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본 근현대사] 농부의 자유천지

서울 가면 무엇 하나 벼슬하면 무엇 하나

월견초·김정식·황국성

유차영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7.21 10:49 수정 2020.07.21 11:29

 

<농부의 자유천지> 노래는 1959 아세아레코드에서 발매한 SP음반이다. <요리꼬불 저리꼬불>과 같이 앞뒷면에 실렸다. 이것을 1961년 아세아레코드 앨범으로 재발매하면서 A면에 <집 없는 아이>, <은피리 옥피리> 등을 실었고, B면에 <눈 감아드리오리>, <농부의 자유천지> 등을 실었다. 음반타이틀은 <농부의 자유천지>였다.

 

서울 가면 무엇 하나 벼슬하면 무엇 하나/ 오막살이 방 한 칸에 석유등 밝히고/ 산나물 저녁 찬에 마주 앉아서/ 춘향전을 같이 보다 잠이 들면 그만이지/ 서울 가면 무엇 하나 벼슬하면 무엇 하나// 이름 내어 무엇 하나 출세하여 무엇 하나/ 하루 종일 일을 하며 부모님 모시고/ 식은 땀 베개머리 등잔불 아래/ 심청전에 슬피 울다 잠이 들면 그만이지/ 이름 내어 무엇 하나 출세하여 무엇 하나.(가사 편집)

 

이 노래는 1953년 박재홍의 <물방아 도는 내력>의 동생 같은 곡. 가사도 멜로디도 엇비슷하고, 노래가 지향하는 감흥도 닮았다.‘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짖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역사 알아보련다// 사랑도 싫다마는 황금도 싫어/ 새파란 산기슭에 달이 뜨면은/ 바위 밑 토끼들과 이야기하고/ 마을에 등잔불을 바라보면서/ 뻐국새 우는 곡절 알아보련다.’

 

노래는 염세적(厭世的)이거나 회피적(回避的)이지도 않고 목가적(牧歌的)이다. 19603.15부정선거의 꼬리를 문 4.19의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下野)하여 하와이로 정치적인 망명을 떠난 시기, 1961년 군사정변의 삼엄하던 시절 노래다. 산업화시대로 들어서기 전이고, 이농향도(離農向都)의 바람이 불어오기 이전이다. 노랫말은 시골 농부의 하루이고 일상이다.

 

1절은 오두막·석유등·산나물·춘향전이 모티브이고, 2절은 부모님·등잔불·심청전이 소재이다. 오두막집은 우리나라 5천년을 이어 온 원시적인 집이다. 볏 집·나무··갈대·나뭇가지·진흙과 돌 등으로 지은 집인데, 10평 내외의 초가삼간(草家三間)으로 보면 된다. 이 오두막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지붕을 슬레이트나 기와로 개량하면서 사진 속이나 영화세트장에만 남았다. 새마을 운동(New Village Movement) 혹은 신향촌운동(新鄕村運動)으로 불렸다. 이는 1970년 초 우리나라 농촌현대화를 위해 시작된 국가적인 운동이다. 풀뿌리 지역사회개발운동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최초의 새마을운동 자문가는 농업전문가 류태영(柳泰永, 1936~. 농촌청소년미래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덴마크 국왕 프레데릭 9세의 초청으로 농촌개발모델을 연구하여 우리나라에 새마을운동을 도입한 선도적인 인물. 그 당시 박정희정부에 의해 1969년 새마을운동으로 명명되었다. 정부는 1980년대 초반까지 시멘트와 철근 등 총 비용의 절반가량을 투자하여 지원하였다.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을 기본정신으로, 농촌의 근대화, 지역의 균형발전, 의식개혁을 그 목표로 하였다.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는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다. 그곳에 가면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이 있다.

 

노래 속의 등잔불은 호롱(oil lamp) 또는 등잔(燈盞)이라고 불렀다. 전기를 이용한 백열등이 나오기 전의 조명수단. 필자는 1970년대 초반에 중학교에 진학을 하였는데, 중학2학년 때 시골집에 물레방아 발전기에 의한 희미한 백열등이 켜지기 전까지 등잔불 아래서 책을 읽었었다. 인류 최초의 램프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물건, 코노넛·바닷조개·달걀껍질·속이 빈 돌 등으로 만들어졌고, 나무에 홈을 판 등잔에 이어서 도자기 호롱이 만들어졌다. 가장 오래된 석유램프는 1940년 프랑스 라스코 동굴에서 발견되었으며 1~15천 년 전으로 추정한다.

 

<농부의 자유천지> 속의 화자는 춘향전과 심청전을 등잔불 아래서 읽고 있으니, 그 시절 깨우친 농부로 여겨진다. 노래를 흥얼거리면 오류(五柳)선생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가 떠오른다. 그는 41세 때의 가을, 팽택(彭澤장시성 심양 근처)의 현령(면장)을 사직하고, 고향 심양으로 돌아갔다. 13년간의 공무원 생활 마감이다. ‘돌아가련다. 전원이 바로 거칠어지려는데 아니 돌아갈소냐.’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 귀거래해 전원장무 호불귀. 노래 속의 농부도 도연명을 흠모하였으리라. 2020년 오늘날 귀촌(歸村귀농(歸農)을 꿈꾸는 이들에게 <농부의 자유천지> 노래를 권한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다시 되새기는 21세기다.




[유차영]

문화예술교육사

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