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바람의 언덕

신연강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7.10 11:26 수정 2020.07.10 11:30


세상을 가르는 것은 매미였습니다. 매미들은 숲과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고 세상이 떠나갈 듯 울어댔고, 칠흑 같은 밤엔 쥐죽은 듯 깊은 잠을 잤습니다. 동산의 구릉 (丘陵)을 벗어나면 안. 밖으로 향하는 언덕길엔 태양이 이글거리며 살갗을 파고듭니다. 구릉의 공지(空地)엔 아름드리나무가 만들어내는 두터운 그늘이 있지만, 그곳을 벗어나 마을 안과 밖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엔 지면의 열기가 몸을 휘어 감습니다. 동산은 그늘이 만들어내는 작은 천국과 지옥의 교차점이었습니다.

 

그늘 속에서도 매미는 왜 그토록 죽어라 우는 것일까요? 한철을 구가하면서도 덧없는 울음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입니다. 공지(空地)엔 밤나무들의 긴 가지와 무성한 잎이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그곳에 사람과 짐승과 벌레가 모두 모여 한여름 더위를 삭입니다. 동산의 쉼터는 적막함과 인기척이 뒤섞이고, 이별의 눈물과 재회의 약속, 그리고 간절한 기다림과 그리움이 혼재하는 곳이었습니다.

 

동구 밖은 조용합니다. 앞마을로 내려가는 비탈길엔 한낮의 햇볕이 작열하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선 눈을 조금만 들면 짙푸른 벼와 진갈색 논둑이 보입니다. 버드나무는 여인처럼 바람에 연푸른 잎을 휘날리고, 녹음(綠陰) 어디에선가 매미의 구애가 한창입니다. 강렬한 햇빛, 숨 막히는 열기, 그리고 굴절을 모르는 매미 소리로 그때쯤이면 무시간의 깊은 공동으로 빨려 들어가곤 했습니다.

 

산골의 단조로운 일상처럼 단조롭고 지루한 방학이 끝날 때쯤, 동산에 서서 어머니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왠지 알 수 없지만, 노을 질 무렵 언덕에 서면 막연한 허전함과 그리움이 다가오곤 했습니다. 산으로 둘러 에인 골을 굽이굽이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이르는 곳. 그래서 지명이 골말이라 불리는 그곳에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십여 채의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동산 비탈면을 따라 몇 채가 서 있습니다. 경사는 심하지 않았으나 어린 나이에 그 비탈을 자주 오르기엔 버거웠지요.

 

다만 바람은 자유롭게 그곳을 오르내리며 한여름을 즐겼습니다. 머물지 않고 자유로웠습니다. 동산 밤나무 그늘의 깊고 그윽한 바람. 오늘같이 뜨거운 열기가 몸을 휘감는 날엔, 허전하면서도 막연한 기다림이 있던 그 언덕에 다시 오르고 싶어집니다. 기다림의 이유는, 집이 그리워진 아이를 데리러 올 어머니의 발길을 기다린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때의 그 바람을 맞을 수는 없겠지만, 동산 지척(咫尺)에 조부모가 잠들어 계신,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가 계신 산이 보입니다. 그 선산(先山)에 서면 바람의 언덕을 품고 있는 동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기자기한 예쁜 동산이 손안에 들어올 듯합니다. 누군가는 시집가는 누이를 보내며 그리워했을, 누군가는 도회(都會)로 취직하러 가는 자식을 보내며 눈물짓고, 누군가는 뜸부기 우는 저녁에 장에 간 오라비가 비단 구두를 안고 돌아오길 기다렸을, 그 언덕에 바람이 찾아듭니다.

 

이제 그 동산을 내려다보며 선산의 어머니가 제 발길을 기다릴 것입니다. 잣나무 가지 사이로 솔향을 가득 머금은 바람이 한여름의 산을 오릅니다. 그 바람을 따라 마음도 추억을 안고 산을 오릅니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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