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사(死)가 아닌 생(生)의 찬가(讚歌)

이태상

 

2020524일자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페이지에 인기 고정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Maureen Dowd, 1952 - )코비드 꿈들, 트럼프 악몽들(Covid Dreams, Trump Nightmares)’ 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요즘 밤에 자면서는 코로나 꿈으로, 아침에 잠을 깨면서부터는 트럼프 악몽들에 시달린다며 묻고 있다.

 

이 남자가 실제로 대통령이라는 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How is it possible that this man is actually president?”

 

그러면서 그녀는 우리 모두의 현재의 실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 보호마스크를 쓰는 우리는(그동안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던) 얼굴 화장이라든가, 패션이라든가, (가식적인) 기교의 전문적인 직업 마스크를 벗는다. 따라서 우리는 얼굴 치장이나 머리 손질 하지 않은 사회 저명인사들과 언론인들의 현재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들은 좀 더 (자연스럽게) 충실한 인간들로 보인다. (지구촌) 어디에서나 인간성 휴머니티(Humanity)가 드러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트럼프는 그 예외로 하고.”

 

“Those of us who have donned protective masks to fight the virus have taken off our professional masksmakeup, fashion, artifice. Now we see celebrities and journalists in their own habitats without hair and makeup, and that has made them seem more fully humanHumanity is showing througheverywhere except, ironically, with the unmasked Trump.”

 

이는 오늘날 가장 웃기는, 아니 실소(失笑)케 하는, 광대 중의 광대는 트럼프, 아니 그런 실소조차 잃게 하는 장본인(張本人)이 트럼프란 말이리라.

 

지난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시절, 그의 연설문 담당 선임비서관으로, 주로 대통령의 농담과 유머 수석 작가로 불린 데이빗 리트(David Litt)24세였던 2011년 백악관에 입성해 20161월까지 근무하다 2월 전문 코미디 제작사 웃기지 못하면 죽어버려라로 자리를 옮겼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매체들은 당시 이 소식을 전하면서 앞으로 미국의 정치풍자가 더 재미있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뿐만 아니라 역대 성공한 대통령들은 모두 국민을 웃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하나같이 웃기는 대통령이었다.

 

199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돌(Bob Dole, 1923 - ) () 상원의원은 2000위대한 대통령의 위트 (Great Presidential Wit: Laughing (Almost) All the Way to the White House)’란 책을 내고, 역대 대통령의 순위를 유머감각을 기준으로 매기기도 했다.

 

1위에 오른 제16대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두 얼굴의 이중인격자(two-faced)’란 비난에 내게 얼굴이 둘이라면, 이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겠습니까? (If I were two-faced, would I be wearing this one?)”라고 대꾸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처럼 유머의 진수는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들춰내 스스로를 낮추고 망가뜨리는 데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미국에서 유행하던 농담 10개만 들어보리라.

 

-남자 눈사람과 여자 눈사람의 차이는? [눈불알]

-수학자의 무덤 비석에 뭐라고 적지? [그는 이렇게 죽을 걸 계산 안 했다.]

-여자 친구 말이 나는 백만 명 중에 하나라는 데 그녀의 문자 메시지를 보니, [맞는 말이더라.]

-대학에서 여러 해 동안 공부한 끝에 마침내 철학박사(Ph. D.)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피자-(Pizza Hut) 배달원(Delivery Man)이라 부른다.]

-비관론자: “사정이 더이상 나빠질 수는 없어!”

-낙관론자: “아니야, 물론 그럴 수 있어!”

-한 나체 여인이 은행을 털었다. 그런데 아무도 이 여자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더라.

-정치인들과 기저귀의 공통점은? [둘 다 규칙적으로 갈아야 한다.]

-꼬마 조니가 아빠에게 묻는다.

바람은 어디서 오는 거야?”

난 몰라.”

개는 왜 짖어?”

난 몰라.”

지구는 왜 둥글어?”

난 몰라.”

많이 물어봐서 귀찮아?”

아니야, 아들아, 물어봐. 안 물어보면 넌 영원토록 아무것도 모를 거야.”

할아버지, 왜 생명보험 안 드셨어요?”

내가 죽으면 너희들이 다 정말 슬퍼하라고.]

-내가 북한 친구에게 북한에 사는 게 어떠냐고 물었지. 그가 말하기를, "‘불평할 게 없이 다 좋다"고 하더군.

 

, 이제 우리 진지하게 생각 좀 해보자.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또 아무리 힘들고 슬픈 일이 많다 해도, 매사에 너무 심각해 할 것 없이 웃어넘길 수 있지 않으랴.

 

웃다 보면

모든 게 다

깃털처럼 가볍고

구름처럼 덧없으며

바람처럼 스치는 게

아니던가.

꿈꾸듯 하는 게

인생이라면 말이어라. 우리 웃음에 관한 시 여섯 편 함께 읊어보리라.

 

한바탕 웃음으로

 

이제는 더러더러 흘리고 살자

손가락 사이사이

세숫물 새어나듯

 

고왔던 추억도

쓰라린 설움도

이제는 더러더러 흘리고 살자

 

여름날 낙수에

막혔던 찌꺼기 내려가듯

이제는 더러더러 흘리고 살자

 

재빠른 발걸음도

빈틈없는 리듬도 반 박자만 낮추고

이제는 더러더러 흘리고 살자

 

-하영순

 

 

목련의 웃음

 

꽃잎이 커서 흔들려도

바람을 원망하지 않고

우아한 춤을 출 수 있습니다.

 

벌과 나비 날아오지 않아도

순정과 고결함

그 향기를 뿜을 수 있습니다.

 

태양이 지고 달이 떠도

맑고 하얀 얼굴로

함박웃음을 웃습니다.

 

하얀 꿈이 있고

빨간 용기가 있어

힘차게 웃을 수 있습니다.

 

-윤의섭

 

 

아가의 웃음

 

까르르 웃는 아가의 웃음은

예송리 갯돌처럼

작고 동그랗네

 

동그랗고 미끄러워

한없이 자갈자갈 구르네

 

물기라도 묻으면 반짝거리며 빛나고

때론 우루루 하늘 올라 별도 되는 것이라

우리의 웃음이 점점 삐뚤어지거나

차마 억지로 웃거나

그 속에 날카로운 가시를 품은 것과

얼마나 다른가

 

이제도 함부로 궁그려며

반질반질 닳아지며

좀 작고 못났으면 어떤가

저렇듯 잘 익은 열매처럼

나도 동그랗게 동그랗게 닳았으면 좋겠네

 

-김영천

 

 

수줍은 웃음[스리랑카 기행시 3]

 

늪에서는 지금 막 연꽃이 시드는데

흙탕물 끼얹어 몸을 씼는다

맨발바닥이야 쇠가죽처럼 굳었을지라도

진초록 잎새나 진홍의 꽃그늘

고무나무 아래서 홍차를 마시고

돌을 갈면 루비 보석 해맑게 빛나

그림같이

남 보기에 그럴까

그림같이

열린 듯 쏘는 듯 커다란 눈으로

후궁처럼 돌아서서 입 가리고 웃는 여자

잊어버린 수줍음을 거기서 찾았다

그보다 훨씬 하얀 손으로

돌아서서 나도 입 가리고 웃었다

갑자기 세상일이 모두 부끄러웠다

 

-이향아

 

 

미소

 

미소는 아무 비용이 들지 않지만 많은 것을 준다.

단지 순간이 걸리지만 그 기억은 영원히 계속된다.

너무 부유해서 미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너무 가난해서 미소로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미소는 주는 사람을 가난하게 하지 않고

받는 사람을 부유하게 한다.

미소는 집안에 햇살을 창조하고

일에서 선의를 조성한다.

그리고 문제풀이를 위한 최고의 해법이다.

그렇지만 청하거나 빌리거나 훔칠 수 없다.

미소는 주지 않는 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작자 미상

 

 

미소

 

제비꽃 작은 미소 하나

너에게로 띄워 보냈다

 

나에게로 돌아온 채송화처럼

환한 웃음 한 다발

두둥실 하늘을 나는 마음에

난 다시 너에게로

나팔꽃 싱그러운 웃음 한 바구니 실어 보냈다

 

미소에서 미소로 이어지는

이 신비한 전염

행복한 미소의 에스컬레이션

 

-정연복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웰빙(well-being)이니 웰다잉(well-dying)이니 하는 말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잘 죽기 위해서는 먼저 잘 살아야 할 일 아닌가. 그럼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언제 어디서든 닥칠 죽음을 항상 의식하면서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리라.

 

잘 알려진 장자(莊子)의 외편(外篇)에 나오는 얘기가 있다. 사람들이 활쏘기하는데 질그릇을 걸고 내기를 하니까 다들 잘 맞추더니, 다음엔 값이 좀 더 나가는 띠쇠를 걸자 명중률이 떨어지다가, 마지막으로 황금을 걸자 화살들이 모두 빗나가더란 일화 말이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장편소설 '죽음의 중지(Death with Interruptions'의 첫 장면이다. 1998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1922-2010)가 쓴 소설이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작가는 노화는 진행되지만 아무도 죽지 않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갈등을 그리는데,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게 된 세상은 천국이 아닌 지옥임을 사실적으로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 이상(李箱 1910-1937)이 그랬듯이 1960~1970년대의 미국을 겁 없이 제멋대로 살았던 저항운동가요 반항아였든 애버트 호프만(Abbot Hoffman, better known as Abbie Hoffmann, 1936-1989)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숨지자 가까웠든 친구들은 그가 나이 든 자신이 싫고, 활력을 잃어버린 청년세대가 못마땅했으며, 보수로 회귀한 80년대를 살아내기 힘들어 세상을 일찍 하직했을 거라고 했다.

 

이상의 친구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은 이상에 대해서 "그는 그렇게 계집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 않았다. 이상의 이번 죽음은 병사에 빌었을 뿐이지, 그 본질에서는 역시 일종의 자살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의혹이 농후하여진다."라고 했다지 않나.

 

모차르트가 1787422일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때 그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우리 한 번 같이 읽어보자. (이 편지글은 1864년 출간된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서한집' 221면에서 옮긴 것이다.)

 

지난번 편지에 안녕하신 줄 알고 있었는데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는 이 순간 몹시 놀라고 걱정됩니다. 제가 언제나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는 버릇이 있지만, 이번만은 어서 빨리 아버지께서 쾌차하시다는 보고를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희망합니다. 그렇지만 잘 좀 생각해 볼 때 죽음은 우리 삶의 참된 행선지임으로 저는 진작부터 우리 인간이 믿을 수 있는 이 좋은 친구와 친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이 놀랍거나 무섭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레 가장 평화롭고 큰 위안이 되며 (제 말을 이해하시겠죠) 이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진정한 지복감(至福感)의 열쇠임을 내가 깨달아 알 기회를 주신 나의 하늘 아버지에게 감사해왔다는 말입니다. 제가 아직 젊지만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 안 하는 때가 없습니다. 내일 새벽이 밝기 전에 나라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는지 모른다는 것을요. 그런데도 나를 아는 아무도 나를 접촉해 사귀면서 내가 한 번도 침울해한 적이 있더라고 말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지요. 이처럼 내가 언제나 밝고 명랑하게 행복한 성정을 갖게 된 데 대해 저는 날마다 저의 창조신께 감사하면서 모든 세상 사람들과 피조물들이 다 나처럼 늘 행복하게 삶을 즐기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I have this moment heard tidings which distress me exceedingly, and the more so that your last letter led me to suppose you were so well; but I now hear you are really ill. I need not say how anxiously I shall long for a better report of you to comfort me, and I do hope to receive it, though I am always prone to anticipate the worst. As death (when closely considered) is the true goal of our life, I have made myself so thoroughly acquainted with this good and faithful friend of man, that not only has its image no longer anything alarming to me, but rather something most peaceful and consolatory; and I thank my heavenly Father that He has vouchsafed to grant me the happiness, and has given me the opportunity, (you understand me) to learn that it is the key to our true Felicity. I never lie down at night without thinking that (young as I am) I may be no more before the next morning dawns. And yet not one of all those who know me can say that I ever was morose or melancholy in my intercourse with them. I daily thank my Creator for such a happy frame of mind, and wish from my heart that every one of my fellow-creatures may enjoy the same.)”

 

예수도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되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라고 했고,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生即死)' '사즉생(死即生)' '필사즉생(必死即生)' '필생즉사(必生即死)'도 있지 않은가.

 

우리 상상 좀 해보자.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늙지 않고 영원히 젊다고. 그러면 사는 것도 젊은 것도 아니리라. 그래서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만(Walt Whitman 1819-1892)도 그의 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에서 이렇게 읊었으리. "죽는다는 것은 그 어느 누가 생각했던 것과도 다르고 더 다행스러운 일이리라. (To die is different from anyone supposed, and luckier.)"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극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Sir James Matthew Barrie 1860-1937)도 그의 작품 피터 팬(Peter Pan)’에서 죽는다는 건 엄청나게 큰 모험 (To die will be an awfully big adventure.)”이라고 했으리라. 그러니 모차르트와 같이 죽음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삶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편집부-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27 10:26 수정 2020.09.1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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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