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재의 연당일기] 맨해튼을 바라보며

위선재

밖에 일을 보러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텃밭에서 붉은 로메인 상추와 그 이파리가 열두 폭 치마처럼 주름지고 너른 상추, 이 두 가지를 따와서 흙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여러 번 씻고 마지막 헹구는 물에는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트려 씻었다.


찬밥 위에 쌈장을 찍어 넣은 상추쌈을 한입 베어 물면서 아! 이제 여름이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식탁에서 마주 보이는 창밖은 온통 녹색인데, 자연이 가진 팔레트에서 가장 순도 높은 녹색을 풀어 놓은 것 같다. 딱 보자마자 아 여름이구나 하고 말할 수 있는, 여름만이 가질 수 있는 무르익고 행복하고 청초한 녹색을 보면 괜히 마음이 포근해진다.

 

오전엔 남편과 함께 퀸즈의 은행과 변호사 사무실에 다녀왔다. 이처럼 우리가 가게를 종업원들에게만 맡겨둔 채로 근무지를 이탈하여 볼일을 보러 같이 다니는 데에는 이젠 가게 일에 너무 매달리지 않고 좀 더 여유롭게 지내겠다는 결정이 반영된 일이다.

 

전에는 볼 일이 있어도 남편과 나, 둘 중 하나는 가게를 지키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주로 남편이 혼자 일을 보러 나가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 두 달 동안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containment)은 가게를 중심으로 타이트하게 돌아가던 우리 부부의 생활 궤도를 느슨하게 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가게에 매진하던 시기로부터 장사에서는 한 발을 떼고 은퇴를 준비하는 시기로의 이동도 앞당겨 버렸다.


뉴욕시를 가장 조망하기 좋은 곳은 뉴욕시 복판이 아니라 그것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강 위의 다리로부터다. 바다인지 강인지 모르게 폭이 넓은 강 위에 길고 높이 떠 있는 다리 위에서는 마천루의 숲인 맨해튼의 모습이 한눈에 바라다보이기 때문이다.

 


 

뉴저지에서는 살아 본 적이 없어서 허드슨강 너머로부터 맨해튼의 풍경은 잘 모르겠지만 이스트강 위에 걸쳐진 화이트 스톤 다리나 뜨롱넥 다리 위에서 조망되는 맨해튼의 전망은 퀸즈에 볼일을 보러 갈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서민 아파트촌에서 다른 이민자들과 나란히 살았다. 그때는 퀸즈의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도서관에 가거나 퀸즈 우드사이드에 있는 교회의 한글학교에 가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Q44버스를 타곤 했는데 화이트 스톤 브릿지를 지나는 버스 차창에 가득 펼쳐지던 맨해튼의 웅장하고 역동적인 모습은 늘 나를 허기지게 했었다.

 

한 끼 식사로 해결되는 그런 배고품이 아니라 막연한 동경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다못해 마음을 아리게 하는 그런 시장기였다. 나의 가난하고 작은 현실과 찬란하고 거대한 이상과의 거리가 가슴을 저리게 하곤 했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고 우리의 이민 생활도 정착이 되어가면서 나의 이상은 점점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아 갔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그 도시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꿈을 꾸며 살았다.

 

내 꿈은 이루어졌고 아들은 그 도시에서도 가장 중심부에 자리 잡게 되어 요즘은 강을 건널 때마다 이제 아들이 일하고 있을 맨해튼의 랜드마크의 한점을 바라보곤 한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내 아이들이 이루어 가고 있어서인지 이젠 맨해튼의 전망이 그 전처럼 시장기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가슴이 뛸 만큼 멋있고 훌륭하다. 특히 오늘처럼 화창하고 맑은 날에는 강인지 하늘인지 모를 공간에 뜬 맨해튼의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도 진취적이다. 이런 전망을 늘 마주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나도 이 풍경의 일부가 되어 왔던 것 같다.

 

이런 풍경과 늘 마주하고 살아가는 내가 가진 시야와 비전은 다른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들과는 아무래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위선재]

뉴욕주 웨체스터 거주

위선재 parkchester2h@gmail.com

 

 

편지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30 10:31 수정 2020.09.12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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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