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염천에 북한산 계곡으로 탁족이나 하러 가세

여계봉 선임기자

유례없이 길었던 장마가 끝나자 찜통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당장 멀리 시원한 산이나 바다로 훌훌 떠나고 싶지만 다시 확산 추세로 돌아선 코로나19가 발목을 붙잡는다. 어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한참을 고민 끝에 가까운 근교 계곡에서 발이라도 담구고 와야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흔히 쓰는 탁족(濯足)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맑은 물로는 갓끈을 씻고, 창랑의 흐린 물로는 발을 씻는다.”라는 맹자(孟子)’에 나오는 글귀다. 당시 한양에 거주하는 선비들은 말을 타고 북한산 일대의 계곡으로 가서 탁족을 즐기곤 했던 것이다.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한 북한산 삼천사 계곡. 과거 선비들이 탁족하러 자주 찾았던 곳이다.


서울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계곡 명소로는 북한산 삼천사 계곡과 진관사 계곡을 꼽을 수 있다.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로 나가면 이말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은평 뉴타운 아파트 단지로 둘러 싸여 있는 이말산의 '이말(莉茉)' 이나 말리(莉茉)는 둘 다 재스민을 뜻하는 단어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재스민이 외래종으로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닌데 어찌 산 이름이 이말산이 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이 산속에는 조선시대 무덤 1,700여 기가 안장되어 있는데, 무덤 주인은 주로 조선시대 궁녀와 내시, 역관 무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무덤 중 내시와 궁녀처럼 연고가 없는 무덤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여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안타까운 심경을 금할 수 없다.

 

이말산 은평둘레길을 걷다보면 주인 없는 묘지의 석물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안온하고 편안한 은평둘레길 숲길을 30여분 걷다가 하나고 방향으로 내려가면 진관사 입구에 있는 은평한옥마을이 나온다. 한옥마을을 지나 진관사 입구에서 왼쪽 계곡으로 내려서면 진관사 마실길 구간을 따라 삼천사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삼천사까지는 약 30여분 걸린다. 삼천사로 가는 둘레길 주위는 숲이 울창해 그늘에서 쉴 수 있다. 계곡물이 깊지 않고 수량도 적당해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기에 손색이 없어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진관사 입구 은평한옥마을 너머로 북한산의 장쾌한 마루금이 모습을 드러낸다.


삼천사 입구의 식당가를 지나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계곡으로 접어들어 산길을 조금 오르면 다시 도로가 나오고 미타교를 건너게 된다. 미타교에서 바라보는 삼천사 계곡과 북한산의 조화로운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여기부터는 약간 경사가 급한 나무데크 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천년고찰 삼천사로 들어서게 된다.

 

삼천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인데, 원래의 삼천사는 지금 사찰보다 더 위쪽에 자리했었다. 진관사에는 일제 때 항일운동의 역사 흔적이 남아 있듯이 삼천사에는 임진왜란 당시 항일운동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대웅전 뒤편에 오르면 커다란 병풍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을 친견할 수 있다. 세월에 빛바랜 고풍스러운 마애불에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있다.


삼천사(三千寺). 한 때 3천명의 스님들이 수도했던 대가람이어서 삼천사라고 한다.


삼천사 마애석불 뒤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으로 삼천사 계곡이 시작된다. 계곡은 문수봉, 비봉의 북쪽 작은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삼천사를 향해 내려오면서 점점 큰 골짜기를 이룬다. 계곡이 깊어서인가 스치는 골바람은 시원하고 청량감마저 느끼게 한다. 계곡은 의상능선이 있는 부왕동암문과 비봉능선의 사모바위로 갈라지는 분기점까지 계속 이어진다.

 

삼천사 계곡은 물이 많고 호젓한 곳에 있어 북한산 계곡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삼천사 계곡에서 내려와 다시 진관사 입구로 돌아온다. 진관사 입구에는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극락교 옆 계곡에는 나무 데크 산책길이 있다. 실안개가 피어나는 호젓한 산책길에는 물내음과 풀내음이 코를 간지른다. 진관사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지난 20095, 칠성각 해제보수 작업 도중에 당시의 독립운동사료들이 태극기 보자기에 싸인 채 벽 안에서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90년 동안이나 숨죽여 있었던 귀중한 사료들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가람은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된다. 진관사가 불교계 항일운동의 거점이었고, 백초월 선사가 그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진관사로 들어가는 나무데크 길. 중간에 향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이 승려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의 천추태후는 남편인 경종이 죽자 왕태후가 되어 파계승 김치양과 정을 통해 사생아를 낳았다. 그 때 아들 목종에게 아들이 없어 태조의 아들이던 왕욱의 직손 대랑원군이 왕위 계승자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태후는 자신의 사생아를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대량원군을 죽이려했으나 신혈사 승려 진관이 신혈사 수미단 밑에 지하굴을 파서 열두 살인 대랑원군을 숨겨주는 바람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목종이 죽자 대랑원군은 개경으로 돌아가 현종이 되었고,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라 하였다.


고즈넉한 진관사 절집에는 마음을 담그고 절집 근처 계곡에는 발을 담근다.

 

 

진관사계곡은 북한산 향로봉과 비봉 사이의 비봉능선에서 진관사 방면으로 이어지는 계곡이다. 계곡을 따라 경사가 급한 암반이 발달해 있고 작은 폭포들이 이어진다. 북한산이 그저 하나의 우뚝한 산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듯 바위들이 여러 골짜기로 대단하게 뻗어 그 사이에 계곡을 만들었다. 진관사를 지나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비봉능선과 만나게 된다. 삼천사 계곡에 비해 계곡이 좁아 거친 편이다. 인적 드문 계곡 물가에 주저앉아 탁족을 하면서 사바세상의 근심을 훌훌 풀어서 물길 따라 흘러 보낸다. 잠시 고개를 드니 청솔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에 흰 구름만 고요히 흐른다.


첩첩산중 진관사 계곡 물소리에 여름은 어느새 달아나고 없다.


계곡은 고요하고 바위 또한 말이 없다. 덕분에 초록 숲속 새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지저귄다. 숲속에 잠긴 계곡에서는 한낮의 여름 태양도 피해 간다. 큰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경관,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거기에 유서 깊은 역사의 숨결까지 배어있어 코로나19를 잠시 잊고 소소하고 차분하게 여름 한나절 나들이하기에는 북한산의 삼천사와 진관사 계곡이 제격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8.27 14:55 수정 2020.08.2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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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