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글을 쓰는 이유

신연강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8.13 10:51 수정 2020.08.13 11:39



1970년대에 포크 듀오 둘다섯이 부른 밤배, “검은빛 바다 위를 밤배 저 밤배...” 로 시작하는 노래였습니다. 이 가사가 불현듯 생각나는 것은 고요한 밤에 잔잔한 바다를 항해하는 것처럼, 글을 읽는 것은 활자의 배를 타고 생각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글이 물결치고 있고, 또 서점과 도서관 서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을 보면 수많은 생각이 우리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글을 배우고 익히면서부터 우리는 모두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글쓰기를 많이 해왔습니다. 독후감, 발표문, . . 고 때의 과제, 일기문, 심지어 반성문까지 숱한 글을 써왔는데이런 모든 글이 오늘의 라는 존재를 있게 한 의미 있는 과정이었음을 상기하면서 글쓰기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자(文字)가 생겨 난 이후 글의 집약체인 은 우리의 생각을 담는 가장 대표적인 도구가 되었지만, 문화의 발전과 미디어의 발달로 생각을 담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고 눈부시게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기꺼이 땀 흘리는 수고를 감수하고 종이에 담긴 활자를 읽어가는 것은 영화, 음악, 인터넷 그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즐거움과 풍미를 줍니다. 수많은 작가가 여러 다른 이유로 글을 쓰겠지만, 제가 아는 몇몇 작가들의 글쓰기 사유를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로렌스(D. H. Lawrence)에 대한 신뢰와 찬사는 절대적입니다. 로렌스는 손의 촉각을 통해 우주의 모든 것을 만나며 방대한 것들을 배우고 알아간다고 말합니다. “글을 쓸 때 내 손은 유쾌하게 미끄러져 나(i)라는 점에 메뚜기처럼 안착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가운 책상을 느끼게 된다. 손은 생각의 원초가 되고, 두뇌와 정신과 영혼만큼이나 나 자신이 된다. 그러니 손 이상의 온전한 내가 어디 있겠는가? 손이 절대적으로 살아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있다.” 그러니 로렌스가 이런 손으로 어찌 글을 안 쓰겠습니까. 손은 그 자신이고 소설을 쓰는 것은 그의 숙명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글을 쓰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온전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로렌스는 살아있는 총체로서의 존재를 강조합니다. “나는 사람이고 살아있다.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한 살아있는 인간이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소설가로서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책은 삶이 아니다. 책은 단지 떨림(전율)일 뿐이다. 그러나 떨림으로서의 소설은 살아있는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반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글쓰기는 필자와 독자 사이의 교감을 중시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글 쓰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글쓰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은둔이나, 몰입,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는 여행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승화(초월)의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여러 다른 이유를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보편적인 이유가 존재한다고 보는데, 그것은 곧 인간이란 존재는 세상 모든 만물이 그를 통해서만 현현될 수 있는 원천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모든 행동을 통해서 세상은 인간존재에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게 됩니다. 따라서 사르트르는 작가가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작가가 자기 생각을 지면에 투영할 때, 그는 사고를 무한히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대상을 구체화하고 정신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작가와 독자의 공동 작업이라는 것을 사르트르는 강조합니다.

 

오든(W.H. Auden)의 쓰기에는 좀 더 깊은 철학이 엿보입니다. 1930년대에 영국에서 뛰어난 시인으로 주목받았던 오든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지적 영향을 받았으며, 미국. 호주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영역을 넘나드는 사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든의 독특한 작가관은 성공에 관한 그의 사고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삶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농부처럼 특정한 분야에서 지속해서 생계의 필요성을 만족시키거나, 또는 의사처럼 다른 이들로부터 가르침이나 훈련으로 기술습득을 한 그런 직업이 아니라, ‘영감’(inspiration)을 받은 자들로서 냉소가 스며있는 경구를 통해 위트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면서 오든은 명성은 작가를 자부심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허한 존재로 만든다.”라며 작가에게 쏟아지는 독자들의 찬사를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성공한 작가가 자신의 성공 원인을 분석할 때, 대개는 타고난 자신의 재능을 간과하고, 자신의 글쓰기 기량을 과신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든은 모든 작가가 무명이기보다는 유명해지기를 바라지만, 진정한 작가는 그러한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작가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비전이 자기기만이 아니라 진정한 비전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독자의 호응(평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글 쓰는 동안 느끼는 감흥은 그만큼 독자의 감흥으로 전해진다.”라고 오든은 말합니다. 그 또한 글쓰기를 통해 작가와 독자가 소통함으로써 감흥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포스트모던 작가인 보니것(Kurt Vonnegut)의 경우는 말할 수 없음을 말함이라는 절대적 이유를 가집니다. 보니것은 1943년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194412월 벌지(Bulge) 전투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작고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Dresden)의 지하도축장에 갇히게 됩니다. 그즈음 전쟁의 양상이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어가므로, 2차 대전을 끝내기 위해서 연합군은 독일을 무차별 공습하게 됩니다.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해 태평양전쟁을 종결했듯이, 드레스덴에는 사흘 밤낮으로 폭탄을 쏟아붓습니다. 폭격이 끝나고 지상에 올라왔을 때 지상의 모든 것들이 검은 숯과 재로 변해있었고, 인구 13만의 도시는 쑥대밭이 되어 사람들 시신은 구운 생강 과자처럼 엉겨 붙어 사방에 흩어져있었는데, 폭격에서 살아남은 포로들이 이런 사체들을 구덩이에 넣고 흙으로 덮거나 화염으로 태웠다고 합니다.

 

석방되어 미국에 돌아온 보니것은 악몽보다도 더 참혹한 전쟁 경험으로 말미암아 정신착란에 시달리며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마다 사연이 있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경험한 것을 허구와 혼합하여 글로 전했기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삶의 부조리를 이겨내기 위해 그가 숱하게 되뇐 말 그렇게 가는 거지 뭐!”(so it goes)는 그가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글쓰기 기법이 바로 블랙 유머(black humor)로서 보니것은 오늘날까지도 뛰어난 블랙 유머의 대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런 걸출한 작가들과 비교하니 저의 글쓰기가 무척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저의 글쓰기는 절박함에서 출발하지만 잦은 사고와 실수로 점철되었습니다. 원고가 담긴 USB를 잃어버리고, 메모 노트를 분실하고, 꼭 필요했던 책과 자료가 없어지는 등...여러 사고가 생겨서 몇 번을 미루고 재차 착수하는 동안 원고와 쓰려는 열정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후에 발간할 책에서 밝히겠지만, 이번에 쓰지 못하면 이 책은 영영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간적, 정신적, 심적 부담과 절박함이 있었지만, 반면 집필에 대한 열망과 의지는 강해졌습니다.


이상과 같은 여러 다른 글쓰기를 살펴보았는데, 전업 작가들의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벌써 상당한 문해력을 통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글쓰기는 스포츠 선수들이 매일 훈련을 하고, 연주자들이 매일 연주를 하듯 기량을 연마하기에 따라 전문가 수준의 글쓰기가 될 수도 있고, 간간이 취미 삼아 하면서 일상을 기록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 어느 경우든, 글쓰기를 통해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또 소통과 나눔의 통로를 확보하면서 깊고 그윽한 사색의 우물을 길어 올릴 수 있다면, ‘글쓰기는 사색하는 존재로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즐거움이고 기쁨이며 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이 글쓰기는 기쁨이고 즐거움이며, 독자와 소통하는 통로가 되어 인식의 지평을 심화, 확대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살아가면서 많은 고통과 상처를 안고 있는 독자들에겐 작은 위안과 힐링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