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참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


[윤동주] 일제 강점기의 저항시인, 순수한 정신으로 내면의 세계를 노래한 시인 



이해산 기자
작성 2020.08.06 10:37 수정 2020.08.0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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