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가평 연가(戀歌) 흐르는 용추구곡(龍墜九谷)

여계봉 선임기자



여름에는 숲이 우거진 골짜기를 걷는 것이 좋다. 한술 더 떠,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걷는다면 더욱 기분 좋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칼봉산(900m)에서 발원하여 옥녀봉을 감싸듯이 흐르는 가평 용추계곡은 총 24에 걸쳐 흐르는데, 옥색의 맑은 물과 계곡마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기암괴석, 능선에 우거진 참나무, 잣나무 군락지 등 훼손되지 않은 청정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계곡을 따라 걷거나 계곡 속을 걷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데 계곡이 넓고 반석과 얕은 소가 많아 물놀이를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용추구곡 중 9곡 농원계로 들어가는 길은 신비로운 태고의 원시림 숲길이다.

가평군의 옛 이름은 가릉군이다. 유학자인 성재 유중교(省齋 柳重敎) 선생은 가릉군 옥계산수기(嘉陵郡玉溪山水記)’에서 이 계곡의 비경을 감탄하며 용이 하늘로 오르며 아홉 굽이에 걸쳐 그림 같은 경치를 수놓았다는 의미로 옥계9(玉溪仇谷) 또는 용추구곡(龍墜九谷)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용추계곡 트레킹은 연인산도립공원 안내소를 출발하면서 시작된다. 1곡 와룡추를 시작으로 9곡 농원계까지 용추계곡의 아홉 굽이를 돌면서 약 6km 코스의 탐방로를 따라 2시간 정도 걷게 된다. 칼봉산과 연인산이 내린 초록그늘 숲을 걷고, 맑은 물과 기암괴석, 짙푸른 녹음이 어우러진 풍광도 즐기고, 원시의 계곡 물에 몸을 담구며 잠시 자연인이 되어보기로 한다.

 

1곡 와룡추에서 9곡 농원계 용추계곡(연인산도립공원 제공)

 

트레킹이 시작되는 연인산도립공원 안내소 상류 쪽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용추폭포는 풍파에 힘겨워 너럭바위 위에 패어 내린 물길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물이 흘러내리며 그 아래로 아름다운 담()을 이루고 있다. 기암 사이로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져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린다. 이 폭포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폭포 옆 경사진 바위 위에 깊게 파인 자국은 용이 누웠던 자리라고 한다.


1곡 ‘와룡추(卧龍湫)’, 폭포가 마치 누워있는 용의 모습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일대가 연인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계곡 중간까지 포장도로가 이어지며 차량 통행이 늘었고, 곳곳에 펜션과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과거의 오지계곡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도 차량 통행이 금지된 상류 지역은 여전히 원시림이 살아 있어 한편으로 다행스럽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걸어야하지만 새소리와 물소리가 함께 해서 덜 지루하다.


간이 주차장 바로 위 계곡에 있는 2곡 무송암은 천년 묵은 노송이 바위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정면에서 보면 사람 모습이지만 남쪽과 북쪽에서 보면 남근석과 흡사해서 자식을 원하는 여자들이 많이 찾았던 바위라고 한다.


2곡 ‘무송암(撫松巖)’. 미륵바위라고도 부른다.


오랜 세월 동안 물과 바람을 견디어온 바위는 아름다운 형상의 크고 작은 소를 만들고,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은 부딪치고 깨지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다양한 소리를 내는데, 이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화음이다. 그래서 3탁영뢰(濯纓瀨)’는 구슬같이 부서지는 계곡 양안에 있는 바위라서, 4고슬탄(鼓瑟灘)’은 흐르는 물소리가 거문고와 비파 연주소리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는 계곡 곳곳에 소(沼)를 만들어, 여름에는 천연 수영장이 된다.


산비탈 큰 바위에는 토종꿀 채집통이 매달려 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비경에 취해 결코 가깝지 않은 이 길을 피곤한 줄 모르게 걷는다. 맑다 못해 시리게 푸른 계곡물은 남은 빛깔마저 남김없이 받아들인다.


5일사대(一絲臺)는 좁은 협곡 안에 하얀 실타래를 늘여놓은 듯하고 물빛이 속까지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찾기 어려운 곳에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계곡의 마지막 공영주차장 공원 옆의 깊은 협곡에 있는데, 계곡이 너무 깊어 내려가기 힘들므로 가급적 위에서 관람하는 것이 안전하다.


5곡 ‘일사대(一絲臺).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시퍼런 물길에 두려움이 앞선다.


달 밝은 가을 밤 바위 아래 동그란 연못인 6추월담(秋月潭)’과 푸른 숲이 우거진 협곡인 7청풍협(靑楓峽)’을 지난다. 산자락에는 원시림과 함께 잣나무, 참나무 군락이, 길가는 얼레지, 은방울, 투구꽃 등 야생화들이 쉬엄쉬엄 걷는 이들의 시선을 뺏어간다. 이 길을 걷다보면 번뇌로 가득한 삶의 무게가 어느새 가벼워졌음을 깨닫는다.

 

용추계곡 숲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자유와 안식을 만난다.


칼봉산쉼터를 지나면 용추계곡의 상류가 시작되는데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숲길이 시작된다. 한 점 새소리마저 흡입한 탓인가. 깊은 숲길은 아득하다. 잘 다져진 흙길을 따라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이라 한여름에도 햇살이 잘 들지 않아 시원한 녹음 트레킹을 즐긴다. 차분한 산길은 몇 차례 징검다리를 건너 마지막 9곡으로 이어진다.


칼봉산 쉼터. 계곡 상류에 있는 마지막 상가이다.


용추(龍墜)’라는 이름은 계곡의 아름다움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적인 단어다. 용이 머물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할 만큼 웅장한 폭포와 깊은 연못을 품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깊고 물이 많은 골짜기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8곡 귀유연은 옛날 옥황상제를 모시던 거북이가 용추계곡의 경치에 반해 내려와 놀다가 결국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그대로 바위로 굳어 버렸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곳이다. 거북이 모양의 바위 옆에서 하얀 물줄기를 쏟아내는 폭포와 깊은 소를 바라보며 짜릿함을 즐긴다.

 

8곡 귀유연(龜遊淵). 9곡 중 가장 좁고 깊은 협곡이다.

 

빛 한줄기 숨어들지 못하게 빼곡한 숲길 안은 흐르는 물소리와 서늘한 바람, 잣나무가 뿜어내는 향으로 가득하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자락 곳곳에 낮은 석축과 계단 모양의 지형이 눈에 띈다. 이곳이 과거 화전민들의 애환이 서린 삶의 터전이었음을 알려준다. 참나무 숯을 만들어 내다팔던 숯 가마터도 보인다.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땀과 노동으로 일구었던 치열한 삶의 흔적은 아직도 깊은 오지 곳곳에 남아있다.


농원계 들어가는 호젓한 오솔길. 원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제법 너른 숲길이 끝나는 깊은 계곡에는 물살이 흐르면서 노니는 시내, 9곡 농원계가 있다. 연인산에서 흘러내린 옥수가 모여 골짜기를 이룬 이곳은 기묘한 바위와 티끌하나 없는 맑은 물, 울창한 숲이 서로 손잡고 태고의 자연을 빚어낸다. 물속에 들어가니 물속에 내가 투영된다. 농원계의 맑은 물은 그동안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준다. 사람들은 곳곳에 아름다운 계곡이 있는 가평을 반기고 좋아한다. 그래서 골짜기에는 가평 연가(戀歌)가 흐른다. 농원계의 징검다리를 지나가면 청풍능선을 따라 연인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9곡 ‘농원계(弄湲溪). 용추구곡 중 제일 상류에 있다.
용추계곡 녹수(綠水)도 산객 따라 같이 내려온다.


계곡과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있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온다. 올랐다 내려오니 발길이 가볍다. 아래로 흐르는 물길을 따르니 육신조차 편안하다. 구름 걸친 산자락에 마음의 덧을 내걸으니 마음 또한 편안하다. 한여름 고단한 속세의 삶에 지친 이들은 맑은 물에 마음을 헹구는 심정으로 용추구곡을 찾아볼 일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7.11 12:01 수정 2020.07.1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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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