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잠자리와 새 잡기

이태상

 

초등학교 다닐 때 나는 잠자리를 잠자리채로만 잡지 않고 내 인지(人指) 둘째 손가락으로도 잡았었다. 책에서 읽었는지 아니면 선생님께 들었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잠자리는 수도 없이 많은 눈을 갖고 있다 했다. 머리와 얼굴이 거의 전부 눈이라는 것이었다.

 

울타리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보면 나는 가만가만 접근, 근처까지 가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처음에는 커다랗게 잠자리 주위로 원을 그리기 시작해, 점점 나사(螺絲) 모양으로 빙빙 나선상(螺旋狀) ‘그물을 쳐 나갔다. 그러면 그 많은 눈으로 나의 손가락 끝을 따라 빙빙 돌아가던 잠자리가 어지럼증을 타서인지 이 빠져 날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잡히곤 했다.

 

그 후 내가 중학교에 진학해 생물 시간에 구아사과(溝芽蛇科)에 속하는 독사의 일종으로 아프리카,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등지에 분포하며 개구리, , 새 등을 잡아먹는다는 코브라 이야기를 듣고 궁금증이 생겼다.

 

개구리나 쥐는 몰라도 새가 어떻게 뱀에게 잡혀서 먹힐까?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도 얼른 날아가면 될 텐데. 선생님이 설명해주셨는지 아니면 내가 혼자 궁리궁리 해 본 것인지 또한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코브라가 새를 쳐다보면서 긴 혓바닥으로 날름거리면 이를 내려다보던 새가 홀리다 못해 혼이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날아갈 능력이 마비된 채 떨어져 뱀의 밥이 되고 말리라는 풀이로 나는 그 해답을 얻었었다.

 

또 그 후로 6.25 사변을 겪은 뒤, 내가 그 어느 누구의 체험담인지 수기를 읽어보니, 사람이 총살을 당할 때 총알을 맞기도 전에 미리 겁먹고 죽는 수가 있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미리 놀라 총소리 듣기도 전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얼마 후 정신이 들어 살아난 사람도 있었겠지만…...

 

우리말에 토끼가 제 방귀 소리에 놀란다고 하듯이 내가 아마 서너 살 때 일이었으리라. 두 살 위의 작은 누나하고 연필 한 자루 갖고 내 것이다’ ‘네 것이다싸우다가 마지막에는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내가 사생결단(?)’을 하다못해 너 죽고 나 죽자며 누나의 손등을 연필로 찔렀다. 그러자 연필심이 부러지면서 누나의 살 속에 박혀 버렸다.

 

그런데도 야단은 누나만 맞았다. 누나가 어린 동생하고 싸웠다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연독(鉛毒)이 몸에 퍼져 누나가 죽게 되면 순사(일정시대 경찰관)가 와서 나를 잡아갈 것이라며, 겁에 새파랗게 질린 나는 순사가 우리 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미리 죽어버리리라고 마음먹고, 큰 형님이 갖고 계시던 사냥하는 엽총 총알 만드는 납덩어리 하나를 한동안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때 만일 순사인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하고 누가 대문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 내가 그 납덩어리를 꿀꺽 삼켜버렸더라면 나의 삶이 아주 일찍 끝나버렸을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지 않았어도 그 후로 나의 몸에는 흉터가 몇 군데 생겼다.

 

젊은 날 첫사랑에 실연당하고 동해바다에 투신했다가 다쳐 척추 수술을 받고 허리에 남게 된 큰 수술자리 말고도, 내 바른쪽 손등과 왼쪽 눈 옆에 흉터가 남아 있다. 눈 옆에 난 흉터는 내가 중학교 시절 예수와 교회에 미쳤을 때, 하도 교회 목사님들이 설교로 사람은 다 죄인이고 매 순간순간 마다 숨 쉬듯 짓는 회개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따라, 길을 가면서도 수시로 눈을 감고 기도하며 회개하다가 길가에 있는 전봇대(電柱)를 들이받고 이 전주에 박혀 있던 못에 눈 옆이 찢어져 생긴 것이다. 그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당장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지는줄 알고. 그때 눈 옆이 아니고 눈을 찔렸었더라면 나는 애꾸눈 장님이 되고 말았으리라.

 

그리고 손등에 난 흉터는 내가 너더댓 살 때였을까 장난이 너무 심하다고 나보다 일곱 살 위의 큰 누나가 나를 혼내주겠다고 앞마당에 있는 장독대 밑 컴컴한 지하실에 가두자 그냥 있다가는 그 지하실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고 죽는 줄 알고 다급하고 절박한 나머지 주먹으로 지하실 유리창 창문을 깨는 바람에 생긴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나 동물이나 너무 눈앞에 어른거리는 현상에만 집착 현혹되다가는 얼마든지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궁지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그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어 가는 것 같다. 흔히 여자고 남자고 기왕에 버린 몸이라고 될 대로 되라며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수가 많지만 어쩌다가 실수로 아니면 신수(身數)가 사나워 어떤 불행이 닥치더라도 이를 더 큰 불행을 예방하는 하나의 예방주사 맞는 액()땜으로 삼을 수 있지 않으랴.

 

좀 짓궂게 얘기해서 가령 네가 너무 웃다가 또는 오래 참다가 오줌을 찔끔 쌌다고 하자. 그렇다고 네가 똥까지 싸고 주저앉아 뭉갤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얼른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될 것을.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이 그의 작품 유령들(Ghosts)’에서 하는 말 한두 마디 우리 함께 음미해보리라.

 

나는 거의 결론적으로 생각한다. 우린 모두 유령들이라고. 유령처럼 우리 앞에 수시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만이 아니다. 우리 속에 깊이 처박혀 있어 떨쳐버릴 수 없는 갖가지 사장(死藏)된 생각들과 화석화된 미신(迷信)의 믿음들이다. I almost think we are all of us ghosts. It is not only what we have inherited from our father and mother that ‘walks’ in us. It is all sorts of dead ideas, and lifeless old beliefs.

 

신문 한 장만 들춰보면 이러한 유령들이 활자 사이로 지나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알들만큼 많다. 그리고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너무도 유감스럽고 한심스럽게도 밝은 개명천지(開明天地)를 두려워하고 있다. Whenever I take up a newspaper, I seem to see ghosts gliding between the lines. There must be ghosts all the country over, as thick as the sands of the sea. And then we are, one and all, so pitifully afraid of the light.”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전) 코리아타임즈 기자

전) 코리아헤럴드 기자

현)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8.07 10:50 수정 2020.08.0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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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