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완 칼럼] 세계를 이끌어온 동아시아의 과학과 발명(3)

최용완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7.08 11:16 수정 2020.07.08 17:22

7. 해시계, 물시계, 주판

 

낮에 해 떠 있을 때 바늘 그림자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 하루의 시간과 계절의 때를 기록함은 일찍부터 천문학과 함께 알려졌었다. 궁중에 물시계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하루의 시간을 알려주는 기록은 기원전 6세기 서주시대부터 나타난다고 한다. 지금 박물관에 전시된 물시계 유물들은 덕수궁의 자격루가 1536(중종31)에 만들어진 것들을 비롯하여 중국 북경 자금성에 비루를 볼 수 있다. 북을 치거나 종을 울려 하루의 시간을 알려주었다.

 

주판은 현대세계의 컴퓨터 시작이었다. 두 손에 다섯 손가락이 계산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열 손가락 십진법으로 계산해서 무한한 숫자를 더하기와 빼기를 할 수 있고 같은 주판에서 몇 가지 다른 계산을 동시에 할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 전후 경부터 나타났다고 한다.

 

주판이 있기 이전에는 새끼줄에 마디를 만들어 숫자를 표현하였고 원시시대 계산 방법으로 세계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주판을 사용함은 기호와 문자로 수를 표현하다가 수학이 발달하였다. 농경생활에서 물물거래가 시작되면서 저울이 발명되었다. 수학을 시작하면서 있다는 사실과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0’은 없는 숫자를 표현하기에 ‘0’을 인식함도 수학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시작하였다.

 

8. , , 그릇, 금속 잔, 청자와 백자

 

수만 년 전 석기시대부터 곡물 농사를 지이며 곡물이 상하면서 남기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마시고 취하는 습관도 그때부터 시작했다. 차도 술처럼 오래된 음주이다. 맛을 내는 나뭇잎을 끓여 먹었다. 술은 곡식이 있는 동안 마셨고 차는 곡식이 없는 농번기에 마셨다. 한약도 그때부터 시작했다. 고구려 고분에서도 발굴되는 오랜 역사를 가졌다. 신라 흥덕왕과 당 문종의 기록에서 나타난다. , , 티라는 발음으로 온 세상에 알려졌다. 그릇을 만들어 음식과 술을 보관하고 그릇에서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다가 숟가락이 발달하고 젓가락이 나타남도 동아시아 문화에서만 볼 수 있다. 처음 그릇은 대나무 통을 사용하기도 하였다가 토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재기나 술잔으로 사용하였다.

 

토기가 처음 제작될 때는 나무 받침대에 올려놓는 축제용 제기로 만들어졌기에 밑이 뾰족했다. 차츰 받침대 없이 평편한 바닥에 놓는 그릇 모양으로 바꾸어 졌다. 세 다리 받침이 나오는 무렵에 삼족오(다리 셋 까마귀)가 나타나 종교적 안정을 상징하는 사상이 유행하였다. 청동 술잔이 만들어져 제기로 쓰였다. 요하문화에서 청동기가 나타난 후에 하나라(Xia BC 2,300) 때에 황하문명에서 나타나고 일반 대중의 일상생활에 청동기가 사용됨은 춘추전국시대(BC470-221)부터이다.

 

한국의 청동기술이 중국보다 앞선 기술이라는 사실은 청동기의 합금 성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청동은 구리, 주석, 납이지만, 한국의 청동기는 이들 함께 아연 합금으로 되었다. 동아시아의 석탄 불가마 1,100~ 1,400고열에서 만들어진 사기그릇을 도자기라고 한다. 동아시아의 토기문명이 스메르문명으로 전해졌듯이 동아시아의 사기그릇이 로마제국에 전해지면서 중국을 차이나(China)라고 불렀다.

 

삼국시대 유리공예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신라의 고분에서는 유리, 옥도 적지 않게 출토된다. 이러한 유리구슬과 옥은 목걸이, 귀걸이나 금관의 장식으로 쓰였다. 유리구슬과 옥은 비취나 수정, 호박과 같은 옥류와 다른 다양한 색깔과 유리의 질감으로 삼국시대 장식품이었다. 청자는 신라시대 장보고가 당나라에서 들여오며 우리나라에도 청자가 나타난다. 고려 상감청자는 우리 문화의 특색이다. 남송시대에는 수도였던 항주에 관요가 설치되어 두꺼운 유약과 검은 태토를 특징으로 한 청자가 만들어졌으며, 또한 일본에서도 전세품으로 많이 알려진 청백자 등 각지에서 특징 있는 도자기가 생산되었다. 명나라 시대(1391)에는 경덕진에 궁정용 도자기가 구워 졌다. 그 후에 유럽에서는 15세기에 오토만제국에서 도자기를 생산하고 명나라 도자기가 유럽에 대량 수출되었다.

 

9. 나침반

 

압록강과 요하 주위에서 석탄불의 고열로 금속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자석 철강에서 자석의 방향성을 얻게 하여 나침반을 만들었다. 짚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며 나침반이 필요했다. 짚배가 전해진 페루문화에 나침반도 함께 전해진 듯하다. BC200년 한나라 때 기록으로 나타나지만, 그전에 상나라 때부터 이미 사용된 듯하다. 강철 자석 숟가락을 청동반 위에 얹어 놓으면 남북을 가리키고 청동판에는 음과 양, 동서남북, 8, 16, 24, 2832방을 나누어 방향판을 만들었다. 천문도와 대륙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며 원양항해가 발달하였다. 동아시아의 항해술은 아프리카에 왕래하는 길을 열었고 세계지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명나라 정화제독은 1421년에 미국을 왕래했다고 영국의 게빈 멘지스(Gavin Menzies)는 그의 저서 <1421>에서 발표했다.

 

10. 종이, 활자, 인쇄

 

동아시아의 섬유문명은 짐승 털옷, 삼배옷, 비단옷으로 1만여 년 전에 농경생활에서 시작하였다. BC 2,200년에 이집트에 전해진 삼배는 파피러스(Papyrus)라고 일컬었으며 동아시아의 삼배옷과 종이 생산 기술이 전해진 것이다. 삼나무를 삶아서 섬유질을 솎아내어 실로 감고 옷감으로 짜면 옷을 만들어 입었다. 글을 써서 보관하는 문서가 되었다. 훗날에 비단이 만들어지면서 삼배와 비단을 서남아시아와 유럽의 후진국으로 수출하면서 비단길이 열렸다.

 

동아시아의 종이는 서기 105년에 만들어져서 700년에 공문을 써서 세상에 알렸고 868년에 목판인쇄를 했다. 나무활자는 1,041년에 만들어졌으며 금속활자는 한국 고려시대 1,234년에 만들어졌다. 14세기에 유럽에 전해졌다. 1,200년대에 서남 아세아 회교도 국가에서 유행하였고 유럽에서는 1,400년대부터 유통되었다. 동아시아의 인쇄정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생각과 감정의 연결로 유럽의 문예부흥을 비롯한 현대문명 세계화에 이바지하였다.

 

11.

 

농사짓는 마을이 태어나며 장터가 서고 장날이 정해졌다. 마을의 중앙이나 성문 밖에서 광장을 이루었다. 돈은 화폐(貨幣)라고도 한다. 동아시아에서 조개껍데기, 짐승의 가죽, 보석, 옷감(비단), 농산물 등을 물물교환 대신 사용하며 시작하였다. 나중에 금, , 동 따위의 금속으로 바뀌었다. 사회 도덕과 규칙에 따라 시행하였다. 종이돈은 1024년에 송나라 때에 동전의 영수증 기록으로 시작하였다. 원나라 때에 종이돈을 인쇄하여 유통하였다가 유럽에 인쇄술이 전해지며 비로소 유럽에 유통되었다.

 

<동아시어는 인류 문명문화의 어머니> 최근에 새로 출판된 책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전 문교부 문화제 전문위원 역임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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