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택의 사랑방 이야기] 시 갖고 장난하기

정홍택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7.09 10:38 수정 2020.07.09 10:39



며칠 전 짓궂은 제 친구 하나가 넉 줄짜리 시구(詩句)를 주며 이것으로 시() 하나 지어보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음에 들면 점심 한 끼 잘 사겠다는 약속과 함께.

 

개미는 구멍 찾기 어렵고

새는 둥지 찾기 쉽네

복도에 가득해도 스님들은 싫어 않고

하나만 있어도 손님들은 싫어하네.

 

 

아무리 보아도 네 행()이 따로따로 놀고, 도무지 내용의 연결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날도 점심 후 산책 시간이 되어서 동네공원에 갔습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초록의 나무들, 그 사이로 난 기다란 산책길, 매미 소리.....

 

수수께끼 시구를 생각하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뺨을 스치는 바람이 스산하고 이상합니다. 뚜둑 뚝뚝 빗방울이 뜯기는 듯해서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조금 전 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검은 구름 성난 얼굴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곧 하늘이 캄캄해지며 천둥 번개 바람을 동반한 무서운 순간이 나를 덮쳤습니다. 공원 속이라 어디 피할 곳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조그만 쉴 터를 찾아 우선 몸을 피했습니다. 시구고 뭐고 다 잊었습니다. 이미 머리에서 발까지 다 젖었고 옷은 내 몸에 찰싹 붙었습니다.

 


 

신발에 붙었던 꺼멓게 젖은 흙은 이제 운동화에서 하얀 양말로까지 밀고 올라왔습니다. '에라 그냥 가자', 나는 소나기 속을 동화 속 아이처럼 뛰었습니다. 집에 와, 다 벗고 샤워하고 새 옷 입고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하늘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 그런데....

내 마음속에 시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지체 없이 노트북을 꺼내 휘갈겼습니다. 물론 나중에 수정은 했지만....

 

 

한 소나기 천둥번개 세상을 쓸고 간 후

발밑의 개미는 제집 찾아 헤매고

나무 위의 새 둥지는 의연히 남았구나

불도(佛徒)들의 흙 발자국, 절 복도에 가득해도

걸레든 스님 얼굴 환한 미소 그치잖네

절 아래 냉면집, 손님으로 그득한데

그 많은 면가락 중 머리칼 하나  

손님은 화가 나서 소리쳐 쥔 부른다

마음속 천둥번개 계속 치고 있구나


친구에게 이 시를 주고 점심 한 그릇 잘 얻어먹었습니다.

 

 

 

 



[정홍택]

서울대학교 졸업

KOCHAM(Korea Chamber of Commerce in U.S.A.) 회장

MoreBank 초대 이사장

Philadelphia 한인문인협회 창설 및 회장

 

정홍택 hongtaek.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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