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에서 출발한 쾌속선 탈링크 선상에서 바라보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좁다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뾰족한 어깨를 들이대며 서 있다. 마치 아웅다웅하는 건물들을 발트해의 짙은 물빛을 담은 담벼락이 포근히 감싸 주고 있는 것 같다.
‘동쪽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의 에스토니아인 조상은 다른 발트 민족들과는 다른 핀족이다. 남한 절반 정도의 땅에 13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섬이 800여 개가 넘는 대신 산은 거의 없다.
발트해의 기원은 12세기 초 한 역사가가 자신의 저서에서 덴마크, 독일, 폴란드, 발트 3국,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둘러싸고 있는 이 바다를 허리띠 같이 긴 바다라 하여 붙힌 이름이다.
발트 3국은 숱한 전쟁을 겪었다. 늘 그렇듯 전쟁의 기록은 승리자의 몫이고 피지배자인 발트인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발트 지역을 거쳐 간 지배자들은 이들을 무지몽매한 야만인으로 대하고 자신들의 영원한 농노로 삼는다. 대부분의 민족들은 흔적도 없이 발트해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그 결과 발트인의 이야기는 역사 이전의 신화 내지는 지배자에게 저항하는 나약한 민중들의 봉기 정도로만 간신히 등장한다.
하지만 13세기 독일 점령기와 중세에 벌어진 수많은 그들의 전쟁사,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인류사의 대사건인 ‘발트의 길’까지 대하소설 같은 장대한 그들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동안 작은 나라들이 버텨온 숨가쁜 여정에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된다.
오늘처럼 빛이 강렬한 여름에는 발트해의 ‘푸른색’, 탈린 구시가지 건물의 ‘붉은색’, 나뭇잎이 뿜어내는 ‘초록색’, 이렇게 3원색이 한데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여행객들에게 선사한다.
탈린 항구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간다.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탈린 성벽이 보인다. 탈린은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등 그 당시 4대 열강들의 이권 다툼이 치열했기 때문에 13세기부터 도시 외곽을 성벽으로 쌓아 방어하게 된다.
발트해 안쪽에 위치한 세 나라는 지정학적 이유로 역사적으로 스웨덴, 러시아, 독일, 소련의 지배를 받는 운명을 반복해 왔다. 이들 나라의 근대사는 강대국들의 쟁탈 역사로 점철된다. 18세기에는 러시아 영토였다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에 세 나라가 독립해 공화국이 되었고, 1934년에는 발트 3국 동맹을 체결하지만 역부족이어서 1940년에 결국 소련에 합병된다. 그 후 2차 대전 때 독일에 점령되었다가, 종전 후 다시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는 불운을 거듭한다.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독립 움직임이 본격화되었고, 1991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결국 독립하게 된다.
중세도시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탈린은 ‘발트해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다. 13세기에 독일 튜턴 기사단의 십자군 원정대가 성을 세우면서 도시가 형성되어 한자동맹의 주요 중심지로 발전하는데, 화려한 교회와 상인들이 거주하던 길드 건물을 통해 아직도 과거의 영화를 과시하고 있다. 이곳은 다행스럽게도 대화재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용케 파괴되지 않아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그 결과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유럽에서 가장 중세스럽다는 에스토니아의 탈린은 오랜 피지배의 유물들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면서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 유적지다. 그 중에서도 탈린의 볼거리는 구시가지다. 구시가지는 저지대와 ‘톰페아’라고 불리는 고지대로 나뉜다. 단순히 지리적인 높낮이의 구분만은 아니다. 과거 저지대에는 상공업자와 서민, 고지대에는 영주와 귀족, 정복자와 같은 권력자들이 살았다. 유럽 전역에서 14세기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로 평가 받는 탈린의 구시가지는 전체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탈린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지도 없이도 반나절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일단 뤼히케알그 거리(짧은 다리 거리)를 통해 먼저 탈린 고지대로 올라갔다가, 고지대에서 내려올 때는 픽얄그 거리(긴 다리 거리)를 거쳐 저지대로 내려오기로 한다. 뤼히케알그 거리를 기준으로 귀족이 사는 윗동네와 평민이 사는 아랫동네로 나뉜다.
네브스키 대성당은 톰페아 언덕의 톰페아 광장에 있는 탈린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화려한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제정 러시아가 정복 지역에서 러시아화에 박차를 가하던 19세기 말에 지어졌으며, 탈린의 전체적인 실루엣을 장식하는데, 그 중 제일 큰 종은 15톤이나 나간다.
톰페아 언덕은 탈린 구시가의 중심으로 ‘톰페아’는 최고봉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13~14 세기 경에 지어진 톰페아성은 해안가의 가파른 석회암 절벽 위에 위치해 있다. 성곽은 두께 3m, 높이 15m로 도시를 감싸며 4km나 뻗어 있고, 성곽에는 붉은빛 원뿔 모양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탑이 46개 세워져 있다.
톰성당(마리아 대성당)은 에스토니아 루터교의 총본산이다. 처음에는 카톨릭 교회였다가 나중에 루터교 교회로 바뀌었다. 현재는 박물관로 사용되고 있다.
제법 경사진 돌길을 따라 오르면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골목이 나온다. 총리공관 바로 앞에 아일랜드 대사관이 있다. 독립운동 때 에스토니아를 많이 지원을 해 주어 가장 좋은 위치에 대사관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해발 45m에 불과한 낮은 언덕이지만 주변 지대가 워낙 낮아 중세의 구시가지와 현대적 신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시야를 돌리면 발트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구시가지 한가운데에 올레비스테 성당이 보인다. 1500년 경 159m 높이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는데, 무역항인 탈린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의 항해용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한다. 3번의 화재로 재건축되었는데 처음보다 30m 낮아졌다고 한다.
4천 만 년 전의 지구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호박은 발트 여행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기념품이자 보석이다. 호박이 쏟아져 나오는 바다, 그 바다가 형성한 해변이 또 하나의 발트 보석이다. 하얀 모래밭을 생성한 발트해안은 무려 1,400㎞에 달한다. 에스토니아에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이르는 발트해안은 하나같이 유명한 휴양지이기도 하다.
픽얄그 거리로 나오니 고색창연한 호텔들과 호박 보석가게들이 있고, 도로 위에는 화가들이 그림을 판매하고 있다. 골목 모퉁이마다 아몬드를 볶아 파는 포장마차가 정겨운 곳.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이 고풍스러운 나라가 북유럽의 IT 최대 강국이라니 더 놀라울 뿐. 혁신과 역사가 공존하는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이어서 나오는 시청광장은 탈린의 중심지로 중세풍의 건물들이 광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분위기 넘치는 노천카페가 즐비하다. 겨울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린다.
구시청사는 북유럽에서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고딕 스타일의 건물이다.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도시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64m 높이의 8각형 건물이다. 현재는 각종 연회와 공연이 열리는 시민들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저지대 최고의 볼거리는 상공업자들의 공동조합조직인 길드(Guild) 건물들이다. 무역 거점이었던 탈린에 정착해 경제와 무역활동에 종사하던 독일인들은 이 지역에서 지배자로 군림을 했으나, 중세 무역사 뿐 아니라 도시 풍광의 밑그림을 그려준 미학적 관점에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게이트를 통과하고 우둘투둘하면서도 반질반질한 돌길을 걸으며 주변 건물을 둘러본다. 가지런하게 돌이 깔린 길을 따라 가면 잘 보존된 중세시대 건물들이 골목마다 쉼 없이 이어진다. 알록달록한 색깔과 귀여운 디자인의 건축 양식이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 마뜨료쉬카 인형과 기념품을 파는 매력적인 중세의 골목길도 나온다. 이어서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고 꼭 가보고 싶었던 전통 식당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14세기 건립된 탈린 성벽 앞에 세워진 문이자, 붉은 고깔 모양 지붕을 얹은 쌍둥이 탑의 이름은 비루 게이트다. 이 문은 도시 성벽의 동쪽에 위치해 있고, 중세와 현대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다. 지금은 두 개의 탑만 남아 비루 거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 비루 게이트라 불린다.
비루 게이트 주위 카페 거리는 유럽 축구 대회 결승전에 진출한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응원단들로 가득하다. 이날 밤 10시 탈린의 릴레퀼라 스타디움에서 2018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 레알과 유로파리그 우승팀 아틀레티코의 맞대결이 벌어진다. 사상 처음으로 슈퍼컵에서 ‘마드리드 더비’가 대결을 펼쳤는데, 연장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아틀레티코가 4:2로 승리한다.
19세기 말 에스토니아 타르투에서 시작된 '라울루피두‘는 노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노래잔치다. 지금은 5년에 한 번씩 수도 탈린에서 열리는 합창 페스티벌 라울루피두는 세계에서 10만 명 이상이 모여든다. 많게는 2만여 명의 합창단이 노래하는 대규모 합창의 장관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1869년 시작된 이 거대한 축제는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된다. 광장의 합창이 독립 혁명으로 이어져 ‘노래 혁명’으로도 불린다. 특히 이 노래 혁명은 이웃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도 퍼져 나가 이들 나라들도 합창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이 행사가 기폭제가 되어 1989년 발트 3국 2백만 명의 시민들이 에스토니아 탈린부터 라트비아의 리가, 리투아니아의 빌뉴스까지 장장 640km에 이르는 인간 사슬을 만들어 서로의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며 자유와 독립을 외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발트의 길’이다. ‘발트의 길’은 발트해 연안의 세 나라 민족들이 함께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탈린을 떠나 발트해에 연한 세계적 휴양도시 파르누로 향한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숲과 숲. 그러다 잠시 눈이 시원하다 싶으면 호수와 평원이다. 이쯤 되면 시나브로 무념무상에 빠질 수밖에. 그런데 그 숲의 색깔이 제각각 다르다. 어떤 때는 코발트빛이고, 또 어떤 때는 감청빛이 시야를 가린다. 해가 질 무렵의 숲은 또 어떤가. 그런 형형색색의 숲을 지나 파르누에 도착하니 숙소인 파르누 호텔 주위는 어느새 석양에 물들어 간다. 식사 후 맥주 한 잔 하러 호텔 밖 대형 그늘막으로 나오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그 어둠 속에서 보석 같은 별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영롱한 발트의 보석별이다.
발틱해에 인접한 파르누는 에스토니아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 있고, 탈린보다 작지만 중세 분위기가 남아있는 한자동맹 도시다. 여름에는 축제가 끊이지 않아 여름이면 수도가 이곳으로 옮겨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휴양도시다. 해안도로를 따라 3km의 해변 모래톱이 깔린 해수욕장은 해양스포츠의 천국으로 유명하다.
그 옛날 목재로 화려하게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들은 안타깝게도 세계 1차 대전 때 많이 불타 없어지고, 그 자리를 석조 건물들이 대신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파르누 시내 곳곳에서 화려하게 목재로 장식한 알록달록한 예쁜 집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발트는 첫 순간부터 낯설다. 서유럽이나 동유럽, 북유럽과는 물론이고 수 십 년간 강제로 동질화된 러시아와도 아주 다르다. 그 낯섦이 곧 익숙해지는 순간 생소한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발트의 아름다움은 거칠고 지난한 역사 속에 숨겨진 아픔의 극복 과정에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여행은 결국 낯선 땅을 만나러 가지만, 다양한 곳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에스토니아는 화려함 대신 신비의 아름다움을 지닌 땅이다. 그런데 억센 역사에도 불구하고 심성은 한없이 순정한 이 땅의 사람들. 더욱 아름답고 순수한 것은 아무래도 이들이 가꾸고 느끼고 즐기는 이들의 일상일 것이다.
누구든, 여행하는 사람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나는 여행이 좋고, 여행 에세이가 좋고, 무엇보다도 여행하는 사람이 좋다.
여계봉 선임기자