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반항의 정신 (IV) : 異端者 카릴(Khalil the Heretic) (3)

이태상

 

7.

중요하고 안 하고 간에, 조그마한 이 마을에선 언제고 소문이란 빨리 퍼지게 마련이다. 외따로 떨어져서 바깥세상과 연락이 드문 까닭에, 한정된 주위에서 일어나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도 크게 이야깃거리가 되곤 했다.

 

더욱이 산과 들이 눈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들어 있는 한겨울에는 불 가에 모여 앉아 이야깃거리 찾기가 아주 좋은 때이다. 카릴이 레이첼과 미리암의 집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야기는 온 마을에 전염병처럼 퍼졌다. 모두들 집에서 뛰쳐나와 쉐이크의 대궐 같은 큰 집으로 모여들었다.

 

카릴이 쉐이크의 집에 다다랐을 때는, 벌써 넓은 앞마당이 수도원에서 쫓겨난 문제의 젊은이를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지옥의 병균을 퍼뜨린다는 이단자 카릴을 도와주려 했다는 레이첼과 미리암에게도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쉐이크 아바스가 앞자리 한가운데 재판관으로 앉고, 그 옆에 신부 엘리아스가 앉았다. 그 앞에 두 팔이 묶인 채로 카릴이 서 있고, 그 뒤에 레이첼과 미리암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그러나 진리(眞理)를 발견하고 그를 따라나선 한 여인의 마음속에 공포가 어떻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며, 사랑에 눈뜬 한 처녀의 순결한 영혼을 사람들의 조소가 어떻게 더럽힐 수 있으랴. 드디어 쉐이크 아바스가 심문을 시작했다.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카릴입니다.”

 

고향은 어디고 부모는 어디 있는가?”

 

이 물음에 카릴은 자기를 보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신의 압제에 시달리는 가난한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의 부모 친척이고, 이 넓은 땅덩어리가 다 나의 고향입니다.”

 

뜻밖에 이 당돌하고 엉뚱한 대답에, 내심 적이 놀란 쉐이크는 그래도 교활하고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자네가 자네 부모 친척이라고 주장하는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네에게 벌을 줄 것을 원하고, 자네가 자네 고향이라고 하는 이 땅덩어리가 자네가 발을 들여놓는 것을 거부한다네. 알겠나?”

 

그러자 카릴이 말했다.

 

무지한 백성은 자기네의 진정한 벗을 잡아 폭군에게 넘겨주고, 독재자는 압제자의 멍에로부터 백성을 해방시키려는 의인(義人)을 박해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착한 자식이 제 어머니가 병들었다고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겠습니까? 의리 있는 자가 불행한 형제나 벗을 모른 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녁 나를 잡아 이곳까지 데리고 온 내 형제들을 좀 보십시오. 자기 자신의 삶과 자유를 잃고 당신에게 노예처럼 매인 몸이 되어, 당신의 졸개 노릇이나 하자니, 그 얼마나 비굴하고 비참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의 말대로 이 넓은 땅덩어리는 나를 반겨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당신처럼 욕심 많은 폭군들을 너무 반기다 못해 당장에라도 집어 삼켜주지도 않으니 당신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당황해진 쉐이크는 카릴의 기를 죽이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가 이 마을 사람들에게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게 할 셈으로, 큰 소리로 껄껄 웃으면서 위엄있게 말했다.

 

얘야, 소치는 목동아, 네 생각에 내가 너한테 키자야 수도원 원장보다 더 자비를 베풀어 줄 것 같으냐?”

 

카릴이 대답했다.

 

내가 소치는 목동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도살자 백정(白丁)이 아니었던 것을 기쁘고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소 떼를 풀밭으로 인도했지만. 메마른 땅으로 몬 적은 없습니다. 깨끗한 냇물로 인도했지만 메마른 사막으로 인도한 적은 없습니다. 날이 저물면 우리로 안전하게 인도했지만, 이리떼의 먹이로 산골짜기에 내버려 둔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내 온 정성을 다해 목동으로서의 나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지, 날도둑 날강도처럼 내 권리만을 주장한 적은 결코 없습니다. 만일 당신도 내가 가축을 보살폈듯이 이 마을 사람들을 보살피셨더라면 당신 혼자서만 이처럼 크고 좋은 집에서 네로(로마의 황제로서 치세治世 초기에는 철인哲人 세네카 등의 보좌로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나, 말기에는 그들을 물리치고 모후母后와 황후皇后를 살해하였으며, 또 로마시에 불을 놓고, 그 죄를 그리스도교도에게 전가하여 대학살을 감행하고, 공포정치를 하다가 후년에 반란을 만나 자살해 그 후로 폭군暴君의 대명사가 되었음)황제처럼 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은 오두막살이에서 가난에 시달리고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말입니다.”

 

쉐이크의 이마는 진땀이 나서 번들거렸고, 자만에 차 있던 그의 미소가 분노로 변하면서,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카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처럼, 애써 태연해 보이려고 했다. 그리고 카릴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말했다.

 

너는 지옥에 떨어질 이단자야.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너의 우스꽝스러운 헛소리를 듣지 않겠어. 너는 지금 죄인으로 재판받느라고 법을 집행하는 내 앞에 서 있는 거야. 알겠나? 그러니 네가 지금이라도 네 잘못을 깨닫고 네 죄를 깊이 뉘우친다면 내가 너를 너그러이 용서해서, 수도원에서 그랬듯이, 우리 마을의 소치는 목동으로 써주마.”

 

카릴이 똑 떨어지도록 또렷하게 말했다.

 

어찌 죄인이 죄 없는 자를 재판할 수 있습니까? 누가 누구를 심판하고, 누가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묻고 나서, 카릴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쩡쩡 울리는 우렁찬 음성으로 외쳤다.

 

나의 부모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 조상의 무덤 위에 지은 이 대궐 같은 집에 앉아서, 여러분 앞에 이렇게 양팔이 묶인 채 서 있는 나를 심판하겠다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여러분이 여태껏 굴종(屈從)만을 해오고 있는 것입니까? 누가 저 사람을 이 고장의 주인으로 삼고, 여러분의 주인으로 만든 것입니까? 이 땅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고, 여러분의 주인도 또한 여러분 자신이란 것을 알고 계십니까?

 

쉐이크 옆에 앉아 있는 저 신부(神父)라는 사람을 좀 보십시오. 저 사람 역시 여러분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 아닙니까? 누가 저 사람을 하나님의 사자(使者)나 대변자(代辯者)로 임명했습니까? 여기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자식이 아닌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누가 저 사람 혼자서만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대로 팔아먹게 한 것입니까? 저 사람한테 팔리기 위해 계시는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저 사람이 만들어 낸 우상(偶像)일 뿐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밤 여러분은 이단자를 보러, 또 죄인이 심판받는 것을 보러 이곳에 오셨습니다. 잘 보십시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이단자인지, 잘 좀 판단해주십시오. 저한테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비롭지 말고 공정(公正)해 주십시오. 자비는 죄인에게 베풀어져야 하고, 정의(正義)는 죄 없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니까요.

 

예부터 백성의 뜻은 하늘의 뜻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여러분께서 배심원(陪審員)이 되어 주셔서 제 말을 잘 들어주십시오. 여러분께서는 제가 이단자요 죄인이란 말만 들었지, 제가 어떻게 이단적이고 제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는 모르고 계시지요. 제 죄가 무엇인지 또 제가 어떻게 이단적이었는지, 아무도 말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제가 제 입으로 말해 보겠습니다.

 

제 죄는 여러분의 수난(受難)을 이해하고 동정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슬픔을 여러분과 같이 마음속 깊이 느낀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요? 저 역시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조상들도 이 마을에서 살았고, 이제까지 여러분에게 씌워져 온 멍에와 똑같은 멍에를 메고 고생하다가 그 멍에를 멘 채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신부나 수도사들은 믿지 않아도, 수난당하는 우리의 영혼이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들을 모두 부모 형제자매로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습니다. 제가 수도원에서 소를 치면서 여러분의 곤궁한 생활 형편에 대해 차츰 알게 되었을 때, 참을 수 없이 저를 안타깝게 해 준 것은, 여러분이 이리를 따라 이리의 굴속으로 들어가는 한 떼의 어린 양들 같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도와 드리려고 길 한가운데로 나서서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지르자, 이리가 그의 날카로운 이빨로 저를 물어뜯었습니다.

 

여러분의 구슬픈 탄식 소리가 수도원의 구석구석에 울리고 메아리치게 한 탓으로 저는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 굶주림과 목마름에 참기 어려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제 몸은 다쳐도 저의 마음을 다치지는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제정신은 날로 강해졌습니다. 여러분의 신음소리가 제게 날로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속으로 반문하시겠지요.

 

우리가 언제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질렀으며, 우리 중에 누가 감히 입이라도 뻥긋할 수 있었겠는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거니와, 여러분의 영혼이 매일같이 부르짖고 밤마다 도움을 청하고 있지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영혼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지 못하십니다. 왜냐구요? 죽어가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심장이 팔딱거리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은 심장의 이 마지막 고동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죽임을 당하는 새는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듯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그 새로 하여금 이 죽음의 단말마적(斷末魔的) 춤을 추게 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루 중에 어느 시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느끼십니까?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면서 일터로 나가야 하는 이른 새벽입니까? 나무 그늘에서 땀이라도 좀 들이면서 일손을 좀 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땡볕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한낮입니까? 아니면 하루의 노동을 마친 후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집으로 돌아가 는 저녁때입니까? 그도 아니면 피로에 지쳐 고단한 몸을 잠자리에 눕히고 차라리 다시는 깨지 않을 잠이라도 들었으면 하면서, 눈을 감는 때입니까?

 

여러분이 스스로 비통해하지 않는 때가 일 년 중에 어느 계절입니까? 자연은 새 옷을 갈아입고 봄을 맞는데, 여러분은 헌 옷을 그대로 걸치고 있어야 하는 봄철입니까? 애써 농사지어 거둔 곡식으로 쉐이크의 곳간을 가득 채우지만, 여러분에게 돌아가는 것은 타작 찌꺼기밖에 없는 여름입니까? 아니면 갖가지 맛있는 열매들을 따다가 쉐이크에게 바치고, 그의 술독들을 포도주로 넘치게 채워 놓지만, 여러분의 고된 수고의 댓가로는 초 한 병과 도토리 두어 말밖에 받지 못하는 가을입니까?

 

그도 아니라면 눈에 묻힌 오막살이 집안에 갇혀서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겨울입니까? 이것이 가난에 쪼들리고 압제에 시달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피땀 흘려 일해도 수고한 보람 없이 모든 수확이 쉐이크와 수도원의 곳간으로 들어가고, 여러분한테 돌아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키자야 수도원의 신부와 수도원장에게 여러분의 조상으로부터 속임수로 빼앗은 농토와 과수원을 다 여러분에게 되돌려 주라고 했다가 매를 맞고 쫓겨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처럼 부림을 당하여 뼈가 휘도록 일을 하는 이 땅도, 쉐이크가 그의 칼날로 쓰여지는 법률에 의해 여러분의 선조로부터 빼앗아 간 것임을 알고 계십니까? 종교와 법률이 모두 누구를 위해서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가운데서 저 강도 같은 쉐이크에게 겁먹지 않고, 저 사기꾼 같은 신부한테 속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마에 땀을 흘리고서 너의 빵을 먹을지라이렇게 성서에는 씌여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저 쉐이크와 신부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여러분이 수고한 노동의 화덕에서 구워진 빵을 먹고, 여러분의 눈물로 빚어진 포도주를 마십니다.

 

너희들도 거저 받았으니 너희들도 거저 줄지어다금도 은도 구리도 소유하지 마라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사도(使徒) 들이라고 자칭하는 신부들과 수도사들은 누구의 가르침을 따라 저들의 기도를 금과 은조각을 위해 팔아먹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여러분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외우시지요? 여러분의 기도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일용할 양식을 넉넉히 얻으라고 기름진 땅을 여러분에게 주셨는데, 저 쉐이크와 신부는 무슨 권리와 권한으로 여러분의 땅과 양식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은 몇 냥에 스승을 팔았다고 가롯 유다(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그들의 회계會計를 맡고 있던 중 예수를 은30냥에 팔고 배반했다가, 후에 회개하고 자살했음)를 저주하면서, 예수를 매일같이 파는 신부를 어떻게 떠받들 수 있습니까? 가룟 유다는 자기 잘못을 크게 뉘우친 끝에 자기 목을 스스로 나무에 매달아 죽었지만, 이 뻔뻔스러운 신부들은 가슴에다 번쩍이는 십자가를 매달고 비단옷 성의聖衣 robe를 걸친 채, 마치 사람 이상이라도 된 듯이 거룩거룩하게 걸어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여러분의 자식들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이르면서, 동시에 예수의 가르침을 어기는 자들한테도 복종하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의 제자들은 여러분의 정신과 영혼을 살리기 위해 그들의 육신을 죽였습니다.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불에 타 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수도사들과 신부들은 여러분을 착취해서 자기네 육신의 영화(榮華)를 누리기 위해, 여러분의 정신과 영혼을 죽이고 있습니다.

 

누가 이토록 여러분의 기를 죽여 놓고 굴종의 삶을 살게 한 것입니까? 누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 조상들 유골 위에 세워진 우상 앞에 무릎을 꿇게 한 것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손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줄 것입니까? 여러분의 영혼은 신부의 손아귀 속에 들어있고, 여러분의 육신은 쉐이크의 입속에 들어있는 게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것이 내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의 부모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들이 존경하는 저 신부님을 잘 아십니까? 성서(聖書)를 여러분의 돈을 갈취(喝取)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악용하는 기독교에 대한 배반자(背叛者), 허리에 십자가를 찼으나 칼 대신 그 십자가로 여러분의 목줄을 끊는 양의 탈을 쓴 이리요, 제사보다는 젯상에 마음을 쏟고, 황금이라면 환장을 하여 돈독이 누렇게 오른 구더기 같은 인물들이요, 사기꾼 중에서도 가장 가증스러운 사기꾼인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똑똑히 보십시오. 독수리의 부리와 호랑이의 발톱과 이리의 이빨과 독사의 혀를 가진 괴물(怪物)이 아닙니까? 그가 들고 있는 성경책을 뺏고, 입고 있는 비단으로 지은 신부 옷을 찢고, 점잖게 나 있는 수염을 뽑고, 아무 짓이라도 다 해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의 손에 금 한냥만 쥐여주면, 그는 대번에 흐뭇하게 미소지으면서, 여러분을 축복하는 기도를 해 줄 것입니다.

 

돼지처럼 살찐 그의 뺨을 때리고, 기름기 많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통나무 같은 그의 목을 발로 밟아 보십시오. 그리고는 잘 차린 잔칫상에 초대를 해 보십시오. 그는 즉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허리띠를 풀어 가면서 뚱뚱한 배를 즐겁게 채울 것입니다. 그를 저주하고 조롱해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에게 포도주 한 병이나 과일 한 바구니를 선물로 보내 보십시오. 그는 그 즉시 여러분의 죄를 다 용서해주시라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는 여인을 보고는 , 바빌론의 딸이여, 내게서 멀어지라그렇지만 속으로 무어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줄 아십니까? ‘탐내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지.’ 이렇게 자신에게 말하고, 결혼한 사람들을 보고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부질없고 헛된 것이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부질없고 헛된 것이로다.’

 

그러나 혼자 외롭게 있을 때는 무어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인생의 가장 큰 기쁨과 즐거움을 맛볼 수 없도록 신부가 결혼 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칙과 관습이 하루빨리 없어져라.’ 이렇게 말한답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설교하지요. ‘남에게서 판단을 받지 않으려거든 스스로도 남을 판단하지 말라.’ 그러나 자기는 제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을 모조리 다 판단하고, 죽기도 전에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려 합니다.

 

그는 머리는 위로 들고 얼굴은 하늘로 향하고서 설교를 하지만, 그의 생각은 뱀처럼 땅을 기면서 여러분의 주머니를 뒤진답니다. ‘내 사랑하는 믿음의 자식들이여!’ 이렇게 여러분을 부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어버이의 마음씨라 고는 털끝만큼도 없답니다. 어린아이를 보고 순수한 미소를 지을 때도 마음속으로는 더럽고 추악하게 아동들을 성추행할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툭하면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헛되고 헛되도다. 인생은 덧없는 뜬구름과 같도다. 이 세상의 부귀공명이 다 헛된 것이로다. 우리 모두 인생을 달관(達觀)하고 이 세상의 세속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超然)합시다.’ 이런 구두선(口頭禪)을 읊어댑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의 생활을 잘 관찰해보신다면, 얼마나 그가 어제가 벌써 지나가 버린 것을 애통해하고, 오늘이 빨리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가 이 세상 모든 것에 연연(戀戀)해 하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많은 자기 자신은 지독하게 인색하면서, 가진 것이 없는 여러분에게는 자선을 베풀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배를 주리고 헐벗으면서도 그의 요구대로 돈과 양식을 바치면, 공개적으로 여러분을 축복해 줍니다. 그러나 만일 그의 요청을 거절하면, 그는 속으로 은밀하게 여러분을 저주하지요.

 

성당에서 설교할 때는 여러분에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고 핏대를 세우고 열을 올리지만, 그는 자기 집에 찾아온 거지가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아무리 애걸해도 못 들은 체한답니다. 저 사람의 직업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다름 아닌 기도(祈禱) 장사꾼이랍니다. 그것도 기도를 억지로 강매하는 장사치 중에서도 악질 장사치랍니다. 그의 기도를 사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교회로부터 파문당하고 지옥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신도(非信徒)로 낙인이 찍히고 맙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여러분이 어려워하면서 공경해 온 신부님들의 정체(正體)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피를 빨아먹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수도사님들의 정체입니다. 이것이 오른손으로 십자가를 그으면서 왼손으로는 여러분의 목을 조르는 성직자(聖職者)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로는 하나님과 백성의 종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우상(偶像)과 백성의 주인 노릇을 하는 나라와 교회의 관리들입니다.

 

이것이 여러분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여러분의 숨과 기를 죽이는 그들이요, 여러분의 삶을 어둡게 하는 어둠의 그늘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든 사람을 친 부모 형제자매처럼 사랑해 주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이오, 그들에게 내 정신이 반항했다고 오늘 밤 나를 이 자리에 끌어다 놓고, 여러분 앞에서 나를 심판하겠다는 저 사람들의 정체입니다.”

 

카릴은 자기 말에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더욱 힘찬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친애하는 내 동족, 내 동포 여러분! 쉐이크는 아라비아의 왕족 아미르(아라비아의 왕족)가 임명하고, 아미르는 설탄(회교국의 군주 또는 터키의 황제)이 임명하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한 가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설탄은 누가 임명하는 것입니까?’ 설탄을 이 나라의 신()으로 임명하는 하나님의 어떤 권능(權能)이라도 보신 분이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마음속 깊은 데 머무르시는 것을 느낄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매일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라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언자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 주시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압박받으면서 비참하게 사는 것을 원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고 할 것 같으면, 또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그런 분이라고 할 것 같으면, 하늘로부터 비를 내려 주시고, 땅속에 숨은 씨앗으로부터 곡식이 돋아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것 같으면, 그런 하나님께서 단지 몇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총을 독차지하도록, 우리 모두가 헐벗고 굶주리는 것을 원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어버이의 사랑과 부부의 애정과 어린아이의 천진난만 함과 이웃의 친절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평생을 두고 독재자의 폭정에 노예처럼 굴종(屈從)하면서 산송장같이 살 것을 원하신다고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인생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攝理), 우리를 숨통이 막히는 어두운 땅속으로 집어넣고, 우리의 정신을 죽여 가면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독재자를 그대로 오래 내버려 두리라고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다고 할 것 같으면, 이 지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는 진리의 빛과, 만인을 평등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정의(正義)를 부인하는 것이 되고, 우리에게 희망이라고 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자유롭게 창조해 주신 것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어찌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고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자에게 복종만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찌 하늘을 향해 향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돌아서서는 어떤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 있단 말입니까? 성서에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길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의 자식으로서 사람의 노예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러고서도 우리가 만족과 행복을 찾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일찍이 우리를 진리로 자유롭게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쉐이크과 아미르와 설탄의 종이 되고 노예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께선 우리를 하늘까지 높여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땅속으로 숨을 죽이면서 기어들어 가야만 합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혀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어둠 속에 숨겨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숨겨져 있는 인생의 보배를 찾으라고 우리의 마음속에 진리와 착함과 아름다움을 기름삼아 타오르는 횃불을 주셨거늘, 어찌 우리가 이 거룩한 횃불을 우리 스스로 꺼서 잿속에 파묻는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저 넓고 높은 사랑과 자유의 하늘 아래서 날도록 정신과 영혼이라는 날개를 주셨거늘, 어찌 우리가 이 날개를 떼어 버리고 벌레처럼 땅을 기는 수모(受侮)를 자초(自招)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얼마나 못 할 짓이고 못난 짓입니까?” 쉐이크 아바스는 사람들이 카릴의 말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것을 보자, 와락 겁이 났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23 10:43 수정 2020.09.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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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