이 발견하고, 정부가 도망친 뒤에 여인을 법에 넘겨 왔나이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여인을 내려다보던 아미르가 이렇게 언도했다.

 

저 계집을 자기가 더럽힌 잠자리가 생각나도록 가시로 만든 침대에 눕히고, 입맞춤의 시큼하던 맛을 되새기도록 쓸개를 탄 초를 마시게 했다가, 새벽녘에 벌거벗겨 들판으로 끌어내서 돌로 쳐 죽여라. 그래서 이리들이 살을 뜯어 먹고, 벌레들이 뼈를 갉아 먹게 하라.”

 

사람들은 놀라 가엾어서 어쩌나?’ 하는 눈길로 옥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가련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미르의 가혹한 처벌에 놀랐고, 여인의 비참한 운명에 가슴 아파했다.

 

병졸들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마치 북풍(北風)에 떠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몸이 수척한 남자가 끌려 나왔다. 마르고 겁먹은 그의 얼굴은 병색이 짙어 보였다.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이 남자를 바라보던 아미르가 소리 높여 물었다.

 

산송장처럼 내 앞에 서 있는 이 귀신 같은 남자는 또 무슨 죄를 지었는가?”

 

검찰관이 곧이어 대답했다.

 

그자는 수도원에서 성스러운 꽃병을 훔친 도둑이옵니다. 신부들에게 잡혔을 때, 그의 옷 속에서 수도원의 보물인 금으로 된 꽃병이 나왔나이다.”

 

굶주린 독수리가 날개 부러진 새를 내려다보듯 하던 아미르가 언도했다.

 

저 더럽고 보기 흉한 것을 어서 감옥에 다시 집어넣었다가, 내일 아침 이른 새벽에 높은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죄 많은 그의 손이 멸하고 쓰레기 같은 그의 몸이 산산조각이 나서 바람에 흩어지게 하라.”

 

이 병약(病弱)해 보이는 남자가 비틀거리며 감옥 속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자 사람들은 귓속말로 수군거렸다.

 

저렇게 허약한 남자가 어떻게 수도원에 들어가서 도둑질을 했을까?”

 

재판은 휴정(休廷)이 되고, 아미르가 법관들을 대동하고 병졸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퇴장했다. 사람들도 모두 흩어지고, 법정은 텅 빈 채 다시 고요해졌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보자, 나는 거울 앞을 스치는 유령들이라도 보는 느낌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 놓았다는 법률이라는 것과, 사람들이 정의(正意)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나는 삶의 참뜻과 하늘의 뜻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나는 이렇게 깊은 생각에 잠겨서 구름 저 너머로 아득히 사라지는 지평선처럼 흐려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아연했다. 법정을 떠나면서,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풀은 땅의 양분으로 살아가고

양은 풀을 뜯어 먹고

이리는 양을 잡아먹고

황소는 이리를 뿔로 받아 죽이고

사자는 황소를 물어 죽인다.

 

하지만 죽음은 사자의 목숨도

빼앗아 가지 않는가?

 

누군들 죽음을 당하지 않을 수 있으리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이 모든 잔인함은

그 어느 누구의 섭리(攝理)에서일까?

 

그 누가 이 세상의 모든 추악함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으며,

바다가 모든 냇물과 강물을 삼켜버리듯

인생의 모든 일을 다 포용할 수 있을까?

 

그 누가 살인자와 살해된 자를 함께,

간음한 여자를 간음한 남자와 함께,

도둑질한 자와 도둑맞은 자를 함께,

아미르의 법정보다 더 공정한 법정에

모두 다 함께 세울 수는 없는 일일까?’

 

 

2.

다음날 나는 시가지를 벗어나 들이 있는 교외(郊外)로 나갔다. 거기는 도시의 좁은 거리 어두운 곳에서 생기는 절망(絶望) 대신 푸른 하늘이 있고, 영혼이 갈망(渴望)하는 것을 모두 드러내 보여 주는 침묵만이 있는 곳이다.

 

내가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한 떼의 까마귀와 독수리가 오르내리면서 까악까악 우는 소리와 획획 날개 치는 소리로 하늘을 덮어 메우고 있었다. 거기에는 높은 나무에 목이 매달린 채 죽어있는 남자와, 돌무더기 속에 벌거벗은 몸으로 죽어있는 여인과, 목이 잘려서 흙과 피로 범벅이 된 젊은이의 시체가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소름 끼치는 시체들 곁에 머무는 죽음의 망령(亡靈)들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날짐승들의 부산떠는 소리와 숨죽여 울부짖는 소리 없는 외침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이 세상에 살아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와 함께 숨 쉬던 세 목숨이었는데, 인간사회의 규율(規律)을 어겼다고 해서 인간이 만든 법률의 제물(祭物)이 되어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죽였을 때,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살인자라고 말하면서도, 아미르가 사람을 그것도 셋씩이나 한꺼번에 죽였을 때에는 아미르의 판결이 공정하다고 한다. 한 인간이 수도원에서 물건을 훔쳤을 때, 사람들은 그를 도둑이라 말하면서도, 아미르가 사람의 목숨을 강탈할 때는 아미르의 심판이 옳다고 한다.

 

한 여인이 남편을 배반할 때, 사람들은 그 여인을 가리켜 간음한 여인이라 말하면서도, 아미르가 여인을 발가벗겨 거리를 걷게 하고 돌로 쳐 죽일 때는, 아미르의 처사가 합당하다고 한다. 남의 피를 흘리는 것이 법률로 금해져 있는데도, 아미르가 남의 피를 흐르게 하는 것은 합법(合法)이라고 한 자 그 누구인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죄이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정당한 행동인가? 남편을 배반함은 추한 행동이고, 살아 있는 생명을 돌로 쳐 죽이는 것은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누가 그랬는가? 검불 같은 허물을 바윗돌 같은 죄악으로 다스리면서, 이를 법률이라 말할 수 있을까? 티끌 같은 잘못을 산더미 같은 부정부패(不淨腐敗)로 다스리면서, 이를 규칙이라 할 수 있을까?

 

고래 같은 죄악의 범인이 송사리 같은 흠집을 만들어 트집을 잡아 생사람을 죄인으로 극형에 처하면서, 이를 사회정의(社會正義)라고 말할 수 있을까? 참됨과 착함과 아름다움, 진선미(眞善美)를 거짓과 악독과 추함으로 짓밟으면서, 이를 사회윤리(社會倫理)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미르는 과거에 한 사람의 적도 죽인 일이 없을까? 약한 백성의 재산을 강탈한 일이 없을까? 간통한 일이 없을까? 아미르가 살인자를 목을 베 죽이게 하고, 도둑의 목을 매달아 죽이게 하고,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게 한 것은 옳은 처사였을까?

 

좀도둑의 목을 매달아 죽인 자들은 누구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인가? 아니면 약탈하고 강탈하는 날강도들인가? 누가 살인자의 목을 베었는가? 하늘나라의 파수꾼들인가? 아니면 남의 피 흘리기를 업으로 삼는 졸개들인가? 누가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였는가? 속세를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가 덕행(德行)을 쌓고 도()를 닦는 수도자들인가? 아니면 무지한 법률의 보호 아래 잔혹한 짓 저지르기를 좋아하는 악당들인가?

 

법률이란 무엇인가? 법률이 태양처럼 우주(宇宙)로부터 나오는 것을 본 자 누구인가? 누가 하나님의 마음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아냈는가? 누가 강자를 보고 마음대로 약자들을 잡아 죽이고 짓밟으라 했는가? 이렇게 내가 마음 아파하면서 고민에 싸여 있을 때, 가까운 풀밭 사이로 무엇인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자세히 보니, 한 젊은 여인이 수풀 사이로 가만가만히 걸어오고 있었다. 여인은 주위를 조심스레 살피면서, 세 시체가 있는 데로 가까이 가더니, 목이 잘린 젊은이의 머리를 발견하고, 떨리는 팔로 그 머리를 부둥켜 안은 채 흐느꼈다.

 

깊이 상처 입은 마음의 가냘픈 목소리로 통곡하면서, 피로 엉클어진 남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처참한 젊은이의 모습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지, 여인은 청년의 내동댕이쳐진 몸둥이를 끌어다가 양어깨 사이에 머리를 얹어 놓고, 흙으로 덮어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 무덤 위에 청년의 목을 자른 바로 그 칼을 꽂아놓았다. 여인이 막 자리를 뜨려 할 때, 나는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깜짝 놀란 여인은 한참 숨을 죽이고 있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내게 말했다.

 

원하시거든 나를 아미르에게 넘기십시오. 치욕(恥辱)의 손아귀에서 나를 구해준 분의 시체를 들짐승들의 밥으로 내버려 두느니, 차라리 그분의 뒤를 따르겠어요.”

 

이 말을 듣고 나는 말했다.

 

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 또한 젊은이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을 치욕의 손아귀에서 구해주었는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설움에 북받쳐 목이 멘 목소리로 여인은 이야기해 주었다.

 

아미르의 관리가 우리 집으로 세금을 받으러 왔었습니다. 나를 보자, 그 관리는 이리가 잡아먹을 양을 노려보듯이 나를 눈독 들여 바라보고는, 저의 아버지가 도저히 물 수 없는 무거운 세금을 물렸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이 엄청난 세금을 낼 능력이 없는 돈 대신에 나를 아미르에게 바치겠다고 잡아가려 했습니다. 나는 놓아 달라고 애원하면서 빌었으나,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나를 끌고 가려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 살려 달라고 소리소리 쳤지요.

 

그러자 지금은 죽어 여기 묻힌 이분이 나타나서 죽은 거나 다름없었던 나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그 관리는 차고 있던 칼을 빼서 이 젊은이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자 이 젊은이는 우리 집 벽에 걸려 있던 오래된 칼을 용케 집어 들고, 날쌔게 그 관리를 찔러 버렸습니다. 그는 죄인처럼 도망치지 않고, 관헌(官憲)이 와서 그를 구속할 때까지 죽은 관리 옆에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가 이 젊은이의 의로운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말을 마친 여인은 얼굴을 돌리고 돌아가 버렸다. 잠시 후에 외투로 얼굴을 가린 젊은이가 나타났다. 그는 간음한 여인의 시체가 있는 데로 가까이 가더니, 외투를 벗어 여인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 주었다.

 

그는 구덩이를 파서 죽은 여인을 정성스럽게 옮겨 놓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다음, 오래도록 흐느끼며 울먹였다. 그리고 나서 몇 송이 꽃을 꺾어 무덤 위에 얹어 놓았다. 그가 막 떠나려 할 때, 나는 그를 멈춰 세우고 물었다.

 

이 여인하고 어떤 친척 관계라도 됩니까?”

 

그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슬픔에 찬 그의 두 눈은 그가 마음속으로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가를 말해 주었다. 입을 다물고 있던 그가 한참 만에 말했다.

 

이 여인은 나와의 사랑 때문에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이웃에서 살았지요. 사랑은 우리 둘을 굳게 맺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볼 일로 집을 떠났다가 얼마 만에 돌아와 보니, 나 없는 사이에 시집을 가버렸더군요. 여인의 아버지가 돈 많은 부자에게 억지로 결혼을 시켰던 것입니다.

 

숨까지도 서로를 위해 쉬어 오던 우리의 사랑과 삶이 날벼락을 맞듯 죽임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눈앞이 캄캄했고 그 후로는 하루하루가 길고도 어두운 밤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음을 돌리고 잊어버리려고 애를 무척 써 보았지만, 잊히기는커녕 점점 더 미치도록 보고 싶어지고 생각이 더 간절해지기만 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나는 여인을 보러 갔습니다. 먼발치로라도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 해서였지요.

 

여인의 집에 이르려 보니, 여인 혼자서 측은토록 슬픈 얼굴을 하고 외롭게 대문 앞에 나와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말 없이 여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습니다. 침묵이 우리의 쌓이고 쌓인 대화였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피맺힌 대화를 말없이 나누고 있는데, 여인의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여인을 거리로 끌어내고 모두들 나와서 간음한 여인과 그의 정부를 보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모여들고, 조금 뒤에 관헌이 와서 여인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면서도 관헌은 나를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무지하고 모순된 법률과 관습은 여자는 처벌하면서도 남자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 이 사나이도 가버렸다. 높은 나뭇가지에 목이 매달린 채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도둑의 시체를 쳐다보면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얼마가 지난 다음 몹시도 불우해 보이는 한 여인이 울면서 나타났다. 여인은 목매달려 죽은 도둑의 시체 밑에 서서 경건하게 기도를 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서, 이빨로 목을 매단 밧줄을 끊었다.

 

시체는 물에 흠뻑 젖은 기다란 담요 조각처럼 퍽하고 땅에 떨어졌다. 나무에서 내려온 여인은 땅을 파고 다른 두 무덤 곁에 남자를 묻었다. 그리고 흙을 덮은 다음, 작대기 두 개로 십자가를 만들어 무덤의 머리맡에 꽂아놓고, 막 돌아서려 할 때, 나는 그 여인에게로 가까이 가서 말을 건넸다.

 

어떤 연유로, 당신은 여기까지 와서 도둑을 묻어 주었습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나서, 여인은 말했다.

 

충실한 내 남편이고, 다섯 어린 것들의 자애로운 아빠랍니다. 제일 큰 것이 여덟 살이고, 제일 어린 것이 아직 젖먹이예요. 내 남편은 도둑이 아니라, 수도원의 농토에서 뼛골이 빠지도록 일하면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 신부들이 몇 줌씩 집어 주는 양식으로 우리 일곱 식구 입에다 풀칠해 오던 농부였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수도원을 위해 농사를 지어 왔지요. 그런데 그가 병이 들어 몸이 약해지자, 수도원에서는 인정사정없이 그에게서 일자리를 뺏고, 어린애들이 크면 아빠의 일자리를 이어받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예수와 천사들의 이름을 빌려 그대로 일하게 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수도원에서는 아무도 그의 애절한 호소를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가보았으나, 허사였습니다. 아무도 몸이 약하고 병든 사람을 써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나중에는 더러운 길거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구걸까지 해 보았지만, 사람들은 게으른 자는 동냥조차 받을 자격이 없다고 외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린 것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목이 쉬도록 울어대고, 젖먹이가 말라붙은 이 어미의 젖을 빨아대다 못해 숨을 할딱거리면서 눈을 까뒤집는 것을 본 아빠의 얼굴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그는 양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수도원의 곡식창고에 들어가 밀 두 말을 퍼가지고 나오다가, 잠을 깬 수도사들에게 발각이 되어, 많은 매를 맞고 잡혀 있다가 아미르의 심판에 넘겨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제 남편이 성당의 제단 위에 있는 금으로 된 꽃병을 훔치려 수도원에 들어왔었다고 아미르에게 일러바쳤습니다. 그래서 목매달려 죽은 거지요. 그는 배고파 울어대는 어린 것들의 배를 자기가 피땀 흘려 일구어 놓고 거두어들인 양식의 아주 적은 분량으로 채워 주고, 굶어서 죽어가는 어린 목숨들을 살리려 했던 것뿐입니다. 그런데 아미르는 그를 죽여 들짐승 날짐승들의 배를 채워 주는 먹이로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마음과 영혼으로 울부짖는 말을 끝맺으면서, 이 여인은 떠나가 버렸다. 조사(弔辭)를 잊었거나 잃어버린 연사(演士)처럼, 나는 이 새로 만들어진 세 개의 초라한 무덤들 앞에 해야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방울들이 말을 대신해 주었고, 울고 있는 내 영혼을 대변해 주었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땅에 깔리면 꽃이 꽃잎을 접어 들이고, 밤의 유령들이 꽃향기를 내주지 않듯이, 내 머릿속 정신도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것 같았다. 이 외딴 골짜기에 이슬처럼 떨어진 세 목숨이 울부짖는 소리 없는 외침이 대지(大地)에 가득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소리 없는 외침 소리를 그 누가 들을 수 있으며, 이를 또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만일 사람들이 이 침묵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면, 사람들도 산골짜기에 피는 꽃들처럼 하나님에게 가까워질 수 있었을 것을

 

만일 이 탄식하는 영혼의 불길이 산천초목에 닿을 수 있다면, 이들이 모두 일어나 아미르를 무찌르고 수도원을 쳐부수는 막강한 군대로 변할 수 있었을 것을. 새로이 만들어진 세 무덤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너무도 깊은 슬픔과 아픔으로 해서 가슴이 메어지고 저려오고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한 처녀의 순결을 지켜 주다 자기의 목숨을 잃은 젊은이의 무덤, 그는 그의 의로운 용기에 대한 보상으로 목이 잘렸다. 그러나 그의 무덤 위엔 그가 구해 준 여인에 의해 그의 영웅적인 행위의 상징으로 사용된 칼이 꽂혀 있다. 결혼은 흥정과 관습으로 이루어지고, 정조(貞操)가 육욕(肉慾)에 의해 침범당하고, 산목숨이 독선(獨善)과 위선(僞善)에 의해 돌로 쳐죽임을 당하기 전에 영()과 혼()이 사랑에 눈을 떴었던 여인의 무덤, 그 무덤 위에는 연인에 의해 꽃이 놓여져 있다. 세속의 물질에 눈이 멀고, 무지(無知)로 해서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된 무리 중에서 사랑에 의해 선택되고 축복받은 영혼을 위로해 주는 꽃이 놓여져 있다.

 

수도원에서의 중노동으로 몸이 쇠약해졌고, 배고파 우는 어린 것들을 먹일 양식을 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자기가 가꾸고 거두어 놓은 곡식의 극히 적은 분량을 되찾으려 하다가 붙잡혀 매맞고 목매달려 죽은 남자의 무덤, 그 무덤 위에는 예수의 은혜로운 가르침을 날카로운 칼로 바꾸어 백성의 목을 베고, 약자의 몸을 갈가리 찢어 놓은 저 간악한 신부들에 대해 하늘의 빛나는 별들 앞에서 증언(證言)할 증인(證人)처럼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태양은 세상의 근심 걱정에 싫증이 나고, 인간 무리들의 굴종(屈從)에 염증(厭症)을 느낀다는 듯이 지평선(地平線) 너머로 사라졌다. 그 순간 어둠이 대지(大地)를 덮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무덤들을 가리키면서, 하늘을 향하여 외쳤다.

 

, ()로운 용기여,

이것이 지금은

땅속에 묻힌

그대의 칼입니다.

 

, 참된 사랑이여,

이것이 불길 속에서

피어오르는

그대의 꽃입니다.

 

, 주 예수여,

이것이 밤의 어둠 속에

묻힌 당신의

십자가입니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19 10:49 수정 2020.09.1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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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