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가평 경반계곡에서 귀나 씻고 놀다 가소!

여계봉 선임기자



가평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자연 생태계의 보고다. 그 중에서도 경반계곡은 당일 피서지로 최고다. 거울 경(), 큰 돌 반(), ‘거울처럼 맑은 반석이니 신선이 노닐 듯이 수려한 풍광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경반계곡은 회목고개 아래 수락폭포에서 시작되어 가평천에 합류되는 5km의 오지계곡인데, 울창한 삼림과 차갑고 맑은 물을 지닌 청정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골짜기다. 이웃한 용추계곡에 비하여 경관은 손색이 없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7월이 시작되는 첫날, 연인산 자락의 칼봉과 매봉 사이에 있는 경반계곡을 오른다. 산행은 칼봉산 휴양림의 백학동에서 출발하여 경반분교 터와 경반사를 거쳐 수락폭포까지 오른 뒤 다시 경반사 아래로 내려와 잣나무 군락지 사이로 난 임도를 따라 짚라인 체험장을 지나서 칼봉산휴양림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11km, 4시간)로 걷는다.

 

임도에서 바라본 칼봉. 칼날 모양을 한 정상을 구름이 감싸고 있다.


칼봉산 자연휴양림은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환경 친화적 휴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가평읍에서 휴양림까지는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지만 여기서부터 경반분교와 경반사까지 길은 임도처럼 널찍하지만 4륜구동 차량만 들어갈 수 있는 험한 길이다. 비가 온 뒤에는 길이 끊기기도 하고 수시로 물길을 건너야 한다.

 

가평읍 경반리 칼봉과 매봉 사이 수락폭포에서 시작되는 경반계곡은 폭은 좁지만 용추계곡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용추계곡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아직까지도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칼봉산은 한북정맥의 명지산 남쪽 능선에 솟은 매봉의 동쪽 봉우리 중 가장 높은 산이다. 주능선이 칼날처럼 날카로워 칼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곡 입구에 있는 용추폭포와 골짜기 안의 수락폭포로 유명하다.


산행 들머리인 휴양림의 한석봉마을. 한석봉이 가평군수로 있을 때 이곳을 자주 찾아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오늘은 칼봉과 매봉을 오르지 않고 계곡을 따라 그냥 편하게 숲길을 걷는다. 그러나 길만 보고 걷다가는 길섶의 달맞이꽃도, 오디나무도, 산길 아래 어둑한 숲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도, 화전민들이 살았던 사람살이 흔적들도 그냥 지나치게 된다. 길가의 뜰보리수나무 열매는 맛이 상큼하고 입안이 시원하여 지금이 먹기에 딱 좋다. 한 움큼 따서 호주머니에 넣고 수락폭포에 오를 때 까지 간식으로 요긴하게 먹는다. 숲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갈수록 계곡물이 자주 산길을 넘쳐흐른다. 오늘은 수량이 적어 징검다리로 건너지만 비가 온 뒤에는 등산화까지 벗어야한다.


유년 시절을 떠 올리며 산길을 징검다리로 건너는 재미가 쏠쏠하다.

 

경반분교는 1980년도까지 화전민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산에 사는 사람들이 점차 떠나면서 학교도 자연히 폐교가 되었는데 지금은 야영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반분교는 MBC 12일 팀이 오지 캠핑 체험을 여기에서 촬영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서울 사람 박해붕씨가 38년 전 폐교를 구입하여 지금까지 오토캠핑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도회적 이미지가 강하고 팔순이 지났음에도 세월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캠핑장 주인 박씨와 나눈 대화를 통해 이미 오지 생활의 달인 경지에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경반분교는 캠핑문화가 다시 유행하면서 오지캠프를 즐기는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경반분교 오토캠핑장. ‘1박 2일’에 강호동과 박찬호가 출연한 곳이기도 하다.

 

 

금년 81세인 박해붕씨. 자택인 서울 잠실과 이곳을 오가면서 오지생활을 즐기고 있다.

 

경반분교를 지나면 마지막 민가가 나온다. 식당을 겸하고 있는데 고목에 길게 매달린 그네가 정감을 더한다. 선인들은 산을 경전(經典)으로 삼고 살았다. 삶은 통째 산을 닮으려는 노력이었다. 이런 산골에서 귀를 열고 자연의 소리나 들으며 욕심 없이 사는 것이 바로 선()이 아닐까.

 

경반분교 위에 있는 나무껍질로 만든 너와집이 산과 많이 닮아있다.

 

 

경반계곡은 곳곳에 소()를 만들어 낸 매우 여성적인 계곡이라 할 수 있다. 계곡 주변으로 나무들이 울창하여 마치 계곡이 나무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잠시 후 임도와 회목고개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회목고개 방향으로 30여분 오르면 비포장된 도로가 끝나는 곳에 아담한 폭포 옆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암자 경반사에 이른다. 모든 것이 소박하다. 입구에 있는 작은 종, 허름한 민가 건물에 불상을 모신 작은 암자라서 더욱 정겹다. 절 입구에 있는 작은 종을 울리면 잠든 영혼을 깨우고 지친 마음에 쉼표를 그려주는 동네 여염집 같은 절이다. 주변에 서있는 초목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향기가 절집에 그윽하다.

 

경반사 아래 작은 폭포와 소. 연초록빛 수면에 나무 그림자만 일렁거린다.


오지의 짙은 녹음 속에 자리한 경반사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법당이다.

 

경반사를 나와 회목고개로 오르는 임도에서 수락폭포안내판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물길로 내려서면 웅장한 맛은 없으나 빽빽이 우거진 숲 사이로 옥빛 소와 크고 작은 폭포들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바위골짜기가 나온다. 폭포는 높이 33m 되는 바위절벽을 물살이 비스듬히 퍼지며 타고 흘러내리는 형국인데, 폭포가 내는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자욱한 물안개가 계곡에 가득하다. 폭포 물줄기가 근육통이나 산후통에 효과가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데, 물이 너무 차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수를 포기한다. 폭포 위에 있는 선녀탕에는 은은한 옥빛 물이 고여 있는데, 선녀 한사람이 몸을 담글 만한 아담한 소다.


수락폭포. 천고의 바위틈에서 자란 기송 노수가 폭포의 절경을 더한다.


수락폭포 앞에서 탁족을 즐긴 뒤 발길을 돌려 내려간다. 빽빽이 들어선 잣나무 숲 사이로 난 임도로 들어서자 산길은 적막하고 고즈넉하다. 느릿느릿 걷는 것처럼 마음에 충만을 주는 행위도 드물다. 경사진 듯 평탄한 듯 쭉 곧은 듯 구부러진 듯 완만한 임도를 넉넉한 마음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산이 나요, 내가 바로 산이다.

 

울울창창(鬱鬱蒼蒼) 잣나무 숲이 불멸의 생, 바로 영생이 아닐까.
널찍한 이파리를 가진 나무들이 여름의 치열함을 몸으로 가려주고 있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물소리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뿐이다. 속세에서 소음으로만 들리던 매미소리가 이곳에서는 마음을 일깨워 머릿속을 비어주는 자연의 가르침으로 들린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은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산길 중간에 갑자기 하늘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짚라인을 타는 사람들이 우리 머리 위에서 숲을 가로지르며 내는 괴성이다.


2시간 반 동안 하늘에서 스릴을 체험하며 경반계곡의 원시림을 즐길 수 있다.
밤나무와 잣나무 숲 사이에 있는 휴양림 산책로는 심신을 치유하는 공간이다.

 

산행 날머리인 칼봉산 자연휴양림 계곡에서 양손 맞대어 가득 물을 연거푸 얼굴에 끼얹으니 땀방울이 낙수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조용함을 깨고 옥수를 더럽혔는데 얼굴에서 떨어진 물들은 흐르는 물에 합류하여 아래로 흐를 뿐이다. 잠시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당실당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물 흐르는 소리인지 솔바람 소리인지 구분이 안가는 계곡의 숨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산과 하늘의 밝음과 물과 소리의 맑음을 마음에 담으니 잠시나마 선인이 된다.

 

세상은 코로나19와 악다구니로 시끄러운 난장이다.


귀나 씻고 놀다 가소!’


경반계곡이 오늘 내게 던진 말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7.06 11:46 수정 2020.07.0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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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