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본 근현대사] 맨발의 청춘

눈물도 한숨도 씹어 삼키며

유호·이봉조·현미(최희준)

 

2020년 트로트 열풍이 분다. 오래 흘러온 옛 노래를 다시 부르고, 세월의 갈피에 묻혀 있던 곡조를 헤집어 낸다. 뿐 만이랴, 오랜 세월 다시 흘러갈 새 노래를 새 가수들이 절창을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 1930년대 탄생한 유행가의 갈레는 1960년대에 트로트라는 새 물길을 연다. 1990년대에는 전통가요 부활, 2020년대에는 트로트 르네상스의 불길이 활활거린다. 매니아가 전문가를 능가하는 시대가 왔다. 매니아는 맨발로 달리는 사람이다. 홀로 몰입하는 독립군이기도 하다. 음악을 전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람들. 이런 시기에 되새김할 노래가 <맨발의 청춘>이다.

 

<맨발의 청춘> 노래는 1964229, 지금은 사라진 서울 광화문 아카데미극장 현, 조선일보 ()사옥에서 개봉된 김기덕 감독 영화의 주제곡이자 영화제목이다. 당대 최고스타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한 비극적 사랑영화였으며, 이 영화 개봉 후 신성일과 엄앵란은 실제 결혼에 골인했다. 음반은 오아시스레코드에사 발매하였으며, A면에는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 B면에는 <맨발의 청춘>이 실렸다. 당시 영화는 서울에서만 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노래는 국민소득 100$ 시대를 허덕거리던 청년들의 가슴을 울컥거리게 한 후 50여 년의 세월을 이어오는 애창곡으로 양양(揚揚)하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그대를 태양처럼 우러러 보는/ 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줄 날 있으리라// 외롭고 슬프면 하늘만 바라보면서/ 맨발로 걸어왔네 사나이 험한 길/ 상처뿐인 이 가슴을 나 홀로 달랬네/ 내 버린 자식이라 비웃지 말라/ 내 생전 처음으로 바친 순정은/ 머나먼 천국에서 그대 옆에 피어나리.(가사 전문)


https://youtu.be/63QwMeE3Gbk 

 

영화가 발표될 당시는 6.25전쟁이 끝난 지 11, 3.15 부정선거에 저항하던 불길에 이은 4.19 의거,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대통령의 하야(下野)와 미국 하와이 망명, 5.16군사쿠데타의 시대상황에 끝에 매달려 있던 시기다. 이러한 어려운 시절, 우리나라 청년들은 부잣집 딸과 뒷골목 주먹의 이루지 못한 사랑과 죽음의 비련에 울음을 삼켰다. 눈물도 한숨도 홀로 씹어 삼키며 밤거리에 뒷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이런 풍조는 1970년대 중반 암울한 시대상황과 청년들의 삶을 묘사한 <고래사냥><왜불러> 같은 노래들로 궤가 이어진다.

 

<맨발의 청춘> 영화는 일본영화 <흙탕 속의 순정>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시대정서를 잘 반영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상영관도 단 한 곳이었다. 맨발의 청춘(The Barefooted Young) 영화 줄거리를 풀어보자. 남자주인공 서두수(신성일 분)는 뒷골목의 폭력배이다. 그는 밀수시계를 운반하러 가던 중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요안나(엄앵란 분)와 친구를 구해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요안나와 두수는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이런 중에 두수가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저지른 사건으로 약속장소에 나가지 못하고, 그를 기다리던 요안나는 대관령에서 편지를 보낸다. 두수가 출소한 후 그들은 다시 만나지만 신분의 차이로 인해 부모들 반대 장벽에 부딪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취직 알선 자리에서 모욕을 당한 두수는 밀수건 해결을 위해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기로 한다. 이때 요안나는 외교관인 아버지가 있는 태국으로 가게 되자 두수를 찾아 가출하고, 둘은 경찰과 조직의 눈을 피해 시골로 도망치게 된다. 거기서 하룻밤 동안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가진 뒤 동반자살하고 만다. 비련의 비극이었다.

 

영화 속에서 두수의 조직원 트위스트 김(본명 김한섭, 1936~2010)은 트위스트 춤의 원조이며 만능엔터테이너였다. 이 영화가 낳은 또 하나의 스타였다. 영화 속에서 트위스트 김이 폭력조직의 윗배 두수의 시신을 가마니로 덮고서 리어카에 싣고 가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울음을 터뜨렸단다. 거죽 떼기 가마니 덮개 아래 삐죽 튀어나온 깡마른 맨발이 영화 주제가 <맨발의 청춘>과 오버랩 되었단다.

 

<맨발의 청춘> 주인공 신성일(申星一, 1937~2018)은 국민배우이자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본명은 강신영(姜信永), 예명 신성일은 1960<로맨스 빠빠>로 데뷔할 당시 소속되었던 신필름의 뉴스타넘버원(New star number one)이라는 뜻을 담고 붙인 것이란다. 그는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본명과 예명을 합친 강신성일(姜申星一)로 개명을 하였다. 예술인과 정치인을 넘나들던 백발의 그는 201811481세의 생을 마감했다.

 

대구 출생으로 영덕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다시 대구로 와서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를 졸업했다. 영화계에 데뷔이후 1960~1963년 까지 <특등 신부와 삼등 신랑>, <가슴에 꿈은 가득히>, <가정교사>, <김약국의 딸들>, <대전발 050>, <말띠 여대생>, <사나이의 눈물>, <새엄마>, <청춘 교실>, <공작부인>, <미스 김의 이중생활>, <맨발의 청춘> 등 영화를 엄앵란과 같이 동료와 연인으로써 주연하였고, <맨발의 청춘> 후 결혼했다. 이들은 1975년 이후 사실상 별거하였지만 이혼은 하지 않았었고, 2003~2005년까지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신성일의 아들은 영화배우 및 제작자인 강석현이다. 한 살 연상의 부인 엄앵란(嚴鶯蘭, 1936~)은 본명 엄인기(嚴仁基)인 국민여배우이다. 그녀는 1956년 영화 <단종애사>로 데뷔하였다. 그는 대한민국 여자 학사배우(숙명여대) 1호이며, 후배 영화배우 여운계(呂運計, 1940~2009)가 여자 학사배우(고려대) 2호였다.

 

<맨발의 청춘> 영화는 우리나라에 청바지를 유행시키는 패션문화를 낳았다. 신성일이 영화 속에서 청바지를 입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것이다. 이즈음 유행가수 쟈니 리(Johnny Lee, 본명 이영길. 1938~)와 정원(본명 황정원, 1941~ 강원 고성 태생) 등도 청바지를 입고 무대를 휘 누볐다. 청바지패션은 미국 서부 금광노동자들의 작업복으로 시작되었고,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James Byron Dean, 1931~1955)이 입고 나오면서 미국 젊은이들에게 주목 받기 시작했고,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마릴린 먼로·말런 브랜도 같은 스타들이 즐겨 입으면서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청바지가 소개된 건 1950년대 6.25전쟁 무렵 참전 군인들에 의해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엄앵란의 팔순잔치에서도 드레스 코드가 청바지였다. 초대 인사들에게도 청바지 차림을 주문했었고, 신성일 엄앵란도 청바지를 맞춰 입고 블루스를 추었었다.

 

 

   

[유차영]

문화예술교육사

트로트스토리연구원 원장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8.21 10:54 수정 2020.08.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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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